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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의료원 소식] 에볼라 구호 의료대 최우선 간호사(33병동)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15-03-16

에볼라 구호 의료대  최우선 간호사(33병동)

- “완치 환자 보며 간호사로서의 의미 다시 찾았어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터. 그곳에 세브란스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사립병원으로는 유일하게 에볼라 구호 의료대 1진으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을 다녀온 최우선 간호사(33병동, 사진왼쪽). 그는 참혹한 현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현지에 도착하고 의료대로 활동을 시작한 2주간 최 간호사가 담당한 ICU 구역에서 생존자는 나오지 않았다. 2교대로 돌아가는 격리구역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환자들을 돌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소아환자는 치사율이 100%에 달했다.

“그 때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맞는지, 의미가 있는지, 에볼라 치료가 가능할까라고.”

하지만 적극적인 간호와 감염 관리로 퇴원하는 환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간호사로서, 의료봉사를 꿈꿔왔던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의료 자원봉사대원으로 지원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간호대에 들어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선교활동을 위해 1년을 휴학하고 터키에 의료봉사를 다녀왔던 그였다. 그가 지원서를 제출했을 때 주변의 반대와는 달리 부모님은 의외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최 간호사의 아버지는 “누군가 가야한다면 네가 갔다 와라”며 딸의 생각을 존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딸인 최 간호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힘든 결정을 하게 된 그를 위해 정남식 의료원장도 메일을 보내 희생정신을 독려했다.

그렇게 자신의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시에라리온으로 가게 됐다. 하지만 현지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부족한 인원에 혼자서 격리구역, 그것도 ICU로 분류된 곳에서 32명의 환자 관리와 현지 간호사 교육과 감독을 담당했다. 구토와 설사로 힘들어 하는 환자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시설 역시 좋지 않았다. 2교대로 돌아가면서 쉬는 시간도 부족했다. 감염을 막는 보호장비를 갖춰도 매순간이 감염에 노출될 수 있었다. 에볼라 감염 환자 주변은 에볼라 바이러스로 가득했다. 현지 지원활동 중 대원 한 명이 주사바늘에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감염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여러 겹의 보호장비를 갖추지만 한 순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퇴원하는 환자를 보며 그 힘들었던 과정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한 달간의 의료 구호를 마치고 돌아온 최 간호사는 다시 업무현장에 복귀했다.

“의료 구호대 중 협력한 사립병원으로는 세브란스가 유일했어요. 나눔과 봉사, 헌신을 바탕으로 한 우리 기관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vol.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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