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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 뉴스] 연세의 뿌리깊은 한글 사랑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3-10-16

온라인 세상에는 이제 통신체에 이어 외계어가 등장했고, 최근 한국언어문화연구원이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어능력은 100점 만점에 58.26점으로 조사되었다. 어느새 국경일에서 밀려난 채 557돌을 맞은 한글날, 우리글의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더욱이 이제 한문 혼용에 이어 영문 혼용, 초등학생 한자 교육 등의 목소리까지 커지고 있어 한글의 미래 역시 밝지 않은 형편이다.
하지만 실제로 모두가 우리글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 조사에서 ‘국어는 아름답고 좋은 언어’라는 의견에 응답자의 82.2%가 동의했으며 76.7%가 ‘국어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의견을 밝혀 여전히 한글에 대한 사랑이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한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행동으로 이어가야할지 구체적인 길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현실을 접할수록 지금까지 한글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서 온 연세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557회 한글날을 맞아 개교이래 한글사랑과 국학의 중흥을 위해 앞장서 온 연세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앞으로도 한글 수호에 앞장서는 연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민족사학과 국학연구의 거봉 위당 정인보(鄭寅普, 1893∼1972)


1893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조선 후기 양명학자 이건창 선생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박은식, 신채호 선생 등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동포 계몽에 힘쓰다가 귀국, 연희전문, 이화전문, 세브란스의전, 중앙불교전문 등에서 국학 및 동양학을 강의하면서 ‘국학’의 개념을 정립하였고, 그 연구의 기초를 실학에서 찾아 민족사관의 확립에 주력하였다. 광복이후 많은 실학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바로 그의 이러한 업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민족사관에 입각한 ‘조선사연구’를 저술하였고, 우리 고전연구의 터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시대일보’, ‘동아일보’ 등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는 ‘5천년간 조선의 얼’을 비롯하여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글을 발표하였다. ‘조선사연구’ 외에도 ‘조선문학원류고’, ‘양명학연론’, ‘담원시조집’ 등의 저서가 있다.

 

한글사랑이 곧 나라사랑 외솔 최현배(崔鉉培 1894∼1970)


1894년 경상남도 울산에서 출생, 1910년부터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강습원에서 우리말 글 교육과, 말·글·얼 삼위일체의 언어관과 민족사상을 익혔다. 1926년에 교토대학 철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는 ‘조선민족갱생의 도’를 지어 민족의 삶을 위한 자각의 필요성을 부르짖었고, 1926년부터 연희전문과 이화전문 등에서 강의하면서 '우리말본', '한글갈'과 같은, 연세 국학의 위대한 상징적 업적을 남겼으며,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조선어학회를 이끌어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 맞서다가 1938년에는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강제 퇴직당하기도 한 그는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출옥했다. 광복 후에는 민주국민 교육을 위한 교과서 편찬을 주도했고, '글자의 혁명',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나라 사랑의 길', '민주주의와 국민도덕', '나라 건지는 교육'과 같은 저서를 통한 끊임없는 창의적 연구와 우리말 글 펴기에 진력함으로써, 한글문화창조와 문자의 과학화(기계화)와 한글세대 형성에 앞장섰다.

 

우리말 글 교육의 큰 스승 한결 김윤경(金允經, 1894∼1969)


189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1911년 상동청년학원에 들어가 주시경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1921년에는 국어연구학회에 뿌리를 둔 조선어연구회의 창립회원이 되어 우리말글 연구와 정리 보급에 앞장섰다. 1922년 연희 전문 문과를 졸업한 뒤 일본 릿교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일제 치하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말 글 교육을 통한 민족정신을 불어넣는 한편,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통일안’제정에도 크게 공헌했다. 1937년에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그리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광복 뒤에는 조선어학회 상무이사를 지내는 등 한글화운동에 주력했고, 1948년에는 ‘나라말본’을 내어 주시경 선생의 말본체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우리말 연구의 한 큰 갈래를 이루었다. 또한 그는 불후의 명저인 ‘조선문자 급 어학사’를 지었다. 이는 우리 역사이래 이어온 선각의 학문을 분석 체계화한 것으로 연세 국학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학의 크나큰 금자탑이 되고 있다.

 

 

vol.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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