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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패션과 사회 문제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9-21

패션과 사회 문제

의류환경학과 우홍주 교수

 


이번 학기로 고등교육혁신원의 ‘사회혁신역량교과목’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 여섯 번째 학기를 맞았다. 의류학계에서는 사회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왔지만 아직도 대중들에게는 패션과 사회의 연결고리가 생소하다. 우리 일상에 늘 함께하는, 그래서 사소한, 한 벌의 옷이 지닌 사회적 이슈란 무엇일까.



지속가능성—환경 문제

처음 사회혁신역량 과제를 받아든 학생들의 진단은 열의 아홉 팀의 경우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환경 문제’였다. 실제로 패션 산업은 매년 215조 리터 이상의 물을 사용하고 1천억 원 상당의 폐기물을 양산하는, 비친환경적인 거대 산업이다(UN Alliance for Sustainable Fashion, n.d.). 이 때문에 UN은 패션이라는 특정 산업 군에 대해 ‘UN Alliance for Sustainable Fashion’을 결성하고 집중 감독에 나섰다. 청바지 공장에서 흘러나온 염색 폐수로 파랗게 물든 갠지스 강과 핸드백을 만들기 위해 밀렵된 멸종 위기종 동물들의 사진은 이미 국제뉴스의 ‘클리셰’가 됐다.



노동 및 인권 문제

두 번째로 잘 알려진 사회 문제는 ‘노동 및 인권 문제(Labor/human rights issues)’다. 패션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용주(Employer) 중 하나로, 전 세계 3백만 명 이상 노동자들의 생업이며 세계 어느 산업보다 여성 노동자의 비중이 높다(UN Alliance for Sustainable Fashion, n.d.). 90년대 미국 사회에 사회적 책임(CSR) 인식을 제고시킨 유명 방송인 케이티 리(Kathie Lee)의 ‘Sweatshop Scandal’은 온두라스의 한 의류공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콩나물시루처럼 붐비는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10대 소녀들의 탈출기는 현재까지 유효한 노동자 인권 보호 법령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냈다. 의류 제조업은 타 산업 군에 비해 노동집약적이고 설비가 저렴해 수출 중심의 경제 성장을 꿈꾸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입문(Entry) 산업이다. 이들은 선진국에 비해 노동 및 인권 보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아, 사회 문제 야기에 쉽게 노출된다. 60~70년대 한국의 의류·신발공장 여공들의 근무 조건을 떠올리면 쉽다.



다양성과 평등

그러나 패션 산업이 관련된 사회 문제는 사실 이보다 더 넓고, 더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컨대, 국내 패션업계에서도 최근 ‘다양성과 평등(Diversity and Equality)’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패션 시스템은 획일적인 ‘미의 이상(Ideal beauty)’을 제시하고 이것을 좇을 수 있는 상품들을 판매했다. 그러나 최근 나이키 코리아(NIKE Korea)가 선보인 국내 캠페인은 완벽한 복근을 가진 셀러브리티도, 특출난 기량을 가진 스포츠 스타도 아닌 제각기 다른 체형의 ‘보통 사람들(Common people)’을 내세운다. 프로보단 아마추어, 비현실보단 현실에 가까운 일반 여성들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여 주는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캠페인, 평범한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겨루는 모습의 ‘모두의 운동장’ 캠페인은 우리 사회 이슈로 떠오른 페미니즘과 성별 간 갈등을 건드린다. 여기서 옷은 더 이상 몸매나 금메달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아닌, 각자의 움직임과 일상을 보조하는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패션업계에 등장한 ‘어글리 룩(Ugly Look)’, ‘보디 컨셔스 웨어(Body Conscious Wear)’ 등도 모두 획일적 미를 거부하고 신체 자존감을 표현하는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다.




가격 공정성

패션 산업의 불투명한 가격 구조와 가격 공정성에 관한 이슈도 지적되고 있다. 한동안 소셜미디어에서 똑같은 옷을 입은 두 명의 소녀가 각각 ‘I made this for $0.60’, ‘I bought this for $50’라고 적힌 사인을 든 이미지가 화두에 오른 적이 있다.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이지만 한 명은 개발도상국에서 60센트를 받고 옷을 만들고, 한 명은 선진국에서 50달러를 주고 이 옷을 소비하는 의류 산업의 양극화된 생산 시스템과 높은 마진율을 꼬집은 것이었다. 


어떻게 60센트로 생산된 옷이 50달러로 둔갑했느냐는 의문에 대해, 미국의 스타트업 에버레인(Everlane)은 ‘Radical transparency’라는 정책을 제시했다. 그간 어느 소비자에게도 일종의 ‘비밀’로 부쳐졌던 의류 상품의 원가를 분해(price breakdown)하고 공개해 합리적 수준 이상의 이윤을 챙기지 않겠다는 정책이었다. 화려한 패션 산업 뒤에 가려진 ‘60센트에 옷을 만드는’ 소녀에 대한 관심은 패션업계 공정무역 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영국의 공정무역 브랜드 피플트리(People Tree)는 저가에 생산돼 고가에 판매되는 판매자 중심의 가격 구조에서 벗어나 ‘생산자(Makers)’가 중심이 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이 브랜드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자사 제품 공급자들의 사진과 이름, 팀원과 스토리를 숨기지 않고 공개하며 이들과 자사 간 분배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생산자에게 합당한 이윤이 돌아가는 공정무역의 지향점을 따른 것이다.



단 한 발자국의 진보

이 밖에도 의복 안전성과 소비자 권익 보호에 관련된 이슈 등 의류 산업에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매 학기 사회 문제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사회 문제란 비단 거창하고 심각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개선이나 재고가 필요한 어떤 어젠다(Agenda)도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설령 그것이 기존 시스템으로부터 단 한 발자국의 진보나 한 가지의 색다른 시선이 필요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지난 3년간 학생들은 고감도 체형측정 시스템을 이용한 보디 컨셔스 요가웨어, 신진 디자이너와 소비자를 직접 이어주는 업사이클링 리폼 플랫폼, 고령화된 수선 업계의 장인 정신을 살리는 비대면 수선 플랫폼 등 창의적인 솔루션으로 그 사례들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교수님, 공부해 보니 우리 산업은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패션업계만 꿈꿨는데 ‘현타’가 온달까요.’ 어떻게 답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옆에 있던 학생이 이야기한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 본 것과 안 해 본 것은 다르지 않겠어?’ 그러고 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접근을 제시했던 많은 움직임들도 처음에는 이런 사소한 차이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었을까. 

 


참고자료 : UN Alliance for Sustainable Fashion. (n.d.). https://unfashionalliance.org/ 




우홍주 교수는 우리 대학교 의류환경학과 학사 졸업 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그린즈버러 캠퍼스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번대(Auburn University)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다 2019년 우리 대학교 의류환경학과에 임용됐다. 우 교수는 올해 1월 신진 교수들을 대상으로 연구, 교육, 국제 학계 평판 등 다방면을 평가하는 국제의류학회 ‘라이징 스타 어워드(Rising Star Award)’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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