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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기타 소식] 이달의연세역사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4-02-02

1938년 2월 연희전문 도서관 압수 수색 사건


1938년 2월 24일 일경(日警)은 불시에 연희전문과 이화전문의 도서관을 수색하고 불온서적이라는 이름으로 한일합병 관련 자료와 반일서적 등을 압수해갔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검거되는 등 연희전문에 큰 파장이 일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연일 조석간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1938년 2월 24일 오후 2시
도서관 압수 수색으로 시작된 「경제연구회 사건」-

 「24일 오후 2시부터 서대문 경찰서에서 아연 긴장하여 형사대를 몰아 신촌에 있는 연희전문학교와 이화전문의 두 도서관을 습격하여 적색赤色 도서와 불온사상 서적을 압수하는 동시에 연전 학생 임종배林鍾培 등 2명을 데려다가 엄중 취조 중이다. 사건의 내용을 극비에 부치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들은 바에 의하면 연전학생 중심으로 모종의 불온사상 연구의 조직이나 있지 않은가 하는 혐의라는데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크게 주목된다. 더욱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상시 하에 있는 국내 사상 취체를 엄중히 하는 경찰당국에서는 종래 다소 관대한 취체를 하여 오던 도서관 내에 있는 학술적 적색 출판물과 불온 출판물까지 전부 일소시킬 모양으로 철저한 감시를 펼칠 방침인 듯 하다 한다」- 동아일보 1938년 2월 26일


  서양사를 전공한 이묘묵선생은 씨라큐스대학에서 2년간 강사로 활동하다가 모교인 연희전문으로 부임하기 1년 전부터 도서관학을 연구하고 1934년 4월에 부임하여 왔다. 그리고 선생은 서양사와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도서관장과 함께 박물관장을 겸하게 되었다.
  선생이 도서관장으로 있던 1938년에 「도서관 불온서적 압수사건」이 일어났다. 일경의 연희전문 및 한국 지식층에 대한 감시가 심했던 만큼 홍이섭 조풍연 등 독서클럽 회원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자유주의 철학과 문학서적 등을 도서관에 기증하자는 운동을 폈고, 이 같은 뜻에 이묘묵선생도 적극 찬동, 채플에서 광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며칠이 안되 수백권의 책이 기증되고 이 같은 운동은 대대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눈치 챈 일본 경찰이 1938년 2월 24일 불시에 도서관을 수색하고 불온서적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기증한 도서를 포함하여 한·일합병에 관한 영문자료와 반일관계 서적들을 압수해 갔다. 그 위에 일경은 이묘묵선생을 불온서적 수장하였다는 죄명으로 검거하고 책을 기증한 학생 명단을 공개할 것을 강요했다.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투옥된 이묘묵선생에게 일경은 「교수」라는 직함 때문에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지만 갖은 핍박을 가하였으나 선생은 함구무언일 뿐이었다. 한편 도서기증에 주동이 되었던 학생들은 자백하려고도 했으나 선생의 뜻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선생은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는데 학생들은 이묘묵선생을 찾아 뵙고 사과를 드리자 선생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압수당한 만큼 책이 줄었으니 내 돈으로라도 사서 메꿔야 겠소」하며 담담하게 말하였다 한다」 - 연세춘추 제785호(1977.5.23.) - 연세혈맥 ; 어려운 시기를 살다간 이묘묵


  이렇듯 모두들 처음에는 「도서관 불온서적 압수사건」쯤으로 여기던 일이 나중 일파만파 파란을 일으킨 「연희전문학교 경제연구회사건」 일명 「적색 교수단 사건」의 신호탄임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일본 경찰의 수사는 1938년 2월부터 그해 12월 15일까지 10개월이나 끌었다. 그 동안 경찰은 부교장 유억겸 외에 이순탁 백남운 노동규 홍승국 최순주 임병혁 정인섭 박효삼 정래길 정광현 등 상과 전임교수 전원을 연행해 갔다. 그리고 졸업생과 재학생도 검거했다. 1937년 졸업생 박선옥을 비롯하여 최병준 김창식 정해돈 김종하 이원구 그리고 임종배 김규삼 등의 재학생을 포함하여 60여 명을 체포했다.
  그리고 1938년 12월 26일에 검찰이 이순탁 백남운 노동규 세 교수를 기소하여 예심에 회부하고 그 외에는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그 뒤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40년 12월 21일 오전 10시 선고공판에서 세 교수에게 각각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므로서 막이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임종배는 감옥에서 취조중 고문으로, 노동규교수는 건강을 다쳐 풀려나자 곧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일본 경찰은 학교 안을 샅샅이 뒤져 학생단체 명부, 동문회 명부, 시험답안지철, 각종 회의록 등 총 2,212종을 압수해 간 중 도서류만 도서관에서 546종, 상과연구실 53종, 문과연구실에서 22종을 불온서적이라 하여 압수해 갔다. 이때의 상과연구실이나 문과연구실 등에서는 연구 기능도 수행했지만 도서관 못지 않게 도서관 기능도 갖추었기 때문에 소장 도서를 압수 당한 것이다.

  이 무렵 연희전문에 불어 닥친 회오리를 보고 윤치호 옹은 그의 일기(1938년 5월 16일)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최근 두 달 동안 연희전문이 곤경에 처해 있다. 3명의 교수가 공산주의 서적을 이 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다는 이유로 수감중이다. 어제는 경찰이 불온서적을 찾는다는 이유로 이 학교 전체를 수색했다. 유억겸 군 집도 수색을 당했다. 내 사위인 정광현의 집도 어제 저녁에 수색을 당했다. 오늘 오전 광현과 이춘호 군이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총독부가 연희전문을 폐교시키거나, 최소한 선교사의 수중에서 이 학교를 빼내려는 정책의 일환인 것 같다.」

 

 

vol.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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