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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법학전문대학원 남형두 교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04-01

 

지난 십여 년간 우리 사회에 몰아친 표절 광풍...

문제 제기만 있고 해법은 없는 지루한 논쟁은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나?

남형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책의 구상

2006년, 교육부총리 지명자의 표절 의혹 사건을 계기로 나라가 온통 표절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정부(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위원회를 통해 표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연구를 나에게 요청해 왔다. 처음 제의는 3개월 정도 안에 표절방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3년을 준다면 하겠다고 했고, 결국 그 요구가 받아들여져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내가 당초 구상한 3부작은 철학연구, 사례연구, 가이드라인 제안이었다. 정부가 요청한 것은 당장에 적용할 가이드라인이었지만, 또 하나의 현실성 없는 장식용 지침을 만들지 않기 위해, 결론에 해당하는 가이드라인이 어떤 근거로 도출됐는지를 역순으로 파고들어 근본적 문제에 천착하게 됐다. 멀리는 지식이 누구의 것인가에 관한 철학연구를 했고, 가까이는 표절에 관한 법원 판결과 외국 사례를 찾았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표절문제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I) -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토대로서 저작권의식 제고를 위한 기초연구」 (2007), 「표절문제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II) - 표절사례 연구」 (2008), 「표절문제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III) - 표절방지 가이드라인 제안」(2009) 등 연구보고서 세 권이다. 이 세 권의 보고서가 이 책의 근간이 된다.

본격적으로 연구에 투입한 기간은 6년이지만, 그중 세 권의 보고서 작성 후 3년의 기간이 오로지 윤문과 편집에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이 기간 중 거의 대부분은 오히려 표절 연구에 바쳐졌다. 그런데 표절에 관한 특정 주제로 원고지 150매 내외의 논문을 쓰는 것과 한 권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체계서를 쓰는 것은 달랐다. 독자는 자신이 관심 갖는 부분만 찾아보면 그만이지만, 필자로서는 단지 결론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탄탄한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표절에 관한 전문 체계서를 목적으로 하는 이상 수미일관(首尾一貫)해야 하는데, 지엽말단(枝葉末端)의 쟁점이라도 철학이론과 방법론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간단치 않았다.

 

집필 동기-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표절 논의 필요

학계의 공고한 침묵의 카르텔과 사회 일각의 여론재판식 문제 제기라는 양 극단의 경향은 표절을 논의하는 목적이자 근본인 ‘정직한 글쓰기를 통한 학문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논의의 장이 가장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

언론에서 거론되는 것 중에 자기표절/중복게재, 검증시효, 유령작가 등 몇 가지 표절 논의만 보더라도 비전문가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나아가 표절 판정에서 일반지식(common knowledge) 해당 여부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런데 단순히 기계적으로 비교해 몇 퍼센트 이상이 동일 또는 유사하니 표절이라는 식의 접근은 너무나 단순할 뿐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회복 불가능한 결과를 생각하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비전문가의 표절 논의와 검증은 피해를 양산할 뿐 아니라 승복하지 못하는 문화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이 문제를 더는 비전문가 손에 맡겨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학문의 발전을 위해 이성적·합리적으로 표절 논의를 할 때가 되었다. 학계의 침묵의 카르텔로 존재해온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려서 다시 닫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표절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 집단이 충분히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비전문가들이 표절 논의를 주도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표절 사건이 발생할 때 개별 사건에 대해 전문가적 발언을 하거나 그에 대응하는 연구를 하는 경우가 있고, 그간 개별 학문 분야별로 연구윤리를 연구하거나 전공과 무관하게 표절을 연구해온 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 연구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기본적으로 표절은 저작권법에 대한 이해 없이는 명확히 논의하기가 불가능하다. 저작권법에 대한 충분한 배경지식 없이 표절문제를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저작권법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도 표절과 저작권침해를 혼동하거나 혼용하는 경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에 공통되는 표절금지윤리에는 저작권법이라는 법규범으로 포섭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저작권법 지식만으로 표절문제를 다루기도 부족하다. 이렇게 표절 논의는 학문의 근간에 해당하지만 어떤 학문 분야에서도 자신만의 독자적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면이 있다.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표절문제를 본격적인 연구 주제로 삼기를 주저하는 사유가 되기도 한다.

표절 자체를 수미일관(首尾一貫)한 체계 안에서 연구한 전문서가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나온 적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모든 학문 분야가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표절 논의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런 논의를 책으로 발표하는 순간 ‘모난 돌’이 되어 수많은 ‘정’으로 내리쳐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논의하려면 누군가 ‘판’을 벌여야 한다. 내가 어설프지만 본격적인 체계서를 내겠다고 자원한 것은 어떤 점에서는 ‘모난 돌’이 되기로 작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집필 동기가 그렇다 보니 이 책은 미완의 작업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비이성적 논의를 지양하고 합리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논의의 장에 던져진 이상,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계속해서 보완 작업을 해나갈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가급적 모든 학문 분야에 공통된 내용을 다루려고 했기 때문에 각 학문 분야나 소속 기관, 학회별로 특수한 사정을 채워 넣을 수 있는 틀 또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그 점에서 이 책을 일종의 설계도 또는 건축도감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면 좋겠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근본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먼저 표절 대상이 되는 지식을 특정인이 전유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 철학적·역사적으로 고찰한 뒤 현대적 관점에서 정보공유론이 표절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양자의 조화를 모색했다. 나아가 표절론이 학문적 체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연구방법론을 제시했다. 특히 저작권법학에서 표절과 저작권침해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규명한 작업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내용으로, 제2부 논의의 배경지식이 된다.

제2부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표절의 구체적 쟁점을 최대한 찾아내어 이론적으로 해법을 제시했다. 먼저 현대적 관점에서 표절 논의를 합리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출처표시 누락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적 표절을 ‘전형적 표절’로, 그 밖의 표절을 ‘비전형적 표절’로 묶어 논의했는데, 이는 기존 논의 체계와 다른 것이다. 출처표시 누락을 핵심요소로 하는 전형적 표절에서는 인용 목적을 살펴본 후에 출처표시 누락과 관련한 여러 가지 쟁점으로서 아이디어, 일반지식, 간접인용(패러프레이징), 재인용, 출처표시의 단위, 부적절한 출처표시, 공저의 문제 등을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했다. 출처표시 누락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현실에서 표절로 인식해 같이 논의하는 저작권침해, 자기표절/중복게재, 유령작가와 관련된 저자성 문제 등을 비전형적 표절에서 고찰했다.

나아가 검증시효, 준거법, 관할, 절차, 제재 등 표절 논의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쟁점을 ‘절차’로 묶어 논의했다. 목차에서 보듯 제2부는 그 자체로 완결되는 내용을 담았다. 독자는 필요에 따라 제1부를 건너뛰고 제2부만 읽어도 무방하다. 이런 독서방법을 예상해 제2부를 독자성이 있게 꾸몄다.

제3부에서는 제2부에서 논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표절 판정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규정을 일종의 모델안으로 제시했다. 거꾸로 말하면 제2부의 논의는 제3부의 표절 판정기준, 판정절차 등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논거가 되기도 한다. 기존에 나온 가이드라인은 대부분 어떤 근거로 만들었는지 설명해놓지 않았다. 다시 말해 표절 논의와 가이드라인이 따로 있다. 이 책은 제2부와 제3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집필했다. 나아가 제2부는 제1부의 표절에 관한 철학·역사·방법론 등의 이론과 제3부의 실용적 가이드라인을 연결하는 허리에 해당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제3부의 가이드라인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제2부의 해당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제3부의 가이드라인은 모든 학문 분야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게 만들었으므로 개별 학문 분야나 기관·학술지의 특성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책의 끝에는 표절 백문(百問)을 붙였다. 색인과는 별도로 표절에 관해 흔히 갖는 질문 백 개를 뽑아 독자로 하여금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 책의 해당면을 적었다.

글_남형두 교수(법학전문대학원)

 

vol.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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