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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화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관점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4-21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화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관점들

사회학과 이도훈 교수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1.3 이하로 떨어지는 초저출산화(lowest-low fertility)를 경험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충격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돼 왔는데,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화 위원회’를 설치하고 5년마다 초저출산화에 대한 대응 정책들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지난 15여 년에 걸쳐 200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초저출산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21년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OECD 국가들 중 최저를 기록하고 있고, 대부분의 출생아들이 혼인 부모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는 혼인율도 2021년에 천 명당 3.8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와 같은 양상에 대해 한편에서는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불균등한 인구구조에 기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와 경제적 활력의 쇠퇴는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의 인간 혹은 성장 중심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해 인구감소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기후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하지만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몇 가지 관점들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능한 대응 전략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인식 간의 불일치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화가 지속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연령집단별 경제적 조건의 불균등과 성 불평등(gender inequality)이 흔히 제시돼 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젊은 연령층에게서 출생한다고 할 때 이들이 고용, 임금, 주택, 일-생활 양립, 양육 등과 관련해서 겪고 있는 연령집단별 및 성별 불평등의 문제는 출생률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객관적인 불균등에 집중하는 설명은 이들 양상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불평등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색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 


하나의 예로 세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소득의 변이를 생각해 보자. 1970년대와 80년대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세대들은 낮은 소득 수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소득 성장세를 경험한 반면, 2000년대 이후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과 비교해서 높은 소득 수준에도 불구하고 완만하거나 불안정한 소득 성장세를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소득과 관련해서 현재 젊은 연령층이 경험하고 있는 출발선과 속도 간의 불일치는 출산과 같은 계획된 행위의 실현을 지체시키거나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희망 자녀수와 합계출산율 간의 관계를 고려해 보자.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기혼 여성들의 평균 희망 자녀수는 1.98명으로 이전보다 낮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총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 출생률인 2.1명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20년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이었다. 이와 같은 희망 자녀수와 합계출산율 간의 뚜렷한 불일치는 출산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에 대한 엄밀한 탐색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와 더불어 출산 의도가 있는 유자녀 가구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효과적으로 설계되고 실행되고 있지 못함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조직 그리고 개인

초저출산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응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국가의 정책적 개입과 개인 및 가족의 행위와 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출생률의 지속적인 하락은 사회의 재생산을 근본적인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대처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또한 출산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가족 구성원들의 의사결정과 선택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출산과 관련된 이들의 행위와 태도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대응 양태와 그에 대한 논의는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가 직접적이고 단선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암묵적인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중앙 혹은 지방정부가 출생률의 제고를 위한 정책을 입안해 실행한다고 할 때, 그 정책의 수혜자인 개인 혹은 가족은 그들이 속해 있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무관하게 그 정책의 영향을 받는 것일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면, 개인이 속해 있는 가족을 넘어서는 조직들, 특히 기업을 국가 및 개인과 함께 초저출산화의 핵심적인 행위자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역할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경우로 육아휴직제를 들 수 있는데, 현재 한국에서 마련되어 있는 이에 대한 법적 기반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큰 질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제의 이용률, 직장 복귀율, 재취업률 등은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차이도 여전히 크다. 이에 대한 이유로 국가의 제도적 유인책이 형식적이고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육아휴직제의 확산이 이윤 극대화라는 기업의 지상 과제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로 많은 연구들이 육아휴직제의 활용은 노동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동시에 생산성 또한 증가시킨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하나의 예에 불과하기는 하나, 기업이 출생 친화적인(pronatalist) 정책에 부응해야 한다는 요구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측면에서만 타당한 것이 아니다. 이들 정책에 대한 기업의 적극적 활용은 이윤추구 행위의 시간적 지평(time horizon)을 넓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즉 소비자층의 재생산에 기여함으로써 시장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전략적 측면에서도 타당하다고 하겠다.



즉각적 대응 정책과 구조적 변환 정책

2000년대 이후 시행되어 온 초저출산화 관련 정책들의 효과성(effectiveness)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회의적인 평가는 초기 정책들에 내재하고 있던 암묵적인 가정들이 가부장제적이고 성차별적이라는 점과 함께 관련 정책의 입안 및 시행에 대한 책임성(accountability)이 부재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 결과, 천문학적인 예산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계속 하락해 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들 정책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은 보다 합리적인 평가를 위해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다른 중요한 질문들을 놓치고 있다. 첫째, 초저출산화 관련 정책들의 전반적인 비효과성은 개별 정책이 대체로 모두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정책들이 부정적인 효과를 낳거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 다른 정책들에 의해서 압도된 결과인가? 둘째, 초저출산화를 초래한 사회, 경제, 문화적 요인들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부족했던 초기 정책 입안 단계에서 어떠한 정책들이 우선적으로 활용 가능했는가? 셋째, 만약 지금까지 실행되어 온 초저출산화 관련 정책들이 부재했다면 출산율은 현재 수준보다 더 낮아지지는 않았을까? 


이들 질문에 대한 고찰은 현금 및 현물 지원 등과 같은 즉각적인 대응 정책들이 통상적인 이해와는 달리 초저출산화의 진행 속도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 왔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실제로 인과 추론 방법론에 입각한 연구들은 이들 정책이 크지는 않지만 나름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반면 현재 설계되고 시행되고 있는 초저출산화 관련 정책들은 구조적 변환 정책, 즉 보육, 노동, 주택, 산업 등과 같이 사회경제적인 차원의 재구조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들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정책의 방향성이 가지는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책은 장기간에 걸친 예산 투입과 일관성 있는 실행 능력이 요구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고민해야 할 문제는 ‘구조적 변환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함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약한 고리들을 어떠한 즉각적 대응 정책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설파했듯이, “종국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고 없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화를 이해하고자 할 때 대안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관점 몇 가지를 소개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개인의 사회경제적 생애 과정에 걸쳐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출산 및 양육 행위에 국가와 개인 및 가족을 매개하는 조직들의 역할을 증대시키며, 출생 및 양육에 대한 사회-중심적(society-centered) 접근을 강조할 필요가 있음을 잠정적으로나마 합의하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제시해 볼 수 있겠다. 이는 결국 출산 행위에 친화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인식에 기반할 때 실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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