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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개

보도자료

[2021.12.22.]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원주박물관 '북해 조종영 유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지정 2021.12.22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원주박물관 ‘북해 조종영 유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지정

- 조선 사대부의 삶과 죽음을 엿보다 – 북해(北海) 조종영(趙鐘永) 유물 -

 

 


연세대학교 오영교 원주박물관장


o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원주박물관(관장 오영교)이 지난 8월 시·도 지정문화재로 신청한 ‘북해 조종영 유물(이하 ‘유물’)’이 12월 17일(금), ‘조종영 묘 출토유물 일괄(趙鐘永 墓 出土遺物 一括), 강원도 유형 문화재 193호’로 지정받았다.


o 해당 유물은 풍양 조씨 교리공파 후손인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환경공학부 조승연 교수가 지난 2019년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원주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유물들은 2000년 12월 풍양조씨 교리공파 선산 묘역 이장공사(경기 양평) 중 출토됐다. 이를 조승연 교수가 수습하였고, 문중의 소장을 거쳐 2019년 9월 24일 기증됐다. 이후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원주박물관에서는 유물감정평가위원회를 구성, 감정평가회를 진행한 후 유물에 대한 학술적·문화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문화재 지정 신청을 추진하게 됐다.


o 유물은 모두 북해 조종영의 묘에서 발굴된 부장유물이다. 출토된 유물은 총 4건, 21점으로 자기 및 옥석류이다. 조선후기 이조판서까지 지냈던 조종영이 실제로 소장, 사용했던 것들로 구성돼 있다. 이를 통해 18~19세기 고위 관직자의 지석 및 부장품을 완결된 형태로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해당 시기 공직자의 삶과 죽음, 장례 문화까지 엿볼 수 있다.


o 북해 조종영은 1771년(영조 47년)~1829년(순조 29년) 대의 인물로, 조선 후기 문신이다. 조선 후기 위세를 떨쳤던 풍양 조씨 본관의 후손이며, 그의 부친은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한 조진택(趙鎭宅)이다. 1799년 과거에 급제한 조종영은 부교리/우승지를 역임한 뒤, 안주목사를 거쳐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이후로는 황해도 관찰사, 한성부 참판,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의 자리까지 오른다. 관직에 임명된 이후 주요 관심사는 경제 문제였고 국가의 전장제도와 백성들의 이해 문제 해결에 힘썼다. 사망 이후 시호는 충간(忠簡)을 받았다.


o 출토된 유물 총 4건 중 3건, 6점은 백자이다. 조선 후기 은은하고 사치스럽지 않은 인상의 백자가 고위층에서 유행했던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1건, 15점은 석재 전각(도장)이다. 하부는 정육면체로 직인 되는 측면에는 양각과 음각으로 문자를 색인했다. 그리고 각 도장마다 다른 장식을 통해 의미와 사용처가 다름을 나타내고 있다.


<백자 ‘이조판서’ 명 합(白磁 ‘吏曹判書’ 銘 盒)>


o 첫 번째 백자는 ‘이조판서 명 합’이다. 이조판서 임명과 함께 받은 것으로 보인다. 뚜껑과 합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뚜껑 바깥면에는 이조판서(吏曹判書)라고 적혀 있는데, 출토 당시 그 아랫부분이 손실되었다. 뚜껑의 크기와 글자의 모양을 통해 이조판서 (북해)조종영이라고 적혀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자 조종영지석(白磁 趙鐘永誌石)>


o 두 번째 백자는 조종영의 생애를 적은 묘지(墓誌)로, 1벌 4점으로 구성돼있다. 묘지문은 그의 아들 조병헌이 작성했다. 이를 통해 가문의 내력과 조종영의 출생, 과거합격, 관직생활 등 삶의 행적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망 이후 시호를 하사 받은 것과 직계가족의 행적까지도 알 수 있다. 본 유물은 조선후기 백자묘지 제작 기법과 매납 기법의 전형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조종영 묘의 조성 시기, 묘지문의 작성자와 작성시기가 손상 없이 명확하게 나타나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백자 발(白磁 鉢)>


o 세 번째 백자는 발(鉢, 그릇)로 ‘이조판서 명 합’ 안에서 함께 출토됐다. 생전 묘주의 소유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종영 묘 출토 전각류 일부>


o 마지막으로 전각류가 출토되었다. 이는 모두 묘주가 생전에 사용하던 것들이다. 크게 장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장식이 있는 것 중에서도 말, 해치, 사자 등의 동물 조각이 들어간 것과 나무, 꽃봉오리 등의 식물 조각이 들어간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색인이 한 면만 들어간 것과 양면, 사면으로 들어간 차이도 보인다. 그 내용은 호-北海居士를 담은 호인과 자-元卿을 담은 자인, 성명-趙鐘永(氏,印)을 새긴 성명인 등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양면 색인 도장의 경우 陰陽相間印, 白文印가 들어가 있고 사면 색인 도장의 경우 1면 주문은 鶴立鷄群, 2면 주문은 元卿, 3면 백문은 雲岩居士, 4면 백문은 趙氏鐘永이다.


o 묘주의 소장품과 더불어 생전에 사용하였던 각종 전각류가 함께 출토된 것은 매우 희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본 유물은 조선 후기 고위 관직자로서 삶과 행적은 물론 사대부가의 인간으로서 생애의 발자취를 담은 실재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장례 문화와 절차, 형식을 손실 없이 보존하고 있으니 당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白磁 趙鐘永誌石에 담긴 내용을 통해서는 조종영 개인의 삶과 조선후기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지석의 제작과 매납법을 통해 조선 후기 매장문화의 일면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유물은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이다. 해당 유물이 강원도 지정 문화재로 등록에 성공한 만큼,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원주박물관에서는 해당 유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공인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공개하여 관람객들에게 조선후기의 역사, 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알리는데 활용할 계획이다.


o 본 유물 대한 문의는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원주박물관 (033-760-2732)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