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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어려운 오페라를 쉽고 재미있게 누리는 일상 속 문화로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12-22

어려운 오페라를 쉽고 재미있게 누리는 일상 속 문화로

오페라의 대중화를 이끄는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성악 91) 

 


서울시오페라단에 새 색을 더하는 새로운 수장 

올해 초, 음악계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새로운 단장으로 우리 대학교 성악과 동문인 박혜진 단장이 부임한 것. 서울시오페라단 최초의 여성 단장이자 성악가 출신, S대 이외의 출신으로도 최초였기에 이목을 끌었다. 이제 단장으로서 첫해를 마무리해 가는 그의 남다름은 지난 10개월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취임 이후 서울시오페라단의 색깔이 변하고 있다. ‘오페라’라는 어쩌면 음악 장르 중에서도 가장 소수만이 향유하는, 또 가장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장르에 새로움을 더해 좀 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과감한 시도들을 추진했다. 새로운 변화를 통해 시민들이 더욱 친근하게 향유할 수 있는 오페라 시대를 만들겠다는 그의 바람과 포부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무대 위 주인공이었던 성악가에서 이제 잠시 무대에서 내려와 행정기관의 수장으로, 마치 소풍 가서 즐기는 여유처럼 시민의 일상 속에 오페라가 새로운 즐거움과 활기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현실적인 고민들과 아이디어 속에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즐겼던 자유로운 캠퍼스 

박혜진 동문은 말 그대로 예술 전공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치며 예술 전공자들에게 요구되는 고난도 트레이닝과 함께 공부 성적까지 뛰어나야 하는 치열한 입시 경쟁을 겪고 우리 대학교에 성악과 수석으로 입학했다. 엘리트 코스에서도 1등을 도맡으며 두각을 나타내 누구나 당연히 서울대에 진학할 것이라 여겼지만 그는 더 실력 있는 선배들이 즐비했던 연세를 택했다.


“실기 면에 있어서 연세에 더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어요. 특히 성악 파트는 소리가 좋고 실력이 있다 하는 이들은 대부분 우리 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좋은 재목들이 많은 학교였고, 현재도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또 저는 성향상 활발한 편인데 입시 경쟁에 찌들어 있으며 너무 힘들었어요. 노는 자격증을 따러 가겠다며 최선을 다했죠. (웃음) 연고전처럼 연세의 활발하고 개방적인 문화들도 좋았어요. 실제로 입학 후에는 연세 캠퍼스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을 많이 누렸고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성향답게, 그는 대학 시절 늘 새로움을 경험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썼다. 예중예고를 거치며 늘 아쉬웠던 것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대학 시절 그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며 다른 과 학생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대학 연합 동아리였던 국제경상학생협회 ‘아이섹’ 활동은 잊을 수 없다.


“외국 학생들과 교류하는 동아리였어요. 타과 친구들을 그간 잘 만날 수 없었잖아요. 입학 전까지는 주변에 예술 하는 친구들밖에 없어서 너무 궁금했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맘껏 만나고 소통했어요. 동아리방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던 기억도 나네요. 현재까지도 동아리 선후배와는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어요. 무엇보다 여기서 맺게 된 네트워크는 대단하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훌륭한 경영자분들도 많이 계셔서 제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된 답답한 입시에서 벗어난 대학생활을 말 그대로 ‘즐겼다’는 박혜진 동문. 그래서 단 한순간도 후회되는 시간 없이, 지금도 떠올리면 좋은 추억들만 가득하다. 



유학시절 고난의 딕션 수업이 반전의 기회로 

박혜진 동문은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처음부터 꼭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겠다는 포부나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언어를 더 배우기 위해 갔던 뉴욕에서 랭귀지 스쿨을 다니다 보니, 이런 좋은 환경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맨해튼 음악대학에서의 유학은 쉽지 않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공부를 안 하면 졸업을 못해요. 열심히 준비해 학교에 들어갔는데 산 넘어 산이었죠. 수업을 따라가야 하잖아요. 그중에서도 딕션 수업이 있었는데, 2년가량을 받아야 해요. 성악과 관련된 언어들에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이 있어요. 그 언어들을 다 배워야 했어요. 실제로 각 언어 수업은 해당 언어로 진행돼요. 처음엔 영어 숙제를 내줘도 잘 모르겠는데, 동시에 여러 언어들을 공부해야 했죠. 딕션 수업이라 발음 기호부터 끝까지 쓰게끔 훈련을 시키거든요. 수업의 강도가 너무 높아 힘들었죠.”


각 언어로 노래를 하려면 그 언어와 발음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수업이었기에 박혜진 동문은 힘들었지만 입시 전쟁에서 겪었던 내공으로 견뎠고 최선을 다했다. 그 시간을 통해 한국어를 포함해 5개 언어의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됐기에 얻은 것들도 많다.


“반기문 총장님이 UN에 계실 때인데 UN 70주년 행사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한국 가곡인 새타령을 불렀는데 한국 무용을 하는 친구에게 장구를 빌리고 춤을 배워서 노래와 함께 선보였거든요. 여러 나라 대사들 앞에서 우리만의 문화를 보여 줘야겠다는 결심이었어요. 제가 애국가를 불렀던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홍보 차원에서 마련된 자리였는데, 한국의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새소리를 담은 노래라고 설명도 곁들였죠. 그 행사에 지금 IOC 위원장이신 토마스 바흐 위원장님께서 참석하셨어요. 그분이 독일 출신이신데 만찬장 테이블에서 제가 독일어로 꼭 우리나라에 오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놀라시더라고요. 반기문 총장님께 ‘한국의 성악가가 독일 말을 한다.’며 반가워하셨죠. 계속 독일어로 말을 거셔서 나중엔 제가 당황해서 조금밖에 못하니 영어로 말씀해 달라 요청했지만요. (웃음) 그런데 평창올림픽 때 바흐 위원장님이 제가 재직하는 단국대학교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셨어요. 수여식에서 저도 멀리 서서 보고 있는데, 저를 보시더니 성큼성큼 오셔서 ‘그때 그 성악가 아니냐?’며 반가워하시더라고요. 저를 기억하셔서 놀랐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저를 빛내 주셨죠. 유학 시절 영어 때문에 겪었던 고생이 싹 상쇄되는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빛났던 것이 그의 언어 실력만은 아니다. 그가 UN에서 가졌던 공연은 무대도 아닌 딱딱한 회의실에서 이렇다 할 음향 장치 없이 진행됐던 것. 하지만 그의 공연 아이디어 덕에 딱딱한 분위기는 좌중의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곁들였던 장구나 아이디어 덕분에 더 관심을 끌었고, 성공적인 홍보가 됐다. 반기문 총장에게 감사 인사까지 들었던 박혜진 동문은 그 뜻깊은 인연도 이어오고 있다. 

 




무대 위 자신감을 불어 넣는 스승의 역할 

박혜진 동문은 10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섯 곳의 학교를 오가며 강사 생활을 하면서 성악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단국대 교수로 임용돼 현재까지 십여 년 이상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교수로서 오랜 시간 학생들과 함께해 온 그는 권위적인 스승이 아니라 힘이 되는 서포터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그이기에 늘 최고만을 고집하는 엄격한 스승일 것 같지만 그는 오히려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불안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신감을 북돋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그 일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성악가는 무대에 서는 직업이잖아요. 자신감이 없으면 객석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늘 ‘네가 최고야, 끝까지 하면 최고의 무대에 설 수 있어.’라는 격려를 하려고 해요. 어떤 사람은 구구단을 초등학교 1학년 때 떼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다섯 살에 떼기도 하죠. 그런데 끝까지 하다 보면 결국은 둘 다 똑같이 외우게 되지 않나요. 노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런 자신감을 불어 넣고, 격의 없이 지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학기가 끝나면 일 년에 한두 번씩 학생들과 함께 여행을 가곤 한다. 친근하게 소통하고 이를 시작으로 ‘우린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나누고 북돋는다. 서울시오페라단 신임 단장으로 부임했을 때 자신보다도 더 기뻐한 이들이 바로 제자들인 만큼, 그는 미래 무대에 설 제자들을 위해 더 많은 일들을 해내고 싶다. 

 


오페라 문화의 변화를 위한 도전 

2022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까지 겸임하게 되면서 박혜진 동문의 삶은 보다 드라마틱해졌다. 너무도 바쁜 일상뿐 아니라 새롭게 배우고 알고 또 구상해야 할 일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럼에도 그는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 편이다. 적극적인 성격과 강한 실행력을 가졌다. 사실 그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에 다른 이의 추천이나 권유가 아닌, 스스로 도전한 것도 이런 성향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공채에 지원했어요. 제가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어떤 부분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아쉬움이 있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출연하는 성악가 입장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죠. 행정적이거나 시스템적인 부분들은 한계가 있잖아요. 또 오페라 문화에도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았어요. 어느 날부턴가 음악 전공자가 아닌 주변 친구들에게 공연 보러 오라고 하면 ‘오페라는 너무 어려워, 지루해, 혼자 갈 수 없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일단 사람이 먼저 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페라는 성악가들의 축제로 그냥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수명이 짧다고 생각했어요. 일반 관객들이 와서 즐기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오페라계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그가 이런 변화가 가능하겠다 여기고, 그래서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에 도전할 수 있었던 단초가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코로나가 한창일 때 수고가 많은 의료진을 위해 공연을 기획했던 것. 오산시에 공연 제안을 했고 받아들여져 예산을 책정받아 공연을 올렸다. 오페라를 낯설어 하는 이들을 위해 한국가요나 국악, 크로스오버 등을 아우르는 공연을 준비했고, 전통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오페라의 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영상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무대를 구성했다. 반응이 좋았고 다른 시에서도 공연 요청이 이어졌다.


변화를 더한 시도, 그리고 이를 통해 실현된 오페라에 대한 새로운 반응을 몸소 경험하고 나니 서울시오페라단에서 더 큰 틀을 바꿔보고 싶다는 결심의 계기가 됐다. 또 그래서 더욱 절실하기도 했다. 단장 지원자들이 해야 하는 미래 오페라단 운영 계획에 대한 PT를 위해 1달여간 아나운서 개인 레슨을 받고 발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제자들에게 ppt 작성을 하나씩 배우며 준비했다. 최선을 다한 준비, 오페라단의 미래에 대한 차별화된 통찰 덕분에 그는 지난 2월 서울시오페라단을 이끌 새로운 얼굴로 부임할 수 있었다. 


 

동문들의 든든한 힘으로 시작된 오페라 후원회 

새로운 단장으로 부임한 지 이제 10개월, 실제 단장으로 일하는 것은 기대와 다소 다른 부분도 많다. 그동안 해왔던 역할은 소프라노 가수로서 노래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하나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었다면, 예술 행정기관을 이끄는 역할은 예산부터 공연기획, 캐스팅, 공연을 올리는 일까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일들이다.


“처음에는 저도 그랬지만 바깥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우아한 일을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너무 다뤄야 할 일이 많아요. 어떤 공연을 올려야 할지 아이디어를 내고 성악가들을 캐스팅하고, 연출에도 관여해야 하죠. 이와 함께 공연을 올리기 위한 행정적인 일들도 해야 하고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사실 예산이 가장 큰 문제죠. 특히나 올해는 지난해 예산에서 반 토막이 나서 암담했어요. 하고 싶은 공연, 시도해 보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1년 동안 오페라를 올리기엔 너무 부족했어요.”


예산은 공연의 질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에 그가 타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그가 부임하자마자 현실을 깨닫고 생각한 묘안은 바로 후원회다. 어찌 보면 오페라는 소수의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장르. 이런 애호가층을 모아 후원회 결성을 추진했다. 처음엔 시도조차 어려울 것 같았지만 후원회가 활성화되고 힘을 받게 된 것은 연세 동문들의 힘이 컸다. 박혜진 동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제가 처음 후원회를 만들었을 때 연세 동문회가 가장 큰 힘이 돼 주셨어요. 사실 그렇게 동문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동문 네트워크가 대단한지 저도 잘 몰랐었거든요. 처음 단장에 취임했을 때도 동문이 이렇게 새로 부임했으니 잘됐다고 하시며 너무 좋아해 주셨고 꽃도 보내 주셨어요. 그런데 후원회를 만든다고 도움을 요청하니 또 후원회에 가입해 주시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후원회 회장님은 지금 동문회 부회장님이신 최은상 회장님이세요. 오페라 애호가이시기도 하시고요. 동문분들이 친구분들, 또 오페라에 관심 있는 분들을 다 연결해 후원회에 가입해 주셨어요. 한 달에 1억 가까운 돈이 모아졌어요. 모두 제 힘이 아니라 동문 분들의 힘이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렇게 많은 도움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만큼, 박혜진 동문은 서울시오페라단 후원회 ‘울림’이 더욱 좋은 오페라를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후원회에 가입하면 한 달에 한 번씩 오페라 프리뷰 행사로 해설이 있는 오페라 강의에 초대된다. 오페라 전문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도 직접 듣는다. 시즌 공연에도 초대되고, 식사를 즐기며 네트워크 모임도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오페라에 대해 알고 싶은데 어렵다고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오페라의 진수를 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뿌듯하다.




새로움을 더한 오페라, 연일 매진된 공연 

박혜진 동문은 ‘시민 속의 오페라’라는 대중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직을 시작한 만큼 시선을 바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그가 그간 경험한 많은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한 공연들은 확실히 다른 색들로 입혀지고 있다. 그는 단지 성악가나 행정기관 수장이 아니라, 둘 다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지난 5월 선보인 갈라 콘서트는 유수의 성악가들이 총출동했는데, 이색적으로 사회자가 공연 중간중간 작품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는 공연이었다. 해설자로 개그맨 출신 국민 MC 신동엽을 섭외했다.


“사람들을 어떻게 공연장으로 오게 할까 생각했을 때 기라성 같은 출연자분들도 있지만, 오페라를 전혀 모르는 분들도 신동엽 씨가 오페라 해설을 한다는데 어떻게 하지, 이런 궁금증으로 오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유료 객석이 많았는데 완판됐죠. 적은 예산으로 출연자를 무료로 섭외하거나 적은 개런티만을 드렸는데, 호응이 좋았고 또 수익도 있었죠. 그래 이거야, 했죠.”


이후 그가 올린 공연은 <파우스트>다. 오페라 무대가 아닌 블랙박스처럼 된 공연장에서 시도한 오페라 공연인데 사실 오페라는 울림이 중요하기 때문에 세심한 음향시설이 필요하다. 무대장치도 필요하기 때문에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게 된다. 하지만 그 공간은 일반적인 시도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이 블랙박스 공연장 전체를 무대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가보고 나서 이 공연장 전체를 무대로 활용해야겠다 싶었어요. 패션쇼가 생각났죠. 패션쇼처럼 해보자. 보통 앞에 단차를 두고 있는 무대에서만 오페라를 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패션쇼는 앉아서 모델이 지나가며 바로 앞에서 보잖아요. 이 공간 중간에서 노래를 하자, 무대장치 예산도 줄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의자를 벽으로 다 붙이고, 가운데 공간을 활용하는 대신, 영상 장치를 통해 삼면에 영상을 활용해 전 공간에서 다 볼 수 있도록 했죠. 관객 자신이 무대 안에 들어온 것처럼요. 또 ‘오플레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시도했어요. 파우스트는 괴테의 연극이 있잖아요. 괴테의 연극 파우스트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콜라보해서 연극과 오페라가 결합된 공연을 기획했어요. 연극 연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말도 걸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했죠.”


<파우스트>의 신선한 시도 역시 ‘솔드아웃’으로 호응이 높았다. 오페라 음악은 전통성을 유지했지만 연극과의 결합, 참신한 무대 공간으로 새로움을 가미하니 전혀 새로운 것이 탄생했다. 지루한 오페라가 아닌 입체적이고 재미있는 오페라로 탈바꿈했다. 이어진 공연 <리골레토>에서는 정적인 오페라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이번에는 오페라 가수들에게 변화를 요구했다.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장르가 아닌, 리얼한 연기로 스토리가 전해지는 오페라를 시도했다. 연극처럼 연기하는 오페라가 탄생했고 역시 큰 호응을 받았다. 


“어떤 성악가들은 소리를 낼 때 움직이지 않겠다는 스타일도 있어요. 뮤지컬이 인기를 끌면서 그래도 젊은 성악가들은 우리도 연기를 해야 된다는 마인드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리골레토 공연은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썼어요. 스토리에 맞는 리얼한 연기, 리얼한 소품 등 연출에도 많은 요구를 했죠. 리골레토 공연을 할 때 제가 티켓 박스에 서 있는데 전석 매진이었거든요. 관객 한 분이 와서 제발 보게 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티켓이 없다고 하니 1막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예요. 혹시 안 온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 들어가겠다고요. 공연을 너무 보고 싶어 하는 분을 보니 감동이 밀려왔죠. 정말 뿌듯했습니다.”


오페라의 전통성만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그의 이런 시도들은 못마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새로움을 가미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 가장 맞는 오페라이고, 또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오페라는 다음 세대에도 누릴 수 있는 즐거움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소풍처럼, 일상으로 들어올 오페라를 위해 

박혜진 동문은 앞으로 오페라를 일상에서 더욱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기획하고 있다. 특히 그가 꼭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야외 오페라 공연이다. 그가 맨해튼 유학시절 센트럴 파크에서 만났던 뉴욕 필하모닉의 야외 공연에서 받았던 감동을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다. 


“뉴욕에 있을 때 여름이 되면 센트럴 파크에서 뉴욕 필하모닉이 한 달 동안 시즌 음악회를 해요. 매해 갔었는데 마치 소풍 온 것처럼 와인, 빵 이런 걸 사 들고 가서 음악을 즐기는 거죠. 한편엔 아이들이 뛰놀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렇게 음악을 즐기는 거예요. 일상으로 들어온 음악이잖아요. 그렇게 감동적인 음악은 없더라고요. 오페라를 즐기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자꾸 들려주고 싶어요. 뜻은 정확히 모르더라도 음악이 좋으면 자꾸 듣게 되잖아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시민들도 오페라에 친숙해지고 오페라를 즐기는 시민들도 더욱 많아질 거라고 봐요.” 


그래서 박혜진 동문은 얼마 전 개방한 광화문 광장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을 추진할 포부를 품고 있다. 나아가 경복궁, 창덕궁과 같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 공간에서의 야외 공연도 꼭 추진해 보고 싶다. 이는 영상을 통해 우리나라를 홍보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와 함께 대극장에서의 공연에도 다각적으로 새로움을 더할 계획이다. 이미 3월에 선보일 오페라 <마술피리>는 판타지 장르의 묘미를 살려 영상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로 환상적인 오페라의 매력을 살리고 지루함을 덜어낼 계획이다. 

 

60살쯤 오페라단의 단장이 되고 싶었지만 생각지 않게 10년쯤 빨라졌다는 박혜진 동문.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만큼 빨리 무대에서 내려오게 된 현재가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옮겨 선 새로운 무대, 서울시오페라단에서 펼쳐 보일 새로운 공연들은 아쉬움을 넘어 그와 시민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준다. “관객이 무대로 오지 않으면 무대를 옮겨 관객 곁으로 가겠다.”는 그의 말처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우리 일상으로 더 가깝게 들어올 새롭고 환상적인 오페라가 우리 곁에 찾아올 시간이, 그래서 우리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자연스럽게 오페라를 즐길 수 있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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