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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연세에서의 진리 탐구 정신, 50여 년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삶의 바탕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04-01

 

연세에서의 진리 탐구 정신, 50여 년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삶의 바탕

50주년 재상봉을 맞이하여 모교에 1억 원 기부

최병일 동문(의예과 59학번)

 

최병일 동문은 1965년 대학을 졸업한 후 50불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70년에 워싱턴 D.C.의 조지타운 의대에서 임상강사를 거쳐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교수에 임명되었다. 2004년부터는 밀워키 소재의 Medical College of Wisconsin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의학저널에도 다수의 중요한 의학논문을 발표하였다.

아들은 조지워싱턴 의대에서 심장내과 교수로 일하고 있고, 부인 김성혜 씨는 Meg Choi라는 펜네임으로 ‘The Way Out’이라는 영문소설을 발간했다. 최 동문은 한 사람이라도 더 질병에서 자유로워지도록 하기 위해 환자를 치료하고, 첨단의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최 동문은 최근에 백양로 복원 사업과 세브란스병원에 각각 5만 불, 총 1억 원을 학교에 기부했다. 늘 연세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응원하는 최 동문이 학교에 보내온 편지를 소개한다.

 

밀워키에서 보내온 연세 사랑

백양로에서 발견한 나의 로제타스톤

연세대학교를 다닌 모든 동문들은 백양로를 걸으며 가졌던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에게도 잊을 수 없고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연희대학의 백양로를 일곱 살부터 지나 다녔고, 그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1906년생이셨던 선친께서는 지금은 서울시로 편입되었지만 당시 고양군 연희면 망원리에서 태어나셨다. 1925년 을축년 장마로 집과 전답을 모두 떠내려 보내고 18세 학생으로서 수재민 가장이 되어 부모님과 6형제, 16세에 결혼한 나의 어머니를 데리고 지금 추계대학이 있는, 그 당시 ‘능안’이라 불리던 북아현리로 이사하셨다. 다니시던 ‘제2고보’도 그만두시고 당장 9명의 대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연희면 서기로 취직하셨다. 첫 월급으로 바이올린을 사 오셨다는 이야기는 한동안 집안의 조롱거리였다. 현실적인 문제로 학업을 접으셔야 했던 어린 아버지의 행동을 내가 이해하게 된 것은 선친께서 돌아가신 먼 훗날의 이야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벽제의 선산을 마다하시고 장지를 바로 연대 뒷산으로 모셨다. 양족에 큰 바위가 있고 코스모스 꽃이 필 때면 고추잠자리들이 날아오는 양지바른 곳이다.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한강물의 정취는 지금도 인상파의 한 그림 폭으로 내 망막에 아른거린다. 내가 1946년부터 연희대학을 성묘길에 다니게 되었고 대학을 접으셔야 했던 선친은 느지막이 얻은 외동아들인 나의 손을 이끌고 지름길 대신에 언제나 백양로를 걸어 언더우드 동상을 거처 담장이 넝쿨이 덮여있는 지금의 대학본부 옆에 난 오솔길을 따라 산등성을 넘는 것이 나의 성묘길이었다. 그런데 백양로 끝에 교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신기한 돌에 새겨진 이상한 글자가 있지 않은가? 아버지가 떠듬떠듬 읽어주시는 이상한 말소리... “Donated by Korean Friends in New York” 이것이 내가 처음 배운 영어였다. 그리고 미래를 열어준 나의 ‘로제타스톤(Rosetta stone)’U이다. 이 은덕으로 50년 동안 나는 미국 의과대학에서 의사로 교수로 영어를 구사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이나 물건들을 적정가격을 치루지 않고 차지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셨던 선친은 일본인들이 남겨 놓은 적산대학들을 모아 세운 공립대학보다 연희대학이 교육에 정통성을 갖춘 가장 좋은 학교라 말씀해 주셨다.

1957년 연희대학과 세브란스가 합치면서 의예과가 이공대학에 속해있던 1959년 입학시험 때이다. 나에게 고등학교 성적만으로 다른 대학들보다 조기에 특차전형의 혜택을 준 연세대... 나에게는 이렇게 고맙고 좋은 학교가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런데 또 기적이 일어난다. 이 어찌된 일인가? 영어회화 구술시험의 시험관이 김동길 교수라니.. 교수님이 미국유학을 마치시고 돌아와 남들이 안하는 미 중서부의 표준 발음으로 질문을 해 주시니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가?

졸업한 지 50년이 되서도 인생의 큰 뜻을 가르쳐 주는 모교... 백양로 끝에 놓인 아담한 돌에 새겨진 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었던 로제타스톤은 지금 백양로 재창조 사업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다. 여름이 지나 공사가 완공되고 나면 이 곳에서 연세대학교는 새롭게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다.

 

 

vol.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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