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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설렌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11-25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설렌다 

낯선 시선으로 매력적인 스토리를 재창조하는 스튜디오드래곤 송진선 CP(법학 99)



이야기를 보는 시대 

‘보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은 시대다.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들이 생겨나면서 영화, 드라마, 숏폼 영상 등 다양한 영상물들이 일상 곳곳에서 플레이된다.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더 다양한 장르의 다채로운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다. 더 매력적인 이야기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치열한 영상 콘텐츠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결국 이 ‘이야기를 보는 시대’의 핵심은 차별화된 스토리다. 송진선 동문은 우리나라 대표 드라마 스튜디오인 ‘스튜디오드래곤’에서 책임 프로듀서(CP, Chief Producer)로 일하며 세상 모든 이야깃거리에서 낯선 시선으로 참신한 이야기를 찾고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법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20대의 송진선 동문은 뭔가 계속 토해 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자신 안에 가득 찬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늘 그것을 들여다보고 그 스토리를 세상에 풀어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는 학과 공부에 매진하기보다는 캠퍼스 바깥 세상이 언제나 궁금했다. 그곳에서 스토리의 근원을 찾아가고 탐색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느라 휴학도 잦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날 것의 이야깃거리들이 너무 흥미진진했다.


“대학시절은 사실 계속 밖으로 돌았어요. 저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어요. 어떤 이야기가 있으면 그 이야기의 근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가 너무 궁금했어요. 그런데 책상에 앉아서는 알 수 없는 것이잖아요. 모든 이야기는 다 개별성을 가지는 것인데, 결국 한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을 실제로 만나서 들어보지 않고서는 그 행간의 의미를 알기 참 어려웠어요. 그래서 캠퍼스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죠.”


세상이 궁금하고 또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던 송진선 동문은 그래서 작가 밑에서 배우기도 하고 직접 만화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거창하기보다는 자신과 주변 가까이의 작은 이야기들로부터 스토리는 출발했다. 먹는 것과 연애와의 상관관계, 맞춤법 틀리는 문자를 보내는 대학교수와 연애 이야기 등 보통 여자들이 겪어볼 만한 연애 속 소통의 이야기를 <이브들의 사랑법> 웹툰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전공은 의외로 법학이다. 학부, 석사 과정 4학기까지 수료했을 만큼 법 지식에 해박하다.


“다들 제가 법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놀라시죠. 하지만 스토리텔러가 되기에 딱 맞는 학문인 것 같아요. 알고 보면 법은 수많은 판례가 있잖아요. 판례 속 수많은 이야기에서 사람의 오육지정을 다 볼 수 있어요. 모든 인간 사이에 다 개입이 된 게 바로 법이죠. 가정, 회사, 사회 곳곳. 그것들을 다 들여다보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들이 안으로 들어왔던 것 같아요. 법 공부를 하면서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들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법학을 배우며 남들과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송진선 동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했다. 비슷한 소재, 플롯의 이야기가 아닌 그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의 경쟁력이 됐다.


“법 드라마들이 좀 새로 많이 등장하던 때였어요. 2009년 <파트너>라는 드라마에 참여하게 됐는데 ‘법적 공방’을 다룬 드라마로 첫 시도였어요. 얼마 전 히트한 <우영우>라는 드라마도 그렇고 지금은 법적 공방 드라마가 많지만, 그때는 낯설었어요. 그래서 다들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 여기기도 했어요. 작가들도 잘 몰랐죠. 법을 전공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었어요. 색다른 콘텐츠에서 강점을 가지고 신뢰감을 주게 됐죠. 저한테 법을 공부한 것은 참 좋은 기회였고, 덕분에 제가 이 콘텐츠 분야에 깊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판례 속에 있는 인간 군상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그에게는 스토리의 보고처럼 여겨졌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스토리텔러로서의 깊이와 폭을 더할 수 있었다. 이런 시선에서 그가 풀어냈던 이야기는 <치유의 밥상>이라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는 밥상에 대한 이야기다. KBS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이 됐지만 PD로 전직을 계획했기 때문에 공모 당선으로 만족했고 대신 출판사의 권유로 에세이집으로 발간했다. 작가로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기획 프로듀서로서 오늘이 즐겁다 

초창기 드라마 구성 작가로 활동했던 송진선 동문은 드라마 제작사와 SBS를 거쳐 전 세계에 한국 드라마를 선보이는 드라마 스튜디오인 스튜디오드래곤의 CP로 활약하고 있다. 기획 프로듀서는 콘텐츠 기획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드라마화할 콘텐츠를 찾는 것에서부터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정하고, 어떤 감독, 작가와 함께 만들 것인지 판을 짜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화려하게 조명 받는 감독이나 작가가 아니지만 드라마의 탄생부터 오픈까지 가장 중심에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방향을 잡고 프로젝트 전반을 끌어나가는 핵심 역할이다. 그가 프로듀서로서의 삶을 즐기는 이유다.


“제가 처음 프로듀서를 할 때만 해도 기획 프로듀서의 역할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드라마 제작사에서 <해를 품은 달>, <각시탈> 같은 작품들을 기획했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방송국도 어려운데 누가 계속 기획을 해서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내는지 관심을 갖게 됐고 제가 SBS 방송국에 들어가게 됐죠. 그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콘텐츠를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은 지나고 나면 연출과 작가, 배우만 기억하지 프로듀서가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기획이 중심이 되면서 프로듀서가 어떻게 한 편의 드라마 기획을 시작하고 영감의 시작이 될 수 있는지 점점 증명되고 있어요. 감독과 작가가 깊이 판다면 프로듀서는 그 영역이 넓죠.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봐야 해요. 그 매력이 있어요.” 


 


익숙함을 버리고 다양한 이들과, 낯선 시각으로 

<김비서는 왜 그럴까>, <여신강림>, <부암동 복수자들> 등 기획한 드라마들이 히트를 연이어 가고 있고, 또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드라마를 기획하는 송진선 동문은 어떻게 좋은 콘텐츠를 찾고 새롭게 만드는 것일까. 


“예전에 제작사에서 당대 유명한 작가 17명 정도를 저 혼자 케어한 적이 있어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저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또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이런 부분들을 많이 듣다 보니 제가 기획한 것이 원작 자체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야겠다 하는 비전이 그려져요. 그 원작 안에서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지 가능성을 봐요. 비전이 그려지면 원작을 사는 것이고요. 그동안 좋은 연출가들이나 작가들과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작가들에게 스스로 비전을 제시할 만큼은 된 것 같아요.”


이야기의 비전과 그것이 만드는 세계관을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작품을 제작해 가며 실현하는 ‘일의 즐거움’은 자연스레 좀 더 작품에 깊게 발을 들이게 한다. 자신의 비전을 담아내기 위해 그것을 구현할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많은 시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 그가 동시에 기획하는 작품은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5~6개에 이를 정도이니 그의 일상이 얼마나 바쁠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 새롭게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너무 밋밋한 것은 요즘 잘 보지 않잖아요. 그리고 한 번 본 것도 잘 안 보게 되고요. 요즘 콘텐츠는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지는 것 같아요. 자기의 세계관을 깊이 있게 담은 이야기, 혹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이야기로요. 사실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게 장르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런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익숙한 것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것이 뭐가 있는지 나에게 자극되는 게 뭔지에 대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아요. 사실 나올 만한 이야기는 다 비슷하잖아요. 그걸 어떻게 낯설게 재창조하느냐, 그렇게 낯설고 다름을 계속 찾아가야 제가 만드는 드라마도 대중성을 가지는 것 같아요. 그냥 나를 두근거리고 설레게 하는 것들, 그것을 같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 탐색하는 거죠.”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도 

송진선 동문의 탐색은 국가의 경계를 넘기도 한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곧 선보일 작품 <커넥트>로 그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일본 감독과 함께 했다. <커넥트>는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쪽 눈을 뺏긴 채 살해된 주인공이 미스터리하게 부활해 자신의 눈을 이식받은 사람과 연결된 채 복수에 나서는 내용의 잔혹극이다. 그는 이 원작을 보고 일본의 거장 미이케 다카시 감독을 떠올렸고 협업을 제안해 3일 만에 수락을 받았다. 미이케 감독은 신체 훼손, 살인극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되묻는 장르물의 귀재로 꼽힌다. 평소 그의 작품 세계를 눈여겨본 송진선 동문은 이 작품을 낯설게, 재밌게 전달하기에 그를 최적의 파트너로 꼽았다. 무엇보다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의 공식을 탈피한 B급 상상력을 더해 선보이고 싶었다.


“커넥트는 우려도 많았던 작품이에요. 콘셉트는 명확했지만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완벽했던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이게 드라마로 되냐는 걱정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원작을 봤을 때 드라마의 처음과 끝 엔딩이 생각났어요. 그렇게 시작됐고, 미이케 감독과 1년간 기획 개발을 했죠. 새로운 시도라 재미있었지만 언어가 달라 뉘앙스가 잘 전달이 안되는 어려움도 있었어요. 내가 캐릭터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 비전이 없으면 힘든 작업이에요. 서로 다른 세계를 그려 가잖아요. 많이 싸우고 설득했죠. 또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감독님이 ‘한국 드라마라면 이래야 하지 않나?’라는 얘기를 하셔서 제가 그것에 얽매이지 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가감 없이 얘기해 달라고 했어요. 일본 감독과 함께하는 낯선 일이었지만, 프로듀서로서 창작적인 부분에 많이 참여하며 참 재밌게 작업했던 일이었어요.” 


<커넥트>는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2회까지 공개됐고 호평을 받았다. 디즈니플러스에 오픈 일은 12월 7일, 총 6부작 전 회가 한 번에 공개될 예정이다. 송 동문이 커넥트를 통해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름’에 관한 것. 시청자들에게도 흡입력 있게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커넥트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다름이 주는 감정을 생각해 보면 때로는 분노로 표출돼 능력을 발휘하는 얘기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다름이 주는 외로움도 있지 않겠어요. 남다른 능력을 가진 이의 고독과 외로움의 정서로 아시아적인 히어로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찌 보면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요.” 

 


끊임없이 새로움을 보고, 끈질기게 본질을 찾기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발굴하기 위해서는 또 끊임없이 영감을 받아야 한다. 긴 호흡의 작품을 끝내고 나면 리프레시가 필요할 듯도 싶지만 송진선 동문은 그 모두 다시 ‘끊임없이 보는 것’이라 말한다. 


“저는 쉬지 않는 것 같아요. (웃음) 끊임없이 봐요. 본다는 것이 단순히 영상 매체에만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사실 유튜브만 봐도 수많은 장르가 있잖아요. 건축가의 이야기, 패션쇼, 그림, 음악… 그게 어떤 식으로든 영상 형태로 만들어진 것들을 끊임없이 소화하면서 찰나적인 이미지든 그것을 보며 얻는 상상이든 메모해요. 사실 완전한 쉼도 필요하긴 한데 좀 중독된 것 같기도 하죠? 그런데 저한테는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시작을 할 수가 없어요. (웃음)”


그가 그렇게 끊임없이 보는 것은 편집되지 않은 ‘날 것’이다. 남들이 보면 어쩌면 쓰레기처럼 여겨지는 날 것이라도 누군가를 거쳐 하나의 이미지가 되고 상상의 가지를 펼쳐낸다는 것. 그는 수많은 콘텐츠를 보고 그것을 자기 안에 들여와 좀 더 본질에 대한 고민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여과한다. 그렇게 그만의 방식으로 내면에 쌓인 것들을 또 다른 아이디어로, 스토리로 시청자들에게 새롭게 들려준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야기에서 그가 고집스럽게 매달리는 것은 바로 ‘본질’은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신선한 작품을 보면 질투가 나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은 본질에 대한 것을 사람에게 두드려주고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가 반드시 담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깊이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이미 제가 만든 것들이 수많은 질투 나는 것들로부터 온 것일지라도 나만이 아는 깊이나 시선을 담아서 보여줘야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스토리텔링 방식뿐만 아니라 메시지 안에서도 그게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그 메시지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더 깊게, 더 작은 세상 속 이야기를 향해 

곧 공개될 <커넥트>는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송진선 동문은 바쁘다. 이제 곧 촬영을 시작해야 하는 드라마도 있고, <커넥트>로 의기투합한 미이케 감독과 함께 일본에서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더 같이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많아 아쉬움이 컸던 차에 이번엔 일본 제작진들로만 구성된 일본 드라마에 유일한 한국 스태프로 참여해 미이케 감독이 느꼈던 이방인으로서의 낯섦을 느껴볼 예정이다. 더불어 다음 이야기를 위해 세상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


“최근 애플TV에서 <재난, 그 이후로>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어요. 너무 설레더라고요. 통제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는데 그것이 어떤 시험대에 오르는 이야기예요.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왜 한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시도하지 않았지, 싶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아마 준비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노마드랜드라는 영화가 있어요. 중국 여자 영화감독의 작품인데 작고 소외돼 있는 이들의 이야기거든요. 그런 사람들 눈에 닿지 않는 직업이라든가… 그런 작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십 년 후에도 계속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면 그 지점에서 계속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다 다른 이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그곳에 있는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설렜던 송진선 동문. 그래서 오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있을 그. 그가 내놓을 새로운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흥미진진한 네버엔딩스토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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