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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이달의 연세역사] 연고전Ⅱ - 정기 연고전의 시작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4-10-01

파란과 곡절 끝에 1956년에 이르러서야 두 학교가 정식으로 공동 개최하기로 합의되었다.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열되 경기 종목도 늘어났다. 1956년 10월 22일, 23일 이틀동안 「연세대학교 대 고려대학교 친선체육대회」라는 이름으로 그 옛날 화려하던 「연고전」의 영광을 되살렸다. 경기 결과는 축구 1 : 1, 농구 84 : 87, 야구 3 :2, 럭비 11 : 3, 아이스하키 4 : 4의 우승이었다. 현란한 양교 응원전도 장안의 한 볼거리가 되었다. 일제 때 불멸(?)의 연전 응원단장 김종수 동문(1941년 12월 문과 졸업)의 뒤를 이어 연희대학 불세출의 응원단장 이만섭 동문(1957년 정외과 졸업)이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이만섭 동문은 나중 언론계를 거쳐 정치계에 입문하여 두 번씩이나 국회의장을 역임하였으나 재학 때는 「털보 응원단장」으로 「연희대학 명물 열전」 제1호에까지 오른 학생이었다. 그러다 1959년 정기 연고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연희 응원단에 여학생 「치어 리더」가 등장하여 상대 팀 응원석에 경악을, 장안 시민에게는 경탄을 선사하였다. 연희대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남녀공학을 실시한 덕에 고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학생 자원(?)이 풍부한 때문이다. 그러나 연고전이 거듭될수록 연희 응원단에 남 모를 고민이 있었다. 고려 응원단에서는 호랑이가 그려진 붉은 기를 들고 나옴에 비해 연희측으로서는 대형 응원기가 없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1960년 11월 1일 정기 연고전에서 「위대한 독수리」가 「화려하게 탄생」했다. 독수리 탄생에 대한 비화는 이러하다. 4·19가 나던 1960년 그때 가을은 연고전 준비로 온 캠퍼스가 들썩했다. 매일 오후면 응원 연습이 시작되고 여학생 치어 리더도 첫선을 보였다. 연고전이 열리기 며칠 전이었다. 그때 총학생회장이던 이공대학 채희철군이 연세춘추사 편집실로 찾아와서 연세의 상징을 무엇으로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어 왔다. 내용인즉 고려대에서는 대형 호랑이 깃발을 만들어 애드발룬에 띄울 준비를 하고 있으니 우리도 이에 맞서 더 큰 깃발을 만들어 더 큰 애드발룬에 달아 띄우려 하는데 어떤 것을 그려 넣으면 좋겠느냐 하였다. 총학생회 간부들끼리도 의견이 통일이 안 되고 학교측에서도 특별한 의견이 없다고 연세춘추 편집국장 의견을 듣고 만들겠다 하였다. 연고전 날짜는 다가오는데 만들 시간이 없으니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무심코 “독수리가 어떠냐”고 대답을 했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그리고 예민한 시력과 후각으로 지상의 동물을 지배하는 독수리이니 호랑이가 이길 수 없는 유일한 맹금류라는 그저 막연한 생각에서 대답한 것이다. 그런데 독수리가 좋겠다고 쉽게 결정해 버리고는 독수리 깃발을 제작 의뢰하러 가는데 동행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역사적인(?) 독수리 깃발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독수리의 부리와 발톱, 그리고 눈매에 역점을 두되 먹이를 찾아 쏜살같이 내려오는 모양으로 그려 주도록 당부하여 그렇게 그려졌다. 그런데 이 독수리가 문제될 줄이야, 독수리로 잘못 결정되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응원 연습을 지도하러 오셨던 선배 한 분이 “고려대는 벌거숭이 야산이니 호랑이가 나오지만 연세대는 나무가 울창한 밀림이므로 사자가 어울린다”하자 전교생이 옳소를 연발하면서 사자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다시 제작할 시간이 없었다. 연고전 날짜는 사흘을 남겨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올해만 독수리 깃발로 그대로 쓰고 다음 해 다시 의논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연고전이 열리던 그날 석간신문마다, 그때는 신문도 많았다. 「독수리와 호랑이의 대결」이라는 연보전 기사와 함께 무섭게 노려보는 독수리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이제는 독수리를 사자로 바꾸려해도 바꿀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 후 사자로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도 쑥 들어가 버렸다. 이리해서 신문이 연세의 상징으로 기정 사실화해 버린 것이다.(박희도, <사자로 바뀔번한 독수리>, 「연세춘추」 제1000호, 1984년 11월 19일) 도하 각 일간 신문에서는 「독수리의 탄생」을 대서특필(?)했으나 정작 연세춘추는 오늘의 독수리로 성장하게 됨을 모르는 듯 그저 덤덤하게 그 소식을 전할 뿐이었다. 딱딱이 박수가 더 신기했던 모양이다. 개회식이 끝나자 양대학교 응원단은 기염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원색의 갖가지 기치가 휘날리는 중에 「푸른 바탕에 독수리가 그려진 응원단기」 앞에 정좌한 본대학교 4천여 응원단은 신발명 딱딱이 박수로 기세를 올리고, 붉은 바탕에 맹호가 날뛰는 응원단기 앞에 자리 잡은 5천여 명의 고대 응원단은 서울에서는 보기 드믄 농악대를 편성하여 이에 응수하여 장관을 이루었다.(「연세춘추」 제224호, 1960년 11월 7일)

- 글 - 전 연세기록보존소장 김상기, 자료제공 - 연세기록보존소

 

vol.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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