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세소식

[Academia] 일의 행복과 장인성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8-24

일의 행복과 장인성(匠人性)

교육학부 장원섭 교수



워라밸 열풍의 착각

‘워라밸’ 열풍이 불어닥쳤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줄인 말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직장인들의 일하는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중 하나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서 ‘주 52시간’까지로 노동 시간을 제한하겠는가? 일에 너무 치여 살아왔으니까 어떻게든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 전체적인 삶의 균형을 맞추는 건 꼭 필요하다. 개인의 삶은 일뿐만 아니라 일 이외의 영역인 가족이나 친구 관계, 여가, 자기계발 등과도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워라밸에 대해 두 가지 정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먼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용어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 말은 일과 삶을 대비시키고 저울질해 일이 늘어나면 삶이 줄어든다고 본다. 마치 일하는 동안은 삶을 살아가지 않는 시간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 그러나 일하는 시간도 삶의 소중한 일부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의 절반에 해당한다. 결국, 일인 삶과 일이 아닌 삶, 또는 일과 일 이외의 삶 사이의 균형이 더 바른 말이다. 


워라밸의 기저에 흐르는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의 워라밸 열풍은 마치 일은 불행이고 일 바깥에서만 행복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든 일을 줄여야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반쪽짜리 행복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일에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삶 전체가 온전히 행복할 수 있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카푸치노’ 비유를 들어서 일과 여가의 관계를 얘기했다. 카푸치노는 쓴 에스프레소 위에 달콤한 크림을 얹어서 만든다. 일은 쓴 에스프레소처럼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활동이다. 거기다 조직의 쓴맛까지 더해지면 더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달콤한 크림만을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여가나 놀이만으로 삶이 채워질 수는 없듯이 말이다. 에스프레소가 카푸치노의 기반인 것처럼 일은 삶의 토대이고 중심에 있다. 아무리 쓴맛이라도 그 풍미와 향을 느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거기에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고 성장하는 즐거움을 얻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삶 전체에서 일 이외의 다른 삶의 영역들과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일하는 삶이 ‘카페라테’와 같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카페라테는,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 거품을 수북하게 올린 카푸치노와는 달리, 그것들이 온통 뒤섞여있다. 커피의 진한 쓴맛보다는 우유의 부드러운 단맛을 더 많이 느끼게 한다. 점점 더 우리의 삶은 일과 여가, 배움, 사회관계, 가정생활 등이 분명하게 구분되기보다는 혼재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특히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재택근무의 확산은 언제 어디서나 일하는 삶이 되도록 만들었다. 일이 편재(ubiquity of work)하는 상황 속에서 이제는 더욱더 일을 삶에서 분리하거나 떼어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

‘일하기 싫어증’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람들은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일 안 하면서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물주가 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로부터 도피하는 방편이 되고, 더군다나 자라나는 세대의 꿈이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직장을 구하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힘겹게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일하는가?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많은 신입사원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어렵사리 구한 직장을 금세 떠난다. 소위 ‘괜찮은 일자리’를 얻었더라도 거기서도 어쩔 수 없이 힘든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몰랐거나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일은 ‘쓴맛’인데 말이다. 


직장인들 사이에는 ‘보람 따윈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달라’거나 ‘쥐꼬리만큼 월급 받았으니 쥐꼬리만큼만 일하고 앉아 있다가 얼른 튀어야지’라는 말도 퍼져있다. 그저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만 여긴다. 우리나라 직장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일을 생계 수단으로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을 그저 ‘돈 버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결과로, 일하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일이 가진 경제적 가치는 물론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일단 일을 해 먹고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은 생계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사회 참여와 기여 그리고 개인 성장과 자아실현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일이란 다른 사람을 위해 가치로운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제공하는 활동이다.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직업들치고 나쁜 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은 경제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여하기 마련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자선사업가가 되거나 성인군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로운 일을 한다. 자기 일에 충실한 것이 곧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여하는 길이 된다. 다만, 자신의 일이 얼마나 가치롭고 유의미한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벽돌 작업을 하는 석공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한 석공은 ‘보면 몰라요? 벽돌을 쌓고 있지요’라고 말한다. 또 다른 석공은 ‘먹고살려고 노동하지요’라고 대답한다. 반면에 다른 석공 한 명은 ‘성전을 짓고 있어요’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누가 더 행복할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라는 말은 사실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것을 조금 구체화하면 즐거움과 보람이 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재미와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하면서 그런 행복을 얻을 수는 없을까? 일에 열정을 쏟으며 재미를 느끼고, 일을 잘 해냄으로써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자기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면 기쁘고 보람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일에서 지식과 노하우를 더 많이 습득하며 더욱더 성장하게 된다. 이런 게 바로 행복하게 일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인의 일다운 일 

‘장인(匠人)’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전통의 계승자, 수공업자, 고집불통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장인을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장인은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고 시대착오적인 개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말하는 장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자기나 놋그릇을 만드는 전통적인 수공업자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 대신 현대적 장인을 말한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장인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자기 일을 철두철미하게 잘 해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저 사람은 진짜 장인이야’라며 감탄한다. 요리사든 영화배우든 의사든 IT 프로그래머든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그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다면 장인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장인을 ‘일터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장인은 일하는 사람의 전범(典範)으로서 일다운 일을 한다. 


일다운 일을 할 때 우리는 일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 일하는 이유가 오로지 돈만 많이 벌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비루한가. 누군가에 의해 관리와 통제를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한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일은 원래 쓴맛이긴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거기서 재미와 보람을 찾고 즐겁고 의미 있게 일할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장인에게 있어서 일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을 넘어선다. 처음에는 그렇게 일을 시작했을지라도 장인의 길을 가는 동안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발견하고 스스로 성장하며 종국에는 공동체에 기여하는 길로 이어진다. 장인은 일 그 자체의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에 일할 때 행복한 사람이다. 일에 몰입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그 일의 결과를 통해 보람을 얻는다. 일의 성과나 사회적 성공도 중요하지만, 장인은 일하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기에 더욱 행복하다.  


장인은 일로부터 도피하기보다는 일 그 자체에서 해방을 얻은 사람이다. 자신의 일에서 최고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갖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기 어렵다. 그래서 장인은 자신의 원칙과 리듬에 따라 일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으로 일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다. 일의 해방은 일에서 도피하거나 떨어져 있을 때가 아니라 일에 더욱 깊이 들어갔을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장인성(匠人性)을 위하여

일은 인간 삶의 기본적 활동이고 중심에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불리는 현재도 여전히 그렇다. 다만, 일의 개념과 세계는 그 양태가 달라져 왔고 미래에도 계속 달라질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 등을 기반으로 하는 자동화가 그 변화의 핵심이 될 것이다. 정형화된 일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사회에서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지식과 기술, 창조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더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협력하고 공감하는 동시에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의미 있게 일하는 것(meaningful work)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일의 결과물을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은 스스로 일의 재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의 과정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자기 자신을 쏟아부으면서 열정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렇게 일할 때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인간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생산과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된다. 아주 작은 일이라고 여겨질지라도 정성을 다해 진심을 담아내고 스스로 의미를 찾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자신도 성장하는 일하기를 할 수 있다. 


나는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으로 ‘현대적 장인’을 제시한다. 한복, 도자기 같은 전통 분야와 보일러, 자동차, 양복, 제과 등 기능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변호사, 의사, IT 전문가, 조각가, 배우 등을 포함한 현대적 장인들의 일하고 배우는 삶에 대해 연구한 결과다. 이들이 하는 일의 내용과 업무를 수행하는 방법 등은 상당히 달랐지만, 자기 일을 대하는 태도와 일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한 특성을 나타냈다. 이러한 특성을 ‘장인성(匠人性)’이라고 명명했다. 장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장인 정신을 갖는 것을 넘어서, 장인성을 몸에 배게 하고 행동 습성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일한 결과는 당연히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인성은 성장에의 의지, 지독한 훈련, 일의 해방과 창조, 배움의 넓힘과 베풂, 정상 경험과 고원에서의 삶 같은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이런 특징들을 관통하는 핵심에는 끊임없는 자기 갱신과 성장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와 ‘아니말 라보란스(Animal Laborans)’를 구분했다. 호모 파베르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만들어 내며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떻게’뿐만 아니라 ‘왜’라는 사유를 한다. 손과 머리가 하나이며, 행동하면서 생각한다. 한마디로, 일에 몰입하는 태도와 ‘생각하는 손’을 지닌 장인으로서의 인간이다. ‘아니말 라보란스’로 단지 생계를 위해 노동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호모 파베르’로 의미 있고 행복하게 일할 것인가? 답은 분명하지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장원섭 교수는 교육과학대학 교육학부 교수로 일의 교육, 인적자원개발, 성인교육 등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vol. 630
웹진 PDF 다운로드

연세소식 신청방법

아래 신청서를 작성 후 news@yonsei.ac.kr로 보내주세요
신청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