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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가슴 뛰는 일은 오늘의 열정에 있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9-23

가슴 뛰는 일은 오늘의 열정에 있다 

김연지 카카오 CPO 겸 부사장(컴퓨터과학 97)

 


서비스 개발자에서 CPO까지, 열정이 빚은 시간  

짧은 시간 동안 우리 삶을 빠르게 변화시킨 IT 산업. 본격적으로 IT 산업이 태동하고 성장의 발판을 만든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은 다음, 네이버와 같은 국내 유수의 IT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기였고, 개발자라는 직업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시절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의 개발자로 시작해 우리 삶에 편리한 변화를 이끈 IT 서비스 개발에 참여해 온 김연지 동문. 23년 동안 열정을 다해 가슴 뛰는 일을 찾아왔다는 그는 서비스 개발자에서 시작해 지난해 카카오의 CPO(Chief Privacy Officer, 개인정보보호 최고 책임자)로 이름을 올렸다. 최근 IT 업계의 중요 이슈인 개인정보보호 분야의 리더로 커리어의 도약을 맞은 김연지 동문. 이제까지 그래왔듯 그의 열정은 오늘을 더욱 가슴 뛰게 하고 있다. 

 


개발자의 길로 이끈 대학 생활 

“3학년 때까지는 무악학사에서 지냈는데 기숙사 생활은 제 대학시절 기억의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공대에서 출발해 자연대, 신학대, 인문대, 상경대를 지나 기숙사로 가는 길은 사계절 내내 너무 아름다웠어요.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한 고즈넉한 길과 청송대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오전 수업 시간에 늦어서 바이크를 타고 가는 선배에게 히치하이크했던 기억도, 밤에 놀다가 늦어서 기숙사 클로징 시간에 맞춰 초인적인 속도로 뛰어 들어오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때 친구들과 신나게 대학 생활을 즐기며 일탈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초중고등학교 12년 내내 개근을 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 어쩐지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성실한 학창생활을 보낸 그에게 대학 생활은 가장 자유롭게 반짝이던 시간이었다. 또 그가 개발자로 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준 시기이기도 했다. 97년 입학 당시만 해도 윈도즈(Windows)가 막 도입되던 시기. 공대 컴퓨터 동아리인 YCV(Yonsei Computer Volunteer)에 참여해 교대로 컴퓨터실에 상주하며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돕고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디폴트 세팅으로 돌릴 수 있는 설치 디스크를 만들고 관리하는 봉사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당시에는 수강 신청을 컴퓨터실에서 했는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학생들이 질서정연하게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안내했던 일이다. 동아리 활동을 비롯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컴퓨터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프로그램들과도 친숙해졌다. 또 데이터베이스와 파일 시스템 관련 강의에서는 데이터 관리 시스템이나 구조에 대해 알아가며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워낙 체계를 만들고 조직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도 한몫했다. 그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후배의 추천으로 시작됐다.


“4학년 때 휴학을 하고 싶었어요. 공부 말고 다른 뭔가도 해보고 싶었죠. 부모님께 휴학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니 노는 거라도 좋으니 계획을 세우라고 하시더라고요. 4학년 1학기 방학이 끝나가는데 마침 병역 특례로 다음에 들어간 후배가 일해 보지 않겠냐고 권했죠. 그 당시 졸업까지 이수 학점이 9학점 남았었는데 면접관께서 회사를 다니면서 동시에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배려해 주셨어요. 저는 휴학을 하고 싶어서 면접을 본 건데 회사의 배려 덕분에 졸지에 일과 학업을 병행하게 됐어요. 정말 바쁘게 다녔죠. 결국 학교도 끝까지 다 개근했어요. (웃음)”


그렇게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입사하게 된 김연지 동문은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 주위 사람들처럼 대기업에 가는 일반적인 진로 코스를 밟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함께 시작하고 만들어 가는 회사이기에 더 좋았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가장 재미있는 일 

“저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다음에 입사하고 나서 정말 행복하게 일했어요. 제가 개발한 서비스는 배포되면 이용자들이 바로 쓰잖아요. IT 업만의 즐거움이에요. 내가 만든 서비스에 대해 바로바로 피드백이 오죠. 친구나 지인에게 이 서비스를 내가 개발한 것이라며 보여줄 수 있었고, 그 서비스가 바로 전 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다 보니까 밤을 새우며 일해도 뿌듯하고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주말에도 빨리 출근하고 싶어서 월요일만 기다렸어요.”


당시 메일 서비스 ‘한메일(hanmail)’은 획기적인 기능과 무료 서비스로 전 국민의 메일 대중화를 이끌었다. 한메일의 서비스 개발자로 일했던 그가 가장 의미 있는 피드백을 받고 성취감을 느꼈던 일 중 하나 역시 작지만 좀 더 편리하게 이용자들의 삶을 바꾼 일이었다.


“기획 아이디어와 개발을 제가 담당했던, 유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메일 서비스가 기억에 남아요. 당시 메일은 메모장처럼 단순히 텍스트만 들어가는 정도로 구현됐었어요. 사진을 넣거나 다양하게 편집을 하기 위해서는 html 편집 기능을 넣어야 하는데 별도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죠. 그걸 자바 스크립트 등을 활용해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한메일에 적용했어요. 업계 최초였고 한메일 이후 대부분의 메일 서비스에 편집기가 탑재되기 시작했어요. 또 편지지 기능을 획기적으로 도입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기존에는 백그라운드 이미지 정도로 메일을 꾸밀 수 있었는데, 텍스트가 넘치면 이미지가 계속 반복돼 예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위와 밑을 자르고 가운데 영역에 텍스트를 쓰게 해 텍스트가 늘어나도 자연스럽게 상하단의 편지지 양식이 유지될 수 있게 했어요. 유저들의 반응이 대단했죠.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는 개발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만 기획이 가능하거든요. 아이디어를 서비스로 직접 녹여냈다는 점에서 개발자로서 제 역할을 확장시킬 수 있었고, 이후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까지 주도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개발자로서의 커리어 성장기는 일의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여기에 보수적인 대기업과 다른 개방적인 기업 문화, 비슷한 열정을 가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욱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당시 조직 문화를 필두로 오늘날 IT 기업의 수평적 문화가 만들어지게 됐다. 그만큼 자부심도 컸다. 그는 한메일에 이어 개인 SNS, 카페, 클라우드 등의 서비스 개발에 참여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았고, 서비스 개발 리더, 서비스 리더를 거쳐 현재 카카오 CPO(Chief Privacy Officer)로서 카카오의 개인정보보호 정책과 실행에 관한 총괄 책임을 맡고 있다. 

 


개인정보보호 정책 책임자로의 성장 

서비스 개발자에서 개인정보보호로의 업무 전환은 서비스 개발자로서의 성장 과정에서 만난 기회들과 맞닿아 있었다. 어찌 보면 변화라기보다는 역할의 확장이기도 하다.


“2017년부터 약 3~4년간 데이터 정책에 관한 업무에 참여했어요.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고민했죠. 카카오 전사 데이터 처리 정책을 만들고 나아가 카카오 공동체(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데이터 정책 수립도 맡아서 했었죠. 사실 개발자로 일할 때는 개인정보보호 부서와 이견이 종종 있었어요. 개인정보보호 조직은 엄격한 규제에 따라 데이터를 보호해야 하니, 데이터 활용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죠. 도대체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알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을 보기 시작했어요.”


개인정보보호에 대해 파고들면서 그는 소통을 위해 ‘눈높이’를 맞춰갔다. 그간 모호하기만 했던 개인정보보호법 해석의 영역에서 어쩔 수 없이 내부적으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명확한 규정 정립도 필요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서비스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래서 복잡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중심을 잡아야 해요. 카카오의 서비스는 개인정보를 다루는 만큼 개인정보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어요. 그만큼 중요한 이슈이기에 개인정보보호 담당자와 함께 법을 한 줄 한 줄 짚어가면서 데이터 정책을 한 땀 한 땀 맞춰갔어요. IT 서비스는 변화가 빠르고 사용자가 요구하는 눈높이도 상당히 높거든요. 보수적으로만 대응하면 사용자가 만족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워요. 카카오 공동체의 서비스와도 시너지를 내며 유저의 눈높이에 맞추면서 동시에 법률을 준수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정리해 나갔어요. 그렇게 3~4년간 공부하면서 만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이 길로 업무가 이어졌고 CPO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개인정보보호의 가치를 알리다 

김연지 동문은 개인정보보호 정책 수립에서 나아가 이를 알리고 공유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처리 정책 가이드를 구성원들의 눈높이에 맞게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통해 전사적으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관련 업무에 대한 소통의 문제들도 해결해 나갔다. 


“제가 개발자 출신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 정책에 대해 개발자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있어요. 개발자들이 개인정보를 바라보는 인식이 있어야 하거든요. 실제 서비스를 개발하는 이들이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이해 없이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죠. 또 개인정보를 담당하는 사람은 개발자의 일을 알아야 개발자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의문점에 대한 답을 할 수 있고요. 사실 개인정보보호는 저희 같은 IT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예요. 카카오는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철저하고 세심하게 신경 쓰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사적인 교육을 통해 이해도를 높이고 윤리의식을 높이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김연지 동문의 꾸준한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발자 시절부터 커뮤니케이션에 뛰어났던 그만의 강점도 큰 역할을 했다. ‘개발자는 기계와 사람 사이의 소통 창구’라는 그는 각각의 업무 중심으로 일하다 보면 부딪힐 수 있는 갈등 상황에서 언제나 개발자로서의 시각을 넘어 기획자, 정책 담당자의 입장도 이해했다. 덕분에 소통이 어려워 일의 진행이 난관에 봉착할 때 그가 구원투수로 나서게 되는 일이 많았다. 때로는 고민도 깊어졌고 오히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들도 균형을 잡고 더 나은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가 현실화됐을 때 유저들에게 보다 실용적이고 설득력 있는 서비스로 다가갈 수 있었다. 궁극적인 문제 해결을 통해 업무 효율성도 한층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는 그이기에 어쩌면 모든 서비스 이해관계자들에게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될 수 있는 데이터 정책, 개인정보보호 정책 수립을 이끄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연지 동문은 그렇게 축적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이제 대외적으로 전파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사실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꼼꼼히 읽어보시라 하지만 그렇게 하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유저들도 최대한 많이 이해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점 더 정보가 중요해지는 시대잖아요. 오프라인에 있던 정보들이 이제 온라인으로 들어왔어요. 오프라인에서 주의를 기울이던 정보에 대한 인식이 온라인에도 들어와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싶었죠. 카카오 같은 회사가 국민 인식 제고 등에서도 좀 더 열심히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연지 동문이 추진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 교육의 첫걸음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없는 삶을 사는 본 디지털(Born Digital) 세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어린이 자문단을 꾸려 알기 쉬운 콘텐츠로 만들었고, 어른이 보기에도 쉽고 재미있어 연령대를 넘어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노력은 IT 기업 개인정보보호 조직의 수장으로서 그의 책임감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현재는 청소년 교육 콘텐츠를 준비 중이고 향후 더 다양한 대상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로 전파할 계획이다. 



낯선 이들의 삶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만나다 

무엇이든 흥미를 느끼는 일은 추진해 보고야 마는 열정가, 김연지 동문은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끊임없이 동기 부여가 되는 삶의 시간을 만든다. 그가 말하는 그 ‘딴짓’은 그에게 새로운 활력과 돌파구가 돼 준다. 특히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그 즐거움을 나누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우면 책을 읽는 모임에 뛰어들기도 하고 1년간 휴직하고 떠났던 미국에서는 카네기 자연사 박물관에서 어린이들을 안내하는 자원봉사도 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답게, 끊임없이 일을 벌이는 그. 나누고 싶은 것, 좋은 경험을 공유하며 그 가치를 키워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마음에 맞는 이들과 일을 벌여 만든 어른들의 느슨한 네트워크 모임 ‘낯선대학’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낯선대학’은 10년 이상 서로 다른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30~40대가 주축이 된 모임으로 서로의 일과 삶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어른들의 네트워킹 모임이다.


“개발자에서 데이터 정책으로 옮기는 사이 10개월 정도 자진해서 소셜임팩트 사업을 경험했어요. 그때가 제 오춘기였던 것 같아요.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되면서 다음에서의 제 15년간 커리어를 한번 돌아보게 된 때였어요. 시야를 넓히기 위해 대학원을 갈까 싶기도 했어요. 그러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과 우리가 대학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죠. 7명이 시작했는데 각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았어요. 피아니스트도 있고, 자동차 기업 직원도 있고, 카피라이터도 있고요. 예체능과 인문, 이공계를 아우르는 사람들 50명 정도를 모아 일주일에 한 번, 두 명씩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처음엔 과연 될까 했던 모임이었지만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스스로는 정말 다양한 방식의 삶이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의 시야가 다시 확장되는 계기였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겸허해지기도 했고, 사회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었던 계기였죠. 또 이해관계가 없는 만남이라는 점도 좋았어요. 직장 생활을 하다 30대 중반 즈음이 되면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로 주변이 채워지게 마련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해관계 없는, 좀 느슨한 관계가 그리웠던 것 같기도 해요. 어른들도 칭찬과 토닥임이 필요하잖아요. 순수한 관계의 모임이다 보니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도,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도 ‘대단하다’라고 칭찬해 주는 거예요. 또 영원한 밥벌이 직종은 이제 갖기 힘든 만큼 어른 교육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낯선대학에서 그가 찾은 의미는 일로도 연결됐다. 마침 소셜임팩트 사업에 투입됐고 이에 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던 시기였기에 개발자로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공공데이터나 코딩 교육의 확산에도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 

김연지 동문은 어떤 난관에서도 또 무슨 일에서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때로는 너무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이 그러니 당연하게 끌려온 듯도 하지만 그는 늘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스스로 늘 가져왔던 삶의 태도이고 이를 통해 삶의 매 순간 재미를 찾을 수 있었기에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말한다. 그가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말도 여기에 있다. 


“사실 요즘 젊은이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닌 시대잖아요. 이런 시대를 만든 건 기성세대니까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조언을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도 한 가지 말하자면,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관점을 바꾸면 대부분의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티가 안 나는 일도, 아름답지 않은 일에서도 의미 부여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서비스 종료 프로젝트도 그런 경우죠. 서비스를 접으면서 유저들에게 안전하게 데이터를 백업해 줘야 하는 일이에요. 트래픽 소화도 문제없어야 하죠. 돋보이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한테 배움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어져요. 예전에 6개월 동안 서비스 에러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적이 있어요. 서비스 에러를 모니터링하며 해결하는 일이라 24시간 내내 알람이 울릴 정도로 일이 끊이질 않았어요. 물론 힘든 일이지만 다른 관점에선 엄청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어요. 에러 로그를 하나하나씩 다 뜯어서 확인하고 분석해 다음에 같은 에러가 나지 않도록 시스템화했어요. 시스템화하는 과정은 당장은 일을 더 크게 벌이는 것 같지만 6개월만 고생하면 이후로는 업무가 훨씬 수월해지는 일이거든요. 수개월 만에 에러율을 최저 수준으로 만들었죠. 이런 식으로 관점을 바꾸면 모든 게 너무 재미있는 일이 돼요. 또 설령 재미는 적더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많이 할 수 있게 되고 잘하게 되고 인정받게 되거든요. 선순환이라고 할까요. 인생에서 답이 없다고 해도 그건 어쩌면 당연한 거예요. 내가 재능이 없다,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속에서 즐거움의 양을 확보해서 그래도 더 행복한 인생으로 스스로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그게 삶의 가장 큰 재미가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김연지 동문은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의 개인정보보호 조직의 수장으로서 회사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책임감과 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예정이다. 


“회사에서 제게 이 역할을 맡겼다는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의 방향성도 가져가 달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이런 확신을 가지고 여러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는 카카오의 최우선 가치예요. 정책으로 서비스 자체에 대한 책임을 다할 뿐 아니라 기술 윤리 정책을 정립하는 일도 적극 추진할 예정입니다. 특히 2018년에 국내 최초로 카카오가 AI 윤리를 선언한 만큼 이 분야도 지속적으로 챙겨 나가고 싶습니다.” 

 

미래의 자신에게 ‘잘 부탁해.’라고 스스로 말을 건네는 김연지 동문. 당장 눈앞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현재를 충실히 살면서 그 과정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왔다. 그래서 그의 삶은 오늘도 그리고 미래에도 여러 기회들에 활짝 열려 있다. 10년 뒤에는 그 스스로도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저 “10년 뒤의 연지가 또 무엇인가를 하고 있겠지요.”라며 유쾌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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