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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신촌캠퍼스 소식] 김대중도서관, 수감 중인 김대중과의 면회 내용을 정리한 이희호의 메모 공개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5-20

김대중도서관, 수감 중인 김대중과의 면회 내용을 정리한 이희호의 메모 공개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사진. 공개 사료]


김대중도서관(관장 한석희)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수감 중인 김대중과의 면회 내용을 정리한 이희호의 메모를 5월 17일 공개했다.


김대중은 광주민주화운동의 당사자이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김대중, 문익환 등 민주 인사들을 연행했다. 1979년 12.12쿠데타에 이은 1980년 5.17쿠데타였다. 이와 같은 전두환의 쿠데타에 광주시민들이 저항하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것이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김대중이 1980년 서울의봄 당시 대규모 시위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후조종하면서 국가변란을 획책했다는 이유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조작했다. 그래서 김대중은 광주민주화운동의 당사자가 된다. 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인해 김대중은 1980년 9월 17일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1981년 1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후 무기형으로 감형됐고 1982년 3월 3일에 무기징역형에서 징역 20년형으로 감형됐다. 김대중은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된 이후인 1981년 1월 31일에 육군교도소에서 청주교도소로 이감됐다.


김대중은 청주교도소로 이감된 이후인 1981년 2월 11일 처음 부인 이희호 여사와 면회를 했다. 이희호 여사는 허용된 짧은 면회 시간 동안 건강 등 상호 간의 근황을 확인함과 동시에 외부와 차단된 김대중에게 국내외 동향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를 위해 면회 갈 때 그날 전달할 주요 국내외 현안을 정리한 메모를 준비해 갔다. 그리고 면회 도중 김대중의 이야기를 정리한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이희호 여사로부터 기증받은 사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해당 메모를 발견했으며 그중 1981년 11월 2일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의 옥중 심경을 정리한 메모를 이번에 공개한 것이다.


이 사료의 의미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이희호가 수감 중인 김대중을 면회할 때 작성한 자료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는 김대중과 이희호가 주고받은 편지였다. 그런 점에서 이 사료는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 맞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김대중-이희호의 의지와 당시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는 내용에 관한 것으로, 이 메모의 내용을 보면 김대중이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대중은 평생 6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했고 그중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에 5년 8개월(나머지 4개월 기간은 해방 이후 및 한국전쟁 기간 중) 정도 수감 생활을 했다. 김대중은 수감 중 병고에 시달리고 사형수로서 생사의 위기를 겪는 도중에도 자신의 고통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곤 했었다. 그래서 기존에는 이번에 공개한 사료에서처럼 자신의 고통을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 사료는 김대중의 옥중 기록 중 내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개 사료 전문

비로서 하는 말이지만 그간 자포자기하여 발광직전까지도 간 적이 있다. 조남기 목사님께(면회시) 하느님이 왜 나를 살리셨나 원망도 했었다. 내 일생 이토록 치욕스럽고 괴로웠던 적이 없다. 자다가도 숨이 턱막히며 치밀어올라 못견딜지경이면 일어나 기도함으로써 극복하고 했었다. 이제 그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비로서 얘기한다.

- 1981년 11월 2일 수감 중인 김대중을 면회할 때 김대중이 이희호에게 한 말을 이희호가 메모한 것 -

 

vol.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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