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방송인 김동건 동문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3-10-16

연세라는 이름표는 아나운서 김동건을 이끌어온 원동력

18년 동안 KBS '가요무대'를 지키며, 노래에 실린 구수한 입담과 잔잔한 목소리로 중장년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김동건 동문(교육학과 58년 입학). 현재는 가요무대를 떠나 대담프로그램인‘리얼토크 김동건의 한국인, 한국인’을 진행하고 있다.
현역 아나운서로는 흔치 않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행솜씨에는 여유와 함께 젊음과 탄력이 살아있다. 이는 그가 연세인이기에 품고 있는 진리와 자유의 열정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 방송인들이 하루살이 인기로 쉽게 사라지는 요즘 풍속에서, 40년 동안 변함 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김 동문의 모습은 더욱 시선을 끈다.
국내 시청자뿐 아니라 해외동포까지 두루 챙기며 그 사랑을 받아온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이자, 모교의 일이라면 늘 발벗고 나서는 진정한 연세인인 김동건 동문을 만났다.


* 40년간 방송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방송은 김 동문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축으로 라디오 뉴스를 즐겨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나운서 목소리가 참 듣기 좋더군요. 또 어렸을 때부터 제가 말을 잘했던 것 같습니다. 동네 어른들께서 나중에 변호사를 시키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말입니다. 학창시절에도 온갖 행사 사회를 다 맡아서 본 것은 물론이고, 대학 3학년 때는 YBS가 생겨 제1호 아나운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나운서는 이렇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의 꿈이었고, 대학시절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 번 떨어져 3번의 도전 끝에 쉽지 않게 이뤄낸 꿈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내 인생에 있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젠가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전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아나운서가 좋으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아나운서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고, 다시 태어나 한번 더 하게되면 더 잘할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저는 아나운서라는 직업밖에 모르고 살아왔고, 제 입장에서는 아나운서 보다 더 좋은 직업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6월, 18년간 진행했던‘가요무대’를 갑자기 떠나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재미있는 있는 서양이야기 하나 해보겠습니다. 어느 아주머니 두분이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소식을 묻는 중, 한 여자가 묻기를 "시집간 딸은 잘살고 있느냐?"고 물으니, 딸을 시집보낸 아주머니가 "우리 딸은 아주 팔자가 늘어졌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침대로 밥을 가져다주고,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전화 걸어서 점심 먹으러 나오라고 해서 비싼 식당에서 밥을 사주고, 또 이날은 생일이 가까워졌다, 저날은 저렇다하며 만날 저녁에 외식시키고, 밍크코트에 다이아몬드 반지에 아주 팔자가 늘어졌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 "장가간 아들은 어떠냐"고 물으니, "그 놈은 글쎄 무슨 재수인지, 여편네를 잘못 만나, 아침에 일어나면 밥 가져다 달라, 점심 저녁때는 외식하자하고, 밍크코트에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원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 원하는 데로 다 해주다 보니 거지같이 살고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더란 겁니다.
인간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쪽이 반드시 생깁니다. 한쪽이 손해를 보더라도 시어머니나 친어머니 모두가 결혼을 잘했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건 불평을 안 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불평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18년이나 하던 내 프로그램, 내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던 프로그램을 그만 두는데 어찌 소회나 감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만두는 사람마다 불평을 토해낸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다만 섭섭하다 아쉽다 정도만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나 18년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선은 시청자 여러분들에께 너무도 고맙습니다. 제가 나가기만 하면 박수를 쳐주었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인간이 그런 고마움과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는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것을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요무대' 방송을 끝내는 날 '누구든 나를 쳐다만 보면 인사하겠다'고 했습니다. 40년 동안 아나운서를 했으니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바로 그 사람이 가요무대를 봐준 사람이니 말입니다.

*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1963년 대학 4학년때 복학하자마자 동아방송에 입사해 아나운서가 됐습니다. 그래서 출석이 부족해 졸업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유독 교수님 한분께서 학점을 안주셔서 1년이나 학교를 더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김동길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께 '복학후 아나운서가 되었고, 지금 말단 아나운서라서 학교 나 올 시간이 없습니다. 때문에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못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김동길 교수님께서 교수 회의에서 '학교의 목적이 뭐냐? 졸업하고도 노는 사람이 많은데, 재학생이 언론기관의 직원이 됐으면 연대의 자랑이 아닌가. 졸업을 시켜야지 학점을 안 준다는 것은 아나운서를 그만 두라는 것인가?'라고 주장하셨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제게 학점을 주셨고 졸업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점을 주지 않으셨던 그 교수님도 참으로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그리고 특히 김동길 박사님은 정말로 감사한 분입니다. 제가 대학시절 그 분 연세가 갓 30대였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강의를 잘 하시는지. 또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냉면도 사주시고, 방송하고 나면 전화도 해주시고, 정말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제가 사회에서 처세해 나가는 과정에 그 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 모교에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전기금도 여러 차례 기부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송자 총장시절 기금모금을 위해 저금통을 만들어서 돌리기까지 했는데, 모금이 잘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문회 행사에서 사회를 보다가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돈을 좀 낼 테니, 여러분들도 돈을 좀 내겠는가. 내겠다는 사람은 박수를 쳐라'고 말이죠. 그랬더니 모두들 박수를 쳤습니다. 이렇게 동문을 독려하기 위해 광고출연금으로 받은 1억원을 장학금으로 냈습니다.
또 한번은 아파트 광고를 해달라기에 광고주에게 1억 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큰 금액이지만 그 출연료는 연세대에 체육발전기금으로 주려는 것이라고 했더니 쾌히 응낙하더군요. 이전에 1억원을 기부하고 세금이 3천만원이나 나오는 등 곤란을 겪었기 때문에 두번째는 그 건설업체가 직접 연세대에 기부하는 것으로 해서 기금을 전달했죠.

* 모교에 바라는 점 있다면
학교가 비대해진 탓인지 서구화 된 탓인지 학생들이 스승을 잘 존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의 일차적인 책임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 학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자 총장님 시절, 학교에 담배꽁초가 너무 많아서 총장님과 여러 교수님들이 나와서 꽁초를 주웠더랍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지나가다가 "총장님 저기에도 있는데요" 하더랍니다. TV프로그램 진행 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는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만약에 교수였다면 그 자리에서 뺨을 때렸을 겁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저희가 학교 다닐 때는 담배를 피우면 정학이고, 술을 마시면 퇴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학생회관에 있는 재떨이에 루즈가 묻은 담배꽁초가 수북합니다. 세월이 많이 자유스러워 졌는데 교칙이 옛날 같겠습니까만 변화를 핑계로 우리 고유의 전통과 스승과 제자의 위계질서까지 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스승이 제자에게 존경받게 해야 되겠지만, 제자도 스승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어린 후배들도 영원히 스무살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언젠간 후배가 생기고 교수가 됩니다.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연세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그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든 연세인 다운 인품을 갖춰야합니다. 그들이 장차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연세대만은 다른 학교와는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 방송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마디 부탁합니다
방송인이 되기 위해서는 천부적인 자질이 필요합니다. 또한 미치도록 방송을 하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럼 못할 일이 없을 겁니다. 아무리 자질이 있다해도 본인이 하기 싫으면 하겠어요? 또한 아무리 하고 싶다해도 자질이 없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나운서 같은 경우 마이크 들고 카메라 앞에 서면 누가 어떻게 하라고 도와줄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순간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서는 거죠. 그러니 타고나야 되고, 미치도록 하고 싶어야 되는 겁니다.
방송인이 된 후에는 인품이 중요합니다. 외모, 학벌 같은 조건은 며칠 가지 않습니다. 오래가는 승부를 위해서는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겸손해야 되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 끝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연세대학교를 나온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공부도 못하고, 말썽부리고, 그렇게 교수님 속썩였는데, 그래도 졸업장을 주고, 연세인으로 대접해주니 말입니다. 날 가르치신 선생님들 한분한분 모두 절 사랑해주었지 한사람도 미워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정이 그렇게 좋습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한적해 좋았고, 요즘엔 후배 한명 한명 볼 때도 좋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학교가 점점 더 좋아집니다. 저는 세상의 그 어느 학교도 부럽지 않습니다.
제가 자부심을 가지고 남에게 기죽지 않고 40년을 활동해 온 힘, 그것은 바로 연세대학교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우리 연세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vol. 377
웹진 PDF 다운로드

연세소식 신청방법

아래 신청서를 작성 후 news@yonsei.ac.kr로 보내주세요
신청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