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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 뉴스]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김갑종선생(학적과)의 글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1991-04-01

나는 20년이 다된 ㅣ16평짜리 3층 아파트에 살며 베란다라곤 0.5평밖에 안되는데 그것이 내 농장이며 내 난살이다. 그렇다고 남쪽이나 동남쪽도 아니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서북쪽방행이다. 일년에 여름한철 해가 질 무렵에 햇볕이 30여분간 들어온다. 10여년간 모은 난본은 350여분이 되건만 아무리 봐도 작품다운 명품은 하나없고 앞으로 2~3년간은 더 키워봐야 할 것 뿐이다. 0.5평에 350분을 어떻게 키우느냐하면 시중에서 파는 좀 굵은 철사로만든 4층짜리 진열대를 두 개로 포개 얹으면 8층이 되는데(5동*8층*8~8개분=350분) 키순서별로 층계를 조정하여 한층에 8~10개분씩 진열하여 놓고 키가 큰 분은 맨 윗층에 올리면 된다. 그리고 각 층마다 시중에서 파는 제일 앏은 맑은 유리를 짤라 깔면 난초 받침대도 되고 물받침대도 된다. 물을 줄 때에는 수도에 호스를 연결하여 노즐에 적당한 압력으로 위레서 아래로 화분마다 주고나면 20분이면 충분하다. 농약을 칠 때도 모든 베란다 문을 닫고 스프레이로 100cc에 살균 살충제를 혼합해서 대충 난 전부에 분무하고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구석수것 살균 살충이 된다. 그러나 3년전부터 베란다 바닥에 수없이 많이 금이간 뒤 물이 밑으로 쏟아지기 시작하여 2층과 1층에서 빨래를 그것도 이불까지 젖었는데 아내가 한나절을 다시 빨래를 해주고 수도 없이 빌었다고 한다. 아무리 물을 주고 싶고 난이 말라 비틀어져도 아래층에 빨래나 물에 젖을 것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고 이삼일은 더 기다려 봤다가 눈치물을 주는 것이 생활화됐다. 물주기는 3년이라고 하는데 나는 물주기 10년을 어렵게 하고 있다. 봄에는 유기물시비 한답시고 골분을 2~3일 녹여서 주는데(한 바케스 물에 골분 1봉지) 그 냄새는 분뇨보다 더한 악취를 풍긴다. 봄에는 2~3번은 실시하는데 서울의 파리는 모두 다 모이는 것 같다. 이 작업을 하기 전에는 아내를 시켜서 꽃핀 민춘란이라도 들려서 주위의 집들에 미리 선물을 하지 않으면 이 아파트에서 당장 쫓겨나야 될 판이다. 나야 일 저지르고 풀근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아내는 오죽 하겠는가? 매주 주말이면 새벽같이 산채 가버리고 모든 돈은 난초구입이나 산채비용, 자재대금으로 다 써버리고 퇴근후는 난우회다 뭐다 늦게 와서는 난만 만지가 저버리는 남편, 쥐뿔도 없으면서 매일 베란다 큰 아파트로 이사가겠다는 남편, 사랑뺏겨, 돈뺏겨, 시간뺏겨, 공간뺏겨(0.5평 빨래터) 난초가 웬순지? 남편이 웬순지? 지난 1월 중순 몹시도 추운 때에 모처럼 휴가 7일을 얻어 남부지방, 가소 싶은 곳을 두루 산채하고 와서 습괌처럼 베란다 문을 열고 온도계를 보니 -8도씨 아뿔사! 베란다에 비닐을 안에서 씌웠는데 강풍에 비닐의 윗부분이 아래오 떨어져 바깥이나 베란다가 똑같은 기온이 되어 있었다. 추위에 약한 꽃이 한찬 핀 보세류와 소심류, 건란류, 양란들 70여분이 뿌리는 물론 발브까지 물컹뭉컹 얼어 죽었다. 산채도 공탕에도 집에 있는 나까지 얼어죽었다. 에라이! "집구석에서 난초얼어죽는 것도 몰랐느냐?"면서 얼어죽은 화분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방바닥에 집어던지기 시작하였다. 애들은 눈이 동그랗게 되어 한쪽 귀퉁이에 서서 화난 나의 행동거지를 전후 상황 판단하고 있었고, 마누라는 뒤돌아서 울고 있었고….난꾼생활 10년에 어쩌다 얼려죽이기를 세 번씩이나 해야하는가에 계속 화가 났다. 첫번째는 연희동에서 쥐가 비닐에 구멍을 내어서 얼어 죽이고 두번째는 모처럼 장모가 오셔서 베란다 바깥선반에 있는 고추장 단지를 손보고 베란다 문을 열어 둔채로 가시고 난후 며칠이 지난 후에야 얼어죽은걸 알았을 때이다. 허나 아직도 난을 얼려 죽이는 단계이며 얼어죽은 난의 죽음에 섭섭하기는 커녕 방바닥에 내딥다 던지는 심뽀하며 산채가서 1주일씩이나 혼자 돌아다니다가 잘 갔다 왔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난실만 먼저 쳐다보고선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이지 10년 공부도 도로아미타불이다. 나는 한국춘란은 한 뿌리도 사지도 팔지도 않았다. 순전히 내가 산채한 것들인데 수없이 많은 산채로 속빛무늬도 여러 번 만났다. 그러나 내 난실에만 오면 죽어나갔다. 내 무딘 성격에도 언제나 속빛무늬 걱정이고 딴 난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편애하는 성격이 미워 누가 훔쳐가 버리거나, 잎끝이 푹푹 말라 들어갈때는 애먹이지 말고 빨리 죽어 없어져 버리기를 마음 한 쪽에선 빌고 기다리기도 했었다. 난초 한 뿌리없이도, 난초를 키우고 향내를 맡는 난의 신선지 경지 단계까지는 난꾼 샌황 100년을 더해도 내게는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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