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거창고 교장 도재원 동문(화학공학 62년 입학)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3-11-01

기독교 정신을 근간으로 전인교육 실천한다


거창고교는 전교생이 4백60여명에 불과한 조그만 지방학교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간본위의 교육, 자율적인 학사운영 방식, 다양한 동아리 활동, 과외 없는 학교 등 입시위주의 교육 환경에서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학교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눈이 내리면 전교생이 뒷산에서 토끼몰이를 하고, 일주일 동안 예술제를 치르는 모습은 별나게 보이기까지 한다.
거창고는 이러한 교육환경을 통해 지난 10년간 평균 90%에 이르는 높은 대학진학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자제를 입교시키면서 유명세를 더해 전국에서 입교지망생이 몰려들고 있다.
도재원 동문(화학공학 62년 입학)은 30여년간 거창고에 봉직하면서 현재의 거창고교를 일궈낸 주역 중 한 명이다. 1990년부터는 거창고 교장을 맡아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참교육을 실천하고 있고,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 개혁과 변화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와 함께 2002년에는 도산 교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세가 키워낸 헌신적인 전인교육자 거창고등학교 교장 도재원 동문을 찾았다.

 

* 거창고등학교의 전인교육이 거둔 성과는 무엇입니까
 전인교육의 성과를 객관적 잣대로 재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서울 모 지역의 유명한 고등학교에서 거창고로 전학 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전학 후 3개월이 지났을 때 학생의 부모가 학생에게 전에 다니던 학교와 거창고등학교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학생이 “전에 다니던 학교는 아귀다툼이 있는 곳이고, 지금 다니는 학교는 사람 사는 곳입니다”라고 했답니다. 또한 거창고교 출신들은 이름 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 수도권과 지방간의 교육환경 격차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지방고등학교의 장으로서 어려움은 없으신지
 사회, 문화, 교육의 환경이 아주 다른 도시와 농촌에 교육정책은 동일하게 시행하니 여건이 나쁜 농촌 교육이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농촌 인구의 자연감소와 농촌 교육을 못 믿어서 자녀들을 도시로 및 가족 전체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농촌 학생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작은 수에 대해 관심을 덜 가지는 속성이 겹쳐서 지방교육은 참으로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선 긴급한 처방은 지방의 단위 학교에 자율권을 주고 운영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저는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을 했습니다. 등록금을 못 내서 제적되기도 하고, 모교인 거창고에 교사가 없다기에 대학을 휴학하고 고등학교 강사로 나서기도 하는 바람에 졸업하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한번은 등록금을 못 내어서 제적을 당했습니다. 일년 동안 열심히 벌어서 복적을 하러 갔더니 복적 원서 내는 기일이 지나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과장님이 교무처로 전화를 해서 선처를 부탁해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막 끝났을 시간 즈음에 김동길 교무처장을 찾아갔습니다. 사정을 말씀드렸으나 원서 제출기한이 며칠이나 지나서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얼마나 어렵게 들어온 대학이며 일년 동안 오직 복적만을 목적으로 피나는 노력을 해왔는데 여기서 좌절되면 인생이 끝이라는 생각에 무조건 졸랐습니다. 퇴근시간이 되어 너무나 사정이 딱한 것을 안 처장님이 원서나 작성해보라고 하시면서 나가셨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연세 춘추에 실린 복학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었습니다. 연세인에서 탈락 될 뻔한 그때 일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고교 은사님이신 고 전영창 교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아주 어렵게 대학을 다녔습니다. 필동의 맨 끝 남산기슭의 무허가 판자 집에 자취를 하던 때이었습니다. 한 번은 돈이 떨어져 3일을 굶은 적이 있습니다. 굶으면서도 오기로 필동에서 연세대까지 걸어서 학교는 갔습니다. (물론 힘이 부쳐서 오전 수업만 받았지만) 참다못해서 교복 바지를 들고 전당포마다 찾아 헤맸으나 교복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힘도 다 빠지고 절망도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자취방으로 돌아오다가 인현시장에 있는 싸전에 갔습니다. 교복을 맡길 테니 쌀 한 되만 달라고 했습니다. 연배가 30대정도 되어 보이는 사장님이 한참을 쳐다보더니 큰 푸대에 쌀 한 말을 되어서 교복과 함께 주면서 돈이 생기거든 갚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쌀을 받아들고 한없이 울었지만 학업을 계속할 용기도 가지게 되어 연세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분을 찾을 수 없는 것이 한이 될 뿐입니다.

*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너무 가난하게 자라서 학업을 중단해야할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느낀 좌절감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벌어서, 공부는 하고 싶은 데 돈이 없어서 좌절하는 학생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재학시절 모교인 거창고에 교사가 없어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휴학하고 내려와 가르친 경험도 있었고, 4학년 말 인사차 교장선생님을 찾았더니 선생을 못 구해서 학교 못 하시겠다는 절박함이 섞인 말씀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제가 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큰 숙제를 해결한 느낌으로 점심을 함께 하자고 하셔서 둘이 짜장면을 한 그릇 씩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제 적성에도 맞았고, 돈으로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가르치는 것이 더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어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 오랫동안 중등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육자로서 우리나라 교육의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육의 과제나 그 해결 방안이 무수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과제를 말한다는 것이 내말에 머무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하겠습니다. 교육의 국가 통제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삶의 다양함이 인정되지 않고 관심의 대상이 획일화되었습니다. 선발 중심의 교육이 되어서 학생들의 사고의 틀이 좁아 졌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자율화하고, 초·중·고교도 단위학교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육이 출세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사회·학부모·학교 모두가 교육의 목적을 오로지 상급학교 진학으로만 여기는 되어 가치관교육은 설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단위 학교에서는 한 학생의 삶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가슴 뜨겁게 받아들이고, 사람은 서로 다를 뿐이지 누가 누구보다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시켜 함께 사는 삶 추구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으로 성실히 사는 삶을 서로가 인정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만드는 교육해야 합니다.
이런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소요되므로 장관이 자주 바뀌어도 안 되고, 정부가 바뀌어도 교육정책이 계속되어한다고 생각합니다.

* 특별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아니라 가슴 뜨겁게 받아들이고, 사람은 서로 다를 뿐 우열의 개념이 없이 동등한 가치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타고난 재능으로 자기의 소명을 다하는 사람이면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가 참으로 귀한 존재이고, ‘나’만큼 귀한 ‘너’가 옆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내면화 시켜서 바깥행동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인성 교육이라 봅니다. 그 교육은 사랑을 통한 만남과 체험을 통한 자율성 신장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모교나 후배들에 바라는 점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할 때, 그 모든 속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사람들이 다 포함된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잠재적 아들로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전파하는 학교와 후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이지 우열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 정서를 만들어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vol. 378
웹진 PDF 다운로드

연세소식 신청방법

아래 신청서를 작성 후 news@yonsei.ac.kr로 보내주세요
신청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