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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더없이 웅장하고 부드러운 감동의 목소리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7-26

더없이 웅장하고 부드러운 감동의 목소리

BBC 카디프 콩쿠르 아리아 부문 한국인 최초 우승, 김기훈 바리톤(성악 10)


(Photograph: BBC /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전 세계를 사로잡은 목소리

지난 6월,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등용문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BBC Cardiff Singer of the World, 이하 BBC 콩쿠르)’ 아리아 부문에서 바리톤 김기훈 동문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김기훈 동문은 남들보다 늦게 성악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낮고 웅장하게 공명하며 부드럽고 섬세하게 펼쳐지는 그의 위엄 있는 목소리는 영국의 공영방송 BBC 채널을 통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늦깎이로 시작한 성악  

다수의 음악가들이 어린 시절부터 전공에 입문해 특별한 트레이닝을 거쳐 성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지난한 연습을 거치며 다듬고 또 다듬어 가장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김기훈 동문은 음악적인 인프라가 거의 없는 전남 곡성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성악을 시작했다. 평소 노래 부르는 것과 악기 다루는 것을 즐겨 밴드 활동을 하긴 했지만 성악을 전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교회의 성가대 세미나에서 우연히 그의 노래를 듣고 특별함을 알아챈 한 교수의 권유 덕분에 성악에 대한 재능을 뒤늦게야 발견했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숨은 원석 같았던 그는 전문가 테스트에서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것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고1까지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선생님과 마찰이 생겨 방황했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늘 물음표가 있었어요. 그러다 제가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 세미나에 오신 교수님이 제 노래를 듣고 성악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에 너무 놀라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성악 톤으로 노래할 줄은 알았지만, 그건 성악을 흉내 내는 개인기 정도로 여기고 있었어요. 진짜 재능인지 알고 싶었죠. 부모님께서는 성악을 전공하는 걸 결사반대하셨기 때문에 담판을 지어야 했어요. 테스트 받으러 가서 ‘노래 좀 한다’ 정도의 반응이라면 깨끗이 포기하겠다고 했지요. 대신 극찬을 받거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성악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칭찬을 듣고 레슨을 시작하게 됐죠.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에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진로를 결정한 후 그는 거의 매일 곡성에서 광주로 레슨을 받으러 오가며 치열하게 입시를 준비했고, 망설임 없이 우리 대학교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체험 프로그램으로 캠퍼스 견학을 왔다 반해버려 친구와 함께 “무조건 이곳에 입학하자.”고 다짐했던 터, 그 약속을 지키게 됐다. 



테너처럼 노래하라, 좌절을 이겨낼 수 있게 한 가르침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김기훈 동문. 이때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큰 슬럼프를 겪었다. 성대 결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성악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성악가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군대에서 노래도 하고, 악기도 다루고, 춤도 추는 등 할 줄 아는 것이 많다 보니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성대에 계속 무리가 갔고 결국 성대 결절이 일어났죠.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름 이런저런 노력을 했지만 점점 실력은 나빠졌어요. 성악을 놓아야 하나 싶었죠. 그때 김관동 교수님께서 큰 힘을 주셨어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죠. 테너처럼 노래하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소리가 제대로 안 나오니 제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더 무겁게, 더 힘주어 노래했는데 그게 더 문제였던 거죠. 교수님의 가르침대로 테너처럼 가볍게 부르는 연습을 하면서 목이 점점 나아지고 노래 실력도 좋아졌습니다.”


김기훈 동문은 캠퍼스 생활 중 많은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놀면서도 어떻게 하면 노래 실력을 더 쌓을까 함께 고민을 나눴고 또 부지런히 연습했다. 힘들었던 슬럼프를 극복해 내던 시간도, 세계적인 성악가를 꿈꾸며 실력을 다지는 시간도 모두 연습실에서 지났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실력을 갈고닦아 온 동료들을 뛰어넘어 수석으로 졸업했다. 또 우리 대학교와 하노버 슈타츠오퍼(하노버 국립 오페라극장) 간 교류 프로그램에 선발돼 연수를 받은 후 탁월한 1인에 한해 주어지는 하노버 국립극장 인턴 기회를 잡았다. 


“의례 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원 후 선발하고, 한 달간의 연수 후 최종 기회가 주어지는 ‘최후의 1인’이 됐죠. 그렇게 하노버 슈타츠오퍼에 1년간 채용되면서 독일에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조금 더 공부도 하고 싶어 극장 측에 석사 과정과 병행하겠다는 조건을 걸었어요. 갑자기 선발된 바람에 독일어를 할 줄도 모르는데 일과 공부를 병행하게 됐죠. 늘 사전을 들여다보고 먼저 말도 걸어보면서 언어 실력을 쌓았습니다.”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하노버 슈타츠오퍼에서 프로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경험은 그에게 고된 날들을 이겨낼 수 있는 동력이 됐다. 또 하노버 음대에서의 배움은 성악가에게 보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게 해줬다. 1년 후, 김기훈 동문은 하노버 슈타츠오퍼로부터 제안을 받고 솔리스트로 승격, ‘리골레토’, ‘살로메’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하노버 음대 석사과정은 만장일치 만점으로 졸업했으며 현재 동 대학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 탄탄한 음악성과 독보적인 소리의 질, 표현력까지 갖춘 김 동문은 2019/20년 시즌부터 프리랜서로 세계 무대에 올랐다. 



(Photograph: BBC /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세계 무대에 서다, 최고로 인정받다 

2019년 세계 무대에서 김기훈 동문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제16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남자 성악 부문 2위, 플라시도 도밍고 주최 오페랄리아 국제 성악 콩쿠르 2위 및 청중상을 연달아 수상한 것. 특히 마린스키 극장에서 개최된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는 김기훈 동문에게 잊지 못할 최고의 무대 중 하나다. 


“사실 모든 무대에서 부족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의 파이널 무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가곡과 아리아를 불러야 했는데 한 번도 러시아어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발음을 따라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를 했죠. 파이널 무대가 끝나자 박수와 환호 소리가 파도치며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어요. 인생 최고의 박수와 환호였습니다. 그 벅차오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심사위원과 평론가들은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가 생각난다. 그가 없는 이 세상에서 다시 우리를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호평을 쏟아냈다. 최고의 반응을 이끌어 낸 무대였기에 그가 2위로 호명되자 마린스키 극장 소속 가수들은 심사위원들에게 찾아가 왜 1위가 아닌지 항의할 정도였다. 준우승이라는 결과는 아쉬웠지만 큰 감동을 느꼈던 무대였다. 


그러나 그에게 최고 환희의 순간은 따로 있다. 바로 지난 6월 19일(현지 시각), 영국 웨일스에서 개최된 20회 BBC 카디프 콩쿠르 무대에서 아리아 부문 우승을 차지했던 때다. 2년마다 개최, BBC가 생중계하는 이 콩쿠르는 피아노 반주로 가곡을 부르는 ‘송 프라이즈’와 오케스트라 반주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메인 프라이즈’ 두 부문으로 나눠 경연한다.  


김 동문은 발군의 실력으로 아리아 부문에서 당당히 우승했다. 사실 그의 우승은 이미 1차 결선 무대에서 예견됐다. 그가 부르는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Mein Sehnen, mein Wähnen)’를 듣던 심사위원 중 2명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던 것. 그 두 명의 심사위원은 바로 세계적인 성악가 로버타 알렉산더(Roberta Alexander)와 닐 데이비스(Neal Davies)였다.


“심사위원 두 분이 제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걸 정작 저는 몰랐어요. 오히려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안 좋아 망했다 싶었죠. 다음날 영상을 본 후배가 알려줬습니다. 처음엔 믿지 않았어요. 영상을 돌려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하지만 컨디션이 오락가락해 목 상태가 좋지 않은 채로 결선 무대에 올라 우승은 예상 못했습니다. 콩쿠르가 끝난 후 두 분이 제게 ‘이미 본선에서 결선 1등을 당신으로 결정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큰 영광이었고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콩쿠르에서 각 무대가 끝날 때마다 성악가와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평가는 “쎄노메날레(fenomenale)!”라며 훌륭하다를 훨씬 넘어서는 경이로움을 의미하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으로 치러졌지만, 객석이 가득했다면 김기훈 동문은 분명 그간 경험한 것 이상의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거대한 소리로 아름답고 섬세하게 다양한 음악을 표현해 내는 김기훈 동문. 그의 노래에 전 세계가 매료됐다. 톱클래스 바리톤으로 그의 이름이 전 세계에 각인된 시간이었다. 



영감은 언제나 배움에서 나온다   

늘 무언가가 부족한 듯해 백 퍼센트 만족한 공연은 없다는 김기훈 동문. 그러나 스스로 완벽주의자는 아니라고 한다. 모든 음악가는 완벽을 추구할 뿐이라고. 큰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만큼 긴장도 많이 되지만 그는 완벽해지기 위해 특별한 루틴이나 징크스는 가지지 않으려 한다. 


“많은 음악가들이 피나는 연습과 함께 자신만의 루틴을 몇 개에서 수십 개까지 가지고 있어요. 스포츠 선수들도 마찬가지죠. 한 유명 테니스 선수는 물병을 보이게 놓거나 머리를 쓸어 올리는 타이밍이 정해져 있죠. 하지만 전 루틴을 만들면 저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켜야 할 루틴 중 어느 하나라도 뒤틀리면 끝이잖아요. 또 그게 오히려 핑곗거리가 될 것 같아요. 루틴 하나가 안 돼서 내가 못했다는 핑계가 생기면 너무 안이해질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간혹 찾아오는 슬럼프에도 위축되거나 좌절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또 성장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배울 점이 있다는 그. 실패뿐 아니라 경쟁자 그리고 비단 월드클래스 수준뿐 아니라 실력이 낮은 이들에게서도 자극과 영감을 받곤 한다. 그런 그가 꼽는 롤 모델은 20세기 최고의 성악가로 베르디 오페라 중 무려 17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다는 ‘피에로 카푸칠리(Piero Cappuccilli, 1926~2005)’다. 자신의 목소리 색깔도 베르디 오페라와 잘 맞는다는 김기훈 동문은 소리, 성량, 호흡, 표현력 등 카푸칠리의 모든 면을 닮고 싶다. 그러나 “결국 내 목소리로 내야 하니 따라하기보다는 자기화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신을 한 단계씩 성장시키며 김기훈 동문은 무대를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큰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객 앞에서 실수 없이 노래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옛날에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너무 긴장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왜 쫄아야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노래하고 저 사람들은 내 노래를 듣고 싶어 온 것인데, 난 잘 들려주면 되지 않나 싶더라고요. 이렇게 마인드가 변하니 무대에 오르는 일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 관객의 반응을 느끼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 가장 큰 카타르시스이자 성취감을 줍니다.”



(Photograph: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꿈의 무대에 설 날을 위해 

그간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이 거의 없어 관객과 에너지를 나누며 느꼈던 짜릿함이 아쉬운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수년간 숨 가쁘게 달려왔었기에 자신을 다시 한번 정비하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곧 머지않아 바쁜 나날이 다시 시작된다. 독일 뮌헨 바이에른 극장과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라 보엠’, 미국 샌디에이고 오페라 하우스에서 ‘코지 판 투테’ 등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김기훈 동문의 목표는 “바리톤 하면 바로 김기훈이 생각날 만큼 상징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것. 그래서 꿈의 무대인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적인 무대에 모두 서 보고 싶다. 성악가로서의 성공과 함께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바람도 간절하다. 그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김기훈 동문은 안주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어느 한 곳에서 성적을 냈다고 안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항상 지금 내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봐야 해요. 다른 사람이 지나가며 흘리는 말에 좌우될 필요는 없지만, 배움엔 왕도가 없다고 하잖아요. 좁게 매몰되지 말고 배움의 폭을 더 넓혔으면 합니다. 절대 지금에 머무르거나 만족하지 마세요. 음악가는 평생 꾸준히 배워야 합니다. 또 저는 늦게 이 길에 들어섰지만 제가 해야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먼저 찾았어요. 진로 선택을 망설인다면, 좋아하는 일 안에서 막연한 것이 아닌 현실성 있는 일을 그려보세요.” 


김기훈 동문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말라)’로 어려운 시기를 겪는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넨다. “빈체로, 빈체로!(Vincerò, 승리하리라)”, 결국 승리하리라는 구절로 끝나는 이 역동적인 아리아는 빛나는 트로피를 안은 그에게 더 잘 어울리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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