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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기술 전쟁과 좋은 특허, 나쁜 특허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12-15

기술 전쟁과 좋은 특허, 나쁜 특허

법학전문대학원 나종갑 교수



세계는 ‘기술 전쟁’ 중: 중세 시대부터 현재까지

최근 부쩍 산업 스파이가 증가했다. 우리 국민과 기업들이 애써 개발한 기술이 탈취돼 경쟁국에게 넘어가고, 얼마 후에는 그 기술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쟁 상품이 수입돼 우리 기업들을 당혹하게 한다. 21세기는 기술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술 개발은 선의의 경쟁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의료 기술, 국방 군사 기술에 대한 탈취도 만연해 있다. 최근 국내 언론에 북한이 우리나라의 방산 기술을 탈취해 갔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북한은 비단 방산 기술뿐만 아니라 백신, 가상 화폐, 핵과 미사일 등 첨단 국방 기술 등의 탈취에 혈안이 돼 있다. 가상 화폐는 핵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 되고, 탈취한 위성 기술은 자신들의 위성을 만드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한 탈취 국가에는 자신들의 우방인 러시아도 포함돼 있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경쟁 국가의 기술 탈취는 중세에도 만연했다. 태양왕으로 불리는 루이 14세는 거울을 좋아했지만 프랑스에는 거울 제조 기술이 없었다. 루이 14세 치하의 프랑스 재무 장관이던 콜베르(Colbert)는 프랑스에서 직접 유리와 거울을 만들기 위해 그 당시 거울 제조 기술이 앞서 있던 이탈리아 베니스의 유리와 거울 제조 기술자를 회유하고 납치했다. 베니스는 프랑스에 간 그 기술자들에게 돌아올 것을 회유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그 기술자들을 독과 총으로 살해했다. 프랑스가 철 제조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스웨덴의 철 기술자를 납치했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산업 스파이였던 롬비(Lombe) 형제가 1716년 이탈리아에서 1년 동안 고용돼 일하면서 고용주의 실크 제조 기계 도면을 복사 절취했고, 영국은 그들이 훔쳐 온 기술에 대해 1718년 특허를 부여하기도 했다. 중세부터 시작된 특허 부여 제도에는 산업 스파이를 장려하는 목적이 존재했다. 이에 기술을 탈취당한 국가는 도망간 기술자를 추적해 잡아 오는 현상금 사냥꾼에게 현상금을 줘 기술 탈취를 막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 길드(guild)에서 기술을 배운 도제들은 그 도시에서 독자적인 영업을 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배운 기술을 가지고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도시로의 이주는 기술 유출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길드가 발달한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베니스 시(市)와 길드는 자신들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의 외부 유출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했다. 예컨대 유리 세공 기술을 가진 베니스의 베트라이(Vetrai) 길드는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 세공 기술 자체, 유리 세공에 관련된 정보와 유리 세공 기능의 외부 유출을 엄격히 금지했다. 유리 세공 기술은 개인 재산이 아닌 베니스에 이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하는 사회 재산(communal property)으로 간주됐다. 


1271년 베니스의 길드 참사회(guild capitularies)는 유리 세공 기술을 외부에서 실시할 목적으로 베니스 밖으로 유출하면 벌금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1295년에 베니스 대의회(Great Council)는 트레비소(Treviso), 빈센차(Vincenza), 파두아(Padua), 만투아(Mantua), 페라라(Ferrara), 안코나(Ancona) 및 볼로냐(Bologna) 등의 경쟁 도시에 베니스의 유리 용광로 용해 기술이 유출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기술을 유출한 자는 베니스에서 일하는 것을 금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기술 유출은 베니스에 위협이 됐으므로 사형으로 처벌했다. 제노바의 경우에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제노바는 기술자들이 타 지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이로 인해 기술 경쟁력을 상실했다. 그리하여 1529년에 제노바 시는 도망간 기술자를 죽이는 경우에 200두캇의 현상금을 줬다. 이탈리아의 루카(Lucca) 시(市)도 1314년 이래 타 도시로 이민 간 기술자를 죽이는 경우에 포상금을 제시했다. 피렌체도 이민 간 기술자를 참수형에 처했다.


베니스는 기술이 발전한 사회여서 기술의 외부 유출에 관심이 많았지만, 모순적으로 1453년 망한 동로마의 기술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1474년 베니스 특허법’을 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외국 기술자의 자국으로의 이민을 장려해 기술을 탈취하는 특허 제도는 중세 유럽에 널리 퍼져 나갔다.




정치철학과 함께 발전한 특허법

영국은 ‘1624년 독점법(the Statute of Monopolies 1624)’을 제정해 특허 제도를 정비한다. 이 당시 특허법의 제정에는 인간 권리 신장의 목적도 있다. 16세기 후반에 법무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에드워드 코크(Edward Coke)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무분별한 특허 부여를 반대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은 제임스 1세 시대에는 왕의 특허 부여권을 박탈해 영국 의회의 권한으로 하는 1624년 독점법 제정에 앞장선다. 


그의 정신에는 인간의 자연권 개념이 존재했다. 그의 정신은 정치철학자인 존 로크(John Locke)에 영향을 미치고 로크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철학은 독일의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게오르규 헤겔(Georg Hegel) 등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존 로크는 재산을 취득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하여 자유민이 되기 위해서는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권은 신이 부여한 권리라고 했다. 이는 국왕도 개인의 재산권을 박탈할 수 없는 신이 부여한 자연권이 되기 때문에 왕의 권리를 옹호한 왕당파와 대립했고, 결국 로크는 네덜란드로 망명하게 된다. 


로크의 정치철학은 칸트와 헤겔에도 영향을 미쳐 칸트와 헤겔은 자유로운 인간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재산권을 주장한다. 로크나 칸트, 헤겔에 있어서 국가란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장하기 위해 시민들이 구성한 정치 단체에 불과했다. 특히 칸트가 주장한 권리에는 저작권도 포함돼 있다. 칸트는 자신과 같은 저작자의 사상이 널리 퍼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공중과 저작자 간의 표현과 소통(speech)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권리로서 저술가의 저작권(author’s right)을 주장한다. 당시 독일이 종교 전쟁을 종결하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300여 개의 제후국으로 분열돼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칸트가 저술가의 저작권을 주장한 것은 독일 통일을 외치던 독일 사상가들의 정신과 철학이 군주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독일 시민들에게 널리 퍼지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로 대표되는 영국의 공리주의는 독점을 극도로 혐오했지만, 기술자 보호를 위한 특허 제도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자의 개인적 희생에 대한 보상이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사회적 이익을 가져온 기여에 대한 보상책으로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또한 19세기 영국은 프랑스 혁명 정신이 영국 내로 퍼져 프랑스와 같이 인간의 자연권을 주장하는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독일과 달리 저작자의 권리가 아닌 인쇄업자의 권리를 규정한,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copyright act)으로 평가받는 ‘1710년 앤 여왕 법(the Statute of Anne, 1710)’을 공고히 한다. 사실 저작권의 어원이 되는 영어 ‘copyright’는 저작권이나 저작자와는 거리가 먼 인쇄업자나 출판업자의 권리라는 의미이다. 


벤담은 자연법이나 자연권은 매우 추상적인 권리로서, 구체적인 의회법보다 우위에 있는 자연권이나 자연법을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쓸모없는 소리(‘nonsense on stilts’)라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특히 저작권이나 특허권은 신이 부여한 자연권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의회법이 제정한 실정법이라는 사고가 공고히 된다. 근대 독일에서 발전한 법실증주의 개념은 이미 청교도 혁명 이후 영국의 주류적 사고가 된 헨리 아이어턴(Henry Ireton) 등 의회주의자들의 의회법 만능주의에서 그 싹이 텄다. 그러한 의회법 만능주의는 공리주의적 단체주의 사고의 바탕이 되고, 이것이 독일의 형식주의와 법실증주의의 토대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국의 정신은 다양한 사회 현상과 더불어 산업 혁명의 밑바탕이 됐다. 산업 혁명은 많은 인간에게 도움을 줬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인간의 희생하에서 이뤄졌다. 13세기 영국 농촌의 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으로 인해 토지 경작권을 잃은 많은 농민들은 도시의 빈민이 됐고, 18세기 그들의 값싼 노동력은 영국이 산업 혁명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공장 노동력이 됐다.


특허 제도는 기술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됐고, 나중에는 특허권의 공유자 수에 제한이 없어지면서 산업 자본으로 구성한 회사가 특허권을 보유하기 시작하며 많은 투자가 필요한 산업 기술의 개발이 이룩됐다. 특허법도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법 이론을 많이 수용한다. 이때는 19세기로서 공리주의가 영국을 지배하던 시기이다.




좋은 지식 재산, 나쁜 지식 재산

특허 제도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자유와 생존을 억압한 역사도 있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에는 전쟁 비용 등 영국 왕실의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특허권을 민간에게 판매했고, 이로 인해 특허가 없는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받을 정도였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의 특허권의 폐해를 기술하고 있는데, 첫 번째로 특허 침해를 한 경우에는 그의 모든 물품을 몰수하고 1년의 징역형 후에 왼쪽 손목을 잘라 시장에 걸고, 두 번째 침해는 중범죄로서 사형에 처한다고 언급해 그 당시 특허가 얼마나 국민 생활에 위협이 됐는지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허를 침해하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었고, 특허 침해로 인한 이익이 불이익을 상쇄할 만큼 많았기 때문에 특허 침해가 계속 발생했다고 한다. 이는 특허 등의 지적 재산이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한 나쁜 지식 재산(bad intellectual property)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도 특허 제도를 포함해 지적 재산권 제도는 가진 자와 선진국을 위한 제도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한국인 교수인 장하준 교수는 특허 제도를 ‘선진국에 의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라고 비판한다. 기술 선진국들이 특허 제도를 통해 기술 독점권을 취득한 후에 그 독점권을 이용해 후진국들이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비판이다. 이는 한편으로 타당한 비판이기도 하고, 일부 특허 제도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흑역사만으로 특허 제도 등 지식 재산 제도를 폐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식을 장려하고 기술 투자 등을 늘려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도록 해 왔던 것이 현재와 같이 인간이 질병과 가난으로부터 자유롭도록 도와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좋은 지식 재산(good intellectual property)이 존재한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해 주는 좋은 지식 재산은 그 개발을 적극 장려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노력으로 이 세상에 없던 질병 치료 약품이 하루빨리 세상에 출현해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한 사람의 아픈 사람이라도 하루 먼저, 더 빨리 치료해 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특허와 같은 지식 재산 제도는 그와 같은 희생과 노력, 사회적 공헌에 대한 보상으로서 필요하고, 그러한 보호 제도는 결국 인간이 좀 더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종갑

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School of Law, Washington Univ. in St. Louis, J.S.D. 2001

School of Law, Univ. of Washington, LL.M. 1997

사법연수원 22기 수료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제32회 사법시험 합격


2021 홍진기법률연구상 수상(불공정경쟁법의 철학적‧규범적 토대와 현대적 적용, 2021 연세대 출판문화원 간)

2022 세종우수학술도서 선정(현대사회와 지식재산의 보호, 2021 연세대 출판문화원 간)

202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유민총서, 영업비밀보호법의 철학적‧규범적 토대와 현대적 적용: 존 로크의 재산권 철학을 바탕으로, 2022 경인문화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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