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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코로나19를 이겨내는 ‘한몸의식’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9-23

코로나19를 이겨내는 ‘한몸의식’

행정학과 최영준 교수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이 지체들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서로 지체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12장 4절-5절) 



코로나19와 심화되는 사회적 위험

코로나19가 1년 반을 넘어서면서 사회 곳곳에서의 신음과 고통의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오늘도 원룸을 빼 직원 월급을 주고 생애를 마감한 23년 차 자영업자의 소식으로 주일을 시작했다. 과도한 업무로 사망한 배달·택배기사들의 죽음이 한편에서 지속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삶의 희망을 접고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뒤에는 삶의 첫걸음을 막 시작한 10대와 20대의 조용한 죽음도 있다. 청아하고 맑은 연세 캠퍼스의 하늘이 민망하고 나의 안정된 직업과 소득이 문득문득 부끄러워지는 요즘이다.  


사회정책 연구자로서 작년 8월과 올해 5월에는 연구팀들과 같이 코로나 피해에 관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다양한 직업군 시민들을 만나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올해 5월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10% 이상 감소한 가구가 전체의 50%에 이르렀고, 본인이나 가구원 중 실업이나 무급휴직을 경험한 이들이 있는 가구가 25%가 넘었다. 돌봄 부담 증가를 경험한 가구는 약 27%, 사회적 관계 단절을 경험한 이들 역시 50%에 육박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렸다는 비중 역시 40% 정도가 됐다. K-방역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지만, 올해 5월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을 경험한 이들의 비중은 한국이 약 37%로, 조사된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위기의 비바람은 몰아치는데 우산은 허술하기만 했다. 기존 사회보장 제도는 정규직 중심으로 돼 있었지만, 위기를 심하게 경험했던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 비정규직은 기존 제도에도 상당 부분 배제돼 있었다. 실업이나 무급휴직을 경험한 가구 중 실업급여 등 기존 제도 혜택이나 이들을 위한 특별 재난지원금을 수혜한 경험은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2020년 동안 보건을 제외하고 국민들의 삶과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한 사회정책 비용으로 미국이나 일본 등이 GDP의 14% 정도를 사용하는 동안 우리는 3.8%만을 사용했을 뿐이다. 재정 안정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개인들이 위기 시에 국가가 나의 삶을 지켜준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개인들은 더욱 ‘부동산’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1997년 IMF 경제 위기가 우리에게 준 여러 숙제들을 아직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코로나19를 맞이했다. 그리고 숙제는 이제 이차방정식을 넘어 고차방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0.84라는 극심한 초저출산율은 청년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성공할 확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이들의 실패 뒤에 기다리고 있는 노인 빈곤, 젠더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는 노동시장,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주리라는 희망 속에 ‘무리함’을 감수하는 부모들과 힘겨워하는 아이들, 그리고 더욱 심화되는 서울 집중화 현상 속에 말라가는 지방과 농촌들. 지난 20년간 풀지 못했던 숙제들은 코로나19 시기 동안 더욱 난제화돼 가고 있다. IMF 경제 위기가 그러했듯이 코로나 경제 위기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새로운 문제들까지 던지며 향후 몇 십 년 동안 우리 사회를 괴롭힐지 모르겠다.



각자도생에서 ‘한몸의식’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고 나아가 이겨낼 수 있는 토대와 힘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 그 답의 출발은 ‘연대(solidarity)’에 있다. 연대는 쉽게 표현하면 성경 로마서에서 표현된 ‘한몸(one body)의식’이다. 우리가 서로 연결된 지체들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우리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른 기능을 함을 인정하지만, 서로 존재와 역할에 대한 인정(recognition)을 하는 것이다. 여성이 없이 남성이 있을 수 없고, 청년이 없이 노인이 있을 수 없으며, 농촌이 없이 도시만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좋은 사장님 없이 좋은 일자리가 있을 수 없고, 건강한 소비자 없이 건강한 기업이 가능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대한민국이 극빈의 강을 건너 풍요로운 사회로 진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몸의식’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만이 강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대를 만들어내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가격(price)’을 생산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가치(value)’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동등한 지지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에서 가격의 중요성이 큼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가격만을 집중하면서 희생됐던 자연환경, 돌봄 노동, 사회적 자본 등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낮추는 기후변화나 저출산 등의 역풍(backfire)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이윤을 당장 극대화할 수 있을지, GDP를 최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어떻게 우리가 소홀했던 사회적 가치들을 새롭게 인정하면서, 다양한 이들과 함께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연대의 첫 발자국이 될 것이다. ‘기후 카지노(The Climate Casino)’의 저자인 예일대학교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 교수는 탄소 배출에 대한 노력이 2050년까지는 비용이 클 수 있지만, 그 이후 더욱 큰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 추계한 바 있다. 가치에 대한 인정은 일보의 후퇴를 가져온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이보 혹은 삼보의 진전을 가져올 것이다.  


둘째, 내어놓음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선제적인 노력과 희생이 없이 연대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매일의 생활과 생계 자체가 전투와 같은 이들에게 먼저 희생을 요구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들은 이미 누군가의 편안함을 위해 희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시기 동안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누군가는 전혀 소득 감소 등의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재산을 증식하기도 했다. 연대를 위해서는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Success and Luck)’라는 책에서 경제학자인 로버트 H. 프랭크(Robert H. Frank)는 개인의 성공은 많은 행운으로 구성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필자 역시 우리 대학교 입학부터 교수가 되는 과정까지 놀라운 사연들로 가득하다. 태어난 가정 환경이 그렇고, 특정한 시대나 우연한 인연들, 절묘한 타이밍들, 그런 것들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에게 이러한 행운은 ‘은혜(gift)’이다. 가격표 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가 아닐까? 


셋째,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경제를 이끌고, 연대성이 높은 사회를 만들어낼 핵심 주체인 청년들에 대한 더욱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청년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청년들의 현실은 가슴 아프다. 작년 한 청년 대상 설문에서 10명 중 8명이 우울이나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한다는 응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주변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그리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향후 5년간 직업이나 소득이 안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10명 중 3명도 안 되는 청년만이 긍정적으로 답을 했다. 또한, 남성은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응답하고, 여성은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응답이 매우 높다. 결혼을 해야 하거나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응답에 남성은 60% 가까이, 여성은 80% 가까이가 부정적인 응답을 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함께’와 ‘협동’이 중요한 때이고, 그 어느 때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난제를 해결할 창의적이고 위험 감수 태도를 가진 청년들이 필요한 시기이지만, 우리 청년들은 한껏 웅크린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공멸이 아닌 공존의 시대로 

이 모든 연대에 대한 제안은 우리에게 낯설고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만큼 우려도 크다. 현재의 금전적 혜택이 아닌 장기적 가치에 대한 투자와 인정이 정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사회에 전달된-때로는 조세로 혹은 기부로- 그 재정이 제대로 사용돼 의도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청년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그들을 더 철없이 만들고, 투자가 아닌 더 큰 낭비가 되지는 않을까? 지난 20년 우리가 저출산이나 영세 자영업, 젠더 불평등을 풀어내지 못했던 논리도 이와 유사했다. 그랬기 때문에 항상 익숙한 방법을 벗어나지 못했고, 같은 길을 걸으면서 결과만 달라지기를 바라는 오류를 범해 왔다. 대전환기에는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다. 설령 이러한 한몸의식이 미래에 ‘가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옳다. 


정문을 걸어 들어 올 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요즘이다. 우리 대학교는 개교 이래로 어두운 시기에 항상 등불의 역할을 해 온 바 있다. 지금도 글로벌사회공헌원으로, 고등교육혁신원으로 섬김의 리더십을 선도적으로 실천하고, 교육하고 있으며, 동문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역할로 불을 밝히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현재가 자랑스럽다. 학생이 없는 교정이 계속되고, 연고전이 두 해 연속 취소되는 이 특별한 시기에 우리 연세인들이 공멸이 아닌 공존으로의 대전환에 앞장을 서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최영준 교수는 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East Asian Social Policy Research Network의 의장을 맡고 있다. 사회정책, 복지국가, 비교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다. 


 

vol.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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