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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신간 안내] 안용식 명예교수, 『대한제국관리, 일제식민지관리되다』 발간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9-03

안용식 명예교수, 『대한제국관리, 일제식민지관리되다』 발간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면서 일제식민지 관리로 신분이 바뀐 한말의 대한제국관리들



안용식 명예교수(행정학과)는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면서 돌연히 일제식민지 관리로 신분이 바뀐 한말의 대한제국관리들을 밝힌 『대한제국관리, 일제식민지관리되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병합 전의 전체 한말관리 중 43.7%에 달하는 2,928인의 대한제국관리가 일제관리가 됐음을 밝히고, 그들이 조선총독부 본부에는 얼마나 배치됐고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에 불과했으나 중추원의 구성은 어떠했는지, 하위직 관리였던 판임관들의 병합 후 임용과 승진은 어떠했는지, 한말의 고등관이었던 한국인을 일제는 어떻게 관리했는지, 일제가 한국인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이었던 도지사를 비롯해, 도참여관, 도사무관, 부윤, 군수, 총독부사무관 등에 한국인이 얼마나 임용됐는지를 알아보고자 했고 일제관리가 된 한국인들의 병합 시의 연령, 수학 정도를 찾아 정리했다.


안용식 명예교수는 1993년부터 일제 35년간의 한국인관리, 갑오개혁 이후의 한말관리에 대한 임면 상황을 정리했고, 2015년 이후에는 이들 자료들을 한데 묶어 『일제강점기 조선인관리』, 『갑오개혁 이후 병합전 한국인관리』를 발간한 바 있다.


이들 자료를 기초로 논문을 작성해 책 앞에 소개하고 대한제국관리로 일제관리가 된 사람들을 부록으로 모두 밝혔다. 병합을 강행하면서 식민초기에 한국인을 어떻게 이용하려 했는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제는 한국인을 총독부라는 통치기구에는 접근시키지도 않았다. 병합 시 총독부본부에 일본인이 462인(고등관 90인, 판임관 372인)이 배치된 데 반해 한국인은 19인(고등관 3인, 판임관 16인)뿐이었다. 그러니 한국인은 전적으로 지방에만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1910년 한국인 군수가 305인, 도부군주사 1,097인이 지방에 배치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위직이었던 판임관이라는 관직에만 있었던 한국인이 1,778인이나 되어 전에 2,928인의 60.7%에 달했다.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인으로 도지사를 지낸 사람이 35인이었고 도참여관이 62인, 도사무관과 도,부이사관을 지낸 사람이 51인, 부윤을 지낸 자가 3인, 군수를 지낸 자가 718인, 총독부사무관과 기사를 지낸 자는 20인이었다. 총독부에서 국장을 지낸 자가 2인이었는데 이들은 학무국장직에 한정했고 총독부에서 과장을 지낸 자가 3인이었지만 이들도 학무국 소속이었다. 식민지배를 위해 한국인에게 배려한 최대의 관직을 교육직에 한정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친일 인물들로 규정되는 중추원직에 한말의 관리들이 241인이나 됐고 이들 중 36인이 광복 시까지 그 직을 갖고 있었다. 병합 초 중추원부의장 1인, 고문 15인, 찬의 20인, 부찬의 43인, 도합 79인이 임명됐다. 궁내부대신을 제외한 내각총리대신(이완용), 내부대신(박제순), 탁지부대신(고영희), 학부대신(이용직), 농상공부대신(조중응) 등이 중추원직에 임명됐다.


안용식 명예교수는 “한말의 암울한 시절에 졸지에 세상이 바뀌는 순간 그때의 모습은 정말 어땠을까, 다른 것은 제쳐놓고 이 무렵의 한국인관리들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나, 일제관리로 관복을 바꿔 입은 우리의 한국인관리를 어떤 이는 부일한 자들로, 또 어떤 이는 변절한 자들로, 혹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자들로 보기도 하나 이 책에서는 그것을 가리기보다 나라가 망하기 전의 우리 조상이 나라가 망한 뒤에 어떻게 살았나는 알아보고자 한 것뿐”이라고 전했다.

 

vol.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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