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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어둠에 저항하는 그믐처럼 책 쓰는 남편, 책 읽는 아내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9-23

어둠에 저항하는 그믐처럼 책 쓰는 남편, 책 읽는 아내

장강명 작가(도시공학 94) & 김혜정 그믐 대표(도시공학 97)



‘책’은 영원할까 

오늘날 사람들은 정보와 지식을 인터넷에서 얻는다. 그 정보들은 짧고 가볍고 자극적이다. 어느새 그것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또 빠르게 휘발돼 버린다. 이제 자료를 찾기 위해서 혹은 무언가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책을 뒤적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찾던 정보는 어딘가에 단편적인 정보들의 짜깁기로 입맛에 맞게 잘 가공돼 있다. 출판업계는 치열하지만 활기를 잃었고, 책을 쓰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책을 읽는 것은 소수의 고집스러운 취향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앞으로도 책은 영원할까. 장강명 작가와 김혜정 지식공동체 독서 플랫폼 ‘그믐’ 대표 부부는 여전히 책은 ‘의미’를 가진다고 확신한다. 마치 어둠에 저항하는 마지막 그믐달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신촌의 반짝이는 청춘 시대 

“성향은 정말 달라요. 저는 항상 낮잠을 자야 되는 사람인데 아내는 한 번도 낮잠을 잔 적이 없어요.” 


서로 성향은 다르지만 가치관은 같다는 장강명 동문. 캠퍼스에서 김혜정 동문을 만났을 때 둘의 공통점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었다고 추억하며 웃는다.


“복학한 후 아내를 알게 됐어요. 같은 과라 개강파티인지 선후배와의 만남인지 그런 술자리가 있었죠. 제가 이전에 학교 행사에서 사회를 본 적이 있는데 아내는 그때 저를 알게 됐더라고요. 사실 함께 듣는 수업은 없었지만, 항상 끝까지 술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희가 그랬어요. 그러면서 가까워졌어요.” 


연애도 연애지만 그 시절 캠퍼스에서 그들은 반짝이는 청춘을 보냈다. 연애를 하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을 만나기도 했지만 세상과 자신에 대한 거침없는 탐색도 함께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누리게 되는 자유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세상은 어떤 곳인지 그런 것들을 깊고 넓게 탐색해 보는 시기를 누렸다. 그들의 학창 시절은 그래서 더 빛나는 시간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허용되는 자유가 넓어지면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실수도 하고. 그런 탐색을 너그럽게 보는 분위기가 연세에는 있었어요. 지적인 학풍 속에서 개인을 존중한다고 할까요. 거침없지만 명민하고 유쾌한 선후배, 친구들과 학교 앞 호프집 술자리에서 책, 영화, 트렌드 등 여러 이슈로 토론하기도 하고요. 군대 문화 같은 게 없어서 선후배 간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했어요.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죠.” 


두 사람 다 전공과목에는 큰 열정이 없었지만 그런 시간들이 가장 큰 자양분이 됐다. 함께 나눴던 각자의 세계, 그리고 함께했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저희가 지금 하는 일이 남편은 작가이고, 저는 지식공동체 독서 플랫폼 그믐의 운영자로 각각 활동하고 있지만 공학이라는 학문과는 무척 거리가 있잖아요. 등록금이 아까울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전혀요. 대학시절을 너무 즐겁게 추억하거든요.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들, 또 현재 ‘그믐’을 론칭하게 된 것도 그때의 인연들 덕분이에요.”


김혜정 동문은 그 시절이 그립고 좋아 졸업 후에도 학교를 찾아오곤 했다. 회사를 다니며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도 해 캠퍼스 한 귀퉁이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캠퍼스를 거닐고 노천극장에 앉아 연세에서의 빛나던 청춘 시대를 되돌아보며 오늘의 힘을 얻기도 한다.  

 


불안한 오늘이 함께하는 내일로  

자유로운 캠퍼스 생활을 누렸지만 장강명 동문과 김혜정 동문도 졸업 즈음에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 또 현실적인 문제들 사이에서 길을 찾아나갔다. 


장 동문은 군대에서 막연히 글을 쓰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SF를 좋아해 로봇 공학자가 되고 싶었고 자연스레 공대에 왔던 그는 1학년 때 PC 통신 하이텔의 과학소설 동호회에 가입해 간간이 SF 단편을 쓰고 올리며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제대 후 웹진 <월간 SF>를 창간하기도 했다. 더러 신춘문예에 응모하기도 했지만 계속 낙선했다. 글쓰기를 이어가고 싶어 언론 고시에 도전했지만 최종에서 떨어지기도 여러 번. 대기업 계열의 S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5개월 만에 건설사를 나와 다시 언론 고시를 치렀고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꾸준히 ‘글 쓰는 일’에 대한 탐색과 열망의 교집합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꽤 괜찮았다.


김 동문은 취업할 무렵 IMF의 직격타를 맞았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고스펙을 따지는 시대가 시작됐다. 특출난 토익점수도 학점 평점도 없었기에 어디든 원서를 넣었고, 다행히 글로벌 카드사인 아멕스(AMEX)에 입사할 수 있었다. 입사하고 보니 상경대 출신이 대다수인 합격자들 속에서 공대 출신은 그가 유일했다. 오가는 금융 이야기들을 이해하기조차 어려웠다.


취업 후의 삶은 두 사람 모두 고단했다. 기자의 일은 재미있었지만, 매일 밤 열두 시가 넘어서 귀가했고 일주일 내내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육체적인 힘듦과 정신적인 긴장감으로 고단했고, 공학도 출신 카드사 직원은 왠지 나만 부족한 것 같아 홀로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서로의 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럭저럭 아멕스에서 회사 생활을 2년 정도 했는데, 이제 경제·경영 쪽에 관심이 생겨 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계 기업을 다니다 보니 영어 실력도 좀 더 키우고 싶었고요. 또 제가 한국 사회에 살면서 ‘이 사회에서 내가 얼마나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여러 고민들도 생겼었기에 새로운 세상에 도전해 보고 싶었죠. 마침 호주에서 젊은 기술이 있는 사람들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유학 이민을 결심했어요. 호주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시민권 취득을 목표로 유학 이민을 결심했습니다. 제가 뭐든지 결단하면 쟁취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렇게 남편과 헤어지게 됐고요.”


그러다 결국 다시 만나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됐고, 김혜정 동문은 4년 만에 귀국, 이듬해에 결혼했다. 사실 이 스토리는 장강명 동문의 베스트셀러 <한국이 싫어서>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젊은 날의 자유와 방황과 고민들을 함께 나눈 그들이었다.

 


 


책을 쓰는 직업 ‘작가 남편’의 세계 

장강명 동문은 2011년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청춘들의 절망을 담은 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문단에서 꾸준히 주목받아온 작가다. 최단기간 동안 4개의 문학상(한겨레문학상, 수림문학상, 제주 4.3 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을 석권했다. 그는 입사 5년 차 시기부터 바쁜 기자 생활 중 밤마다 틈틈이 소설을 썼다. 귀한 휴가가 생겨도 글 쓰는 데 시간을 썼다. 그렇게 글쓰기에 매진한 지 6년 만에 드디어 문단에 데뷔했고, 작가와 기자 생활을 병행하다 어느 날 전업 작가가 됐다. 이달의 기자상, 관훈언론상, 동아일보 대특종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등 회사 안팎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을 만큼 기자로서도 열정과 재미를 가졌던 그였기에 의외의 선택이었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데스크와 싸우고 국회 기자실에서 일하다 그만두겠다고 하고 집으로 왔어요. 전화를 해서 아내에게 물었죠. 아내가 백 퍼센트 지지한다고 했고 바로 전화기를 껐습니다. 그때부터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에게 딱 일 년 반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그때까지 성과가 없으면 다시 재취업하기로 약속했죠.” 


“그때가 신혼 때였어요. 사실 기자는 거의 주 6~7일 근무라고 할 수 있어요. 12시 전에 집에 들어온 날도 거의 없었죠. 저 역시 바빠서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적이 없어요. 그래도 남편은 기자의 삶을 사랑했거든요. 바쁘고 힘들지만 일은 좋다는 거죠.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만둔다고 해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전업작가는 녹록지 않았다. 시작하고 만 1년 동안 5편의 장편소설을 썼지만 단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았다. 번 돈은 30만 원가량이 전부였다. 옳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고민,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하는 고민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수상해 다시 직장에 돌아가지는 않아도 됐다. 그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만큼 그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울림과, 또 하루하루 스톱워치로 작업 시간을 재고 기록하며 연간 2,200시간 근무를 목표로 글쓰기를 하는 ‘월급 사실주의자’로서의 글쓰기 노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강명 작가는 스스로를 ‘사회파 소설가’ 같다고 칭한다. ‘자살’, ‘이민’, ‘댓글부대’ 등 우리 삶에서 당시 가장 이슈가 되는 화두의 본질을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함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어 흥미진진하게 펼친다. 기자 출신답게 메시지는 명쾌하되 디테일은 치밀한 취재로 사실적이다. 그가 촘촘하게 설계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현실을 불편하게 느끼고, 바로 그 지점에서 본질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의 스토리가 힘 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이유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지식 공동체 

호주에서 돌아온 김혜정 동문은 외국계 기업 재무 파트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며 숫자를 다루는 업무를 하는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숫자를 다루는 직업 때문일까. ‘직장인의 효율’을 중시하는 그는 직주근접의 거리, 가성비 있는 소비, 실용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기회비용을 따지고 직장을 옮길 때도 연봉이 중요한 척도였다. 


“여러 회사를 거쳤어요. 회사를 이직할 때마다 연봉도 높게 올랐고 최선을 다해 살았어요. 틈틈이 자격증도 준비하고 영어 공부도 하면서 자기계발을 꾸준히 했어요. 이제 관리자의 역할을 하는 나이가 됐죠. 그런데 어느 순간 ‘현타’라고 할까요, 그런 게 오더라고요. 그동안 쉼 없이 일해 번아웃이 된 것도 있고 관리자로서 책임의 무게도 커졌죠. 장기적으로 내 인생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이지? 그걸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의미한 숫자 놀음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 싶었어요. 이번엔 제가 무작정 회사를 그만뒀죠.”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되레 우울해졌다. 단 한 번도 다음 계획 없이 퇴사를 해본 적이 없었던 그는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누워만 있었어요. 전 원래 등받이 의자도 필요 없을 만큼 꼿꼿하고 활기찬 사람이었는데도 우울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남편이 저를 끌고 제주도에 갔어요. 아무런 계획도 짜지 않고 당장 머무를 숙소만 예약하고 가서 한 달을 살았죠. 동네 산책하듯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그런 여행을 했어요. 무기력하니까 어딜 가기도 싫었는데, 막상 가고 보니 좋더라고요. 거기서 인터넷도 안 하고 ‘진짜 힐링’을 하고 왔어요. 한 달 여행 동안 많은 생각을 했고요. 나한테 중요한 것은 뭔지, 내가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그게 큰 계기가 돼 줬어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끝은 ‘책’이었다.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그는 사실 장강명 작가보다 다독가인 데다 독서 스펙트럼도 넓다. 장강명 작가가 책 콘텐츠 생산자의 입장이라면 그는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는 문화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힘이 드는 순간마다 그에게 책은 큰 위로가 돼 줬기에 더욱 그랬다. 


현실적으로 보면 독서 산업은 먹고사는 밥벌이로서 한계가 보이기도 했다. 과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었다. 하지만 끙끙대던 고민이 무색하게 머릿속으로 구상하던 독서 모임 플랫폼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스타트업 사업 경험이 많은 대학시절 친구와 술을 마시며 그믐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가능성 있다는 의견과 함께 지식공동체 독서 플랫폼 그믐이 결성됐다.

 


어둠을 이기는 빛처럼, 독서 생태계 회복을 위해 

책을 읽는 이들을 점점 찾아보기 힘든 시대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글로 이뤄져 있고 모든 역사와 지식은 글로 전달된다. 책 읽는 이들은 새벽녘에야 겨우 볼 수 있는 그믐달처럼 찾아보기 힘든 존재, 그럼에도 세상을 비추는 빛을 가진 존재라는 뜻으로 ‘그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제목에서도 착안했다. “기울어지는 달에 빛을 보탠다는 마음으로, 지역과 세대를 넘는 지식공유 독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김혜정 동문의 바람이 담겼다. 장강명 동문 역시 독서 생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동참했다. 


“왜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만 읽을까요. 문단과 독자가 소통하지 않으면서 한국 독서 생태계의 부서진 고리 중 하나가 됐어요. 문단 밖 다른 독서 공동체에서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책을 활발히 추천하고 비평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공동체들이 서로 자극과 영향을 주면서 교집합과 합집합을 만들어 가는 것이죠. 책 읽는 사람의 수는 적고 전문 서평은 어렵기만 하죠. 하지만 짧은 감상이라도 의미 있는 내용이 모이고 쌓이면, 그 기록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맥락을 일으키게 된다면 비평 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는 소설 <댓글부대>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으로 ‘한국 소설은 재미없다’라는 편견을 깨기 위한 무료 서평집 <한국 소설이 좋아서>를 기획해 전자책으로 무료 배포하는 시도를 했고, 이번에 <한국 소설이 좋아서 2>를 또 발간한다. 이런 독서 생태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자연히 아내와 의기투합하게 했다. 


그믐에는 몇 가지 룰이 있다. 독서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해석은 온전히 독자 몫이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이지만 SNS의 ‘좋아요’ 기능은 없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길 바랐기 때문. 또 짧은 감상평을 쓰더라도 글을 완결하는 경험을 통해 읽고 쓰며 독서의 즐거움이 더 확대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모티콘 기능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한 가지 책에 대한 모임은 29일로 끝난다. 그믐달의 주기이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을 읽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사람 간의 관계 맺기가 아닌, 책이 주인공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들어있다. 특별히 홍보를 한 것도 아니고 7월 베타서비스만을 오픈했는데 두 달 만에 2천여 명이 가입하고 활발히 독서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누구나 회원 가입 없이 내용을 볼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기 때문에 실제로 다녀간 방문자는 훨씬 많은 수치다. 오픈 전에 몇십 명이라도 모으려면 기프티콘을 뿌려야 되는 것 아닌가 했던 걱정이 무색해졌다. 그믐에 온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도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책 이야기를 나눈다. 그만큼 책을 좋아하고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이들, 세상의 암흑을 막아낼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울림, 밝은 빛 

그믐의 론칭과 함께 장강명 동문에게도 새 소식이 있었다. 만 3년간 공들여 쓴 장편 소설 <재수사>가 최근 발간됐다. 1년에 2~3권을 내던 다작 작가인 그였기에 독자들에게 더욱 반가운 신작이다. <재수사>는 22년 전 신촌에서 발생한 미제 살인사건의 범인과 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원고 매수가 3,000매가 넘는 대작이다. 문단에 데뷔한 지 10년을 넘기며 중량감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고, 한국형 형사 소설을 쓰고 싶었다. 스스로를 사회파 소설가 같다고 말하는 그답게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공허와 불안의 화두를 끄집어냈다. 날렵했던 그의 시선과 메시지에 묵직함이 더해졌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목적이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 그다음이 보이지 않는 현시대를 통찰했다.


“가장 큰 야심을 가지고 쓴 작품입니다. 중량감 있는 작가, 한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이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슬럼프를 겪으며 새로 쓴 때도 있었지만, 작가로서 한 체급을 올리는, 새 장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우직하게 앞으로 좀 더 큰 스케일로 사회 시스템에 대한 화두를 갖고 소설을 써 내려가고 싶습니다.” 





그믐의 정식 오픈이 코앞인 만큼 장강명 동문과 김혜정 동문은 그믐을 지속 가능하게, 그리고 풍성하게 가꿔 나갈 계획도 세우고 있다. 플랫폼을 띄우기보다는 그 안의 콘텐츠에 의미와 가치를 더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확장돼 단지 독자들뿐만 아니라 출판업계 관계자, 서점, 나아가 책을 중심에 둔 지식 공동체로서 생명력을 이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얼마 전에는 고려대학교와도 MOU를 맺었어요. 고려대와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포스텍의 학생들이 서로 독서 토론을 하며 지식을 나누는 수업에 활용을 추진하고 있어요. 먼 거리에 있고 성격도 전혀 다르지만 한 권의 책을 놓고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죠. 저자가 외국에 계시면 그곳과도 연결될 수 있어요.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다양한 지식이 오가고 확장될 수 있어요.” 


김혜정 동문은 단순히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모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믐 플랫폼을 통해 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지식 공동체 비즈니스 모델도 계획 중이다. 

 

장강명 작가와 김혜정 대표는 성향은 달라도 내면의 가치관은 닮아 있었다. 그래서 삶의 고비, 중요한 선택에서 서로를 온전히 지지하고 북돋는다. 좋아하는 책 취향은 달라도 책이 가지는 힘은 확신한다. 그래서 누구나 그들처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세계를 들려주기를, 진한 위로를 받기를 바란다. 그들이 탐험해 나가는, 그믐이 돌아올 때마다 만나게 될 새 세계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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