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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느리지만 단단하게,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8-26

느리지만 단단하게,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정김경숙 구글 인터내셔널 미디어 리에종 디렉터(독어독문학 86)




구글의 ‘철의 여인’ 

그 어느 곳보다 민감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IT 업계의 심장이라 불리는 실리콘 밸리. 그중에서도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구글은 전 세계의 비범한 인재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 가는 곳이다. 정김경숙 동문은 이곳에서 구글을 대표해 글로벌 미디어와 소통하고 기술과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커뮤니케이터로 일하고 있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을 거쳐 실리콘 밸리 구글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력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할 만큼 화려하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 뒤에는 포기를 모르는 성실함이 있었다. 구글에서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정김경숙 동문은 오십의 나이에 천재들의 리그에서 꾸준함의 힘을 무기로 비범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트리플 A형의 소심함이 콤플렉스? 

글로벌을 무대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구글러이지만, 정김경숙 동문은 스스로 트리플 A형의 소심함을 타고났다고 할 만큼 의외로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대학 시절도 다채로운 활동보다는 학교와 집, 도서관을 오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가기 전까지 여러 사람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숙맥 중에 숙맥이었어요. 대학 시절 강의 시간에도 말 한마디 없이 조용했고, 친구들을 폭넓게 사귀지도 못했어요.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할 수는 있겠어?’라고 걱정할 만큼 소극적인 태도로 28년을 살았죠. 졸업 후 짧게 직장 생활을 마치고 남편과 유학을 떠나게 됐는데 미국에서 언어 장벽을 만나니 제 소심함은 더 악화됐죠. 스스로를 작게 구기고 낮추는 게 습관이 돼 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스물아홉이 되던 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나를 바꾸기로 했어요. 나머지 인생은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본 어게인(Born Again)’한 그는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새 출발 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환경 속에 스스로를 놓았다. 이전의 자신을 알던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과도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MBA 과정을 선택했다.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실천해 보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자신을 만들었다. 그 시간들이 모여, 그는 자신감이 생겼고 과거의 자신과 결별할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먼저 말을 걸고, 모든 수업 시간과 팀 프로젝트에서 발표를 하고 매일 운동하면서 노력했어요. 필요한 건 오로지 ‘부지런함’뿐이었죠. 먼저 말을 걸려면 질문거리를 만들어 놔야 하고 수업 시간에도 질문하려면 철저한 예습 복습이 필수예요. 발표를 위해서는 스크립트를 통째로 외워야 하죠. 매일 걷고 달리면서 체력도 쌓아 갔어요. 그렇게 1년을 노력하니 어느덧 교수님은 ‘로이스가 질문하지 않아서 수업을 못 끝내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웃음)”



나이 오십, 다시 뉴글러(Noogler, New + Googler)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정김경숙 동문은 모토롤라코리아와 다국적 제약회사 한국릴리에서 홍보와 마케팅 경험을 쌓은 후 2007년, 30대 이사로 구글코리아에 입사해 구글코리아 홍보 총괄을 거쳐 현재 구글 본사 커뮤니케이션팀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 인터내셔널 리에종 및 스토리텔링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구글에서만 15년을 근무했고, 2019년에는 구글코리아를 넘어 구글 본사로 일터를 옮겼다.

 

“구글에서만 15년째 일하고 있는데 3년 전, 구글의 전 세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이 모이는 연례행사에서 제가 해외 각 구글 법인과 본사를 연결하고 전 세계 미디어와 소통할 수 있는 포지션을 신설하자고 제안했어요. 3주 만에 관련 직책이 신설됐고, 잡 포지션을 제안했던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1인 팀으로 시작했고, 현재는 팀 멤버도 충원하고 역할도 확장해 팟캐스트와 같은 신규 매체나 소셜 인플루언서를 통해 구글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링 업무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3년 전 본사로 옮겼을 때 그는 오십의 나이에 가족과도 떨어져야 했다. 팀원이 없던 1인 팀으로 규모도 작았다. 본사로의 이동을 결심하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이 오십에 홀로 해외 생활을 해야 하냐며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과감하게 결정했고 그 결정은 옳았다. 15년 전 구글코리아에 입사했을 때도 1인 팀으로 시작했고 팀을 키워 갔던 것처럼, 미국 본사에서도 팀을 키우고 책임 분야를 넓혀 가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물론 쉽지 않은 일들도 많았다. 외국계 기업만을 거치며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해 왔지만, 본사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 이상의 실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구글을 대표하는 메시지로 전 세계에 전파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본사 커뮤니케이션팀에서 근무하는 비영어권 인력은 그가 최초였다.


“영어는 4년 차에 접어드는 제게도 아직 진행 중인 숙제입니다. 꾸준함만이 답인 것 같아요.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은 꼬박꼬박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매일 새롭게 알게 된 단어, 표현, 발음, 문법 등을 정리하고 있는데 벌써 1,400쪽이 넘습니다. 꾸준하다는 것이 참 어렵지만 꾸준히 하는 장치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영어 원어민 튜터를 구해 하루 1시간씩 수업을 듣고 있고, 수업을 위해 30분 이상을 준비해요. 매일 운동할 때마다 오디오북을 들었고요. 미국에 오자마자 ‘토스트마스터즈 클럽’에 가입해 영어 스피치 연습도 꾸준히 했죠. 친구들과 밴드 그룹을 만들어 1일 1영어 표현도 2년째 하면서 회사 동료가 보내온 메시지나 메일, 리포트에서 새로운 표현은 달달 외웁니다.” 



제자리걸음 같은 오늘이 내일로 나아가게 한다 

정김경숙 동문에게 꾸준함은 단순히 영어 실력뿐 아니라 그 스스로와 커리어를 성장시키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다. 커리어를 쌓아오는 동안 그는 무려 다섯 곳의 대학원을 다녔다. 누군가는 그를 학위 컬렉터라고 부를 정도다. 20대 후반에는 네브래스카대학교 링컨 MBA 과정을, 모토로라에서 일할 때는 우리 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을, 한국릴리에서 온라인 마케팅으로 업무가 확장됐을 때는 경희대학교 e-MBA를, 구글코리아 커뮤니케이션팀에 있을 때는 인터넷 정책으로까지 관심사가 확장되면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이어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지털문화정책대학원도 다녔다. 실무와 관련된 공부에서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판’을 읽을 수 있는 공부로, 자신의 커리어의 확장에 따라 꾸준히 스스로를 채웠다.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꾸준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도 그는 최고 커뮤니케이션 오피서(CCO, Chief Communications Officer) 2년 과정을 들으며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가능하면 저는 경쟁력을 갖추고 일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싶어요. 아직도 일할 기간이 많다고 생각하니 정말 계속 배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배움 없는 삶은 무료하기도 쉽고 지치기도 쉬워요. 성장은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이미 채운 것을 쓰는 일이지, 채우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비우기만 하고 스스로를 채우고 성장하는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면 스스로 발전을 포기하게 됩니다. 내일의 미래를 놓치지 않으려면 꾸준히 자기만의 ‘채우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졸업 후 다섯 개의 대학원을 다닌 이유도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매일매일의 루틴, 그리고 그것이 쌓여서 만드는 오늘의 에너지가 미래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것은 때로 힘든 순간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앞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지난 30년간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마음의 코어를 키워준 주인공이다.


“저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메일을 확인하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10km 조깅을 합니다. 9시부터는 회사 일을 시작하고 4시 30분에 퇴근해 10km를 걷습니다. 매주 요일별로 루틴도 정하고 지켜 갑니다. 하루하루의 습관과 루틴 활동은 확 표가 나지는 않지만 저는 우리 일상이 복사 용지와 같다고 생각해요. 복사 용지의 두께는 얇지만 100장이 묶여서 다발이 되고 다발이 묶여서 박스를 채우고, 박스가 쌓여서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게 됩니다. 그 한 장 한 장을 바로 오늘 쌓는 것이죠. 묵묵하게 조금씩 쌓아 가면 언젠가 압도적인 실력과 결과물이 보이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코어 근력을 키워 힘든 일을 겪더라도 정상적인 상태로 빨리 돌아올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습관, 한결같은 자기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이죠. 꾸준함이 있어야 자기 기반을 가지고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성취해 나가는 삶을 살아온 그가 터득한 이 지혜를 담아 최근 한 권의 책을 냈다.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라는 도발적인 제목이다. 삶 속에서 누구나 부족함을 느끼고 그 역시 마찬가지지만, “계속 간다는 것”, 즉 지금은 좀 부족해도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그의 지혜를 담았다. 번 아웃과 보어 아웃을 겪는 이들이 이 책을 보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들이 책 제목을 보고 한마디 던지더라고요, ‘계속 가봅시다’는 함께 가자는 건데 체력이 남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 어떻게 함께 가자는 거야?’ 하고요. (웃음) 지금은 좀 부족하더라도 체력과 마음의 근력을 기르는 일을 시작해 우리 인생과 커리어를 확장해 보자는 뜻에서 지은 것입니다. 저는 14년이나 검도를 했지만 경기에 나가면 빛처럼 빠르게 지기 때문에 ‘전광석화’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요. 대금을 배운 지 2년 만에 소리를 냈고요. 그저 묵묵히 하다 보면 실력이 쌓이고 더 발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기술 이야기를 전하는 구글러 

구글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떨까, 정김경숙 동문에게도 구글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업무에서부터 기업 문화까지 특별한 경험들이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서 구글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발굴하고 그것을 알리는 일이 즐겁다. 그것은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기술 이면에 있는 가치를 보여 주는 일이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서 제 철학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공감입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열지 못하면 그 기술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에는 스페인어만 할 수 있는 조부모와 영어만 하는 손자 손녀 간에 소통이 안 되는 히스패닉 가정들이 많아요. 구글의 ‘라이브 트랜스 크라이브(Live Transcribe)’라는 앱에는 실시간 자막 통역 기능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가족 안에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죠. 구강구조가 일반인과 달라 발음을 잘 못 알아듣는 드미트리라는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분이 이 기능을 활용해 생애 처음으로 손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돼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어요. 이렇게 삶에 의미가 되는 기술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의 직장으로 구글을 수식하는 것들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예쁜 사무실, 유기농 과일과 건강 스낵들이 즐비한 마이크로 키친 등 각종 복지 인프라이고 구글러로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그는 구글만의 조직 문화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크레딧을 훔치지 않는 문화라고 할까요? 프로젝트 ‘서머리 리포트(Summary Report)’라는 것이 있는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기여한 사람을 모두 적게 돼 있어요.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실제적으로 리드한 사람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들어갑니다. 보통 다른 회사는 직급 순으로 적지 않을까요. 구글에서는 자신이 직접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다른 사람 대신에 크레딧을 받는 것을 정당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또 구글러들은 다들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겸손함을 갖춘 인재들이 모여 있죠. 이런 이들에게서 저 역시 늘 배우게 됩니다.” 



회사의 가치와 나의 가치와의 접점에서 열정은 커진다 

정김경숙 동문은 업무 외에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적극 활용한다. 특히 그는 회사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와의 접점에서 세상에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고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한다. 사회 기여 프로젝트 오디션에 참석해 성소수자를 위한 펀딩을 이끌어 내기도 했고 국내 언론계 뉴스 생태계의 디지털 전환에 기여하기 위해 젊은 디지털 저널리스트 양성을 목표로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더욱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한다. 특히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사회 기여 프로젝트들은 의미가 깊다. 그래서 그는 회사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드래곤스 덴(Dragon’s Den)’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사회 기여 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학창 시절 연세에서 느끼고 배웠던 가치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제게 연세란 민주주의의 힘을 알게 한 곳이에요. 86학번인 저는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당시 학교와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는 조용한 학생이었던 저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지는 못했지만 캠퍼스에서 4년간 보고 느끼면서 민주화의 가치를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그것은 제가 직장인이 돼 인권 문제,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을 많이 갖고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 고민할 수 있게 해 줬습니다. 나 하나만이라도 오늘 행동하면 내일 조금은 변해 있습니다. 이것을 몸소 느껴 보는 경험은 삶을 따스한 긍정과 열정으로 가득 채우게 만듭니다.” 



완벽한 워킹맘은 없다  

커리어를 성장시키는 일은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들에겐 더 고단하다. 늘 일과 공부를 놓지 않았던 정김경숙 동문에게도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그렇지 못한 워킹맘들에 비해서는 ‘거저먹기’였다고 하지만, 그 역시 아이를 직접 돌보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양보다는 질에 집중했다. 짧더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에는 아이의 기억에 깊이 각인될 만큼 집중했다.


“워킹맘으로서 제 사전에 완벽한 엄마, 알파맘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싶었죠. 일하는 엄마의 아이로 키우기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일찍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책임감을 심어 주고 대신 퀄리티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대일로 주말 1박 여행을 매월 1회 이상 갔습니다. 훨씬 재미있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원하는 곳을 고르게 했고 시장에서 밥 먹기, 대중교통만 이용하기 등의 원칙을 세워 더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아들은 그 시간들을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고 있어요.”


또 그가 고안한 질 높은 육아 방법은 가족 일기였다. 구성원 모두 일과 학업으로 바쁘다 보니 마주 보고 대화하는 짬을 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는 이때 구글 독스와 같은 협업 툴을 사용해 매일매일 서로의 일상, 생각, 고민거리를 공유했다. 매일 얼굴 보고 얘기를 나누지는 못해도 항상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이제 아들은 성인이 됐지만 그 추억 상자와도 같은 가족 일기를 보며 즐거웠던 시간들을 꺼내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나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든든한 응원 

정김경숙 동문은 부모님의 성을 함께 쓴다. 김경숙으로 29년을 살고 서른이 되던 해 어머니의 성 ‘정’과 아버지의 성 ‘김’을 함께 붙여 ‘정김경숙’이 됐다. 어머니는 세상에 그를 있게 만든, 자신이라는 존재의 반이라 믿는다. 그가 구글러 정김경숙으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든든한 지지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김경숙으로 바꾼 명함을 받던 날 새 명함 1호를 어머니께 드리니 어머니 눈시울이 붉어지셨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가 지금의 나를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죠. 모녀 관계를 넘어 여성과 여성의 연대로 다시 태어난 날이었어요. 정김경숙이라는 양성 사용은 늘 제 안의 엄마라는 여성의 존재를 인지하도록 해 줍니다. 사실 대학 시절 조한혜정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영향을 받았어요. 저 역시 교수님처럼 양성 쓰기를 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소심한 마음에 시도하지 못했었거든요. 가끔 양성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헷갈려 하시지만 제 명함을 보면서 한 번이라도 양성 쓰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커리어 우먼이자 워킹맘으로 살면서 그는 수많은 여성들의 응원과 영감을 받으며 성장했다. 워킹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양육에 도움을 주신 시어머니, 한때 같은 회사에서 일하며 만났고 지금도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서로에게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조언하는 세 명의 친구들, 커리어에 영감을 준 여성 리더들. 그들과의 연대를 통해 용기를 얻고 꿈을 펼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떨칠 수 있도록 자신이 길을 다져가며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 



나답게,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 

정김경숙 동문은 앞으로 일과 삶에서 자신의 역량을 사회에 기여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사회와 더불어,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구글 이후에는 좀 작은 회사에서 새롭게 배우며 제가 30년 이상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작은 회사에 더 기여할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직장 생활을 마치는 상황에서는 제가 가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활용해 비영리 기관들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알리는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고요. 또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하며 나와 내 가족을 넘어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이웃을 향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는 연세의 동문들에게도 치열하게 나를 성장시켜 감과 동시에 오늘을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나누고 싶다.


“저는 요즘 왜 소극적이었던 제 성격을 일찍 바꿔 보지 못했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랬다면 좀 더 재미있는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자신 안에 맘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오늘 바로 도전해 보세요. 몇 가지 원칙만 세워서 딱 1년만 해보면 1년 뒤엔 오늘과 다른 내가 돼 있을 겁니다. 또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화로 기회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어요. 학업이나 취업 등 힘든 경쟁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럴수록 연세인들이 약자를 생각하고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오늘,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자신의 지독한 성실함이 창피했었다는 정김경숙 동문. 그러나 그는 이제 자의식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떠밀어 준 힘이 바로 그 한결같음, 성실함에 있었다는 것을 안다.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한 그의 노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 그는 더욱 단단해질 자신을 위해 오늘도 매일의 할 일을 해내며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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