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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한국의 슈바이처, 심장병 어린이의 대부 조범구 교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03-05-15

조범구 교수(흉부외과학교실)는 매주 둘째 일요일마다 왕진 가방을 챙겨들고 부산을 향한다. 조 교수를 기다리는 심장병 어린이들을 진료하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를 멀다하지 않고 왕진한지 올해로 25년째다. 비행기는 삯도 비싸고 자주 있지도 않아서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부산을 왕복했고, 한명이라도 더 진료하기 위해 허리가 뻐근하도록 하루 종일 일했다. 최근 조 교수는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헌신적 의술과 참다운 사랑을 베풀어온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학교수로는 처음으로  "보령의료봉사상"을 탔다.
한편, 1981년에는 국내 최초 독립된 심장혈관센터인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개원을 주도해 국내 흉부외과 부문의 의술 발달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국내 심혈관질환의 치료수준을 한발 앞서 이끌어 왔다.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새생명을 선사하는 한국의 슈바이처 조범구 전 세브란스병원장을 만났다.


* 보령의료봉사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소감은

내 만족을 위해 하는 일인데, 이를 봉사라고 해주니 쑥스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외국에 나간 사이에 수상이 결정되었더군요. 아마 국내에 있었다면 사양했을 겁니다. 저는 역대 수상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들 합니다. 지금까지 보령의료봉사상을 수상한 18명의 의사들은 모두 소외된 지역에서 매우 긴 시간을 보낸 분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교수입니다. 아마도 대학교수면서 봉사를 했다고 좋은 상을 준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외과라는 점도 고려한 것 같습니다. 외과는 일이 매우 많이 힘듭니다. 하지만 기초 의학연구 분야에 비해 그간 상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상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25년 동안 서울-부산을 왕복하며 무료 진료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심장수술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시 부산 메리놀병원 간호사였던 김 미카엘라 수녀(현 부산 심장환자상담소요양원장)는 국내 심장병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무료수술을 주선하는 등 애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흉부외과학회가 전세계에서 매년 1명을 선발해 지원하는 연수코스를 통해 미국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흉부외과 기술을 연마하고 77년말 귀국해 한국에서도 심장수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심장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 미카엘라 수녀님께서 제게 연락을 하셨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78년부터 부산 왕진을 시작했습니다.
왕진 가방을 챙겨 들고 처음으로 부산 메리놀병원 강당에 들어섰던 날, 강당을 꽉 메운 심장병 어린이들의 행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한달에 한 번 부산에 내려가 진료해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에피소드 있는 아이들은 너무 많습니다. 카톨릭계에서 운영하는 부산 심장환자 시설에 청색증이 있는 갓난아이가 들어왔는데 미카엘라 수녀님이 밤새 아이를 돌보다가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제가 부산에 가서보니 이보람이라는 이름의 아기가 눕지도 못하고 새파랗게 되어서 숨을 쌕쌕거리고 있었습니다. 수녀님께 보람이를 서울로 데리고 오시라고 했더니 다음날 아침 당장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로 오셨더군요. 그래서 심장의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1차 수술을 했고, 1년 후, 그리고 5년 후 재차 수술을 했습니다. 이제는 보람이가 벌써 18살이 되어 학교도 잘 다니고 그 시설에 있는 어린 아기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보람이처럼 잘 자라주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 주변에서 도와 주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도와 주신 분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 병원장들께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비용이 많이 드는 심장수술을 이처럼 많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한 번은 병원장들에게 이해를 구하기 위해 병원장들을 모시고 부산에 함께 내려갔습니다.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본 병원장들도 처음 부산에 내려갔을 때의 저와 같은 심정이셨을 것입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연세 출신의 메리놀병원의 의사들도 도와줬고,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브란스 흉부외과 출신 의사들도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또 수술환자 추적관리를 위해 후배와 제자들이 많이 도와 주고 있습니다.
또 사회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 주고 계십니다. 윤손옥 할머니는 해주에서 단신으로 피난을 나와 많은 고생을 하셨고, 본인의 살림도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억 5천만원을 기증해 50여명의 환아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윤손옥 할머니 같은 수많은 분들이 힘이 되어 주고 계십니다.

 

조범구 교수의 행적은 놀라움 그 자체다. 무려 25년 동안 무료 진료를 위해 서울-부산을 왕복한 이야기며, 자신이 진료한 환자의 90% 이상을 20년 이상 꾸준히 추적 진료했다는 이야기, 3만여명을 무료 진료했으며 1천4백여명의 어린이에게 무료 수술을 했다는 것 등은 듣는 이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한다. 정작 본인은 "그저 한 번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계속했지요"라며 별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지만, 그가 한 일은 분명히 칭송 받아 마땅한 일이다.

 

* 가족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저는 세브란스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세브란스에서 지내고 있는 순수 세브란스인입니다. 아버님(고 조동수 박사)께서도 세브란스를 졸업하셨고 세브란스에서 의무부총장까지 역임하셨습니다. 아버님은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사셨습니다. 저명한 의사로 사셨지만 돌아가실 때는 전재산이 1억밖에 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집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님 외에도 친 형님, 매형, 제 막내아들, 조카 등 많은 가족들이 세브란스 의대출신입니다.
부산 왕진은 가족의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바쁜 흉부외과일과 부산 왕진으로 가족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제 가족들은 두 번째 일요일이 되면 부산에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길 정도로 깊이 이해해 주고 있습니다.


*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개원에 산파 역할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신생아의 몸무게는 3kg 내외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작은 아기들의 심장은 얼마나 작겠습니까. 그 작은 심장에 있는 복잡한 혈관을 다뤄야하는 소아심장의는 굉장히 실력이 있어야하고, 무엇보다 좋은 장비가 있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심장수술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심장혈관 부문의 현실은 열악했습니다. 장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찍이 우리나라에도 심장전문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을 만드는데 심혈을 다 쏟았고 10여년간 병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심장혈관병원은 임상 및 연구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도 매우 알려져 있어 명실공히 우리나라 심장분야의 대표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후학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외과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번다거나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뒤쫓아 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장기적 관점에서 전공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의학과 질병은 변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유행했던 질병이 오늘날에 와서는 사라지기도 했고 없던 질환이 생겨나기도 하는 등 시대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의학도 발맞추어 발전합니다. 근시한적으로 유행을 따를 것이 아니라 항상 멀리 내다보고 택해야합니다. 또한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그에 따라 어떻게 사회에 공헌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공을 더욱 넓게 고려하라는 점입니다. 의학을 했다고 해서 꼭 청진기를 들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학은 일반사회에 있는 각 분야를 집약한 것이라고 봅니다. 의료경제, 의료법, 사이버의료, 의료장비개발, 생체조직공학, 의료윤리, 생체재료학, 의료정책 등 의학분야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의학과 타분야를 복수전공해 각 분야로 진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사회를 엄청나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vol.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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