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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신촌캠퍼스 소식] 제440회 국학연구발표회, 조선 초기 새로운 조선사회 만들기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05-01

제440회 국학연구발표회, 조선 초기 새로운 조선사회 만들기

 

제440회 국학연구발표회가 4월 3일 위당관 313호 국학연구원에서 열렸다. 

‘조선 초기 새로운 조선사회 만들기’란 주제로 열린 이번 발표회에서는 고려를 극복이자 계승의 대상으로 생각한 조선이 나라의 기틀을 어떻게 마련했는지에 대해 네 명의 연구자가 발표하였다.

우선 고려의 역량을 어떻게 조선에서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두 발표가 있었다. 숙명여대 박종진 교수는 ‘조선 초기 개성부의 위상’이란 발표를 통해, 조선 초에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게 되면서 겪게 된 개성의 위상 변화를 추적하였다. 개성부가 개성유후사로 개편되어 개성의 행정을 맡는 등 위상이 유지되었지만, 세종 20년에 개성유후사가 개성유수부로 개편되면서 한양을 보좌하는 지방 도시로 한정되었다. 이렇게 한양의 배후도시로 격하되었으나 여전히 개성은 교통, 외교, 국방, 상업의 도시로 조선 내내 중요한 도시였음을 강조하였다.

이어 우리 대학교 윤훈표 교수는 ‘고려사 열전 정리를 통해 본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고려사』의 세가와 열전이 다른 기전체 정사와 달리 조정되면서 열전이 세가의 일부 기능까지 떠맡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렇게 『고려사』 열전만의 독특한 위상이 부여되었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고려의 쇠망이 자체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음을 부각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런 과거의 폐단을 제거함으로써 조선 사회 만들기가 가능했다는 논조를 폄으로써 조선의 정당성이 강조된 것이다. 즉, 열전의 정리 체계가 곧 역사 바로 세우기의 구체적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고려와 다른 조선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유교와 절의의 문제에 대한 집중적 조명이 이루어졌다. 인제대학교 김훈식 교수는 ‘조선 초기의 절의(節義) 추구와 왕조의 유지’란 발표로 절(節)의 관념이 조선 초기에 왕권 강화와 왕권 안정이 아니라 왕권 변화에 초점을 두고 변했음을 언급하면서 『효행록』에서 『삼강행실도』로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함을 지적했다. 즉, 기존 고려의 절의(節義) 논리에 군신의합(君臣義合)이란 윤리가 부가되어 효순(孝順)과는 달리 의리(義理)로 맺어진 것이 절(節)임을 조명하였다.

또한 경북대학교 정재훈 교수는 ‘유교적 사회질서의 추구와 그 의미’를 통해 조선이 고려와 달리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사회질서의 현상을 분석하였는데, 조선이 유교적 사회질서를 유지 정착시키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개인적 차원까지 간섭하는 수준으로는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불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척불(斥佛)이 아닌 억불(抑佛)이었음이 근거로 들면서, 조선의 노력은 유교질서를 정착시키면서 동시에 향촌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질서 또한 존중하고 인정하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국학발표회는 단순히 왕조와 왕조가 교체되는 것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계승 수용하는 바탕에서 새로운 역량을 지닌 존재들의 발전적 모델을 부단히 모색하는 것임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는 발표회였다.

 

 

vol.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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