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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사회학 81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는 조미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사회학 81)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는 조미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사회학 81)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는 말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의 많은 아이들이 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조미진 동문은 지난해 말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돼 전 세계 아이들을 돕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등 유니세프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전까지 HRD 분야의 전문가로 국내외 글로벌 기업에서 독보적인 전문성과 리더십을 쌓아온 조미진 동문은 늘 ‘어제보다 나은 오늘’, 바로 ‘성장’이라는 가치를 향해 살아왔다. 이제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통해 더 큰 성장,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며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던 대학시절 

조미진 동문의 대학시절은 민주화운동 시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졸업생 선배가 방문해 들려준 사회학이 흥미로웠고, 대입 점수도 딱 맞았기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캠퍼스 생활은 강의실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는 연세춘추에서 기사를 기획하고 취재하며, 때로는 집회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많았다.


“대학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던 게 제 정체성에 대한 것이에요.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죠. 사실 대학 입학 때까지는 그냥 입시를 준비하는 데 매진했지만, 대학생활은 달랐어요. 당시 대학을 갔던 엘리트들은 누구나 민주화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할지에 대한 고민들을 했어요. 저도 그런 시기였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서적으로 너무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세춘추 기자도 1년 반 만에 그만두기도 했고요. 한 번은 연고전이 끝난 직후 잠실에서 큰 시위가 있었는데 구호를 외치다 저 혼자 무리 속에서 분리돼 얼어붙었던 경험도 있어요. 너무 무섭고 두려웠죠. 이후 제겐 칼 막스의 혁명론보다 텔컷 파슨스(Talcott Parsons, 미국 사회학자)의 구조주의가 맞다는 판단이 섰죠. 노선을 좀 바꿨어요. 그런 일들을 거치면서 제 정체성을 더 들여다보게 됐고, 결국 내 주변에 뭔가 가치를 줄 수 있는, 도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삶(Meaningful Life)’에 꽂혔어요.” 


그렇게 조 동문은 삶의 방향을 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까?’에 대한 답을 찾아나섰다. 전문성을 가지고 성장해 보고 싶었던 그는 유학을 결심해  당시에는 생소한 ‘교육공학’이라는 학문에 도전하게 됐다.


“대학교 다닐 때 방송국에서 여러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교육 관련된  방송도 있었는데 참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었죠. 그래서 유학 때 저널리즘을 선택할까도 고민했는데 원어민도 말을 잘해야 할 수 있는 게 저널리즘이잖아요. 저는 유학 전에, 어학당 2개월 다닌 게 다였죠. 우연히 교육공학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게 전문가의 지식을 구조화, 설계해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거든요. 들여다볼수록 흥미로운 분야였고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이론보다는 현실에 적용되는 일에 더욱 매력을 느낀 조미진 동문은 교육학 분야로 유명한 인디애나대학교로 유학을 결정했고, 빠른 현장 경험을 위해 18개월 만에 석사학위를 마쳤다. 

 


최적의 타이밍은 준비가 되었을 때 찾아온다

조미진 동문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최초’의 경험들이 많았고, 일찍부터 글로벌 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기회가 찾아온 순간마다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좋은 멘토들이 곁에서 그를 지원했다. 스스로의 성장에 대한 열망도 컸기에 새로운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의 남다른 커리어 성장의 시작점이 되어준 모토롤라에서의 경력도 그랬다.

 

“당시 교육공학 전공자들은 졸업 후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에 가장 많이 진출했어요. 온라인, 컴퓨터를 베이스로 하는 교육 기술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던 때라 교수 설계 일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모토롤라 트레이닝 앤 에듀케이션(Motorola Training & Education) 센터의 리더가 채용을 위해 인터뷰를 했는데, 모토롤라코리아에 대해 아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사실 모토롤라라는 회사도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중부 지역에서 가장 명성있는 회사이고, 앞으로 유망한 회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인턴십 지원을 했다가 모토롤라코리아에서의 근무를 권유 받고 바로 입사하게 됐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를 왜 채용했을까요? 사실 본사에서 하라니까 한 거죠. (웃음) 제조업인데다 당시 대졸 이상 학력의 여자가 프로페셔널 직급으로 입사한 건 제가 처음이었어요. 대졸 남자 직원들의 업무는 공정 관리가 대부분이었죠. 그런 환경에서 제가 배웠던 것을 잘 적용해보자 결심했어요. 당시 너무도 미비했던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에서부터 핵심가치 교육까지 설계하고 만들었어요. 다들 이런 프로그램이 구조화가 되는구나 하면서 놀랐죠.”


전문성을 기반으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와 성과를 이끌어 내자, 자연스레 더 큰 기회와 권한도 주어졌다.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교육에서부터 인적자원개발(HRD, Human Resources Development), 직업 훈련 등으로 차츰 늘어났고 업무 능력과 잠재력을 알아봐주는 이들도 많아졌다. 모토롤라코리아에서 보낸 8년 반 동안 그는 원맨오피스에서 12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조직으로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조미진 동문은 한국 임원에서 미국, 중국 인적자원개발 임원으로 한 단계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핵심적인 전문성을 갖고 있는 인적자원개발 분야만 고집하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조미진 동문은 새로운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모토롤라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에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런데 하향세가 되자 기회가 너무 줄었죠. 그때 새로운 오퍼를 받았어요. 테레사메티라는 셀룰러폰 비즈니스 센터의 제조 라인(Supply chain)에서 제품의 퇴장을 잘 마무리하는 EOL(End-of-Life)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었어요. 사실 많은 이들이 제품 개발과 론칭 같은 다이내믹한 일에 더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제품의 퇴장을 잘 마무리하는 일도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죠. 후에는 NPD(New Product Development)에도 참여해 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제조 공정을 고려해 실제 대량 생산에서 비효율, 문제를 개선하는 일에 참여했어요. 기존에 하던 인적자원개발과는 다른 분야였지만, 제조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죠. 이후 다양한 제조 기반 기업들과의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됐어요.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던 시간들을 비춰볼 때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최적의 타이밍을 만들기 위해서는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요.” 

 

 


끊임없이 확장해 가는 역량,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길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했던 그의 마음 한켠에는 인적자원개발이나 리더십 개발 일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이를 위해 12년간의 외국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LG디스플레이에서 인적자원개발 담당 임원으로 커리어를 이어갔다. 당시 LG디스플레이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인사 업무까지 맡으라는 권유를 받아, 인사센터장까지 역임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매우 생소한 일이었다. 인사 업무는 대개 조직 에서 성장하면서 기업 고유의 문화나 시각이 체화된 사람, 다시 말해 가장 우리 회사를 잘 아는 내부 직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외부에서 온 사람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였다. 그만큼 그의 역량은 남달랐고, 누구나 인정할 만큼 그가 일으킨 변화와 성과가 컸다. 이후 현대자동차그룹인재원의 부원장을 역임하며 인적자원개발 분야를 글로벌 선도 기업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4년 반 동안 열정을 다했고, 기업과 리더, 구성원들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그의 열정과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제가 원했던 건 진짜 훌륭한 리더가 되고자 하는 분들의 옆에서 돕는 일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무엇을 가지고 할 것인지 콘텐츠가 중요해졌어요. 콘텐츠 개발하는 데 매진했죠. 품성 리더십 개발을 6개월 정도 열심히 했어요. SK바이오사이언스 사외이사 활동을 하며 급격하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인사 관점의 KPI 등 흥미로운 경험도 했었고, 또 서울시에서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을 제안해 주셔서 공연, 아티스트 등을 지원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아주 풍요로운 경험을 누렸죠.”


다채로운 커리어 궤적이 보여주듯 그의 삶은 쉴 틈 없이 무수한 도전과 성취로 이어져왔다. 그가 이렇게 끊임없이 경험하고 역량을 확장하는 일을 놓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향해 왔던 발걸음에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저는 삶에서 지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이 온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 중 하나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인적자원개발 분야는 특히 그렇잖아요.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죠. 그런 삶의 가치와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리더들을 돕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해서 리더십 컨설팅사를 오픈했고, 4년 정도 하니까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가치지향적 삶이 이끈 새로운 길,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의 만남

지난해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조미진 동문은 지원 권유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 NGO에서 일한다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도 있고, 또 현재의 삶에서 포기하거나 정리해야 할 부분도 있어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결론은 ‘YES’였다. 유니세프의 일은 조 동문의 삶의 철학과 궁극적으로 잘 맞는 일이기 때문에 결심할 수 있었다.


“저는 삶의 가치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가치를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요. 첫 번째는 옳게 살고 싶다는 거예요. 옳은 일을 해야 하고, 옳게 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거죠. 두 번째는 나와 내 주변을 같이 보며 나누고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에요. 커리어를 성장시켜 오며 내 일과 리더십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했고 그것이 일종의 나눔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타인을 돕고 나누는 일을 미션으로 하는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그런데 그 기회가 이렇게 오게 됐어요. 세 번째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른,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나로 살고 싶어요. 그래서 한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싶죠. 이제까지의 커리어도 그렇고, 새로 맡게 된 유니세프에서의 임무도 마찬가지로 이런 제 삶의 가치가 계속 투영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성장의 단계가 될 것인지 흥미진진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이 전세계 아이들의 권리와 생존을 위한 일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명감이자 삶의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아동에게 차별없는 구호의 정신으로

유니세프는 1946년 종교, 국적, 인종, 이념, 성별과 무관하게 전 세계 어린이들을 차별 없이 돕기 위해 설립된 유엔기구다. 현재까지 190개 국가와 영토에서 모든 어린이들, 특히 가장 소외된 어린이의 권리와 복지 증진이라는 미션으로 어린이들의 생존과 발달, 교육, 보호,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간 유니세프를 통해 도움을 받은 나라는 158개국, 도움을 준 나라는 33개국으로,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1950년 유니세프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가 1994년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설립되며 40년 만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무이한 국가다. 그렇기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기관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조미진 동문에 대한 내외부의 기대감도 크고 그가 해내야 할 일들도 많다. 조미진 동문은 무엇보다 고통 속에 있는 전 세계 아동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이 모아지기를 바란다.


“저 역시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전 세계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줄 몰랐어요. 자연 재해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는 피해가 너무 커요. 지금 가자지구에서는 1만 6천 명 이상의 아동이 사망했고, 2만 명 가까이 고아가 됐어요. 우크라이나전쟁도 3년째인데 거기도 이미 수만 명이 사망했죠. 튀르키에 지진 구호현장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치료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시리아로부터 전쟁을 피해 왔는데 또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도 있어요. 한국은 축복받은 곳이죠. 그런 현실을 마주한 후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만큼 생존이라는 것이 눈 앞의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냥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예방하거나 피하거나 중재를 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그 고통을 오는 그대로 받아요.”


유니세프는 현재 전 세계 전쟁 분쟁 지역에서 구호물품 지원과 함께 아이들의 교육 프로그램, 트라우마 심리 프로그램, 영양 지원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 외부에서나 후원자들이 왜 우리나라 아동 지원에만 집중하지 않는지, 왜 1:1 지정 결연이 불가능한지 등의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니세프를 지켜온 ‘차별없는 구호’의 정신은 국가를 넘어 가장 보편적인 아동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고 또 그 영향을 확산시키는 근본적인 해결 방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유니세프 본부에서는 기금을 엄격한 기준으로 투명하게 전 세계 활동에 배분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활동을 진행해,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한 국가에서 각종 사회적 책임 활동을 수행하는 데  가장 든든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 

 


아동권리 인식을 확산하고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조미진 동문은 아이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 확산과 제고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아이들의 권리가 다른 사회적 이슈에 밀리지 않고 최우선의 어젠다로 놓여져  미래가 더 나아지길 바란다. 


“사실 사회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권리가 주요 어젠다로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어요. 뭐랄까요. 지금 당장의 이슈가 아니잖아요. 당장에 내 일상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집값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지만 사실 그것은 아이들이 주목받는다기보다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주목을 받는 것이죠. 그래서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해야 되는 일 중 하나의 큰 축은 아동 권리 어젠다들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일이죠. 가장 우선되는 아동의 기본권은 생존권이에요. 깨끗한 물을 마시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건강한 삶을 위해 백신을 맞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제 그런 것이 이슈가 되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 선진화된 이슈 발굴이 필요해요. 가령 현재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동들의 정서 안정과 건강한 발달을 돕는 마음건강 프로그램이라든가 학생 권리라든가 하는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죠.”


아동 권리 확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지난 10년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 바로 ‘아동친화도시(CFC, Child Friendly City)’ 만들기다. ‘아동친화도시 만들기’는지방자치단체와 파트너십을 통해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위해 노력하는 도시 또는 지역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그램으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기반한 기준에 부합할 경우 아동친화도시로 인증한다. 현재 전국 200여 곳 중 100여 곳의 지방자치단체가 인증되었다. 아동친화도시 만들기가 중요한 것은 작은 변화가 법률, 제도 등의 변화로 확산돼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친화도시 인증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맞추다 보면 실제로 어린이들의 환경, 삶이 좋아진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규정, 규칙, 법률까지 바꿀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구할 수도 있어요. 유니세프가 아동 권리 측면에서 각 나라에서 하고자 하는 제일 큰 일 중 하나죠. 학계, NGO와 함께 아동 권리 관련 법령이나 NGO 관련 법령 수립 및 개정을 위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하고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들은 플랫폼을 만들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위로 확산시키는 것들이에요.” 

 


 

나누면 더 커지는 선한 영향력 

인적자원개발 전문가로서 조미진 동문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인적 자본에 대해 매일 놀라고 있다. 모금, 캠페인 등에서 전문성과 함께 따뜻한 가슴을 가진 가치지향적인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가치지향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일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핵심적인 역할인 모금 앰버서더 역할을 자처하며 더욱 힘을 쏟을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그만의 전문성을 살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조직 구성원이 ‘어제보다 나은 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통해 도울 계획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임기가 끝난 후에는 또 어떤 꿈에 도전할까.


“제가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확실한 것 같아요. 늘 제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동력 삼아 살아가겠죠.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는 사실 후배들이에요. 나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혹은 이미 들어선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뭘 남길 수 있을까. 결국 제가 가진 통찰, 지식, 경험 그런 것들을 전할 수 있는 콘텐츠 관련 일을 할 것 같아요. 멘토링을 할 수도 있고, 강의를 할 수도 있고, 책을 쓸 수도 있고요.”

 

조미진 동문은 자신의 성장이라는 작은 길에서 시작해 본인이 가진 역량과 무대를 확장하고, 이를  다시 더 큰 무대, 새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해 그들의 성장을 돕고자 한다. 또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통해  나눔의 정신과 선한 의지를 전 세계와 연결해 우리의 미래를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고자 한다. ‘사람의 성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조미진 동문. 그렇게 의미 있는 성장은 연결점이 되어, 새로운 내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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