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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가장 아름다운 동행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8-25

가장 아름다운 동행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의 대모,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의학 61)



척박한 국내 희귀질환 의료 현실의 1세대 개척자

2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희귀질환’. 내가, 혹은 우리 가족이 가진 질병이 무엇인지 이름조차 모르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적절한 진단과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아득함은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희귀질환의 종류는 8,000종이 넘지만 여전히 시장성이 없어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고 있으며, 너무 다양한 종류의 질병이 존재해 진단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현재 80만 명 이상 환자들의 수많은 희귀질환이 난치성 만성 질환으로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희귀질환은 유전성 질환으로 가족 내 재발, 대물림되는 경우가 있어 환자들은 공포와 아픔 속에서 살아간다. 


이들을 위해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을 헌신해 환자들을 보듬으며 희귀질환에 대한 척박한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끌어올린 이가 있다. 바로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현주 동문이다. 2019년 대한민국사회공헌 대상을 수상한 그는 우리나라 희귀질환 의학 분야의 개척자이자 환자들의 대모로 불린다. 



기초 의학에 대한 관심을 키운 캠퍼스 생활 

김현주 동문이 우리 대학교에 입학했던 것은 1961년. 의대에 진학하는 여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친가, 외가 쪽으로 의사가 많았던 환경, 여자라고 해서 의사가 되는 진로에 한계를 두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철학에 힘입어 우리 대학교 의학과를 선택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도전하고 싶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의대에는 전체 150명 중 한두 명 정도가 여학생일 정도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낮았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선배 중 한 분이 우리 대학교 의대를 입학한 후 제게 추천해 주셨어요. 우리 대학교는 여학생의 비율이 10퍼센트 정도가 된다고 하셨죠. 그 말을 듣고 개방적이고 앞서가는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등생으로 명문 중·고를 졸업한 김현주 동문은 의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변함없이 앞서갔다. 강의 시간 가장 집중하는 학생, 가장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으로 학문에 열중했다. 그런 그가 유전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홍석기 교수님의 생리학 강의를 들으면서다. 


“의대 졸업 후에는 두 가지 진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는 환자와 가족을 위해 진단, 처방, 치료 등을 하는 임상 의사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를 위한 교육자의 길이에요. 후자는 다시 생리학, 약학 등의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으로 나뉩니다. 저는 그 당시 미국에서 수련 후 귀국하신 홍석기 교수님의 열정적인 강의를 듣고 본과 2학년 때 학생 연구 스칼라십 대상자 2명 중 한 명에 선정돼, ‘저온에서의 신장기능 연구’에 대한 동물 실험에 참여하면서 기초의학 연구에 깊은 관심과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특히 어려서부터 자녀가 부모의 형질을 닮게 되는 현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기초의학 중 유전학을 연구하는 진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선진 의학유전학을 배우고, 성장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유전학에 대한 연구 저변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 김현주 동문은 선진 유전학을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섰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 의과대학의 유전적 희귀질환 대가로 이름난 임상유전학 전문가 오피츠 교수(Dr. Opitz)에게, 그분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어요.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니 소아과에서 먼저 임상 경험을 하고 유전학 코스를 밟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하셨죠. 그래서 ECFMG(Education Commission for Foreign Medical Graduates) 시험을 치러 통과하고 미국 다운스테이트 (Dawn State) 의과대학에서 소아과 수련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수련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적인 장벽,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과 맞서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난관은 오히려 그에게 ‘할 일이 있고, 의지가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그의 의지는 어떤 순간에도 발휘됐다.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고 늘 환자를 위해 빈틈없이 일하고자 애썼다.


“입원 환자가 열이 일정 정도까지 올라갔을 경우, 의사가 직접 진료하지 않고도 PRN 처방을 내리면 해열제를 처방할 수 있지만, 저는 간호사가 전화하면 밤이더라도 직접 가서 환자를 봤습니다. 내 환자를 내 눈으로 보고, 간호사의 기록을 직접 봐야 안심이 됐습니다. 유난하다는 말도 들었죠. 제가 남보다 성실해서라기보다는, 환자에 대한 관심과 그 당시 제 자신이 언어나 문화적으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간호사와 전화로만 소통하는 과정에서 제 판단이 잘못돼 환자가 피해 보지 않도록 실수를 최대한 줄이고 싶었습니다.” 


소아과에서 다운증후군, 근육병 등 다양한 유전질환 환자들을 경험한 김현주 동문은 계획했던 대로 뉴욕 마운트사이나이 의과대학(MT. Sinai School of Medicine)에서 의학유전학 특별연구원(펠로우십)이 돼 연수 과정을 밟고 전문의를 취득했다. 그가 공부하던 시기는 미국에서 유전학 발전이 급물살을 탈 때. 1970년도 미국에서는 산모의 양수 속을 떠다니는 세포를 배양해 염색체 이상 여부를 진단하는 ‘다운증후군 산전 진단 검사법’을 막 시작할 무렵이어서, 유전적 질환을 보유한 환자의 진단과 관리, 유전 상담 등을 아우르는 의학유전학(Medical Genetics) 연구가 매우 활발했고 주목받았다. 김현주 동문은 이 시기를 목격하고 그 변화를 몸소 체험했다. 또한 1982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의학유전학전문의 인증 제도가 도입됐고, 김현주 동문은 자격시험을 통과해 미국 제1대 의학유전학 전문의(Diplomate, A.B.M.G)와 Founding Fellow, Am. College of Medical Genetics (F.A.C.M.G) 자격증을 획득했다. 임상뿐만 아니라 연구, 교육까지 포함하는 전문의 이상의 자격이었다. 유전학의 발전을 이끌어 온 미국에서도 그는 개척자였던 셈. 김 동문이 현재까지 한국의 의학유전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시간이었다.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사회적 여건 조성에 헌신하다 

25살 미국으로 건너가 27년간 의사로서 또 교수로서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꾸리던 김현주 동문은 1994년 귀국을 결심했다. 당시 아주대학교에서 의과대학병원을 설립하며 우리 대학교 같은 과 동기이기도 한 남편 김효철 동문과 김현주 동문을 창립 멤버로 초빙한 것이다. 많은 고민 끝에 한국행을 결심한 김현주 동문은 아주대학교병원에 우리나라 최초의 유전학 클리닉을 개소했고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의학유전학과를 개설했다. 


의학유전학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당시, 클리닉에서 만난 수많은 희귀질환 환자들을 통해 그는 한국의 열악한 희귀질환 치료 현실을 알게 됐다. 희귀질환 환자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낮았고 전문 의료 인력이나 연구도 모자랐으며 정부의 문제 인식이나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52세에 돌아온 고국에서 김현주 동문은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행동해야 했다.


“아주대학교병원에서 고셔병 환아 한 명이 제 환자였습니다. 고셔병은 체내 필수 효소 중 클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가 결핍돼 발병하는 유전 질환인데, 이미 미국에서 1991년 효소 치료제가 개발됐었어요. 치료약은 있지만, 한국에서는 수입되지 않아 구할 수 없었습니다. 환아를 위해 미국으로 학회를 갈 때마다 보스턴에 있는 젠자임(Genzym) 제조회사에 직접 찾아가 약제를 구입해와서 치료를 시작했어요. 사실, 수입이 된다고 해도 일 년에 수억 원이 드는 고가의 치료비를 생각할 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있었다. SBS 박종성 PD의 관심으로 ‘고셔병을 앓는 아이들, 또 하나의 그늘’이 SBS ‘문성근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되면서 대중의 주목을 끌게 됐고, 이를 계기로 1998년 SBS와 함께 ‘사랑의 한 걸음’ 고셔병 환자를 위한 치료기금 ARS 모금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37만 명이 동참해 6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했고 미국 교포들은 2억 원의 후원금을 보내와 전국에 있는 고셔병 환자 12명 모두에게 치료를 지원할 수 있었다.

 

고셔병 환자뿐 아니라 수많은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이 김현주 동문을 찾았다. 저마다 가장 기본적인 지원과 정보, 진단, 치료에 토대가 없어 안타까운 사연은 끝이 없었다. 여러 고민 끝에 모든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사랑의 릴레이,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을’ 모금 캠페인이 2001년 4월 이어졌고, 희귀질환 환자들을 돕기 위한 민간 중심 비영리단체 ‘한국희귀질환연맹’이 설립됐다. 연맹은 2000년 5월부터 시작한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사회적 여건 조성’ 심포지엄을 10년 동안 개최하며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사회에 알렸다. 


덕분에 2001년 정부의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 사업이 시작됐고, 2006년 희귀질환 권역별 거점센터도 설립됐다. 그 과정에서 김현주 동문은 보건복지부, 국회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어디나 정보와 지식을 나누러 달려갔다. 정부의 의료비 지원은 2001년 4종에서 시작해 대상 희귀질환이 점점 늘어나 2021년 현재 지원 대상 질환이 1,100종으로 늘었다. 이를 통해 많은 희귀질환 환자들은 치료비 부담을 덜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환자와 환자 가족이 원하는 보다 실질적인 지원, ‘유전 상담’ 

김현주 동문의 사명감은 2011년 한국희귀질환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이 부족했다. 13년 동안 월급을 받으며 들었던 교수 연금의 퇴직 일시금 전액과, 어머니의 부의금까지 재단의 초석으로 기부한 김현주 동문의 의지와 그 뜻에 동참하는 인연들의 도움에 힘입어 재단이 출범, 현재 10주년을 맞았다. 연맹에서부터 희귀질환재단 설립까지 ‘사랑의 릴레이,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을…’ 뜻을 지켜왔으니, 올해로 한국에서 희귀질환 분야를 개척한 것은 20년째다. 연맹이 재단으로 바뀔 때, 김현주 동문은 많은 고민을 했다. 의례 다수 재단들이 하듯 기부금을 받아 돈으로 지원하는 일이 아닌,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에 나서기로 했다. 늘 그래왔지만, 또 매우 힘든 일이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일, 그러나 환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일. 김현주 동문의 답은 ‘유전 상담 서비스’였다. 


“한국희귀질환재단 설립은 연맹에서 10년간의 활동을 통해 파악한 ‘환자와 가족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변화였습니다. 무엇보다 희귀질환의 조기 진단과 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유전 상담을 지원하고 알리고자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서 의사는 환자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평균 5분 남짓입니다. 하지만 유전적인 요인이 대부분인 희귀질환에서는 최소 30분 이상의 전문적인 유전 상담이 필요합니다. 아직 수가코드조차 없는 유전 상담을 보험급여 없이 제공한다는 건 국내 의료 현장에서는 아직 기대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선진 의료 시스템에서는 유전 상담을 필수적인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1994년 아주대학교병원 유전학 클리닉에서부터 국내 최초로 유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 온 김현주 동문은 오래전부터 유전 상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지난 10년간 이를 재단의 주 목적 사업으로 삼아왔다. 유전 상담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유전 상담을 알리기 위해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교육 강좌, 유관 의료인을 위한 유전 상담 세미나도 병행하고 있다. 세미나 참여 환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 의하면 유전 상담에 대한 필요성은 97%, 유전 상담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95%, 질환 파악에 대한 도움은 94% 이상이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김현주 동문이 현장에서 경험한 유전 상담의 필요성은 이미 증명된 것이다. 


“정확한 유전 상담은 환자와 가족들의 비극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근육병을 가진 한 아이의 어머니와 유전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10여 년 동안 여러 병원을 다녀야 했고 결국 유전자 검사를 통해 ‘듀센형 근육병’이라는 희귀질환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병은 아들의 경우 50%의 재발병률을 가진다는 잘못된 정보로 이후 두 번의 임신에서 태아의 성별이 남아인 것을 알고 임신 중절을 하게 됐죠. 하지만 재단의 유전 상담 서비스 지원 사업으로 어머니의 유전자 검사 결과 어머니는 보인자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근육병은 돌연변이에 의해서 처음으로 발생된 것이었죠. 가족 내 재발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선제적으로 정확한 유전 상담이 이루어졌다면, 대물림에 대한 공포도, 건강한 두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비극도 없었을 겁니다.”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발병할 확률이 50%라면, 발병하지 않을 확률도 50%라는 김현주 동문의 확신. 그래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유전 상담은 가장 필요한 것’이라 다시 한번 강조한다. 현재까지 재단에서 진행한 3,000여 건의 유전 상담 서비스 지원 사업이 그 확신의 토대가 됐고 유전 상담을 통해 삶의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으며 예측하고 예방해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에 가장 도움이 되는 해결책이다. 



나눔과 희망이 확산되고 선순환 되길, '사랑의 릴레이,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을'

유전 상담은 전문의와 유전상담사가 한 팀을 이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다. 때문에 김현주 동문은 우리나라에 의학유전학 전문의 과정이 없던 시절, 의학유전학과를 개설하고 임상유전학 인증의 제도를 만들었으며 국내 최초로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전문 유전상담사 대학원 교육 과정을 개설,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대한의학유전학회에서 인증받은 임상유전학 전문의는 56명, 유전상담사는 54명에 이른다. 그가 20년 전부터 심은 씨앗이 이제 결실을 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환자와 가족의 필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문 인력, 그리고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 법제화까지, 김현주 동문은 희귀질환 치료의 틀을 마련하고 켜켜이 채워나갔다. 의학에 대한 믿음과 환자들을 향한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김현주 동문의 바람은 환자들에게 단순히 의료비를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유전 상담, 연구 활성화, 특수교육, 사회복지 등 보다 포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다. 유전 상담에 대한 보험 급여화 등을 통해 유전 상담 서비스가 정착되면, 유전상담사와 전문의가 팀을 이뤄 체계적인 유전 상담을 더 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사랑의 릴레이-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을’ 슬로건의 의미처럼 한 환자와 가족들이 또 다른 환자와 가족들을 지원하고 서로에게 희망을 주는 선순환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한 근육장애인이 쓴 글 중에, ‘누구나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중증의 희귀난치성 환자들에게 죽음은 일상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때문에 환자 자신과 가족은 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희귀질환이 대물림되는 경우 당사자나 부모의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고통은 배가 된다. 하지만 희귀질환의 대물림은 적절한 유전 상담과 유전자 검사로 예방이 가능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유전 상담이 활성화돼 환자와 가족들이 새로운 일상을 선택하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랑의 릴레이’를 통해서 그들이 수혜자를 넘어 다른 환자들의 조력자로, 환경을 개선하는 주체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 역시 되돌아보면 많은 선택의 기로, 어려운 순간들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 대학교 동문들을 비롯한 소중한 인연들이 동력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과제가 앞에 놓여 있지만 힘닿는 데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 또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우리 대학교 건학 정신의 바탕이 된 성경 문구는 김현주 동문이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환자와 가족들이 가진 질병으로부터 부담을 감소시키고 건강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의학은 분명 개인과 가족, 사회에 보탬이 되고,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소셜 사이언스(Social Science)’라고 단언하는 김현주 동문의 단단한 소명은 어쩌면 그의 삶을 관통하는 진리다. 때문에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가장 진실하고 아름다운 동행’으로서의 모습이 그를 주저함 없이 가장 자유롭게,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vol.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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