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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연세 뉴스] 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의과대학 여인석 교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06-01





 

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의과대학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동은의학박물관장)

 

글 싣는 순서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2.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3.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4.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강변하는 주장의 유일한 논리는 제중원이 국립병원이므로 동일한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국립병원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들을 연결시키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요소들이 억측과 아전인수식의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1. 제중원은 국립(National) 병원이었나?

제중원은 알렌의 요청에 의해 조선정부에서 설립한 병원이었으며, 내용상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와 조선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그동안 제중원의 운영주체를 두고 다소의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제중원의 운영이 어느 한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좌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제중원을 바라볼 때 정부의 병원이자 선교병원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시 설립 주체에 관한 문제로 돌아와 제중원이 조선정부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제중원을 지칭한 당시의 어떤 사료에서도 제중원을 ‘국립’이라고 표현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중원을 지칭할 때는 왕립(왕실), 공립, 혹은 정부의 병원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였으나 근대국가에 한해서 붙일 수 있는 ‘국립’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또 제중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설립 이전 우리나라 역사상에 존재했던 모든 정부 기구나 기관을 지칭할 때에도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없었다. 고려시대의 국자감이나 조선시대의 성균관이 나라에서 세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국립 국자감’이나 ‘국립 성균관’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국립이라는 호칭은 근대국가인 대한민국이 설립한 기관을 지칭할 때에나 적합한 말이지 왕조 시대의 국가가 세운 기관을 지칭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국립’은 원래 존재했던 용어가 아니라 ‘national’의 번역어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nation’은 근대적 민족국가를 말한다. 때문에 서양에서는 근대 이전 왕정 시대에 세운 기관을 ‘왕립(royal)’기관이라 하지, 거기에 ‘국립(national)’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국립’은 근대국가가 설립한 기관에만 붙일 수 있는 용어이므로,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이 세운 기관에 대해서만 붙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이나 고려 등 전근대 왕조시대에 만들어진 기관들에 ‘국립’이란 수식어를 무분별하게 붙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명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역사적인 용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중원을 굳이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서울대학병원과 제중원을 연결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2.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국가’라고 답한다. 이 대답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부정확하거나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대답은 당신 아버지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사람’이라거나 ‘남자’라고 답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의도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 혹은 남자들 가운데 어떤 특정 개인이 당신의 아버지인가를 말해달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했던 많은 국가들 가운데 어떤 국가가 당신의 설립주체인가를 묻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특정한 역사적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특수한 개별 병원이지, 보편적 국립병원의 이데아가 아닌 다음에는 대한민국이 자신의 설립주체라고 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은 이 질문에 대해 시종일관 자신의 설립주체는 국가라는 무의미한 대답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왜 이처럼 무의미한 답변을 고수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제중원을 국립병원으로 규정한 의도와 맞닿아 있다.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를 대한민국이라는 특정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제중원은 조선이라는 특정 나라의 병원이 되고, 서울대병원의 물리적·실질적 전신인 조선총독부의원의 설립주체는 일본제국임이 드러난다. 그렇게 되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과 자신의 연속성을 주장하려다 조선국-일본제국-대한민국을 연속적 주체로 인정해야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의 설립주체를 보통명사인 국가로 규정하고, 자신의 설립주체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인 국가로만 규정하는 것이다. 이로써 서울대병원이 고유명사로서의 국가와 일반명사로서의 국가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의도적으로 범하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났다.

 

3. 국가중앙병원설은 왜 등장했는가?

최근 서울대학병원의 기원에 관해 이루어진 논의 가운데 조선정부에 의해 세워진 제중원이나 광제원이 대한민국이 설립주체가 되는 서울대병원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들의 법률적인 승계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근대의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발달하는 과정 속에서 각 시대의 국가중앙병원이 수행해 온 역할을 살펴보는 가운데 서울대병원의 역사적 모습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것은 “오늘의 서울대병원의 위상이라든가 성격, 지향하는바 등과 관련해 과거 병원들의 성격과 모습 등을 파악함으로써 ‘정신의 계승’ 차원에서 서울대병원의 기원 문제에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소위 ‘국가중앙병원설’이다.

이는 서울대병원과 제중원을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으므로 이를 우회하기 위해 한 발을 빼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사실 1978년 서울대병원이 법인화된 이후 서울대병원은 엄밀히 말해 더 이상 국립병원의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법률적 위치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정신적 차원의 계승을 말하게 되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국가중앙병원설이다.

 

먼저 여기서 살펴보아야할 점은 서울대학병원이 ‘국가중앙병원’이라고 했을 때 ‘국가중앙병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단어상 그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들이 서울대병원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로 보인다. 도대체 누가 그런 역할을 서울대병원에 부여했으며, 국가중앙병원의 정의를 내렸는가? 누구도 그에 대해 정의를 내린 바 없는데, 서울대병원이 스스로를 ‘국가중앙병원’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극히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서울대병원은 다른 국공립병원이 지자체나 보건복지부에서 관리를 받는 것과는 달리 교육부 산하에 있다. 서울대병원의 관할을 보건복지부로 옮기는 문제가 나왔을 때, 서울대병원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다른 국공립병원의 네트워크와 동떨어져서 별개로 존재하는 병원이 무슨 근거로 국가중앙병원이라는 주장을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4. 제중원은 조선시대 국가중앙병원이었나?

조선정부는 알렌의 제안에 의해 광혜원을 설치하며 그것이 이미 혁파된 혜민서(惠民署)와 활인서(活人署)의 정신과 역할을 이어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서 혜민서는 조선시대의 의료체계인 삼의사(三醫司) 체계에서 세 번째 지위를 차지하는 기관으로 주로 돈이 없어 의료헤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백성들의 질병 구료와 여기에 소요되는 약재의 관리를 맡던 기관이었다. 혜민서에서는 의학교육도 담당했으나 이는 전의감(典醫監)보다는 한 단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활인서는 삼의사(三醫司)에 포함된 기관은 아니지만 혜민서 다음의 지위를 차지하는 의료기관이었다. 활인서에서는 주로 도성 내의 가난한 병자들을 구료하였는데 특히 기근과 전염병이 돌 때 일반 백성의 구호를 담당하였다. 요컨대 혜민서와 활인서는 빈민구료를 위한 의료기관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내의원(內醫院)은 왕을 비롯한 왕족의 치료를 담당하는 것이 본래 의무였으며 의서의 편찬과 같이 국가가 주관하는 주요한 의학학술활동도 내의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밖에 왕실용 약재도 관리하는 등 내의원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의료기구였다. 다음으로 전의감은 내의원에 이어 두 번째 지위를 차지하는 의료 기관으로 정부의 중앙관료와 종친의 진료를 맡고 있었고 그밖에 의학교육, 구료관 파견, 궁중용 약재의 공급과 하사 등의 일도 담당하였다.

특히 의학교육에 있어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의학교육기관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시대에 정부에서 관장하던 의료기구 중소위 서울대병원에서 생각하는 ‘국가중앙의료기관’에 해당하는 것은 내의원과 전의감이며, 같은 정부기관이기는 하지만 혜민서와 활인서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백성들의 치료를 주로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서울대병원의 관할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문제가 나왔을 때, 서울대병원은 그렇게 되면 다른 국공립병원처럼 대민진료에 치중하게 됨으로써 연구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관을 강하게 거부했다. 즉 대민진료는 서울대병원의 입장에서 중요한 고유의 기능이 아닌 것이다. 사실 서울대병원은 혜민서와 그를 이은 제중원이 아니라 내의원이 되고 싶어 하며,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왔다. 그런 서울대병원이 이제 와서 대민진료기관이었던 제중원의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다.

 

5. 서울대병원은 조선왕조의 공공의료정신을 계승하는가?

국가중앙병원설과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서울대병원이 제중원과의 연속성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가 서울대병원이 조선시대 공공의료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제중원과의 직접적 연결을 주장할 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조선총독부의원이나 경성제대와의 연속성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이다.

사실 제중원을 서울대병원의 기원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제국대학 등 일제 식민통치기관들의 존재이다.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의 우수성과 서울대병원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의 연속성은 거론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이 이토 히로부미의 기획으로 설립된 병원임에도 대한제국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일제의 식민기관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대한의원이 일제의 식민기관으로서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대 부속의원 등으로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서울대병원이 국립병원의 논리로 제중원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려면 일제강점기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 등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대병원은 이를 의식해 실질적인 연속성이 아니라 제중원의 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이라고 발을 빼기 위해 만든 것이 조선시대 공공의료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민주국가의 국립병원이 ‘국왕의 시혜’라는 과거 왕조시대의 이념에 따라 세워진 병원과 자신을 정신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제중원이 백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를 베푸는 궁극적 주체는 국왕이다. 왕조시대의 의료는 군주가 백성을 어여삐 여긴다는 가부장적 봉건 이데올로기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민주국가에서 의료는 국왕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다. 서울대병원은 왕조국가 조선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세운 병원이다. 따라서 서울대병원이 가공의 기원 만들기를 통해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과거 왕조시대 시혜 이데올로기에서 자신의 정신적 기원을 찾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vol.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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