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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작가

영문학과 95학번

제43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윤이형 동문 인터뷰

서로의 작은 마음이 만나 대화할 수 있기를”

43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윤이형 동문 인터뷰



나를 닮은 누군가가 너를 닮은 누군가를 언젠가 만나는 상상을 한다다르다는  알지 못한다는  때문에 그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영원히 등돌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어떤 시간들을 묶었다 부서진 말들아직은 답을 모르는 질문들이 대화의 시작이   있었으면 좋겠다.


작은마음동호회작가의  중에서


판타지와 SF, 퀴어, 청소년, 로맨스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일궈낸 여기 연세인이 있다. 2005년 《검은 불가사리》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윤이형(영어영문학과, 95) 동문이다. 올해로 14년째 소설가의 길을 걸어온 윤 동문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법, 타인과 단절되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법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글쓰기는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정의하는 윤 동문은 “실패를 예감하지만,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작품에 투영해온 윤이형 동문은 다른 모양(異形)이라는 뜻을 담은 자신의 필명처럼 개성적인 필체와 감성으로 뚜렷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2007년 첫 번째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두 번째 소설집 큰 늑대 파랑에서 판타지와 SF를, 2016년 세 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에서는 무정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올여름 출간된 네 번째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에서는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히, 2019년에는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우리나라 대표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현재까지도 그는 게임·판타지·SF 등 각종 대중문화 코드뿐만 아니라 여성, 고양이 등 일상·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문학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대학 시절의 경험담이 소설의 자산이 된 까닭


영문학도였지만 재학 중에는 문학에 뜻이 없었다.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미련’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들어와 콕 박힌다고. 설렘과 열정으로 가득했을 법한 새내기 시절, 윤이형 동문은 ‘학점 관리’와 ‘취업’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고 했다.


“내가 어떤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탐색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오로지 취업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동기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어요. 1학년 1학기 때 친구들에게 ‘무슨 동아리에 가입할 거야?’ 하고 물었더니 ‘장학금 받아야 되니 학과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죠.”


이후 연세대 사태(한총련 사태)와 IMF가 잇달아 일어났다. 돌이켜보면 각박한 시절이었다. 사건의 본질을 바로 보기보다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만 가득했다. 그는 시위에 대한 관심도, 참여 방법도 알지 못했다.


“백양로를 걸으면 머리 위로 돌이 날아다녔어요. 학교에는 전경들이 깔려 있고, 최루탄 냄새가 캠퍼스를 가득 메웠죠. 하지만 그때는 사건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제 눈에는 투쟁 방식이 낡아 보였던 것 같아요. ‘시위 언제 끝나나’ 이 생각밖에 못 했으니 무지했던 거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엄청난 죄책감이 몰려왔어요.”




당시 모습을 스스로 ‘무지한 학생 1’이라고 칭한 윤 동문은 자신의 경험담을 하나의 일화로 남겨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설에 담았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에 수록된 《큰 늑대 파랑》이 그 결과물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연세대학교 95학번 학생들이에요. PC통신 하이텔 유저인 점, 시위가 있었던 날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갔었던 것 등 모두 제 이야기를 그대로 담았어요."



'공동체', '여성' 변화의 키워드를 만나


“씨네필(영화팬)은 아니었지만 몇 편의 영화들이 울림 있게 다가왔어요.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나 짐셔먼 감독의 ‘록키 호러 픽쳐 쇼’가 그랬죠. 생각해보니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보다는 다른 형태의 사랑, 다른 형태의 삶에 공감을 더 하는 쪽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청춘의 정점을 찍었던 90년대를 일컬어 ‘사랑의 시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이 세상과 싸우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믿었다.”며 “그 시절 영화들에 열광했고, 사랑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대학시절 그가 보았던 영화들은 후에 창작의 뿌리가 되어줬으며, 꿈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졸업 후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윤 동문은 그 꿈대로 영화잡지사 기자가 됐다. 하루하루 별다른 일 없이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느 날 불현듯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창작에 관해 공부한 적도 없었고, 이론도 알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독서를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회사를 다니며 문화센터에서 소설창작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듣는 수업이 유일한 낙이 됐어요. 이때 숙제로 썼던 단편을 공모전에 응모한 것이 덜컥 당선되고 말았어요."


소설가로 데뷔하게 되어 너무 들뜬 나머지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전업 작가로 인생 2막을 열었지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이었다. 윤 동문은 전업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했다. 글쓰기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날도 많아졌다. 윤 동문은 "우울증에 걸려 3년 동안 한 줄도 못 쓴 적이 있다.”며 “특히 문학계에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뒤에는 쓰는 행위의 무용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놓을 수 없었던 그는 글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해 나갔다고 말했다. 다시 펜을 든 그는 '공동체'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집중하게 됐다고.


"삼십대 중반까지 저는 각자도생의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공허했죠. 자연스레 공동체에 대한 로망이 생겼고, 내가 아닌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하게 된 기점은 페미니즘 리부트 때예요. 여성으로서의 나를 깊이 인식하게 되면서 소설의 변화도 시작됐어요. 옛날에는 내가 가진 취향이나 코드를 소설에 심어 놓는 걸 좋아했다면, 지금은 내가 말을 걸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다양한 경계에 머무르는 삶


"'죽음', '노화', '병듦'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었어요. 나의 문제로 직접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미 죽었는데 유지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결혼제도가 떠올랐어요. 결혼제도에 대해 제가 평소 느끼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함께 엮었어요. 저는 항상 제 소설과 함께 시간을 건너가는 것 같아요. 제 삶의 화두가 그때그때 작품에 많이 반영되는 편이에요.”


기르던 고양이가 작년에 죽은 뒤로 윤 동문은 일상이 무너질 정도의 슬픔에 잠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슬픔에 젖어 있기보다는 새로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제43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윤 동문은 이 작품에서 유려한 문장과 빼어난 감수성으로 모든 존재에 대한 따스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 결과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를 거쳐 제43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상 수상작의 작가론을 쓴 유형진 시인은 "윤이형은 어떤 일이든 결론적 해결을 빨리 내리기보다 그 과정에 억울한 이가 없는지 끝까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며 윤 동문이 쓴 소설들을 일컬어 '앎의 과정에 대한 기록일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올여름 출간한 네 번째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 역시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에 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내며 또다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저는 원래부터 모든 면에서 경계선에 머무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대부분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큰 쪽과 작은 쪽 중 하나를 택하고, 또 다른 하나를 버리게 되는데 저는 그러지 않고 둘 다 이야기하고 싶어요. 데뷔 때부터 줄곧 동시대 한국 사회가 소재인 것만은 변함없어요. 당면한 화두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는 것 같아요."


윤 동문은 현재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인 장편 소설을 준비 중이다. 평소 소설의 재미를 추구한다는 그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답했다.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아직도 소설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변함없이 ‘재미’라고 생각해요. 제 소설이 ‘재미있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X세대 윤이형 동문이 Z 세대 후배들에게


지나고 보니 행복했던 캠퍼스 추억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윤이형 동문은 요즘 들어 부쩍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교를 다시 다닌다면 조금 더 구석구석 사랑하겠노라고 말했다.


“문득 청경관의 아이스크림이나 청송대의 벤치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당시 학교 다닐 땐 여유가 없어 이러한 추억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가 없었죠. 대학생으로서 캠퍼스 생활을 잘 보낼 수 있는 좋은 여건들이 많았는데 학교를 다시 다닌다면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싶어요.”


대학시절의 추억을 회상한 윤 동문은 연세의 후배들에게도 따뜻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제가 느끼기에는 요즘 이 사회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 힘들 게 만드는 상황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서 짓눌리거나 괴로워하는 일이 많을 텐데요. 여러 가지 일들로 살아가기 바쁘고 힘드시겠지만 자기 자신의 좋은 부분을 많이 믿고,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삶을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