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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진화, 양자역학 그리고 의료인공지능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2-24

진화, 양자역학 그리고 의료인공지능

전기전자공학과 황도식 교수



생각의 단상 : 진화, 양자역학 그리고 의료인공지능

나는 요즘 진화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또한 양자역학에 관한 책도 읽고 있다. 나는 의료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이다. 진화와 양자역학이 의료인공지능하고 연관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적어도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그런데도, 의료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는 나로서는 진화와 양자역학 책자에 저절로 손이 가고 있다. 왠지 모르게 흥미가 가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처음에는 의식하지 않고 진화에 관한 책을 찾게 됐다. Evolution! 대학 초년기 때 창조와 진화의 대립적 관점에서 혈기왕성한 젊음의 지적 호기심으로 빠져들었던 진화! 얼마나 흥미로운 이론인가!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수십억 년이 넘는 영겁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찰나의 존재인 사람이 흡입해 소화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이었던 진화. 그런 진화에 요즘 다시 손이 가는 것은 의료인공지능을 개발함에 있어서 묘한 동질감을 느껴서인 것 같다. 컴퓨터과학으로서의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적용하는 의료인공지능 영역에 있다 보니 좀 더 생명이라는 것에 관심이 가게 된다. 



인공지능과 인공신경망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딥러닝으로 대변되는 인공지능 자체는 개념적으로는 인공적인 신경들의 집합체이다. 실제 생명체에서 관찰되는 신경의 기능을 수학적으로 모사해 프로그램으로 만든 인공신경들을 한데 모아둔 것이다. 복잡하게 연결을 하면 그것이 네트워크가 돼 소위 인공신경망이 된다. 그 인공신경망 속에서의 신경들이 실제 생명체의 뇌에서처럼 깊은 층을 형성하도록 만들게 되면 그것이 ‘딥’한 신경망이 되고, 이를 기반으로 학습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딥러닝이다. 


딥러닝에서 학습을 한다는 것은 인공신경망에 많은 학습 데이터를 제공해 인공신경망 스스로 각 신경들 간의 연결 강도를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최적으로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들 간의 연결 강도는 개발자가 직접 설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학습 데이터로부터 손실 함수(loss)와 역전파(backpropagation)로 수행되는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과정 속에서 인공신경망이 스스로 정하게 된다. 하나의 생명체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능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학습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시행착오를 많이 거칠수록 그 인공신경망의 지능은 더욱 진화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유전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생명체 진화의 방식을 모사한 알고리즘 중의 하나이다.        



의료인공지능 : 인공신경망의 진화

인공신경망의 구조적인 면에 있어서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 여러 인공신경들이 단순히 쌓여있는 다층퍼셉트론(multi-layer perceptron) 구조에서부터, 동물이 시각 정보를 이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의 컨볼루션(convolutional) 신경망, 정보를 융합하면서 분석 영역을 넓히는 풀링(pooling) 구조, 선후관계를 파악하는 순환신경망 등 다양한 신경망 구조들이 개발됐다. 이러한 각각의 신경망 구조들은 독립적으로 개발됐다기보다는, 마치 생명체의 진화처럼 기본적 요소들이 발전하면서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고, 특화된 기능을 갖게 된 신경망이 다른 신경망과 결합해 보다 강력하고 생명력 있는 융합된 신경망을 형성하기도 했다. 


Xray, CT, MRI 등과 같은 의료 영상 분석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의료인공지능 네트워크인 U 신경망(U-net)은 이러한 융합신경망의 대표적인 예이다. U 신경망은 인체 내부를 보여주고 있는 의료 영상에서 인체의 각 장기 부분을 인식하고 분할하는 데 최적화돼 있는데, 이는 신경망이 넓은 영역을 볼 수 있는 능력의 구조와 국소적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의 구조가 융합되는 형태로 진화된 것이었고, 또한 상세한 분할 능력을 얻기 위해서 얕은 층(shallow layer)의 신경들이 깊은 층(deep layer)의 신경들과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 형태로 진화됐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러한 구조적인 변화가 생명체의 진화처럼 인공신경망 스스로가 이루어낸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장기간 여러 연구자들의 노력을 거치면서 발전한 것이었지만, 그 변화되는 형태와 융합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새로운 인공신경망이 탄생하는 이러한 모습이 생명체의 진화를 연상시킨다.





의료인공지능 : 환경에의 적응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는 인공신경망의 진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연구실의 뛰어난 박사과정 학생이 개발한 의료인공지능 신경망 중에 ‘KIKI-net’이라는 인공신경망이 있다. 이 KIKI 신경망은 MRI 영상을 만들어 내는 의료인공지능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진화의 방향을 결정했다. MRI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자기장의 주파수 정보에 기반을 둬 영상을 생성해 내는 의료영상 시스템이다. 이러한 주파수 정보가 표현되는 도메인을 ‘k-space’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많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었던 대부분의 인공신경망들은 일반적인 영상 도메인이라는 환경에 적응한 신경망들뿐이었다. 따라서 MRI 영상 생성에 있어서는 다소 부족한 부분들이 존재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출된 KIKI 신경망은, k-space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인공신경들을 적응하게 해 새로운 형태의 인공신경망인 K 신경망이 개발됐고, 이러한 K 신경망이 기존의 I 신경망과 융합돼 좀 더 생명력이 강한 KIKI 신경망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다른 환경에의 적응력은 의료인공지능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지 않은 의료 데이터의 조건 속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도메인 적응(domain adaptation)이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인공신경망의 적응 능력이 중요하게 연구되고 있는데, 최근 의료인공지능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회인 MICCAI라는 학회에서 교차도메인 적응 챌린지가 열렸다. (우리 연구실의 학생들도 팀을 결성해 세계의 많은 팀들과 경쟁을 했는데 최종 1위를 차지했다). 


이 챌린지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A라는 도메인에서 학습된 인공신경망을 비지도 학습 개념으로 B라는 도메인에 적응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B 도메인에서는 추가로 학습할 수 있는 해답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 인공신경망은 어떻게 변화돼야 할까? 혹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정해진 답은 없다. 단지 진화의 관점에서 A 도메인과 B 도메인의 유사성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인공신경망의 한 부분을 특화시키거나 혹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기능을 가진 신경망을 도입해 융합된 형태로 그 적응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연구팀에서는 챌린지에서 목표로 하는 특정 장기에 특화되는 ‘target-aware translation’신경망을 발전시켰고, A 도메인과 B 도메인의 간극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CycleGAN’이라는 신경망을 도입해 융합된 형태의 인공신경망으로 진화시켜 이 챌린지에서 최종 적자(適者)로 살아남게 됐다.




의료인공지능 : 불확정성과 융합을 통한 새로운 환경 적응

진화에 관련된 책을 읽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서 혹은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환경에 맞는 자체적인 기능의 변화와, 다른 개체 혹은 다른 기능적 요소들과의 융합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국내에서 열린 또 다른 의료인공지능 챌린지(캡슐내시경 의료 분석)에서는 이러한 개념으로 여러 인공신경망 개체들을 융합하는 형태로 진화를 시켜서 많은 팀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적자생존을 했는데, 각각의 인공신경망 개체들의 성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여러 개체들이 최적의 형태로 융합됐을 때 다른 종족(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환경의 조건이 열악하고 주위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진화 형태가 살아남는 데 도움을 준다. 어찌 보면 인공지능이라는 미래 환경에서는, 예측 가능한 거시적이고 고전적인 역학의 관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끊임없는 예측 불허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가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인 의료인공지능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연구실 밖에서의 짤막한 독서의 즐거움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다.                   


 

vol.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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