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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탈식민주의 비평 소개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9-22

탈식민주의 비평 소개

영어영문학과 이석구 교수



할리우드와 인종적 타자

할리우드 액션 시리즈 중 제목이 ‘~fallen’으로 끝나는 영화들이 있다. 제라드 버틀러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시리즈인데, <백악관 최후의 날>(Olympus Has Fallen 2013)로 시작해서 <런던 해즈 폴른>(London Has Fallen 2016), 그리고 <엔젤 해즈 폴른>(Angel Has Fallen 2019)이 그것이다. 나는 평소 전쟁영화를 즐겨 보는 터라 이 시리즈도 예외 없이 봤는데, 할리우드 전쟁물의 오랜 공식이 여전히 작동되는 것을 보고 씁쓸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특히, 시리즈 중 첫 작품에서는 북한 사람이 등장해 민간인을 학살하며 백악관을 접수하려 하고, 두 번째 작에는 파키스탄인 무기상이 미국 대통령 참수 장면을 인터넷에서 실시간 방송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유색인을 ‘비이성적인 타자’로 등장시켜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을 위협하다가 백인 영웅에 의해 격퇴되는 할리우드의 전통 문법에 충실하다.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서 냉전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상황이 많이 다름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1988년에 출시된 <람보 3>에서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인 무자헤딘은 점령군인 소련군에 맞서 싸우는 용맹한 전사로 등장한다. 이들은 람보를 도와 소련군의 기지를 폭파하고 포로로 잡힌 미군 대령을 구출한다. 이러한 공식은 영국의 첩보물에서도 발견되는데, 1987년에 출시된 <007 리빙 데이라이트>에서도 무자헤딘은 007과 함께 소련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리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9·11 사건이 발생한 후 적과 아군의 지형도가 바뀌게 되는데, 이제 무자헤딘은 동지가 아니라 미국의 핵심적인 가치와 이익을 위협하는 테러 집단으로 지목된다. 2013년에 출시된 영화 <론 서바이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미군이 탈레반과 벌이는 힘겨운 교전을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냉전 이전과 이후의 영화들을 비교해 보면, 서양의 영화 산업이 보여주는 ‘타자화’의 작업은 당시 서양의 이익이나 지정학적 관계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서양 문화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오락적 가치인 ‘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이념적인 이익을 보편적인 가치로 포장해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탈식민주의 연구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즉, 탈식민주의 비평은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타자화나 정형화(stereotyping)가 이루어지지는 않는지, 그리고 이러한 실천의 이면에 어떤 인종주의적 사유가 숨어 있는지, 더 나아가서 이러한 사유들이 어떠한 정치적 현안을 위해 동원됐는지 등의 질문을 제기하고, 이러한 시각에서 작품과 문화 현상을 분석한다. 



셰익스피어 극과 인종주의

이러한 검증의 시각은 엘리자베스 1세가 국가는 내어주어도 이 문인은 내줄 수 없다고 말했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적용이 된다. 벤 존슨의 표현을 빌리면, “한 시대가 아닌 모든 시대를 위한” 이 영국의 대문호는 4대 비극 외에도 <베니스의 상인>(1596-99)이나 <폭풍>(1610-11)과 같은 희극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문화가 어떤 인종주의적 사유를 품고 있었는지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16세기 영국인들의 상상계에서 유대인, 무어인, 흑인은 오늘날 아랍인, 이슬람인, 북한 사람들이 서양인들의 상상계에서 수행하는 것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했다. 1558년부터 1603년까지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실제로 영국에서 흑인을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당대의 유럽이 유색 인종에 대해 가진 편견은 중세로부터 물려받은 이분법적 사고와 무관하지 않았는데, 이를테면 유럽인들은 선과 악, 천사와 악마와 같은 윤리적이고도 종교적인 개념을 흰색과 검은색과 연관해 이해했다.


비기독교인과 흑인에 대해 르네상스 시대 영국인이 가졌던 편견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1603)와 <베니스의 상인>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오셀로는 무어인이라는 유색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워 장군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심지어 그는 베니스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까지 한 인물이다. 베니스 의회의 의원 브라밴쇼는 이런 오셀로와 평소 친하게 지내지만, 딸 데스데모나가 오셀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태도는 돌변한다. 그는 오셀로를 ‘도둑’이라 부르며, 그가 딸의 사리분별력을 흩트리고 과도한 욕정을 일으키는 최음제와 같은 ‘지옥의 술책’을 썼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딸이 흑인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브라밴쇼의 확신에는, 유색인종과의 결합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며 백인의 혈통적 순수성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결혼이 후사 없이 비극으로 끝나게 된 것은 이러한 당대의 두려움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유럽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가졌던 편견은 <베니스의 상인>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영국에서는 1290년에 유대인들에 대한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전에도 이들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고 고리대금업 외의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것이 금지됐다. 고리대금업이 이들에게 허용된 이유는 기독교에서 이를 금지해 유럽인들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비유대인 아이의 피로써 종교적 의식을 거행한다는 소문에 시달렸고, 귀금속 주화를 깎아내서 사리를 취하고 이를 정상 주화로 유통시킨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혐의로 인해 에드워드 1세는 영국 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는데, 이때 600명의 유대인이 체포됐고 이 중 200명이 넘는 수가 교수형을 당했다. 유대인 박해는 영국 고유의 상황은 아니었는데, 1289년에 이미 카를로 1세가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추방했고, 이보다 먼저 로마에서 열린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황은 유대인들의 공직을 금했던 바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든 종족이라는 점에서 유럽에서 종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반감을 샀으며, 그 때문에 혐오스럽고 위험한 이방인의 대표로 간주됐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을 이처럼 저주받은 고리대금업자 유대인으로 캐스팅함으로써 당대 유럽의 반유대주의에 편승하게 된다. 


샤일록은 자신이 자금을 빌려준 안토니오의 무역선이 파선됐다는 소식을 듣자 계약서대로 그의 가슴살 한 파운드를 도려내겠다고, 즉 그를 죽이겠다고 벼른다. 샤일록의 이러한 행동은 유럽인들이 이 이민족에게 평소 투사했던 ‘기독교인을 해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이민족’의 전형에 충실한 것이며, 유대인들이 종교적 의식을 위해 비유대인의 피를 원한다는 미신을 확인시켜 준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샤일록과 안토니오가 각기 중세로부터 내려오는 고리대금업과 근대 자본주의의 태동을 알리는 식민지 무역을 대표한다는 사실이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가슴에 살 한 파운드를 베어내기 위해 재판에 나가지만, 원하는 바를 얻기는커녕 베니스인의 목숨을 위협했다는 죄목으로 인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개종까지 당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이런 결론을 고려한다면,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의 기독교 사회로의 편입을 장려하고, 유럽 사회가 봉건 질서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함을 경축하는 작품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축연이 특정 민족의 악마화와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의 되받아 쓰기

탈식민주의 비평은 서구의 고전을 인종적 관점에서 점검하는 작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에서 생산된 반식민 문학에 대한 조명을 포함하기도 한다. 반식민주의 언술은 주로 제3세계 민족주의 문화론이나 서구의 담론에 대한 ‘되받아 쓰기’의 형태로 나타나게 됐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영문학의 고전을 식민지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광활한 싸가소 바다>(1966), <오메로스>(1990), <무너져 내리다>(1958) 등이 있다. <광활한 싸가소 바다>는 도미니카 출신의 작가 진 리스가 샬럿 브론테의 작품 <제인 에어>(1847)를 크레올 여성 버싸 메이슨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제인 에어>에서 백인 남성 로체스터는 정신이 이상한 식민지 출신 여성과 결혼한 후 고통받는 ‘희생자’로 그려진다. 반면 제인 에어는 근면함과 노력을 통해 교육적 성취를 거두고, 결국에는 상류층이라는 사회적 위치에 오르게 된다는 점에서 제1세계 페미니즘의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리스는 제인이 로체스터와 순조롭게 맺어지기 위해서 버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서사의 중심에 세운다. 이 관점에 의하면, 버싸는 미친 여자로 규정되고 재산을 빼앗기고 다락방에 유폐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목숨까지 잃게 된다. 리스는 이처럼 <제인 에어>를 버싸의 관점에서 다시 씀으로써, 19세기에 드물지 않았던, 영국 남성들과 결혼한 크레올 상속녀들이 받은 고통에 관한 그네들의 이야기(her-story)를 들려준다. 


영국 고전을 다시 쓴 사례로써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의 <무너져 내리다>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소설에서 아체베는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1899)에서 발견되는 아프리카의 왜곡된 모습을 바로잡는다. 이 중편소설에서 콘래드는 아프리카에 원시적이고도 악마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그가 콩고를 여행했을 무렵 목격했던 ‘문명’의 모습이나 유럽의 제국이 옮겨 놓은 근대적인 현장들을 텍스트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콩고는 원시 자연과 동일시될 뿐만 아니라 악과 결부된 형이상학적 세력으로 창조될 수 있었다. 아체베는 백인의 담론에 의해 이렇게 ‘낯설게 된’ 아프리카를 역사적으로 재맥락화시킨다. 그 결과 아프리카는 오랜 전통을 지닌 평범한 시골 촌락과 그 촌락을 에워싸고 있는 정다운, 때로는 무섭기도 한 일상의 ‘낯익은’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즉, 아체베는 백인의 담론이 박탈한 휴머니즘과 역사성을 아프리카에 돌려주는 것이다. 

아체베가 <무너져 내리다>를 쓰게 된 동기는 그의 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서 교육받은 그는 아프리카를 다루는 영국 문학을 읽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자신을 아프리카인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모험을 하고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하는 백인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순간을 탈식민주의 정신분석학자 프란츠 파농은 ‘의식의 백인화’라고 부른 바 있다. 유색 인종이 백인의 가치 체계를 내면화하게 된 것이다. 영국 모험소설이 자신을 백인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체베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이 작가들이 나를 잘도 속였구나! 나라는 존재는 <어둠의 심연>에서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말로우의 보트에 승선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무시무시한 인상을 쓰며, 강변에서 펄쩍펄쩍 뛰는 낯선 존재 중의 하나였다.” 

 

다시 할리우드의 액션 영화로 돌아가 보자. 백인 영웅이 유색인 테러리스트를 격퇴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관객으로서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십중팔구 백인 영웅의 편에 서서 정의의 실현을 기뻐하고 있으리라. 민간인에 대한 테러는 결코 용인돼서는 안 될 만행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모두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지고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혹시라도 우리가 ‘무자헤딘’, ‘탈레반’, ‘악의 축’, ‘대량살상 무기의 위협’ 등의 특정한 담론에 너무 노출된 나머지 이 테러가 발생하게 된 이면의 ‘역사’에는 무관심하게 된 것은 아닐까. 즉, 국제질서와 이에 대한 위협을 특정 매체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콘래드의 백인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던 나이지리아의 소년 아체베처럼 말이다. 탈식민주의 비평은 영문학 정전이나 영화와 같은 대중 서사에 관한 연구에 국한되지 않으며, 패권국의 이익이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돼 약소국에 강요되지 않는지 등의 비판적인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석구 교수는 우리 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쳤고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로 현대 영미소설, 탈식민주의 이론, 제3세계 문학, 아시아 영화 등을 다루고 있으며, 아시아문화연구 국제 학술지 <Situations>의 편집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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