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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나 주만 의지합니다 - 차인태 동문(성악 63학번)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07-16


 

나 주만 의지합니다

차인태 동문(성악 63학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최장수 기록을 세운 ‘장학퀴즈’를 진행한 차인태 동문. 그는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 ‘아나운서계의 전설’이라 불리며,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된 TV 브라운관 안에서 완벽한 표준말과 중저음의 맑은 음색, 빈틈없는 몸가짐으로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방송인이었다.

하지만, 차인태 동문은 몇 년 전 힘든 암투병 생활을 겪었고, 이제는 완치 단계라고 한다. 지난 6년 여, 차 동문이 환자로서 원치 않았던 육체적 시련을 겪으면서 느낀 병상일지를 소개한다.

 

숨길 것도 아니지만 자랑할 것도 아닌 일로 이 글을 씁니다.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또 부족하고 허물 많은 저로 인해 염려와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 만큼 건강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와 성원으로 격려해 주신 모든 분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지난 6년 여, 두어 차례 큰 고비를 넘기면서 저의 병상일지는 시작됩니다.

지난 2009년 10월 초하룻날 밤, 견디기 힘든 급성 폐렴 증세(40도가 넘는 고열, 호흡곤란 등)로 강남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간 것이 저의 투병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임파선 계통에 발생한 원인불명의 악성종양이 심장과 폐 사이에 꽈리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어 수술로는 불가능하여 항암주사와 약물치료를 병행한 모두 아홉 차례에 걸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길고 지루한 암 병동에서의 16개월의 생활,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몹시 괴로웠습니다.

작가들이 작품 속에서 흔히 “온 밤을 하얗게 뜬 눈으로 지새운다...”라는 문학적 표현이 얼마나 현학적이며 감상적이며 어찌 보면 사치스런 표현일지 모릅니다. 약물이나 주사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내세울만한 믿음이 아니면서도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의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나이다. 주여, 받아주시옵소서!...”

다른 간구와 기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병실 안 보조 침대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웅크린 채 곤하게 자고있는 아내를 볼 때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안타까웠습니다. 본격적인 항암주사 치료가 시작되면서 말씀으로 위로받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간 세상을 떠납니다.

이 절대적인 명제를 부인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계속되면서, 왜 나에게만 이러한 시련이 오는 것일까? 왜 나여야만 하는가? 항암주사 통증보다도 외로움, 나 자신에 대한 원망, 서글픔, 부끄러움, 허탈, 화남, 실망감...

하나님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또한 피할 길을 내신다는 말씀은 기도와 함께 부모님, 아이들, 손자손녀를 생각하면서 큰 위로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이름 모를 청년들의 찬송 봉사 사역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과 주일 새벽 여섯시 반쯤, 강남 세브란스 암병동 복도 끝에서 조용히 울려퍼지는 찬송 소리였습니다. 어느 교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게는 2~3명, 많게는 7~8명의 20대 젊은이들이 한 주도 빠짐없이 천사의 음성으로 입원 환자들을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예배와 수련회, 교회 집회에서 맛볼 수 없는 감사한 찬송들은 양팔에 주사 꽂고 휠체어에 앉은 채 입원실 복도에 나온 나에게 눈물의 간증시간이요, 감사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암병동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모두 아홉 차례의 항암 표적주사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약 1년 반 동안 병원에서 성탄예배, 신년예배, 부활주일을 지내고 퇴원, 자가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의료진의 협진 노력으로 림프종양은 일단 치료 판정을 받았습니다. 검사결과 종양은 모두 제거되었으나 앞으로 꾸준한 치료와 섭생,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당부를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중보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지금까지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린 것, 내가 대접 받았던 것…

본래의 내 모습에 비해 얼마나 부풀려지고 과장 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늘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많은 것들...

겪고 나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더 겸손하게, 더 낮은 자세로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또 방송인 30년, 공직자와 교수로 살아 온 15년을 되돌아 볼 때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저의 또 다른 자만이요, 제 믿음의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혈류병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병 고침을 받은 것처럼 치유의 은사, 능력의 은사를 믿습니다. 이처럼 귀한 육체적 시련과 연단을 겪으면서 내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 이 시간 저보다도 훨씬 더 힘들고 아프고 위중하고 어려운 분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 분들께 조그마한 희망과 기도 제목이 되었으면 합니다.

-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 아무리 긴 터널도 결국 밝은 햇빛으로 나오게 됩니다.

- 작은 일에 감사하며 내려놓음(放下着)을 실천하십시오.

  

약 력

차인태 동문은 1944년 평안북도 벽동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월남, 경주 월성초등학교와 휘문고,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방송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 시절 연세교육방송국(YBS) 학생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부터. 그 인연으로 69년 MBC에 입사했고, 4년 만에 ‘장학퀴즈’를 통해 국민 아나운서로서 인기를 누렸다. 제주 MBC 사장을 끝으로 방송 현업에서 물러났고, 경기대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vol.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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