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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공간이 주는 ‘경험’에 주목하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3-08-28

공간이 주는 ‘경험’에 주목하다

죽은 공간에 새 생명과 이야기를 불어넣다, 글로우서울 유정수 대표(천문우주학 98)



장사에서 중요한 것은 입지 혹은 상권이다.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지던 이 개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글로우서울 유정수 대표(천문우주학 98)다. 공간 기획 전문가인 그는 노후화된 도심이나 잠재력 있는 지역을 새롭게 하는 도시 재생 전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독특한 공간 디자인으로 죽은 상권, 망해 가는 가게를 살리는 데 탁월하다. ‘손대면 핫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부업 삼아 시작한 음식점이 공간 기획의 시작 

그가 공간 기획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5년, 익선동에 ‘글로우키친’이라는 음식점을 내면서부터다. 직장을 다니며 요리 잘하는 친구와 함께 부업 삼아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메뉴가 너무 많았어요. 메인 셰프를 맡은 친구가 너무 실력이 좋았던 게 오히려 패인이었죠. 이탈리아 음식, 동남아 음식, 일식, 퓨전 요리 등 한 100가지는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니 재고 관리도 안 되고, 손님들이 ‘여기 뭐 하는 곳이냐’고 물으면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웃음).” 



그는 첫 번째 실패를 거울삼아 익선동에 다시 세 개의 가게를 열었다. ‘익동정육점’, ‘심플 도쿄’, ‘살라댕방콕’ 등으로 나눠 글로우키친에서 팔던 양식, 일식, 동남아 음식을 각각 전문화했다. 만드는 사람도, 음식 맛도 그대로였지만 신기하게도 매출은 계속 늘었다. 카페나 레스토랑은 명확한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계기였다. 


“우선 메뉴는 핵심이 되는 게 하나 있고, 그다음에 변주가 있어야 해요. 메뉴와 공간이 같은 콘셉트로 가야 하고요. 그 콘셉트가 통할지 안 통할지는 대중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지만, 명확하지 않으면 아예 선택을 받을 기회조차 없습니다.”



슬럼화된 익선동에 상권을 만들다

그가 매장을 늘려 가는 사이, 몇몇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오며 익선동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독특한 감성의 상점들과 낮은 한옥들, 좁은 골목이 만들어 내는 아기자기한 풍경에 반한 MZ세대들이 몰려들면서 번듯한 상권이 형성됐다. 글로우키친을 열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온천집 사진 제공: 글로우서울)


“익선동을 핫하게 만든 것이 저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맞아요. 코로나 때 경영난으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오히려 온천집과 청수당이라는, 익선동을 대표하는 두 매장을 새롭게 열었어요. 이 두 가게의 유명세 덕분에 익선동이 침체되지 않고,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됐죠. 지금은 초창기에 들어왔던 매장들은 거의 다 떠나고 없어요. 저희는 지금도 7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익선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익선동은 재개발 논의가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증·개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슬럼화된 상태였다. 한옥이라고 하기에는 쪽방촌에 가까웠고, 지붕이 내려앉은 집도 많았다. 빈집도 30%나 됐다. 


“그래도 제 눈에는 이 동네가 예뻐 보였어요. 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모델을 데리고 와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았는데, 알고 보니 사진 동호회 사이에서는 유명한 출사지라고 하더라고요. 사진이 잘 나온다는 것은 SNS 감성에 맞는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이 낡고 레트로한 분위기가 유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기적으로 2015년은 좀 빨랐던 것 같고, 2017년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의 익선동은 그때와 또 달라요. 지금은 집이 없고 모두 가게예요. 멋진 카페나 레스토랑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한적한 골목에 모퉁이를 돌다 보면 하나씩 툭툭 나타나곤 하던 그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제가 사랑한 건 그 익선동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매력이 없어져서 아쉬워요.”



대전 소제동, 창신동, 경리단길 등 도심 재생 사업에 참여  

익선동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18년 말, 퇴사와 함께 글로우서울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공간 기획에 나섰다. 이후 대전 소제동을 시작으로 창신동, 경리단길 등 여러 작업을 통해 글로우서울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글로우서울의 특징 중 하나는 많은 핫 플레이스를 탄생시켰음에도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없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매장이 잘 된다고 해서 그것을 무한 복제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역을 개발할 때도 ‘온리원(Only One)’ 전략으로, 그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매장의 수가 많아지면 희소성이 떨어지고, 굳이 그 가게를 방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낡고 오래된 도심 지역이라는 점에서 창신동은 익선동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여기에 익선동에서 성공한 청수당이나 온천집을 넣는다면 저희로서는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겠지만, 각각 다른 콘셉트로 구성했습니다. 소제동도 마찬가지였고요. 공간에 맞는 메뉴도 다 새로 만들어야 하니 솔직히 좀 고달프죠(웃음).”



‘배 타고 들어가는 음식점’,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카페’   

(글로우쇼룸 사진 제공: 글로우서울)


최근에는 성수동에 복합 문화 공간 ‘글로우쇼룸’을 열어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글로우쇼룸은 ‘살라댕템플’이라는 음식점과 카페 ‘호우주의보’로 구성됐다. 먼저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호수가 펼쳐지고, 음식점까지는 배를 타야 한다. 


(살라댕템플 사진 제공: 글로우서울)


마치 태국 사원처럼 꾸며진 외관도 눈에 띄지만, 내부는 더욱 몽환적이다. 벽면 한가운데 커다랗게 자리 잡은 불상과 물, 나무, 바람 소리가 어우러진 공간은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 독특한 콘셉트의 음식점은 이미 입소문을 타 소셜 미디어에는 ‘방문 인증’ 열기가 뜨겁다.   


(호우주의보 사진 제공: 글로우서울)


음식점 옆에는 ‘비 내리는 카페’로 유명한 ‘호우주의보’가 있다. 한남동에 1호점이 있는 호우주의보 역시 그가 탄생시킨 공간이자 브랜드이다. 어느 날 문득, ‘비 오는 날 커피가 더 맛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을 계기로, 하루 종일 비가 내리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호우주의보에서는 늘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MZ세대들의 성지로 통하는 성수동 상권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드립 커피와 특별한 페이스트리, 다양한 프랑스 음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원래 인쇄 공장이 있던 곳인데, 부지가 600평 정도로 꽤 넓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호수를 만들어 배를 띄웠고, 공장 건물을 사원처럼 꾸몄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행을 온 것 같은 색다른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특별한 경험 위한 유휴 공간은 반드시 필요 

그의 공간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처럼 ‘특별한 경험’에 있다. 이를 위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유휴 공간이다. 유휴란, ‘쓰지 않고 놀린다’는 뜻으로 고객에게 휴식을 주는 공간을 의미한다.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기보다는 사람들이 그 공간을 바라보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전체 공간의 정중앙에 배치해 공간에 오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놓는 것이 그의 공간 구성 원칙 중 하나다. 글로우서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온천집은 중앙에 온천이 있고, 그 주변에 30석의 테이블이 있다. 온천 자리에도 테이블을 넣었다면 15석은 거뜬히 더 배치할 수 있었지만 과감히 접었다. 


“고객이 느끼는 만족도가 곧 공간의 경쟁력입니다. 사람들이 이 공간을 방문한 특별한 이유가 되는 것이죠. 많은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 간 지금,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콘텐츠가 그만큼 매력적이어야 해요.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수요가 넘쳐 나서 어떻게 해도 장사가 잘 되는 시대라면 이런 고민이 필요 없겠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공간’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SBS ‘동네멋집’ 통해 폐업 위기 카페에 솔루션 제시


그는 요즘 부쩍 바빠졌다. SBS ‘동네멋집’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일주일에 2~3일은 꼬박 촬영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동네멋집’은 폐업 위기에 처한 카페를 재탄생시키고, 나아가 동네 상권까지 살린다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장사가 안 되는 음식점의 맛과 메뉴를 바꿔 주던 ‘백종원의 골목식당’ 후속 프로그램으로, 이번에는 카페를 다룬다. 


지난 6월 파일럿 방송 당시 그는 세 곳의 카페를 변신시켜 주목을 받았다. ‘1호 멋집’으로 선정된 대학로 미술 카페는 50만 원 남짓하던 월 매출이 그의 솔루션 후 한 달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한 달에 2만 원을 겨우 팔던 철원의 카페는 ‘단풍 도넛’ 카페로 바뀌며 현재 ‘줄 서는 매장’이 됐다. 폐업 진단을 받은 철원 와수리의 브런치 카페는 붕어빵 카페로 변신, 영업 시작 30분 만에 매출 13만 원을 넘기는 등 방송마다 큰 화제가 됐다. 그 인기에 힘입어 정규 방송으로 편성돼 9월부터는 매주 시청자들과 만난다. 


때론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어려운 환경에서 분투하는 자영업자들을 돕고 있는 그는 이전 프로그램인 골목식당의 백종원 대표(사회사업학 85)를 연상시킨다. 실제로도 그는 가장 좋아하는 연세인으로 ‘백종원 선배님’을 꼽았다. 사석에서 만난 적은 없지만, 사업을 시작하며 그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고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한다. 



만드는 모든 것이 트렌드가 되다 

방송에서도 이미 입증됐지만, 그가 선보이는 공간은 그 자체로 트렌드가 된다.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나가는 데 탁월한 만큼 ‘앞으로 어떤 것이 잘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예측하는 능력은 전혀 없어요(웃음).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할 뿐이죠. 제가 생각하는 유행이란, 창의적인 재능을 가진 누군가가 좀 다른 방식으로 이미 사장된 것을 끌어올려 다시 빛을 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잖아요. 이번에 성수동 인쇄 공장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만 해도 주변에서 ‘이제 인더스트리얼은 한물갔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랐어요. 저는 이것이 유행이 지나서가 아니라, 거기서 압도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잘 만들면 그걸 발견해 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트렌드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는 주로 일상에서 얻는다. 특히 멋지고 경이로운 순간이나 상황을 만나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유를 분석해 저장한다. 가령 경복궁의 야경에 감탄하며 조명의 각도를 살펴보는 식이다. 스스로 ‘피곤한 삶’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그를 만든 비결이기도 하다.  



문과적이면서 이과적인, 그래서 사업에 최적화된  

공간 기획으로는 우리나라 최고로 손꼽히지만, 그는 건축이나 인테리어 전공자가 아니다. 천문우주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IT 업계에서 일했다. 학창 시절에는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을 많이 했다. 그 대안으로 법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해 문과 강의실을 더 많이 다녔고, 남다른 미술적 재능으로 벽화 그리기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 학교생활은 더없이 바쁘고 즐겁게 보냈습니다(웃음). 사업을 하면서 보니 제가 딱 중간 입장이더라고요. 문과 사람들보다는 이과적 재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이과 쪽 사람들에 비하면 문과적 소양이 많은. 사업이라는 것은 한 분야의 천재보다는 넓게 아는 게 더 유리한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학교 다니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졸업 후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때는 이 쓸모없는 걸 왜 하고 있나, 싶었던 것도 어느 날 보면 너무 유용하게 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순간에도 ‘전공을 살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어요. ‘절대 걱정하지 마라. 사회에 나가면 그 모든 게 다 너의 자산이 될 것이다’라고요.”



그는 창업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창업 1년 동안 겪는 일이 인생을 10년 산 것 같은 경험과 맞먹는다.”며, “최종 목표가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조언도 전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투자 유치도 해 보고, 자기 삶에서 뭔가를 일궈 나가는 과정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엄청나게 넓혀 줍니다. 창업에 실패해 다시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도움이 되고요.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자리마다 풍경이 달리 보이듯이, 사측의 입장을 이해하는 직원이 되면 훨씬 탁월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작은 음식점에서 시작해 공간 기획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매출 700억 원 규모의 회사로 키운 유정수 대표. 그의 다음 목표는 ‘상장’이다. 회사 외연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 그가 선보일 또 다른 멋진 공간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vol.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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