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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기타 소식] [이달의연세역사]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4-03-16

한국어 교육의 선구 「한국어학당」 제1회 졸업
- 1960년 3월 26일 -
 


현재의 언어 연구 교육원 건물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은 한국어 교육을 통해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을 이해시키기 위해 1959년 4월 1일 설립되었다.

  처음 시작은 미국 장로회 선교사 원요한(John T. Underwood) 목사가 원일한(Horace G. Underwood) 교수에게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제의하여 연세대학교로부터 승낙을 얻어 곧 준비 회의에 들어간 바 1958년 7월 9일 기독교서회 회의실에서 모여서 연세대학교 내에 한국어학당을 설립키로 공동 결의하게 되었다. 이에 연세대학교는 이 결의에 따라 재단 이사회와 문교부 승인을 얻어 1959년 4월 1일 개설하였다. 개설 당시는 7명의 교수진으로 24명의 수강생을 받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한국어학당의 첫 시작은 「광복관」에서 시작하였다. 「광복관」은 조국이 광복되고, 또 6·25동란이 멎은 뒤 연희가 처음으로 건물다운 건물을 세우기로 하여 1955년 3월에 착공한 후 1년 2개월만인 1956년 5월 25일 연희 창립기념일을 기하여 헌당식을 거행한 건물이었다. 나중 「광복관」으로 이름을 고쳤지만 세울 당시에는 「교육관」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교육관」에는 「정법대학」(1층), 「대학원」(2층), 「도서관」(3층)들이 들어갔다. 또 이 교육관에는 나중 부산에서 올라온 가정대학(지금의 생활과학대학)도 첫 살림을 꾸려 나갔던 건물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건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법과대학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광복관」의 일부를 사용해오던 한국어학당은 1965년 여름에 독립건물을 신축하기 시작하여 1968년 여름에 완공해서 이전해 들어간 곳이 바로 지금의 「연구관」이다.
  그때의 학급 편성은 정규반, 대사관반, 유쎄이드반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유쎄이드반은 한국으로 파견나온 유쎄이드 직원, 대사관 반에는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각국 대사관 직원과 외교관을 중심으로 한 고급반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정규반은 하루에 4시간씩, 1주일에 5일 수업, 한 학기는 10주, 1년을 3학기로 2년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을 주었다.

  「대부분의 외국 사람들은 한국 말이 아주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분들이 대학에 다닐 때 여러 외국어를 배웠겠지만, 그 대부분은 인도-유럽 계통의 말이였다. 목사나 신부들이 히브리 말을 공부하였지만 이 말도 역시 인도-유럽 어족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한국 말이 이 사람들에게는 참 이상한 문법과 말씨로 보인다. 그러나 누구든지 우랄-알타이어 중 하나를 공부해 보면 한국어 문법의 이치를 잘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어를 아는 사람은 한국에서 쓰는 많은 한자를 잘 알아 볼 것이다.
  영어는 아주 어려운 말이다. 그 까닭은 몇몇 다른 언어가 섞여 된 말이기 때문이다. 문법은 독일에서 왔지만 말들은 불란서, 라틴, 희랍과 옛 독일에서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그 말은 많이 바뀌었으나 철자법은 오랬동안 고치지 않았다. 그래서 매우 어려운 말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말은 반대로 중국에서 낱말을 많이 빌려왔지만 말들은 다 한국 문법으로 쓰며, 외국에서 들어온 말들을 원 한국 말처럼 쓴다. 문법적으로 말하면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와 같은 이치를 가지고 있다. 이 여러 말들은 다 한 첨가식(덧붙이는 꼴)으로 만들어진 문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문법 체계인데 줄기 뒤에 씨끝을 하나하나씩 차례로 붙이는 것이므로 알아보기가 매우 쉽다. 희랍 말 문법책 수백 페이지는 한국 문법책의 원리에 대한 두서너 페이지보다 못하다.
  그러나 한국 말 발음은 다른 문제다. 외국 말은 약 서른 개의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고 한국 말에도 약 서른 개의 서로 다른 소리가 있는데, 이 둘 사이에는 비슷한 소리는 열두서너 개 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것을 들은 외국 사람들이 말하기를 성내는 듯 하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성내는 듯 말하면 한국 말 발음을 배울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도-유럽 어족의 말만 아는 사람은 한국 문법을 공부할 때에는 보통 화를 잘 내기 때문

에 한국 말 발음을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한국 말은 배우기 쉽다.」
  
  이 글은 당시 한국어학당 5급에 재학하고 있던 대천덕(Archer Torry, 성공회 미카엘신학원 원장) 박사가 「한국어에 대한 감상」으로 「연세춘추」(1959년 11월 30일)에 기고한 글이다. 짤막하나 한국어를 바로 살핀 놀라운 글이다. 그리고 이로 보면 한국어학당이 외국인에게 어떻게 한국을 소개하고 이해시켰는지를 알수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쓴 대천덕 박사가 영광의 1회 졸업생이 되었다.

  1960년 3월 26일 한국어학당 기도실에서 한국어학당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여 Archer Torry 성공회 신부와 역시 성공회 David George Cabett 신부 이 둘이 졸업하게 되었다. 이들은 1959년 4월 6일 입학하여 2년여동안 6학기를 수료한 것으로 이날 대천덕 신부는 졸업 소감으로 '한국 말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된데 감사한다'하고 '연세대학교 선생님들은 선교사의 선교사가 되 달라'라는 말로 자신의 소감을 피력하였다.

  그뒤 1991년에 현재 언어연구교육원 건물이 신축되었고, 1997년 미국 L.A.에 연세L.A.어학당을 개원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적인 한국어교육기관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되었다. 2004년 현재까지 모두 113개국으로부터 3157명의 졸업생과 51897명의 이수생을 배출하였다.


(자료제공 - 연세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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