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 우리는 어떤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려 하는가?
언론홍보영상학부 김용찬 교수
나는 미디어 사회학자로서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를 도시의 맥락에서 살펴보면서 도시커뮤니케이션(urban communication) 분야를 개척해 왔다. 미디어 사회학의 입장에서 위험사회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디지털화돼 가는 도시 안에서 다름과 차이를 수용하는 포용적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지 논하는 ‘차이의 공동체(community of difference)’ 연구와, 그런 인프라를 갖춘 미디어 환경 구축을 위해 플랫폼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구성할지의 문제를 다루는 ‘플랫폼 연결성(platform connectedness)’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 연구의 결과물들이 최근 <위험, 사회, 미디어>, <포스트매스미디어: 연관성의 위기에서 초위기로> 등의 저서로 출판됐다. 내년과 내후년에는 <communication and difference>, <디지털 도시>, <네트워크 신부족사회> 등의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여기서는 올 2월에 출간한 <포스트매스미디어: 연관성의 위기에서 초위기로>에 들어 있는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21세기에 미디어의 개념과 현실이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보려 한다.
미디어, 흔들리는 개념
라틴어 어원에서 본래 중간, 사이라는 의미를 갖는 미디어란 말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쓰여 왔다. 미디어란 말을 오늘날처럼 신문, 전화, 라디오, TV 등,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디바이스의 의미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선 이후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20세기 이전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령 중매인, 중개인, 거간꾼, 심지어는 영매나 무당을 가리킬 때도 미디어란 단어를 썼다. 이런 의미가 확장되면서 미디어란 말은 18세기 이전에는 ‘유기체들 사이의 공간’이라는 의미까지 갖고 있었다. 이런 과거 쓰임새를 기반으로, 최근에는 미디어를 본격적으로 환경적인 것으로 파악하려는 관점들이 등장했다(미디어 환경, 미디어 생태, 미디어 삶, 미디어 문화, 미디어 도시, 미디어화, 커뮤니케이션 인프라 등의 개념이 그 예들이다).
미디어는 다양한 양상을 포괄하는 다차원적 개념이다. 적어도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 등 여러 차원의 복합으로 미디어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미디어라는 말을 쓸 때는 대개 소통을 위한 도구, 장치, 기기, 디바이스, 네트워크 등을 가리킨다(도구로서의 미디어). 도구로서의 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는 내용을 가리킬 때도 미디어란 말을 쓴다(내용으로서의 미디어). 또 우리는 미디어 조직, 미디어 조직의 종사자, 미디어를 둘러싼 각종 규제와 규범, 사회화 장치 등을 가리킬 때 미디어란 말을 쓴다(제도로서의 미디어). 사회 연결망의 개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늘 복수의 사람들 사이 혹은 중간에 있는 미디어적 존재들이다(사람으로서의 미디어).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 셀럽 언론인들, 여론 지도자들이 일종의 사람으로서의 미디어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일인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면서 사람이 미디어라는 개념이 아주 이상한 것이 아닌 것이 됐다. 미디어라는 것이 중간이나 사이에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도 일종의 미디어라고 볼 수 있다(공간으로서의 미디어). 디지털 도시, 스마트 도시 등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 플랫폼으로 상상하는 프로젝트들이 최근 등장하면서 공간으로서의 미디어 현실이 더 부각되고 있다.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를 따지기는 쉽지 않다. 대략 케이블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1980년대와 인터넷이 등장한 1990년대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의 특징을 앞에서 언급한 미디어의 다섯 가지 차원별로 따져 보도록 하자.
매스미디어 시대의 도구적 미디어의 특징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동시에 같은 내용을 전함으로써 그들이 공통의 시간 경험, 공통의 공간 경험을 하게 한 것이었다.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로 오면서 개인들이 자신만의 시간 경험, 자신만의 공간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미디어 기기의 개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그뿐만 아니라 미디어 기술의 디지털화, 그것을 토대로 하는 기술적 차원에서 융합(컨버전스)이 이뤄지고 있다.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애거나, 현실적 토대가 없는 가상 세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들, 미디어 경험이 하나의 기기와의 인터페이스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미디어 기기가 서로 연결된 미디어 환경의 경험으로 전환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중요한 변화는 미디어의 자동화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동성을 통해서 이제 미디어는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나 있는 것이 됐다. 이런 기술적 변화들을 바탕으로 미디어 기술이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술적 수준의 플랫폼화가 진행되고 있다.
내용으로서의 미디어 측면에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매스미디어 시대는 국가, 민족, 이념 등이 중심이 되는 거대 담론이 개인들의 일상 이야기, 그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시공간의 이야기들을 억압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이야기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자기 신념에 맞는 내용만 골라서 말하고 듣는, 편향적 미디어 내용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미디어 내용에 대한 관심이 폭력성, 선정성, 이데올로기성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내용 이슈는 진실성 그 자체가 됐다.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에는 제도나 조직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변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존 매스미디어 기업들의 입지가 심각하게 좁혀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도구적 수준에서의 컨버전스를 토대로 해서 제도 차원에서의 미디어 컨버전스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주목할 현상은 미디어 제도의 플랫폼화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플랫폼 기업은 결국 데이터를 가공해서 가치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플랫폼으로 인해 미디어 산업이 데이터 산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매스미디어 시대에 만들어졌던 다양한 미디어 관련 규범들, 가령 공익성, 공정성, 객관성, 개인 정보, 지적 재산권 등의 규범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재규정되고 있다.
사람으로서의 미디어 측면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공적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야기 생산자들이 매우 확대됐다. 이야기꾼들로 새롭게 태어난 개인들은 서로 연결돼 전보다 더 똑똑해지고, 더 힘이 세진 소위 네트워크 개인들, 네트워크 집단이 됐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에 스스로가 강력한 미디어(가령 미디어 인플루언서)가 됐다. 그런데 다른 편에서는 플랫폼 노동, 디지털 노동의 착취, 소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공간으로서의 미디어 측면에서도 중요한 변화들을 살펴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추상적이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공간 논리가 어느 때보다 확장되고 있지만, 또 동시에 구체적인 장소의 중요성에 대한 감각도 커지고 있다. 이런 대립은 한편에서는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부수고 밀어 버리고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려는 도시 재개발의 논리, 그리고 다른 편에서는 과거의 것,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관계, 기억, 이야기들을 지켜 내려는 도시 재생의 논리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도시 재개발과 도시 재생은 도시 지역이 어떤 미디어가 될 것인지를 규정하는 과정이다. GPS, 와이파이 등의 위치 인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장소 자체가 네트워크화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모든 변화들은 결국 도시의 디지털화와 연결된다. 다시 말해 도시가 거대한 디지털 미디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디어 안에, 즉 미디어로서의 도시 안에 살게 됐다.
연관성의 위기에서 초위기로
매스미디어 시대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를 구별하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연관성(relevance)이란 개념을 갖고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관성이 높다는 것은 나, 지금, 여기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스미디어 시대의 미디어는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 모든 측면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관련 없는 것, 지금, 여기와 관련 없는 것에 신경 쓰고, 관심을 갖고 살게 만들었다. 정작 자기에게 중요한 것, 여기와 지금에 중요한 것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래서 매스미디어 시대는 연관성 위기(relevance crisis)의 시대였다.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에서는 연관성의 초위기(relevance super-crisis)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연관성의 초위기란 내가(혹은 우리가) 누구냐와 관련된 것, 여기, 지금과 연관된 것들이 오히려 지나치다 할 정도로 개인의 삶에서 과잉적으로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나/우리, 지금, 여기 안에서 만들어진 가치(의미, 권력, 이윤)가 나/우리, 지금, 여기의 밖에서 실현되고, 그 과정에서 나/우리, 지금, 여기가 소외되는 현상이다.
연관성의 초위기 징후들 역시 미디어의 5가지 차원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도구로서의 미디어 측면에서의 연관성 초위기이다.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에는 개인들의 삶에서 자기 자신의 과잉 현상이 나타난다. 개인화된 미디어 기기를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과도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타자의 이야기와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완결된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 과잉된 내가,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만 연결돼 만들어지는 과잉된 우리가, 결국에는 자기 소외의 결과를 초래한다. 미디어의 자동화로 인해서 이용의 주체와 만족의 주체가 분리되고 있기도 하다. 나의 과잉은 우리의 과잉을 만든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만 만드는 수평적 연결에 사람들이 중독돼 간다. 그리고 지금과 여기가 과잉된 삶이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같은 시간 감각, 같은 공간 감각을 갖지 않은 타자와의 소통은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나, 지금, 여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내가 아닌 타자, 지금이 아닌 그때, 여기가 아닌 저기와 연결될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그런 연결성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제 어떤 유형일지라도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 내기가 매우 힘들어진 상황이 됐다.
내용으로서의 미디어 측면에서도 연관성 초위기의 징후를 찾아볼 수 있다. 주변화된 이야기, 소소한 이야기들이 중앙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것들은 대개 서로 파편화되고 국지화돼 있어서 사람들은 완결성 있는 서사를 갖지 못한다. 진실과 반진실을 구분하기 힘들어져서 진실성에 대한 판단 중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기도 하다. 진실과 반진실의 기준이 사라짐으로써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이 겨루는 논쟁의 결투장이 사라졌다. 이제 자신의 진실은 너무나 진실이고 타자들의 진실은 너무나 진실이 아닌, 이기적 구분만 있을 뿐이다. 나의 말,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미디어 내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일종의 내용 효과의 폐쇄 회로에 빠져 있기도 하다. 이런 폐쇄 회로 속에서 연관성의 초위기가 심화돼 간다.
제도로서의 미디어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연관성 초위기 징후는 플랫폼 의존이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그것을 플랫폼 위에서만 해야 하고, 그래서 플랫폼이 어떤 논리적 틀에 의해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그 틀에 맞춰서만 말할 수밖에 없게 됐다. 심지어는 다양한 대안 미디어들도 플랫폼 위에서만 대안적 이야기를 풀어낼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는 것도 아이러니컬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데이터식민주의라는 말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플랫폼 위에서 하는 것은 결국 플랫폼을 위해 데이터를 생산해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리고 우리가 생산한 데이터,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가치는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고, 다른 곳(즉 제국의 중심)으로 간다.
사람으로서의 미디어 측면에도 연관성 초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난다. 네트워크 기술을 통해 개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것을 토대로 집단 지성과 네트워크의 힘을 경험하는 듯하지만, 그런 지성과 힘이 실질적인 권력을 그들 사이에서 창출하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개인들이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개인들을 이용하는 역전 현상이 공고화된다. 개인들은 스스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주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광고주에게 팔리는 상품이었고, 데이터를 부지불식간에 생산하며 노동 착취당하는 다중의 소외 구조 속에 갇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택배 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회의 가장 열악한 고리가 됐다. 최근 부각되는 무임 노동의 문제도 이와 관련 있다. 사람들은 플랫폼 상에서 다양한 콘텐츠와 데이터를 생산해서 플랫폼 기업에 제공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다중의 착취, 다중의 소외를 겪고 있다. 디지털 기기와 플랫폼 서비스에 연결된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그 목소리는 환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공간으로서의 미디어 측면에서도 연관성 초위기의 징후가 나타난다. 지역성이라는 것이 최근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지역성이 만드는 가치가 지역 안에서 이뤄지고, 공유되고, 향유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밖으로 빠져나간다. 지역성이 강화되지만, 지역 안에서 실질적인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일종의 지역성과 사회성의 디커플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확장하면, 특정 지역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든 주체들이 오히려 그 장소에서 쫓겨난다는,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상이 나타난다. 젠트리피케이션이야말로 연관성 초위기의 징후를 다분히 담고 있는 현상이다. 이것이 미디어와 더 밀접하게 연결돼 나타나곤 한다. 가령 어떤 지역이 인스타그램 등에서 매력적인 곳으로 재현될 때, 실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우리 동네가 이런 곳이었어?’라고 말하는 인지부조화를 겪고,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말할 기회를 잃고, 심지어는 그 장소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미디어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이름 붙인 현상이다.
우리는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적 측면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포스트매스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도, 미디어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도, 미디어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미디어 안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미디어 환경은 어떤 상태이고, 어떤 상태가 돼야 하는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다분히 정치적인 질문이고, 또 윤리적인 질문이다. 우리가 사는 미디어 환경은 얼마나 안정적인가, 얼마나 정의로운가, 얼마나 포용적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환경은 연관성의 위기와 초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인가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향후 내 연구의 핵심 질문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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