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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감성의 정치학, 김기정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05-01




 

 

감성의 정치학

김기정 정치외교학과 교수

 

행정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정 교수(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가 그의 두 번째 시집, 『귀향 –섬되고 나무되어』(기린원)를 출판했다. 그는 2003년 「시와 현장」지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그 해 첫 시집 『꿈꾸는 평화』(아래아)를 출판한 바 있다. 시를 쓰는 정치학자로 알려진 그의 첫 시집 『꿈꾸는 평화』는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시선(視線)을 담고 있어 다른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관련 교재로도 널리 활용되기도 했다. 완판 되었던 첫 시집 『꿈꾸는 평화』도 이번에 도서출판 오래를 통해 복간, 증보판이 나왔다. 1995년 본교에 부임한 이래 정치학계의 중견학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김 교수는 한반도 평화, 동북아 지역질서, 한국 외교정책 등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견지하면서, 시대관찰과 미래 구상을 담은 많은 논문과 칼럼을 발표해 오고 있다. 21세기 초반, 10년간 썼던 신문칼럼은 지난 2011년 『1800자의 시대 스케치』(오래)라는 제목으로 재구성하여 출판하였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시대 관찰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국제정치 현상에 대한 탁월한 분석력을 가진 학자이면서 동시에 시집을 두 권이나 출판할 정도로 유별난 감성을 지닌 연세인이다.

 

정치학과 감성, 언뜻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는 두 단어다. 정치학자에게 감성이란?

지난 3월 12일, 창립 13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노벨포럼에 전후 일본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씨가 초청되었다. 그날 그의 강연 주제는 점차 박약해지는 “인간 감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였다. 다른 한편, 그는 젊은이들의 상상력 넘치는 미래 구상이 결국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희망도 피력하였다. 감성과 정치는 동떨어진 주제처럼 들린다. 흔히 정치를 시스템, 권력, 제도, 이익의 관점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치는 국가라는 정치적 조직의 경영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국가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의 근본적 질문을 다시 생각한다. 결국 사람의 문제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 된다. 인간의 감성적 영역은 이성적 판단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감성은 기쁨, 슬픔, 두려움, 연민, 분노 등의 심리적 현상이다. 여론이란 것도 정책적 선호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정서적 판단도 여론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마음속의 감성적 방향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상상력이 빈곤해진 정치인들의 근시안적 판단이 사람 사는 세상을 간혹 불편하게 만든다.

사람이 느끼는 것, 표현하는 것에 관한 연구가 사회과학의 주변부로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정치학의 근본 주제도 결국 사람에 관한 것이다. 최근 문화, 정체성, 관념과 인식 등이 정치학 관심 주제로 부각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슬픔, 분노, 열망, 희망의 감성적 영역도 정치학 연구의 핵심적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요컨대 사회과학 연구도 “사회 속의 사람(人)”, “사람(人)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회”라는 점에서 인문학과의 결합이 불가피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학 연구에서 감성도 생경한 단어가 아니어야 한다. 되레 “이분법적 나뉨을 강요받은 것은 아닐까?”라고 되물어야 한다. 『꿈꾸는 평화』의 첫머리는 “감성과 이성의 나뉨, 논리와 정서, 과학과 직관의 나뉨”에 우리 스스로 함몰되어 있지 않은지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하였다. 학문간 통섭과 융합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던 그 경계에 피어난 꽃들이 때론 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평화에 관심을 버리지 않는 정치학자로 알려져 있다. 평화는 왜 꿈을 꾸어야 할 대상인가?

인류 문명사 5,500년 중 전쟁 없이 지나갔던 해는 불과 300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의 역사를 폭력의 역사라고 단순어법으로 결론지어 말하긴 어렵다.폭력이 가장 짙은 어둠을 만들어낼 때 인간들은 평화에 대한 더욱 간절한 열망을 가졌다.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史實)만큼 중요한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꿈이었다. 희망의 미래를 향한, 평화를 향한 꿈이었다. “전쟁과 폭력이 일상사처럼 군림해 온 국제정치현상을 탐구하면서, 20세 기적 탐구방식을 지배해 왔던 지식의 틀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었다. 사실 그것은 학문의 길을 선택하면서 가지게 되었던 오랜 숙제 같은 것이 기도 했다” (『꿈꾸는 평화』, “자평의 변”)

『꿈꾸는 평화』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시적 논변이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평화와 안보를 생각하는 우리의 사유방식이나 언술체계가 두려움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실제 존재하는 위협이나 자극만이 두려움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때론 상상이 두려움을 자극한다.” (『1800자의 시대 스케치』 “두려움을 자극하는 상상과 담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상상과 편협한 인식, 불완전한 이론체계 때문에 두려움이 강요되는” 세상일에 대한 항변을 『꿈꾸는 평화』 속에 심어 두었다. “내 피부 위로 돋아나는 번민 / 미래의 세상에도 있을래나” (꿈꾸는 평화, “2%의 시대” 부분)라는 고민을 드러내고 싶었다.

국제정치학의 출발은 평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국제정치 역사의 현장 여기저기를 살펴보면 그 열망은 쉽사리 성취되기는 어렵다. 특히 한반도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평화가 점차 위태로워지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런 자괴감이 몰려올 때마다 비관으로 자탄(自嘆)하기보다는 “꿈꾸는” 일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되뇌인다. 평화는 어떤 가치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유토피아적 가치다.

 

귀향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시집, 시인에게 귀향은 어떤 의미인가?

귀향의 문자적 의미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나의 고향 통영은 유치환, 박경리, 김상옥, 김춘수 등의 저명한 문학가를 배출한 곳이다. 문학적 감수성은 그들의 바다가 나의 바다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귀향은 그리움이 존재하는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바다는 원래 그런 곳이다. 뭍에서의 온갖 감성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평화로운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이곳의 온갖 궂은일들이 그 귀향을 어려운 일로 만든다. 청송대를 지날 때마다 바다를 떠올린다. “숲이 있는 학교, 학교에 있는 숲”을 지나면서 숲 속 나무들의 대화를 듣기도 하고, 그 대화가 만들어 내는 섬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미 고향에 가 있는 섬과 움직이지 못하는 숲 속의 또 다른 섬 사이에 존재하는 열망이 바로 귀향이다. 

『귀향』에는 47편의 시를 실었다. 1부는 “섬이 있는 바다 풍경”, 2부는 “계절이 있는 풍경”으로 제목을 붙였다. 『귀향』은 “섬되고 나무되어”라는 부재가 있다. 시 해설을 맡아 주었던 정명교 교수(국어국문학과, 필명 정과리)는 “시종 세파에 휩쓸려 다니기만 하는 듯 보였던 우리의 애처로운 삶은 실상 세파를 뚫고 나아가려는 조용하고도 끈질긴 몸부림”으로 나의 섬을 해석하였다. 바다의 동작으로 섬이 빚어지는 과정과 땅에서 솟아나 수직화로서 태어나는 나무의 의미가 동일한 것이라고 봤다. 섬과 나무는 각각 바다와 하늘, 땅과 하늘이 만나서 만들어 낸 것들이다. 섬과 나무가 되고 싶다는 뜻은 최초의 만남이 만들어 낸 결정물들의 존재적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는 것이다. 섬과 나무가 되려는 열망, 곧 귀향의 열망은 그의 해설대로 “다시 태어나는 모험”이기도 하다.

 

바다는 물결로 글을 쓴다.

떨리는 손끝에서 마법처럼 풀려나는

고운 꽃무늬,

지우고 또 지우며 글을 쓴다.

···

내일이면

그리움조차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움으로

나는 황급히 글을 읽었다.

(“바다가 쓰는 글” 부분)

 

바다는 섬을 만들어 냈기에 끝없는 그리움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바다가 쓰는 글을 읽어야 하는 지식인으로서 숙명을 자각시키기도 한다.

 

내가 정치학을 공부랍시고 붙들고 있는 이유는

저놈들 물결 때문이다.

물결 등살에도 바보처럼 꿈쩍도 않는

바다 때문이다.

뭍에 앉아 우직한 바다를 지켜봐야 하는

업보 때문이다.

(“물결의 정치학”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견디지 못한다. “하늘을 사랑했던 기억”, 바다와 섬 사이에 맺어지는 은밀한 작업에 대해 궁금함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돌아가지 못함도 안다. 지난한 국제정치적 현실 속에서 평화 만들기가 늘 어려운 일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꿈을 꾸는 대상으로서 평화와, 쉽게 되돌아가지 못하는 바다는 그렇게 병치되어 존재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은 결코 다다르기 힘든 그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현실의 동작과 생각을 이끌어가는 지침서로서 의미가 주어져 있다. 그 역시 현실로서의 엄밀한 의미도 지님을 결코 버릴 수 없다.

 

남아있는 나날에는

바다와 살고 싶다.

···

내가 강처럼 흘러

나의 끝에서 바다를 만나고 싶다.

···

강이 바다 안에서 녹아

함께 물이 되고

머릿결 쓸어 올려주며

찬찬히 얼굴 바라보는 그런

하루를 살고 싶다.

바다가 만드는 하루의 소리

종일 귀에 담으며 살고 싶다.

남아있는 나의 나날에는

바다와 함께 살고

바다 안에서 숨지고 싶다.

(“희망으로 흐르는 강” 부분)

 

vol.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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