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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미 교수

음악대학 교회음악과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슴 뛰는 일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세요”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국제무대를 누비다

 

김보미 교수(음악대학 교회음악과)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빈 소년 합창단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자 최초의 아시아인 지휘자로 국제무대의 주목을 받아 온 김보미 교수가 월드비전 합창단 상임지휘자가 되어 다시 무대 위에 오르게 됐다. 월드비전은 올해로 창단 58주년을 맞이한 월드비전 합창단의 예술적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합창단원들이 최상의 공연을 선보일 수 있도록 세계 정상급 지휘 역량을 자랑하는 김보미 지휘자를 영입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6년 3월 우리대학교에 부임하기 전까지 김 교수는 빈 소년 합창단과 함께 뉴욕 카네기 홀, 시카고 심포니 홀, 일본 선토리 홀, 비엔나 황금 홀, 베를린 콘서트 하우스 등 세계 유명 무대에 오르며 연간 100회 이상의 공연을 해왔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13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당해 가장 훌륭한 합창지휘자에게 주는 ‘Ortner Preis’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 교육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김 교수가 월드비전 합창단을 이끌게 되면서 ‘김보미 교수가 월드비전 합창단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자신을 향한 기대 어린 시선에 김 교수는 “주위의 기대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부담감을 즐기며 월드비전 합창단을 더 활기차고 매력있는 곳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음악을 향한 치열한 사랑 … 대학을 자퇴하기까지

 

김 교수는 어린 시절 교회 성가대 반주자로 활동하며 처음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음악과 함께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그는 이웃들과 함께 노래하고 피하노를 연주하며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음대에 진학하려던 목표를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음악을 향한 열망을 충족시키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결국 그는 다니던 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1998년 우리대학교 교회음악과에 입학하게 된다. 

 

 

 

합창지휘 전공 2기로 입학한 김 교수는 우리 대학교에서 화성악, 음악사 등의 강의를 들으며 음악을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집중했다. 김 교수는 이렇게 쌓은 탄탄한 이론적 지식이 그가 훌륭한 지휘자로 꽃피게 해준 토양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지휘자가 되었을 때 음악적 이론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청중들에게 음악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연주 실력을 기르는 것만큼이나 음악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김 교수는 연세 콘서트 콰이어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미국, 일본 등지로 순회 연주를 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독일 바흐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일찍이 해외 각국을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대학 졸업 후 독일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짧은 독일어 실력이었지만 입학을 원하던 학교의 학과장에게 진심을 담아 쓴 메일을 통해 시험의 기회를 붙잡은 그는 독일에서 유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음악을 너무 좋아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었어요. 도전해서 안 될 수도 있지만 실패한다면 될 때까지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빈 소년 합창단과의 4년, 음악인으로서의 자산을 쌓다

 

비엔나의 다양한 합창단과 오페라 극장에서 경험을 쌓아 온 김 교수에게 빈 소년 합창단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500년이 넘는 오랜 전통을 가진 빈 소년 합창단에는 빈 소년 합창단 출신 지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이 독일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 지휘자가 합창단을 이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치열한 노력 끝에 원어민 수준으로 독일어를 끌어올린 그는 약 4개월의 오랜 오디션 기간 동안 힘든 경쟁을 거쳐 빈 소년 합창단 최초의 여성지휘자이자 최초의 아시아인 지휘자로 뽑힐 수 있었다. 젊은 아시아 여성이 지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들은 이사회가 김 교수의 선임을 반대했을 만큼, 당시 여성 지휘자의 탄생은 빈 소년 합창단 내부에서도 굉장한 이슈였다고 한다. 그럴수록 그는 더 열심히 연습하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음악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눈에 띄는’ 지휘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훌륭한 음악을 선보이면 더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노력한 김 교수는 자신이 느끼던 두려움과 부담감마저 기회로 삼으며 실력있는 지휘자로 자리매김했다.

 

“빈 소년 합창단에서의 4년은 제가 음악가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전 세계 유수의 콘서트홀을 돌아다니며 500회가 넘는 공연을 진행하면서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이끄는 과정에서 교육자로서도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죠. 빈 소년 합창단에서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하며 인내하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연세로

 

빈 소년 합창단에서 활약하던 김 교수는 2016년 우리 대학교 음악대학 교회음악과 교수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처음 연세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의받았을 때 주변에서는 그의 한국행을 만류했다고 한다.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는 명예롭고 정년도 보장된 자리였고 그가 머무르고 있던 비엔나는 최고의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주는 것만큼 보람차고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교수생활 3년째에 접어든 김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고 감사한 일”이라며 “학생들과 음악으로 대화하는 매 순간순간이 감격적”이라고 말했다.

 

 

다시 연세로 돌아온 김 교수는 음악대학의 발전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대학 독어독문학과, 음악대학 교수들과 협업해 독일 작곡가 휴고 디스틀러의 합창 시리즈인 ‘죽음의 춤’을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융합적인 태도로 음악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더불어 김 교수가 학창시절 몸담았던 연세 콘서트 콰이어와 함께 다양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다가오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창립 40주년 기념 전야 콘서트에도 초청받아 기념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이제는 음악대학이 세계로 눈을 돌려 국제적인 무대를 위해 발돋움 할 시기”라면서 “음악대학을 글로벌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 평생을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온 김 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그것보다 행복한 삶은 없다”며 연세의 학생들도 자신을 가슴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학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매력은 열린 시각과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연세에서 도전정신을 길러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