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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게임을 바라보는 정치인/언론인/연구자의 시선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2-01-24

게임을 바라보는 정치인/언론인/연구자의 시선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



대통령 후보들의 갑작스러운 게임 사랑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선거 캠프에서는 이런저런 공약을 만들어 발표하느라 바쁘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분야가 게임이다. 지난 스무 번의 선거에서는 단 한 번도 논란의 핵심이 된 적이 없었던 주제이다. 캠프 내에 ‘게임특위’라는 조직을 만든 정당도 있고, 유명 게임 유튜브 채널에 후보가 직접 출연해서 게임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 후보도 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통령 후보들의 갑작스러운 게임 사랑은 여러모로 당혹스럽다.


그 과정에서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한 후보는 게임 전문 매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기업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영업 비밀 공개 의무화 등의 규제에 반대한다”며 “게임이용장애(중독)를 보이는 사용자들에 대한 예방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가 하루 만에 다급하게 번복했다. “게이머를 잡아 죽이겠다는 거냐”는 젊은이들의 댓글이 터져 나오자 ‘업무상 착오’라고 해명하며 “게임은 결코 질병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e스포츠를 관람하는 이벤트로 게이머들의 분노를 달래려 했다. 


서면 인터뷰 내용과 번복된 새 입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회사 편이냐, 소비자 편이냐 정도로 단순화하긴 어렵다.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고 비즈니스로서의 게임 산업에 주목하는 시각과, 유희적 측면을 강조하고 놀이문화로서의 게임에 방점을 찍는 시각의 차이이다. 게임 사랑을 중독이나 질병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는지, 아니면 등산이나 프로야구 관람 같은 일상적 여가문화로 바라보는지의 차이이다. 



언론에 나타난 게임의 이미지들

그런데 대통령 후보들의 게임 사랑이 당혹스러운 진짜 이유는, 각 캠프가 만들어내는 게임 서사가 그동안 정치·행정 부문이나 주류 언론이 게임을 다루던 방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선거 캠프에 있는 똑같은 사람들이 불과 몇 년 전에는 게임을 마약과, 게이머를 환자와 동일시하며 각종 규제 법안을 발의했던 사람들이다. 언론 보도 경향은 더욱 극명하다. ‘게임’과 가장 흔하게 짝패를 이루었던 단어들은 ‘질병’, ‘범죄’, ‘교육(계몽)’ 등이었다. 4년 전, 우리나라의 게임 관련 언론 보도를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 게임을 ‘(즐거운) 여가활동’으로 간주한 보도는 찾기 어려웠다.


2000~2017년 사이에 우리나라 주요 종합일간지 10개가 ‘게임’을 핵심적으로 다룬 사설을 쓴 사례가 딱 40번이었다. 빈도도 많은 편이 아니었으나, 그중 36건(90%)이 게임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고, 걱정하고, 대안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게임 중독’은 사설의 단골 메뉴였는데, ‘죽음 부른 게임 중독, 범정부적 대책 필요하다’, ‘묻지 마 살인 부르는 게임 중독’, ‘게임회사, 게임 중독으로 망친 청소년 못 본 체할 건가’, ‘청소년 게임 지옥, 업계의 사회적 책무 따져야’, ‘게임 중독 막아야 창조경제도 살아난다’, ‘청소년 도박·게임 중독은 방치하겠다는 것인가’ 등의 사설 제목들은 게임에 대한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시각을 짐작하게 한다. 게임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지 않은 네 편의 사설도 게임을 상찬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게임 산업 진흥과 수출 증대를 통해 ‘돈을 더 벌자’는 취지였을 뿐이다.


그러니 이번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주류사회(정치권, 메이저 언론, 대부분의 학계)의 게임 담론은 ‘문제점’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합리성·정상성의 반대, 건강·건전의 반대, 교육·윤리의 반대, 생산성·효율성의 반대 위치에 고정됐다. 산업, 경제, 시장, 수출, 국익 등의 개념과 만날 때는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으로 정의되기도 했으나, 이는 오로지 ‘게임물’이라는 ‘상품’의 의미를 가질 때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게임은 젊은 남성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통령 후보들의 게임 사랑은 사실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인식 변화가 아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게임을 좋아하는 유권자에 대한 구애 전략일 뿐이다. 효과적인 전략일지는 두고 봐야겠으나, 그 자체로 비난할 일은 못된다. 사실 ‘게임 문화’에는 철저하게 무심하고 오로지 ‘게임 산업’과 수출액만 강조하던 정치권이 드디어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즐기는 취미 활동이 있다면, 정치인들이 여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강력한 남근주의적 게임 문화는 점차 주변화되고 있고, 하위문화로서의 게임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여가문화로 바뀐 것도 분명한 사실인데, 여전히 이들이 생각하는 ‘전형적 게이머’는 10대, 20대 남성이다. 당연하게도, 젊은 남성들만 게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 남성들이라고 모두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게임과 남성 청년을 등식화시키는 것은 PC방이 여전히 게임 문화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시대착오적 믿음의 소산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해서 펴낸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PC 게임을 즐기는 비율은 41.0%인데 비해 모바일 게임 인구 비율은 64.8%이다. 게임 인구 중의 비율을 따져도 PC 게임 이용자는 57.6%, 모바일 게임 이용자는 90.9%이다. 스마트폰이 가장 대중적인 게임매체가 된 것이다. 가장 선호하는 게임매체를 하나만 선택하라는 문항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70% 가까이가 모바일 미디어를 골랐고, PC를 선택한 응답자는 25%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모바일 게임 이용자의 분포를 보면 성별이나 연령별 차이 없이 비교적 고르게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대 남성의 87.9%가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고 답했지만 이는 10대 여성 응답률 89.9%보다도 낮은 수치였고, 40대의 75.2%, 50대의 52.2%가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고 답해, 20대(75.6%)나 30대(63.2%)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도 않았다.


PC 게임에 한하자면 아직 10대, 20대 남성의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지만, 그마저도 과거에 비해 그리 압도적이지 않다. PC 게임을 즐긴다고 답한 비율이 남성은 67.9%, 여성은 45.9%였고, 젊은 층의 과반수(10대의 62.5%, 20대의 73.2%)가 PC 게임을 한다고 답했지만 30~60대도 절반 정도는 PC 게임을 한다고 답했다(30대 55.8%, 40대 51.4%, 50대 46.0%, 60대 53.8%). 그럼에도 왜 게임은 마치 10대, 20대 젊은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것일까? 


과잉 대표이다. 목소리가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짜 게이머’ 개념이 등장한다. 오타쿠 본성이 진하게 남아있는 ‘겜 부심’ 넘치는 소수가 스스로를 ‘진짜 게이머’로 자임하며, 지하철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캔디 깨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가짜 게이머’, 혹은 ‘캐주얼 게이머’라 폄훼한다. 게임에 진심인 이들이 있었기에 게임 산업과 문화가 발전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들의 커다란 목소리가 수면 아래의 변화들을 가리고 극단적 소수를 과잉 대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위 “메갈 묻은” 게임을 땅에 묻으려 애쓰는 소수의 몸짓이 게임 문화를 대표하는 풍경이 돼버리고, 대통령 후보들은 이 시대착오적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준다.



게이머와 게임 문화에 대한 진지한 연구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게임과 게이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도 냉철한 평가도 없기 때문이다.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관심 가진 이들은 많지 않았다. 특정 시기에 사회 성원 대다수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연구자들이 그 이유와 의미와 전망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실은 다소 달랐다. 국내 텔레비전 수상기가 백만 대를 넘어 TV 드라마나 쇼가 명실상부한 ‘대중문화’가 됐던 50년 전에도 TV 드라마를 ‘연구’한다는 것은 점잖지 못한, 학자가 관심을 갖기엔 지나치게 저속하다고 치부했던 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불과 10년 전의 게임 연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임의 중독성 실험이나 게임 산업의 발전 전략 정도만이 관심 있는 연구 주제가 됐다. 그 수많은 게이머들, 그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취향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게이머와 게임 문화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시작된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고, 게임을 제대로 아는 젊은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 결과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5~6년 전이다. 어려서부터 텔레비전을 끼고 살았던 세대가 팬심으로 공부를 하다가 ‘아카 팬(Aca-Fan; 대중문화의 열성적 팬이자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학자)’으로 성장하면서 텔레비전/대중문화 연구는 질적 도약을 이룬 바 있었다. 게임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에게 야단맞아가면서 게임을 즐기던 아동·청소년이 학자로 성장해 게임 문화 연구 성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게임 문화 연구가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최근의 게임 문화 연구들은 말한다. 10대 남성 청소년들이 PC방에 모여있는 모습을 온라인게임 종주국 한국의 전형적인 풍경으로 여겼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다. 집단성은 사라지고 대신 게임을 통한 ‘연결감’의 유지는 중요해졌다. ‘홀로 또 같이(alone together)’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게임 문화, 즉 혼자 게임을 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복잡한 인간관계 등으로 인한 피곤함에서는 벗어나면서도 혼자 있음으로써 생기는 외로움이나 무서움을 덜고 소속감으로 인한 이득은 취하는 모습이 보편화됐다. 개인화, 이동성, 파편화는 게임 문화의 새로운 양상으로 대두됐다. 혼자서, 짧은 조각 시간 동안, 많은 경우 교통수단 안에서 게임을 하는 양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스낵컬처’라고 명명되는 이 자투리 시간의 유희는 편하고 익숙한 지배적 문화가 됐다. 이제 게임은 지하철 안에서 잠깐 하고, TV 보면서도 할 수 있는 휴식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진짜 게이머’는 점점 주변화되고, 대신 캐주얼 게이머, 노년 게이머, 방치형 게이머가 늘어난다. 




게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정리해 보자. 게임은 최근까지도—마치 50년 전 텔레비전처럼—저속한 오락거리로 여겨졌다. 학술적 연구 대상이 될 가치도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그러했다. 학부모에게는 자식들의 진학과 출세를 가로막는 훼방꾼이었고, 언론에게는 온갖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기 편한 만악의 근원이었으며, 정책결정자들에게는 불량식품 같지만 짭짤한 수익을 내는 이상한 산업 분야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려보니 게임은 텔레비전보다 많은 인구가 좋아하는 여가가 됐고, 영화보다 큰 시장이 됐으며, 게이머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비자이자 유권자가 돼 있었다.


그러니 대통령 후보들이 화들짝 놀라 게임 사랑을 강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재래시장에 가서 어묵을 먹는 것보다 더 유권자들의 일상에 가까이 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게임문화에 대한 관심과 게이머에 대한 애정은 분명 좋은 일이다. 바뀐 세상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기특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애정하며 처절하게 노력하는 걸까? ‘게이머’를 10대, 20대 남성들과 동일시하고, 더 나아가 30대 이상의 중장년이나 여성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이 이상한 게임 사랑은 게임 문화의 변화상을 오해한 결과일 뿐 아니라 게이머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할 뿐이다.


게임과 게이머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이 선거에서의 표 한 장이 되는 현실은 서글픈 일이다. 물론 질병과 규제, 산업과 이윤의 시각으로만 보던 과거보다는 한 발 나아갔지만. 그보다는, 게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의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동력이 돼야 한다. 정치인이나 학자만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지난 학기에 《게임과 인종·젠더》라는 제목의 대학원 세미나를 진행한 바 있다. 디지털 게임을 기획·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현장을 분석하는 것은 이 시대의 민낯을 목격하는 작업이다. 젠더는 이미 우리나라 사회의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가 되었지만, 인종 문제 역시 머지않아 정치와 정책, 사회와 문화 현장의 거대한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게임 신(scene)은 젠더와 인종 문제, 그리고 세대와 계급 문제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이다. 이 현장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신성시할 필요도 없다. 더 열심히 관찰하고, 더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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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 교수는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로 대중문화 연구자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디지털 게임, 웹툰, 한류 등을 주제로 연구결과를 발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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