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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더 깊은 지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09-19

더 깊은 지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전 세계 학계가 주목하는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허성호 제작 총괄(행정학 02)



대한민국 유일 교육 전문 방송 EBS에서 기획한 대규모 시사교양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이하 <위대한 수업>)는 대학자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을 대중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8월 28일부터 세 번째 시즌이 방영 중이다. 국가 차원에서 지원받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허성호 동문은 우리 대학교에서 행정학과 역사학을 전공, 14년째 EBS에서 내공을 쌓아 온 역사 전문 PD이다. 오늘도 양질의 지식 콘텐츠 제작에 힘쓰고 있는 허 동문을 만나 연세와의 각별한 인연과, 역사 전문 PD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봤다.



‘역사 마니아’ 행정고시생, PD가 되다

대대로 공무원 집안에서 자란 허성호 동문은 우리 대학교 행정학과에서 학부 시절을 보냈다. 군 전역 이후, 행정고시를 치르겠다는 생각에 행정학과 화백실(고시 준비반)에 들어가기도 했다. 좋은 친구, 교수님들과 함께여서 행복했던 화백실에서의 생활은, 역설적으로 그가 다른 길을 찾게 되는 큰 사건을 가져왔다.


2010년 12월 연세동문회보에 허성호 동문이 기고한 행정학과 화백실 화재 이야기


“고시반 생활은 굉장히 즐거웠어요. 고시에 붙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는지 화백실장까지 맡게 됐죠. 그런데 실장이 된 지 딱 9일째 되는 날 저희 행정학과 화백실 전체가 불에 타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하필 발화 지점이 제 책상과 가까워서 필기해 놓은 책들이 깡그리 다 타버렸습니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저는 6개월간 화재 수습을 하느라 공부를 못했어요. 그 해 고시는 당연히 응시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고시를 포기하게 됐어요.”



수험 생활을 그만둔 후 그가 느낀 것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전까지는 짜인 대로 인생을 살았다면 화재 사건 이후 허 동문은 ‘하고 싶은 것을 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가 진정 좋아하던 것은 역사였다. 전공과 별개로 오랜 ‘역사 마니아’였던 허 동문은 어린 시절부터 존경했던 윤봉길 의사의 전기 <B.K. Story>를 출간했고, 역사 전문 기자가 되고자 마음먹었다. PD는 생각지도 못한 진로였으나 우연히 응시했던 EBS 공채가 길을 열어 줬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동생이 EBS 다큐멘터리 PD가 꿈이라, 한번 같이 시험을 보자고 해서 따라갔어요. PD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응시를 했어요. 인생 첫 공채 시험이기도 했죠. 동시에 응시했던 몇몇 신문사 시험에 붙기도 했지만, 가장 길고 어려웠던 EBS 공채에 끝까지 붙게 돼서 PD로 입사했어요.”


허 동문은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방송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같은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에서 조연출을 맡았다. 그러던 중 학교 폭력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평소 엄격한 사내 공모 제도로 운영되는 <다큐프라임> 시리즈가 예외적으로 긴급 기획됐다. 허 동문은 이를 만들어 보겠다고 자원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시 학교 폭력으로 대구에서 아이들이 연달아 자살했어요. 교육 방송에서 학교 폭력을 다룰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긴급하게 <다큐프라임>에서 ‘학교 폭력 6부작’이 기획됐죠. 그런데 회의를 하며 ‘이거 할 사람 손 들어’ 하니까 저만 들었더라고요. PD라면 모두 <다큐프라임>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학교 폭력’ 시리즈는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을 계속 만나야 했어요. 너무 가슴 아프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반드시 담아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죠. 그렇게 결국 다큐멘터리 제작을 완료했고 그게 저의 첫 다큐멘터리였어요.”



고급 지식의 대중화를 위해


이후 세계 기행 프로그램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역사의 빛 청년>, <다큐프라임-절망을 이기는 철학, 제자백가>, <다큐프라임-한국사 오천 년>, <독도, 러일전쟁의 서막>, 강연 프로그램 <클래스E> 등 다양한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세계적인 석학들의 지식을 전달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의 멤버로 투입됐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의 협업으로 제작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인 데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던 시기라 부담이 큰 도전이었다. 


“시즌 1 때는 국경을 넘나드는 게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섭외를 위해 한번 출국하면 현지에서 6개월씩 지냈어요. 평소 업무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편인데, 세계적인 석학들을 섭외하면서 차원이 다른 부담감을 느꼈죠. 한 달 만에 머리 양쪽에 밀가루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더라고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식인 섭외의 장벽은 높았지만 허 동문은 마치 영업사원처럼 <위대한 수업>의 취지, 즉 ‘고급 지식을 무료로 대중에게 제공한다’는 공익적 의도를 어떤 방법으로든 전달하고자 했다. 강의를 수락하더라도 촬영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허 동문은 기억에 남는 학자로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인공지능학자인 앤드류 응을 꼽는다.


“유발 하라리의 회사에서 텔아비브 시내 반경 500미터 이내 지역에서 촬영 장소를 찾으라고 해서 분노했어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온 저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에 대한 호소 끝에 에이전시 측에서 3킬로미터로 반경을 늘려 줘서 2.7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장소를 극적으로 구했어요. 섭외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까다로웠지만, 강연이 시작되자 유발 하라리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 줬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매형과 식사를 하다가, 마침 매형이 전날 비즈니스 차원에서 앤드류 응과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법학 박사인 누나에게 고급 용어로 섭외 편지 작성을 부탁하고, 매형 회사 계정으로 메일을 보내는 작전을 짰죠. 미국은 공적 메일로 사적 요청을 보낼 수 없는 곳이라, 매형 회사에서 허가를 받는 것만 한 달이 걸렸어요. 그런데 그렇게 메일을 보내니까 바로 ‘연락해 줘서 고맙다. 하겠다’고 답이 왔어요.” 


허성호 동문과 동료들의 이런 노력은 엄청난 라인업과 양질의 대중 강연을 현실로 만들었다. 자크 랑시에르, 주디스 버틀러, 슬라보예 지젝, 마사 누스바움 등 저명한 학자뿐만 아니라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도 <위대한 수업>의 스승으로 초대됐다.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시즌 3를 제작 중인 현재, 허 동문은 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그리고 있다. 


“예전에는 시청자들이 알 만한 강연자의 유명세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제는 한 분야에서 연구를 가장 열심히 하면서도 강의력이 출중한 분을 섭외하려고 해요. 또 미국이든 한국이든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천대받는 분위기가 있는데, 저는 인기/비인기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초 학문의 대중화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즌 1, 2를 거치면서 <위대한 수업>은 세계 학계에도 많이 알려졌고, 환영을 받는 프로그램이 됐다. 허 동문은 두 시즌 동안 강연자 선정, 섭외, 번역과 자문에 기여한 한국의 여러 학자들에게 그 공을 돌린다. 


“해외 학자들이 강의를 하지만, 어떤 분을 모실지부터 섭외까지 한국의 교수님들이 굉장히 도움을 많이 주십니다. 또 강연을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후반 작업에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이는데, 해당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교수님들께서 자문해 주세요. <위대한 수업>은 한국 학계의 노력의 총아라고 생각합니다. 학계의 도움에 힘입어 고급 지식을 전달하는 콘텐츠 영역에서 한국이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연세에서 이어간 역사 사랑


학문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위대한 수업> 외에도 그는 앞으로 기억에 남을 역사 다큐멘터리를 몇 개 더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는 PD가 아닌 인간 허성호로서 가진 더 큰 꿈과 연결된다.


“행정고시 준비를 그만두면서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한국 사회에 전달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역사 공부는 ‘돈이 안 된다’는 편견을 없애고 정말 삶에 유익이 된다는 걸 입증하고 싶어요.”


역사를 더 잘 전달하고자 하는 PD답게, 그는 전문성을 키우고자 2017년 우리 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에 진학했다. 연세는 그에게 역사에 대한 오랜 학문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장이었다.


“대학원에서는 제가 제일 사랑하는 학문을 공부하고 싶어 역사학을 선택했어요. PD 업무와 병행해야 해서 공부와 건강을 맞바꿨죠. 유일한 직장인이자 다른 과 출신 이방인이었지만 사학과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어요. 연세에서의 대학원 생활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허 동문은 미래에 역사 재단이나 기업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모든 학문의 기초로서 역사가 가진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날짜도 정했다.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진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인 2032년 4월 29일이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하시고 정확히 50년 후에 제가 태어났어요. 그래서 제가 50살이 되는 해에 역사 재단을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가 보니 역사를 공부하는 동료 학생들이 얼마나 귀한 인재인지 알겠더라고요. 이런 학문, 그리고 학생들에게 사회가 투자하지 않으면 인재가 양성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학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우리 대학교에서 오래 공부한 졸업생으로서 그는 자신을 성장시킨 곳이 바로 연세라며, 후배들에게 연세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충분히 쌓고 자유로운 학풍을 이어가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대학 시절 생각이 다른 친구들과 밤새워 이야기하던 날들이 저를 조금 더 열린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 같아요. 후배들도 연세에서 열심히 토론하고, ‘인간 세상이 굉장히 크고 넓구나’를 알게 해 주는 인문학을 마음껏 공부하면 좋겠어요. 또 사회에 나와 보니 연세 동문이라고 무조건 밀어주고 끌어 주는 문화가 없는 게 자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수평적인 PD 사회의 문화를 저는 연세를 통해 경험했어요. 세상의 중심이 ‘우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때 진정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어요. 꼭 지켜 나가야 할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수업> 시즌 3는 ‘노벨상 동문회’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유례없이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섭외해 화제에 올랐다. 어떤 기사는 ‘EBS, 일냈다’라는 헤드라인을 붙였을 만큼 <위대한 수업> 시즌 3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미 대중은 물론 세계 지성인들의 관심을 받는 소위 말하는 ‘핫’한 프로그램이 됐지만, 이 프로그램의 선장 역할을 하며 제작을 이끄는 허성호 동문의 진심을 볼 때 <위대한 수업>의 미래는 더욱 밝고 건강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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