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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소개

yonsei university sinchon campus

아름다운 송림으로 둘러싸인 30만여평의 방대한 대지인 현 교지를 가로 지른 길이 있으니, 이곳이 곧 백양로로 연세를 모교로 삼는 모든 사람들이 사색하던 길이요, 신화의 길이며 역사를 남겨놓은 자국이 아로 새겨진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올라 가노라면 오른쪽 편으로는 현대식 건물로 5만여 평에 달하는 연세의료원, 백주년기념관, 수경원, 루스채플을 지나 음악대학, 학생회관, 대강당, 용재관, 노천극장, 청송대가 있으며, 왼편엔 연세공학원, 공과대학, 중앙도서관, 체육관, 체육교육관, 장기원기념관, 연세과학원, 과학관, 백양관, 광복관이 서로 대치를 이루고 서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이윽고 “뉴욕에 있는 우리 겨레로부터 부쳐줌” 계단 앞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계단을 오르면 우아한 모습으로 신비의 일화를 간직한 듯 연세의 궁전 같은 고전적인 세 개의 건물이 있으니 앞의 것이 언더우드관(사적276호)이요, 왼편이 스팀슨관(사적275호), 오른편이 아펜젤러관(사적277호)이다.
그 가운데 아름답게 단장된 교정의 한 가운데에는 이 학원의 창설자이며 대 연세의 초석을 이룬 언더우드 박사의 동상이 서 있다.
스팀슨관 뒤편 언덕 위 왼편에는 한경관과 핀슨관이 나란히 서 있고, 그 뒤로 신학관이 동향을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계속하여 언더우드관을 향해 가면 그 뒤에 다시 같은 모양의 웅대한 석조 건물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연희관이요, 그 바른편이 성암관, 왼편이 유억겸기념관이며, 그 뒤로 대우관이 있다. 유억겸기념관 뒤편 오른쪽에는 빌링슬리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뒷산 중턱에는 웅대한 종합교실단과 외솔관, 위당관이 서 있다.
성암관 뒷길을 따라 동문방향으로 가면 우측에 새천년관, 국제학사, 언어연구교육원, 제중학사가 있고, 대우관 뒤편 고개를 넘어 북문방향으로 가면 무악학사(학생기숙사) 5개동이 쾌적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지리적 배경

연세의 위치

이 곳이 곧 무악의 명당이며,
자유의 봉화를 쌓고
불멸의 횃불을 높이 들어
민족의 갈 길을 바로 잡아온
겨레의 배움터인
연세대학교의 교지이다.

연세대학교는 서울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약 6km 지점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신촌 로타리에서 북쪽 무악산을 바라보며 5분쯤 걸어 들어가면 연세의 관문인 백양로에 닿게 된다. 여기서 잠깐 발을 멈춰 무악의 줄기를 살펴보면, 오른편에 영조(英祖)의 후궁 영빈 이씨(映嬪李氏)의 원묘(園墓)인 수경원(綬慶園)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 무악의 동맥이요, 그 서쪽으로 길게 뻗친 서맥이 있는데, 그 사이에 푸른 언덕이 관악을 바라보며 길게 뻗쳐서 있으니, 이 곳이 곧 무악의 명당이며, 정종 때 세운 연희궁(衍禧宮)의 궁터로서 만여평에 달하는 유서 깊은 대야평(大野坪)으로 진리의 궁전을 세워 자유의 봉화를 쌓고 불멸의 횃불을 높이 들어 민족의 갈 길을 바로 잡아온 겨레의 배움터인 연세대학교의 교지이다. '연세의 노래' 첫 머리에도 나와 있듯이 "관악산 바라보며 무악에 둘려, 유유히 굽이치는 한강을 안고, 푸르고 맑은 정기 하늘까지 뻗치는, 연세 숲에 우뚝 솟은 학문의 전당" 이것이 연세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지리적 배경의 묘사이다.

역사적 배경

  • 무악 무악(毋岳)

    무악주산론(毋岳主山論)의 제청이 태조 2년 하륜(河崙)에 의하여 처음으로 주장되자, 태조는 그의 3년에 무악을 친히 간심(看審)하였다.또한 태조 2년에 다시 무악으로 행행(行幸)까지 하였으나, 여러 중신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악천도론(毋岳遷都論)이 좌절되고 말았다. 도성밖 15리의 무악산 자락에는 정종이 왕위를 태종에게 선양한 후 머물던 별궁이 위치한다. 세종2년 부왕인 태종을 위해 이곳 무악 남록(南麓)의 명당을 잊지 못하고 서이궁(西離宮)을 중건하기에 이르렀 으며 이후 연희궁으로 개칭하였다.
    특히, 무악의 영봉(靈峰)들은 인조(仁祖)때의 이괄(李适)의 난을 결정 적으로 패퇴시켜 반란을 평정한 곳이기도 하다. 6·25동란 때 자유 수호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승리를 가져온 ‘연희 고지’도 무악에 속한다.

  • 연희궁 연희궁(衍禧宮)

    연세대학교 현 교지의 일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연희궁 터는 무악 명당의 핵심지로서, 연희궁은 세종 2년(1420년)에 태종 상왕(上王)의 하명에 따라 지어진 시어궁(時御宮)으로 태종이 태상왕(太上王)으로 존숭(尊崇)되어 피방(避方)하던 이궁(離宮) 곧 서이궁(西離宮)역할을 했다. 서이궁이 연희궁으로 궁호를 받게 된 것은 태종이 돌아가신 후 세종 7년 때의 일이며, 세종은 그 다음 해인 1426년에 연희궁을 수리하고 왕비와 함께 이어(移御)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연희궁은 세종 10년 이후에는 과수원으로 꾸며져 이용과물의 증산장으로 이용된 일도 있으며, 세조 원년(1455년)까지도 건재했다. 연희궁은 성종 시대에 와서는 상전서잠실(桑田西蠶室)로 변하였다(岱版:幢 傭齋叢話). 그러나 연산군 시대에 와서는 다시 수축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수경원 수경원(綬慶園)

    무악 남쪽 동맥의 기슭, 연세대학교 입구의 바른쪽에 자리잡은 원묘의 일대가 수경원이다. 이곳은 즉위에 앞서 무고(誣告)로 뒤주에 갇혀 굶어서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思悼世子 : 장조왕[莊祖王]莊獻世子)의 어머니이신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원묘이다.

  • 대야평 대야평(大野坪)

    현재의 교지 일대를 대야평이라고 부르게 됨은, 수경원에 세워진 영빈 이씨의 원묘 앞의 묘비에서 연유된다. 그 묘비의 일절에 이 묘를 양주 연희궁 대야동(楊州 衍禧宮 大野洞)에 세운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일대가 대야평이라고 불리웠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로서 현재 본 대학교의 교지를 대야평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