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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2-23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승부를 가르는 파워 히터 기아타이거즈 외야수 나성범 선수(체육교육학 08)



한국을 대표하는 파워 히터  

야구는 그저 스포츠가 아닌, 인생에 자주 비유된다. 9이닝 동안 던지는 공과 맞추는 공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때로는 찰나의 타격으로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홈런 한 방에 희비가 엇갈린다. 시시때때로 맞닥뜨리는 위기 속에서 명승부가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게임이 끝나면 다시 또 예측할 수 없는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그 승부 속에 있는 선수들은 무수한 실패 속에서 성장한다.


한국 야구계의 파워 히터로, 간판 스타인 나성범 선수는 한 경기 한 경기 늘 새로운 경기를 준비하며 성장하는 선수다. 지난해까지 프로 데뷔 후 9시즌 동안 총 212개의 홈런을 날렸다. 파워 히터로서 장타력뿐만 아니라 정확한 송구 능력, 정확한 타격, 빠른 발,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5툴 플레이어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단지 타고난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야구 자체가 삶인, 그의 매일매일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에게 매 경기는 늘 다시 시작되는 하루하루의 일상이다.



연고전의 수호신 

연세인들에게 가을은 연고전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 하면 연고전이 열리는 잠실구장에 모여 응원가를 부르던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사실 나성범 선수는 연고전의 수호신이라 불렸다. 두 학교 간 자존심을 건 승부에서 신입생으로 선발투수에 섰던 나성범 선수는 이후 졸업 때까지 4년간 연고전 마운드에 섰다. 진흥고 재학 시절 우리 대학교 야구부로부터 먼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만큼 출중한 실력을 갖췄던 그였다. 2008년 연고전에 선발 등판한 나성범 선수는 9와 1/3이닝 동안 방어율 0.96에 10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9:2 완승을 거뒀다. 그의 호투 덕분에 4년간 2승 1무 1패의 결과를 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든 경기가 그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 경기 한 경기 모두 의미가 있었어요. 사실 운동부를 제외한 학생들에게 연고전은 축제잖아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축제가 아니었어요. 질 수 없는 승부였지요. 연고전을 대비해 한여름에 전지훈련까지 갔을 정도니까요. 부담감이 너무 컸죠. 당시 고대 야구부에는 현재 SSG랜더스에 있는 문승원 투수, 두산베어스의 윤명준 투수 등 실력 있는 투수들과 김재율, 홍재호, 박세혁 등 타선도 막강했어요. 그래서 더 뿌듯했던 승부들이었어요.” 


당시 우리 야구부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했지만 나성범 선수의 맹활약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실제 고려대 타자들이 나성범 선수의 직구를 공략하기 위해 합숙훈련 과정에서 피칭 머신의 속도를 160에 맞춰 놓고 연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기도 하다. 대학 야구 시절부터 슈퍼스타, 이른바 ‘나스타’였지만 그는 함께 땀 흘리며 준비한 팀 동료들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4년 내내 제가 마운드에 섰는데 다른 동료들에게 기회가 더 돌아갔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연고전은 학창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무대인데 그때의 그 긴장과 감동을 더 많은 동료들이 경험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해서요.”




우리 대학교 야구부 시절부터 NC다이노스, 기아타이거즈에 이르기까지 나성범 선수는 등번호 47번을 유지하고 있다.




좌완 투수에서 파워 히터로의 깜짝 변신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좌완 투수는 지옥에서도 모셔온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좌완 투수는 흔치 않고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선수로 주목받는다. 나성범 선수는 좌완인 데다 시속 150km의 구속을 자랑하는 투수로 대학 시절 내내 이름을 날렸다. 그 스스로도 투수로서의 포지션에 미래를 걸었다. 하지만 졸업 후 NC다이노스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면서 구단의 요청으로 과감하게 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한다. 당시 NC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저도 당황스러웠어요. 그전까지 투수 외 포지션은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대학 1, 2학년 때까지는 투수와 타자를 병행하기도 했지만 메인은 투수였어요. 선발 투수를 꿈꾸며 프로 지명을 받고 왔는데 타자로 포지션 변경을 권유할 거라는 말이 흘러나왔고, 김경문 감독님을 만나 뵙기 전까지만 해도 투수로서의 제 의견을 말씀드려야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감독님 면담을 하면서 설득이 됐죠. 며칠에 한 번씩 등판하는 투수보다는 매일매일 경기를 뛰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스타플레이어가 팀에 필요하고 그 역할을 제가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감독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를 선택해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워주시겠다는 제안이 너무 감사했어요. 신인인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명장을 믿고 따라가 보자는 마음이 들었죠.” 


이승엽, 추신수, 이대호 선수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더 큰 성공을 거둔 선수들이다. 김경문 감독은 당시 나성범 선수가 “타자로서 체격이 좋고 빠른 발과 강한 어깨도 갖췄다. 호타 준족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나성범 선수는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주는 감독을 믿고 훈련에 매진했다. 


물론 변신의 과정은 힘들었다. 투수가 쓰는 근육과 타자가 쓰는 근육은 다르고, 그래서 훈련 방식 자체도 너무 달랐다. 타자는 공을 치고, 달리고, 던지는 역할을 모두 다 해야 하니 훈련해야 할 것도 더 많았다. 수없이 타격 연습을 하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찢어지는 일은 예사였다. 하지만 타자로 지명받아 선수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그는 입단 후 1년 만에 타자 포지션 변경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타자 전향 2년 차인 2013시즌에 104경기 출장, 404타수 98안타 14홈런 64타점 타율 2할 4푼 3리를 기록했다. 연습 벌레 나성범 선수는 매해 성장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는 간판스타, ‘다이노스의 심장’으로 불리게 됐다.





부상을 이긴 단단한 회복력, 화려한 부활 

나성범 선수는 모든 일에 흔들림이 없는 편이다. 힘든 타격 훈련을 할 때도,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단점보다는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2019년은 그에게 야구 선수로서 위태로운 시기였다. 시즌 초기, 3할 후반의 타율에 타격 페이스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23경기 출전, 막 통산 1,000안타를 치자마자 다음 주루플레이에서 무릎이 꺾였고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과 연골판 부분 파열로 수술을 받게 됐다. 아직도 그 아찔한 순간이 생생하다. 


“약간의 타박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병원에 실려 갔어요. 생각보다 무릎이 많이 붓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MRI를 찍고 트레이너가 결과를 보고 왔는데 표정을 보니 단박에 ‘심각한 상황이구나’, ‘시즌 아웃이구나’ 알겠더라고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하지만 5분 정도 후에 수술 일정, 재활 계획 등 빨리 해야 할 일들을 트레이너와 상의했죠.”


당시 위기 상황에 평소처럼 재빠르고 ‘쿨’하게 대처했다는 그였지만 사실 부상당했던 순간보다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울증이 올 정도로 힘들었다. 경기를 뛸 수 없다는 사실에 다른 경기를 보는 것도 한동안 할 수 없었다. 시즌 시범 경기부터 내복사근 부상을 입고 빠르게 재활해 복귀한 후였던 데다, 2019년 시즌이 끝난 후 추진하려던 MLB 진출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마저 인정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수술하고 나서부터 우울했어요. 다른 시즌보다 준비도 철저하게 했고 그래서 자신감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되돌릴 수 없으니까 재활에 집중했어요. 부상으로 인해 하고 싶은 운동을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경기를 뛰는 순간의 행복과 몸의 소중함도 알게 됐죠.”


팀의 주축 선수로서의 부상이었기에 팀과 팬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여러 걱정들 속에서 나성범 선수는 절실함을 가지고 긴 재활을 끝내고 몸을 다시 만들었고 2020년 시즌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즌 전 평가전에서 홈런을 터트리는 것으로 그는 화려하게 복귀했다. 활약은 이어져 2020시즌 NC다이노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하는 데 주축이 됐다. 무릎 부상 후 바로 다음 시즌에 이뤄낸 승리였기에 그에게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된다. 





야구계의 모범생, 기본에 충실한 야구 인생 

야구계에서 그는 실력과 성실함을 갖춘 선수로, 프로 선수들 중에서도 자기 관리가 뛰어난 선수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자기 관리란 특별히 애써서 신경쓰는 것이라기보다는 삶 그 자체다. 


“저는 특별히 자기 관리를 한다기보다는,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안 한다고 해서 잘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저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안 좋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단순히는 술, 담배 같은 것도 그렇고요. 잠깐의 스트레스 해소용일 수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계속 찾게 될 거예요. 그저 삼시 세끼 밥 잘 챙겨 먹고 매일 해야 할 것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전부예요.”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 터. 그러나 나성범 선수에게는 오랜 시간 몸에 밴 모범 선수의 생활 방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성범 선수는 다른 선수들처럼 불필요한 징크스나 게임 전 루틴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는 ‘야구 자체가 삶이자 루틴’이라고 말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충실하게 사는 것. 그래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게임에 맞게 최선을 다하고 흔들림 없이 타석에 선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큰 행복  

나성범 선수는 운동과 가족밖에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가족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인생의 매 순간, 매 고비마다 가족이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꼽는 프로 선수로서 가장 큰 아쉬움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 동문으로 야구를 하며 서로에게 든든한 의지가 돼 온 형 나성용 코치(체육교육학 07), 어린 시절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야구하는 아들을 위해 아낌없이 지지하고 지원해 주신 부모님의 지원은 늘 감사할 뿐이다. 연세 동문이기도 한 아내는 부상으로 재활을 하는 긴 시간 곁에서 가장 큰 힘이 돼 줬다. 


“가족이 없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르죠. 제가 부상을 당했을 때, 아내가 곁에서 많은 힘이 됐어요. 그런 힘든 과정을 봐서인지, 아내는 아들이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해도, 반대할 거라고 하네요. 가족과 함께하는 게 제 삶이고 가장 큰 행복입니다. 먼 일이지만 훗날 은퇴 후에는 그간 못했던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순간들을 지켜보며 그는 한편으로 사회의 아프고 힘든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기부를 해 왔으며, 얼마 전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스포츠 인재 양성, 환아 의료비 지원 기금 등을 후원해 고액 후원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또 다른 가족이 돼 준 것이다. 앞으로도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선한 영향력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또 다른 게임이 시작된다 

나성범 선수는 올 2월, 창단 멤버이자 핵심 멤버로, 또 팀의 구심점으로 아홉 시즌 동안이나 몸담아 온 NC다이노스를 떠나 기아타이거즈로 이적했다. NC다이노스 팀의 연고지인 창원에 집을 살 만큼 떠나고 싶지 않았던 팀이었고, 팀 역시 그를 원했지만 결국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FA로 풀린 이후부터 그의 향방은 야구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그의 선택에 언론에서는 역대 최고 수준의 이적료가 화제가 됐지만, 그는 그답게 자신을 더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사실 잠을 못 이룰 만큼 고민이 많았어요. 오랫동안 NC다이노스와 제2의 고향이라고 할 만큼 창원 지역에 대한 마음이 컸거든요. 하지만 결론은 저를 정말 필요로 하는 곳, 그 하나만 생각했어요. 단장님과 대화를 하면서 기아타이거즈에서 그런 확신, ‘느낌표’를 줬고 그래서 합류를 결정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기아타이거즈 스프링캠프. 이번 시즌 1군 훈련장은 함평 챌린저스필드에 차려졌다. 광주 지역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지만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내내 다른 곳에서 활동했던 터라 아직은 낯설기도 하다. 나성범 선수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될 이곳에서 새 시즌을 위해 훈련에 집중하며 적응하고 있다. 강도 높은 훈련은 여전히 고되지만 컨디션은 아주 좋다. 이번 시즌에도 목표는 늘 그랬듯 팀의 우승이다. 여기에 큰 부상 없이 롱런하는 선수가 돼, 매 경기 타석에 서는 기쁨도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 또 다른 바람이다.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최선의 시간

운동선수의 삶이란 늘 쉽지 않다. 높은 연봉, 팬들의 함성, 승부의 짜릿함으로 빛나 보이지만 그것들은 수많은 노력과 인내의 시간들이 쌓여 이뤄지는 것이다. 나성범 선수는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흔한 이야기 같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가장 기본에 대한 조언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닥치게 마련이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무너질 수 있습니다.”


나성범 선수에게 대학 시절의 시간은 자신의 실력을 더 담금질할 수 있도록 해 준 기회였다. 프로 입단으로 직행하지 않았지만, 4년의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실력을 더 차근차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던, 그래서 더 강해질 수 있었던 시간이라 소중하다고 말한다. 강도 높은 훈련을 마치고 인터뷰에 임한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기 힘들 만큼 지쳤다고 말하면서도 내면의 강직함과 온화함을 내뿜었다. 다시 새로운 비상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그의 앞날이 하루하루 더 단단해지고 빛나기를 응원한다. 


 

vol.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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