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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이달의 연세역사] 대학방송의 선구자 연세교육방송국 / YBS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4-11-16

- 1959년 11월 19일 체신부의 개국 허가 - 지금의 시대를 현란의 시대라 할 수 있겠다. 마법과도 같은 컴퓨터에 인터넷, 그리고 위성방송, 심지어 무소불위의 인공지능이라는 얘기가 귀에 설지 않을 지경이니 참으로 정신이 어지러운 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불과 50여 년 전 상잔의 전화로 나라가 온통 거덜이 났다. 그리니 백성의 삶이 오죽 하였으랴. 입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모두가 먹을거리로 버둥거렸다. 이때 금과옥조로 지켜오던 제국주의 주입식 교육 대신에 서구의 민주교육이 들어왔다. 이제까지 읽고 쓰기에서 보고 듣기도 교육에 쓰이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audio-visual" 교육 곧 보고 듣는 시청각교육이 들어왔다. 이 시청각교육 이론에 따라 연세대학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학 내에 시청각교육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이에 대하여 「연세춘추」 제146호(1958년 10월 27일)에서는 <우리나라 교육계에 새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전해 주고 있다. 본 대학교에 설치된 시청각교육연구소에서는 지난 22일 3시 드디어 한국 최초의 음영교육센터를 개관하였다. 시청각교육이란 실제 보고 듣고 함으로써 이해를 빨리 하게 하는 새로운 교육방법으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시청각교육을 전공하고 돌아온 문과대학 장운표 선생과 이공대학의 페인(Mr. Don Payne) 선생의 설계로 80일만에 완성을 본 이 음영교육센터는 문과대학 안 학관(현 언더우드관) 제301호실을 개축하여 120여 평에 달하는 현대적 시설의 완비를 보게된 것이다. 그리고 부대시설로 녹음방송실 영사실 사진제작실 특별교실 공작실들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그것이 지금의 디지털 이상의 최신식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최신식 교육 기자재와 시설을 갖추게 되자 1년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대학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음영교육센터」의 또 하나의 시설로 오는 24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인 초단파방송(FM방송)이 음영교육센터 창설 1주년을 기하여 연세교육방송국을 통하여 송신된다. 이 연세교육방송국의 목적은 전기공학과 학생들의 기술 실습, 학생들의 편집과 프로그램 작성력 양성 및 아카데믹한 프로그램 작성, 아나운서 양성 등인데 그 방송 내용은 아카데믹한 드라마, 종교음악과의 합창과 독주 등 음악순서와 고전음악의 소개 등이다. 시설 면에서는 일반 방송국처럼 송신기 수신기 믹서 안테나 등을 필요로 하는데 다만 그 출력이 약하여 캠퍼스 주위 2마일 이내에 무선으로 송신할 수 있고 보통방송(AM)과 달리 보통 라디오로는 청취할 수 없다. - 「연세춘추」 제186호, 1959년 1월 16일 한국 최초의 FM방송, 최초의 교육방송, 최초의 대학방송으로써 그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렸던 것으로는 좀 빈약한 듯 했다. 그러나 1959년 11월 19일자로 허가번호 9274호로 체신부장관의 정식 허가가 나왔다. 호출부호 HMYA, 주파수 F3107.8Mc/s로 허가받았다. 그러나 그 후 눈부신 발전, 획기적인 도약은 눈에 띄지 않으나 크고 작은 변화는 적지 않았다. 연세교육방송국은 1962년에 이르러 첫 시련을 겪게 되었다. 학교의 부설기관인 음영교육센터의 부설기관으로 탄생한 방송국이라 음영교육센터에 옹색한 더부살이 살림이어서 재정 지원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하여 11월에 들어서 무선방송이 중단되고 유선방송으로 대신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1963년 7월 2일부터 방송시간을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하여 다시 전파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때 방송반 학생임원들은 이를 방송국 재개국이라 했다. 그리고 1964년부터 호출부호가 HMYA에서 HL2AB로 변경되고 주파수도 1965년에 107.8MC에서 107.7MC로 변경되었다가 1966년 1월 1일부터 상용 주파수 범위 밖인 53.3MC로 격하되었다. 그 후 1974년 3월에는 언더우드관 3층에 있던 방송실도 음영교육센터가 있는 종합관 6층으로 옮겨서 제반시설을 음영교육센터와 같이 쓰게 되었다. 이로 보면 더부살이는 끝이 없다 하겠다. 이 방송실 이전 때 약간의 승강이가 있었다. YBS 주임교수의 앞으로 충분한 검토 후 신문방송학과의 실습장으로 개방할 방침이라는 발표 때문에 어느 특정 학과에 전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썽이었다. 처음 개국 때 전기공학과만 있을 때는 탈이 없다가 신문방송학과가 개설된 뒤부터 인심이 달라지게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연세교육방송국이 탄생한 후 숲속의 향연 고궁 음악 감상회 무악 방송제 방송 연고전 등등으로 연세인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전규태 작시, 박재열 작곡으로 백양로 노래까지 제정하여 보급에 앞장섰다. 또한 1967년 11월에는 매머드 안테나인 무악 타워까지 준공하는 등 시설 확장에도 수 없이 노력해 왔다. 지금 연세에 들어오면 학교를 마칠 때까지 여느 강의보다 YBS의 방송을 제일 많이 들어야 된다. 비록 학점은 없지만.

글 - 김상기 (전 연세기록보존소장)
자료제공 - 연세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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