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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은하 형성의 비밀이 풀리나?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10-21

은하 형성의 비밀이 풀리나?

천문우주학과 이석영 교수



우주엔 정말 ‘천문학적’ 숫자의 천체가 있다. 우리의 삶에 직접 관여하는 태양계 내엔 하나의 별과 여덟 개의 행성, 백 개 이상의 위성과 수많은 작은 소행성이 있고, 이런 태양계가 우리 은하(Milky Way) 안에만 천억 개 정도 존재하며, 지금까지 파악된 은하(Galaxy)의 수는 천억 개가 넘는다. 어떤 은하들은 수백 개씩 모여서 은하단(Galaxy Cluster)의 도시를 이루고, 이런 은하단들이 끈으로 엮인 듯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우주거대구조(Filament)를 형성하기도 한다. 별, 은하, 은하단, 우주거대구조, 우주 자체를 포함해 이 모든 천체 중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은하다. 그 이유는 너무 부자연스럽게 생겼기 때문이다.


별과 은하단 그리고 우주는 대략 ‘구형 대칭체’로 모형 계산이 가능하다. 엄밀히 따지자면 꼭 구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천문학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은하는 다르다. 은하의 대부분은 우리 은하와 같이 나선은하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은 그림 1과 같다. 나선은하는 회전하는 거대한 원반이다. 위에서 보면 회전에 의해 형성된 멋진 나선팔이 여러 개 있고, 옆에서 보면 빈대떡처럼 납작한 원반 모양이다.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지 않다. 


눈 결정(Snowflake)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얼음 결정을 만드는 물의 원리에 따라 납작하면서도 위에서 보면 아름다운 패턴이 눈에 띈다. 수 밀리미터 크기의 눈 결정이 이런 기하학적 모습을 보인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가을 하늘에 구름이 이렇게 규칙적이되 납작한 모습을 보인다면 과학계가 모두 달려들어 기원을 밝힐 일이다. 하물며, 지구상 최고의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는 진공보다 천 배나 더 비어 있는 우주 공간에 홀로 떠있는 은하가 이렇게 희한한 모습을 띄고 있다면, 과학에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은하가 언제, 어떻게, 왜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천문학계의 최대 난제이다.


그림 1) 나선은하의 일반적인 모습(왼쪽 : NGC 4565 - 은하를 옆에서 본 모습 / 오른쪽 : NGC 5457 - 은하를 원반 위에서 본 모습)




21세기, 우주론적 이해의 시작

은하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우주론의 이해와 함께 다가왔다. 거대한 은하의 형성 과정을 이론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그 은하보다도 훨씬 큰 우주 공간에서 우주의 역사와 같이 긴 시간 동안 어떻게 물질이 뭉치고 흩어지는지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의 나이는 얼마인지, 우주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팽창해 왔는지, 암흑물질, 보통물질 등을 포함해 우주의 에너지 구성은 어떠한지 등 우주론적 이해가 선행돼야 하는데, 인류의 총체적인 우주론적 이해가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가능해졌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일찍이 1920년대 은하 관측(허블-르메트르 법칙)과 1960년대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을 통해 알게 됐다. 우주에 원자(Atom)로 구성된 보통물질 바리온(Baryon)보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질량을 가진 차가운 암흑물질(Cold Dark Matter)이 6배나 더 많다는 사실은 1930년대부터 1990년대 다양한 은하, 은하단 그리고 우주거대구조 관측을 통해 알게 됐다. 마지막으로 21세기가 시작하는 즈음엔 오늘날 우주 총에너지의 대부분이 암흑에너지 형태로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우주가 왜 ‘빅뱅’이라 불리는 큰 폭발과 함께 시작됐는지, 우주가 왜 그렇게 정교하게 ‘설계된 듯한’ 에너지 밀도를 갖는지, 또 실재한다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인지 등 굵직한 질문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재 많은 관측 자료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우주론적 이해, 즉 ‘조화모형(Concordance Model)’을 갖게 된 것이다. 


조화모형의 중요한 특성은 에너지 구성이다. 현재의 우주의 경우, 총에너지 밀도의 약 4%가 원자로 구성된 보통물질이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별, 은하, 기체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24%는 암흑물질, 그리고 72%는 암흑에너지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양은 다각적으로 비교적 일관성 있게 측정되고 있지만 그 정확한 정체를 모른다. 일반인들에게는 설득력이 없게 들리겠지만, 워낙 정황적 증거가 많이 발견되고 있어서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조화모형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증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배경복사 관측자료 때문이다. 




조화모형을 설명하는 우주배경복사

빅뱅 후 38만 년 시점에 절대온도 3천 도로 뜨거웠던 초기 우주가 품었던 빛 입자가 그 후로 우주가 천 배(부피로는 10억 배) 팽창한 후 오늘날 3도의 에너지를 가진 빛 ‘화석’으로 발견됐는데, 무수히 많이 발견된 이 우주배경복사가 조화모형을 지지한다.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는 초기 우주의 물질 밀도 분포를 알려준다. 그에 따르면, 우주가 지역별로 약 십만 분의 일 정도로 밀도 차이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우주의 물질 분포가 거의 균일했다는 것인데, 미세한 차이만 존재했다는 뜻이다. 


조화 모형에 의하면, 우주의 나이는 현재 대략 137억 년이다. 우주는 빅뱅 이후로 계속 팽창해 왔다. 은하 형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세 가지이다. 첫째, 우주가 태초에 어떤 밀도 분포를 가지고 시작했는가. 이는 우주배경복사가 알려주었다. 둘째, 우주가 얼마나 오랫동안 팽창해 왔는지, 즉 우주의 나이인데 이는 초기의 밀도 분포가 얼마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변해갈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우주가 어떤 양상으로 팽창해 왔는지, 즉 우주의 에너지 구성이다. 특히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성질과 양이다. 이에 따라, 똑같은 시간 동안 우주가 팽창하더라도, 물질이 더 쉽게 모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큰 눈사람을 만들려면 뭉치기 쉬운 눈이 많이 필요하듯, 큰 은하를 만들려면 중력 집결을 잘하는 찬 암흑물질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정보가 모두 은하 형성에 결정적인데, 이제 비로소 어느 정도 기댈 수 있는 우주론적 모형이 하나 마련되었으니, 이제 조화모형 우주가 어떻게 은하 형성을 제시하는지 살펴보자.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은하 형성 재현

우리 은하와 같은 큰 은하는 대략 그 크기가 지름 6만 광년인데, 이런 은하가 오늘날 존재하기까지 다양한 물질들이 다양한 우주의 구석구석에서 몰려들었다. 큰 은하의 형성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은하가 현재 차지하는 부피의 백만 배 정도 큰 영역에 대해 우주 초기부터 물질의 이동을 연구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2021년 600㎡ 넓이의, 서울의 천만 인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파악하려면, 지난 수만 년 동안 지구 전체 즉 5억㎡로부터의 인류의 이동을 알아봐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되도록 많은 은하를 재현해 내야 다양한 은하의 기원을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2014년에 ‘Eagle (영국-네덜란드)’, ‘Horizon-AGN (프랑스)’, ‘Illustris (독일-미국)’ 연구팀이 각각 독립적으로 한 변이 대략 3억 광년인 정육면체 우주 공간에서 어떻게 은하들이 탄생하는지 실험해 보았다. 이를 위해, 컴퓨터 코어 수천 개를 병렬화해 계산하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하고 1년이 넘는 계산을 수행했다. 그 결과 각 연구팀은 그들의 실험 우주 공간 내에서 십만여 개의 다양한 모습의 은하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인류가 은하의 기원을 파악한 것으로 기록된 순간이었다. 이를 통해 현재의 우주론적 이해가 은하 형성의 배경을 그럴싸하게 제시한다는 확인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 이들 모의실험은 워낙 큰 공간 안에 많은 은하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다 보니, 각 은하의 모습이나 성질이 정교하게 재현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한강 건너편의 건물들을 사진 찍다 보니, 어디에 무슨 건물이 있는지는 파악했는데, 그 건물들이 어떻게 지어지고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했다.


뉴호라이즌(New Horizon) 연구팀은 이렇게 탄생했다. 파리천체물리연구소와 우리 대학교의 국제공동연구팀은 2017년부터 3년 동안 4천8백 개 코어를 묶어서 병렬계산하는 슈퍼컴퓨팅을 수행해, 지름 6천만 광년의 상대적으로 작은 우주 공간 안에 2백여 개의 은하가 탄생하는 과정을 재현해 냈다. 이 실험의 공간 해상도는 100광년으로 이전의 세계 최고 해상도 은하 형성 실험보다 8배, 공간 해상도로는 5백 배 향상된 것이다. 




중력장에 의해 형성된 별과 은하

우주 초기의 처음 일이십억 년 동안은 우주의 질량을 지배하는 암흑물질의 중력 현상이 눈에 띈다. 원래는 미세한 밀도 차이만 있었지만, 긴 세월 동안 밀도가 높은 지역은 더욱 밀도가 높아진다. 중력과 시간의 조합은 실로 무섭다. 20억 년 정도 지난 우주의 곳곳에 암흑물질들이 중력 집결하여 중력장, 이른바 암흑헤일로(Dark Halo)라고 불리는 웅덩이를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암흑헤일로는 성장하고 우주에는 전에 없던 구조물들이 생긴다. 물론 눈이나 망원경에는 안 보이는 암흑물질 구조물이다. 어디로 갈지 갈피를 못 잡던 보통물질 기체는 이미 암흑물질이 파놓은 중력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미 건설된 도시를 향해 몰려드는 이방인들처럼. 


암흑헤일로 중심으로 몰려든 바리온 기체들은 그 당시 존재하던 단순한 원자의 다양한 에너지준위(Energy Level) 간의 천이(Transition)를 통해 차가워지고, 그 온도가 충분히 내려가면 별을 만든다. 태어난 별 중 몸집(질량)이 큰 것일수록 중심부 온도가 높아서 폭발적으로 핵융합을 하고 헬륨보다 무거운 복잡한 원소들을 만든다. 태양 질량보다 10배 이상 큰 별들은 천만 년 정도의 (천문학 개념 상) 극히 짧은 삶을 마치고 초신성과 같은 여러 종류의 폭발을 한다. 이때, 산소, 네온, 실리콘, 마그네슘, 철 등 온갖 무거운 원소들이 우주에 뿌려진다. 무거운 원소들은 전자를 많이 포함하므로 가능한 에너지 천이가 월등히 많아서 더 쉽게 차가워지기 때문에 무거운 원소가 포함된 새로운 기체는 별의 탄생도 더 쉽게 한다. 거의 폭주와 같은 이런 현상은 은하의 탄생을 초래한다. 




그림 2) 뉴호라이즌 모의실험으로 만들어진 200여 개 은하 중 하나. 오늘날 발견되는 그림 1의 실제 나선은하와 매우 닮았다. 

우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나선은하의 기원을 사실적으로 밝힌 셈이다.




이렇게 탄생한 원시은하는 정해지지 않은 혼란한 모습을 갖는다. 처음엔 워낙 기체가 여러 방향으로 들어오고, 뭉쳐진 기체들끼리 혼란스러운 충돌 병합을 하기 때문이다. 은하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계속 기체가 외부로부터 유입된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기체는 먼저 암흑헤일로 안으로 들어오고, 마치 비 오는 날 산길에서 빗물이 먼저 난 물길을 따라 내려오듯이, 먼저 유입된 기체의 발자취를 따라서 흘러들어온다. 은하마다 적은 수의 ‘물길’을 갖게 되는데, 그 벡터의 합은 완전히 상쇄되기 어렵고 어떤 방향성을 갖게 마련이다. 결국, 각지에서 모여든 기체는 은하에 도달한 후 벡터의 합에 따라 한 방향으로 회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회전하는 기체 원반에서 탄생하는 별들 또한 같은 각 운동량으로 회전을 하게 된다. 서울을 구성한 시민들은 수없이 많은 출신 지역이 있지만, 결국 뼈대가 되는 집단 몇 개가 오늘날 서울의 색깔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렇게 납작한 원반 모양을 띤 나선은하가 태어났다(그림 2). 지금까지 감상의 대상처럼 여겨져왔던 은하가 과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은하 형성의 비밀이 양파라면, 이제 첫 껍질이 벗겨진 느낌이다. 은하 중심에서 태양 질량의 수억 배에 달하는 블랙홀은 무슨 역할을 하는지, 기체가 모이면 도대체 어떤 효율로 별을 만드는지, 탄생한 별들은 은하와 어떤 에너지 순환 작용을 하는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직 많다. 지난 30여 년간 허블우주망원경(Hubble Space Telescope)은 ‘울트라딥필드(Ultra Deep Field) 프로젝트’를 통해 백억 년 전 존재하던 어린 은하를 발견했다. 이번 성탄절 전에 우주에 올라 허블우주망원경을 대체할 예정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은 훨씬 더 크고 성능이 뛰어나서 더 작고 어두운 천체를 더 상세히 볼 수 있다. 어쩌면, 빅뱅 후 1억 년밖에 안 된 어린 우주에서 실제로 은하가 처음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우리 연구팀의 은하 형성 모형이 가짜로 밝혀질까?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이미지 출처


그림 1) NGC 4565 (Howard Trottier)

http://annesastronomynews.com/photo-gallery-ii/galaxies-clusters/the-needle-galaxy-ngc-4565/


그림 1) NGC 5457 NASA/ESA (K. Kuntz, F. Bresolin, J. Trauger and others)

https://hubblesite.org/contents/media/images/2006/10/1865-Image.html?keyword=NGC%205457


그림 2) 연세대학교 은하진화 연구실(장재경, 이석영)



 

vol.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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