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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대단함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7-22

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대단함

깊고 따듯한 시선으로 콘텐츠를 해석하는 사람, 정덕현 문화 평론가(국어국문학 87) 



가장 주목받는 문화 평론가 

정덕현 동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콘텐츠를 사랑하는 문화 평론가로 일컬어진다. 수없이 등장하고, 또 변화하는 다양한 장르의 문화 콘텐츠들, 그 속에서 스쳐 지나가듯 툭 던져진 한 마디의 대사, 폭소를 자아내고 눈물을 짓게 하는 한 장면 등 작은 것들에서 그는 숨은 의미를 찾고 그 시대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콘텐츠가 가지는 힘, 그 울림을 더 깊게 전해왔다. 이를 통해 시대의 흐름까지 통찰하는 그의 평론 스펙트럼은 그래서 늘 주목받고 있고 많은 창작자와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자유로운 창작의 시간, 그러나 불안한 미래 

정덕현 동문은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 작가가 꿈이었다. 주변에서 다른 과를 가라는 권유도 많았지만 당시에도 직장을 갖는 것이 어려워 ‘굶는 과’로 불리던 국문과에 망설임 없이 진학한 것도 글, 그것도 소설을 쓰고 싶어서다. 여러 대학들 중에서도 자유로운 학풍과 분위기가 좋아 우리 대학교에 입학했다. 


“처음 학교 다닐 때는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캠퍼스가 어지러웠어요. 하지만 88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점점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죠. 다양한 활동들도 할 수 있었죠. 문학 동아리 ‘오발탄’에서 문학 관련 공부도 했고 무엇보다 글을 실컷 썼어요. 소설, 시, 희곡, 영화 시나리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도해 봤죠. 캠퍼스 생활은 그런 자유로운 창작의 기억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글 쓰는 것이 좋아 국문과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문학청년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학생활의 끝 무렵, 함께 글을 쓰던 친구들의 취직 소식이 들리면 더욱 그랬다. 그러다 마침 케이블 시대가 열리며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영상 분야가 새로운 기회로 여겨졌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과 관련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아봤어요. 90년대 케이블 산업이 발전하며 ‘영상 시대’라는 말이 들려왔죠. 글 쓰며 살아왔던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말이었어요. 관심을 가졌던 영화를 하고 싶어 시나리오 학원에 다니며 습작을 하고 직접 영화를 찍어 보기도 했어요. 많은 나날을 또 그렇게 글을 쓰며 보냈어요.” 


그러나 불안감을 해소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길은 치열했지만 많은 상처를 남겼다. 공모전에 번번이 떨어져 재능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고, 영화 제작이 무산되기도 했다. 그렇게 문학청년의 캠퍼스 생활은 끝나갔고, 시나리오 학원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을 결심한 그는 이제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현실과의 타협, 평론가로서의 길로 이어지다

불안한 생활을 청산하고 정덕현 동문은 한 주류 회사의 홍보팀에 입사했다. 기자에게 배포하는 보도자료, 사보 기사, 대표이사 메시지 등 그곳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글을 쓰게 됐다. 어쩌면 그가 원했던 글쓰기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상업적인 글들이었지만 먹고사는 일과 글 쓰는 일의 중간 지점에서, 그 일들은 일정 부분 안도감을 줬다. 그러나 입사 1년 후 IMF가 터지면서 본의 아니게 퇴사를 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는 친구의 추천으로 사이버 가수 ‘아담’으로 이슈가 된 제작사의 팀원이 없는 1인 팀의 팀장이 돼 론칭 전부터 캐릭터의 스토리를 만들고, 기자 대응하는 일 등 일당백으로 모든 홍보 업무를 맡았다. 아담은 당시 기술로 이뤄낸 최고의 결과물이었고,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음반 제작의 전 프로세스를 경험하며 엔터테인먼트, 음악 산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됐다. 그러나 기술적인 한계로 캐릭터가 확장될 수 없게 됐고 그는 퇴사를 결심했다. 이후 의대 동문들이 권유한 메디컬 잡지를 창간해 편집장으로 일하는 등 그렇게 몇몇 회사를 경험했고, 순조롭지만은 않았던 회사 생활을 접고 이후 수년간 글 쓰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았다. 


“회사는 제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한참을 돌아 다시 ‘글 쓰는 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프리랜서로 돈을 버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죠. 생계를 위해 돈이 되는 글이라면 뭐든 썼어요. 대필 작가, 출판사 외주 기획 등. 일이 없으면 백수와 다를 바 없어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스포츠 연예 온라인 매체를 창간한 친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어요. 비평이라 할 것까진 아니었지만 영화 한 편을 보고 글을 쓰는 거였어요. 다행히 제 글이 괜찮다는 평을 받아 점점 더 기고를 늘려가게 됐죠.”


그렇게 하나씩 글을 쓰다 보니 일주일에 한 편, 두 편, 이틀에 한 편, 그러다 하루에 한 편에서 두 편까지 쓰게 됐다. 그의 글을 보고 다른 매체에서의 원고 청탁도 늘었고, 마침 온라인 포털이 성장하는 시점, 잡지 콘텐츠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유입되는 시기였다. 게다가 TV 프로그램 관련한 비평을 하는 이는 극소수였다. 그렇게 그는 대중문화 평론가의 길에 본격 들어서게 됐다.




콘텐츠에 담긴 시대의 흐름을 읽는 평론가  

정덕현 동문은 되돌아보면 대중문화 평론가로서의 삶은 그간 자신이 쌓아온 작은 자산들이 모여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걱정을 들을 정도로 TV 시청을 너무 좋아했던 유년 시절,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비디오 가게에 있는 영화를 거의 다 볼 만큼 봤던 대학 시절 등 너무 많은 것을 보면서 살아왔던 시간이 그에게 다양한 장르의 무수한 콘텐츠를 분석하고 비평할 수 있도록 대중문화 평론가로서 폭넓은 눈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꾸준히 ‘글’을 써왔다. 결국 현실과 어쩔 수 없이 타협하며 돌고 돌아온 길에서 만난 모든 것들, 그가 써온 수많은 글들이 쌓여 대중문화 평론가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대중문화 평론가라는 일은 딱 맞았다.


“비평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 그 틀에 맞추는 글이 아니라 내 생각을 함께 던져놓는 글입니다. 그런 글이 재미있었어요. 온라인 매체에서는 그런 글들이 힘을 발휘했어요. 포털에 노출된 제 글이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그렇게 현재까지 17년가량을 대중문화 평론가로서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썼어요. 휴가 가서도 글을 써 보낼 정도죠.”



문화 평론가는 한 장르를 파고드는 평론가와는 조금 다르다. 영화, 음악, 방송 등 각각의 콘텐츠가 가진 특징은 사실 멀리서 보면 다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요즘 음악의 흐름이 의미하는 바는 영화의 흐름과 맞닿아 있고, 또 예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거시적인 시야가 문화 평론가의 강점이다. 이것 역시 그의 삶에서 경험한 작은 것들이 누적된 결과라고 한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는 시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왜 이것을 볼까’라는 의문에 그 시절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의 답이 있죠. 동시대 사람들이 가진 어떤 갈증과 결핍, 콘텐츠가 그것을 건드려 줬을 때 대중은 그 콘텐츠에 집중하고 열광하게 됩니다. 저는 오랜 시간 그때그때의 시대상이 반영된 콘텐츠들을 분석하는 글을 써 왔어요. 그것이 쌓이다 보니 자산이 됐고, 이제 그 흐름을 볼 수 있게 됐죠.”


콘텐츠의 변화로부터 시대상을 읽는 그의 메타적인 시야는 트렌드를 읽고 예측해 주는 사람으로 그의 역할을 확장시키고 있다. 단순 비평 글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를 통해서 기업, 단체 등에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혹은 트렌드 예측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강연을 통해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있다.  


“예측 못했던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제가 기업에서 강연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전혀 생각 못했던 일이에요. 그런 점에서 살면서 배운 것은 그것이 지금 당장 하찮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더라도 10년 이상 계속 뭔가를 하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거예요. 내가 몰랐던 길이 열리는 거죠.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많이 했어요. 꿈꿨던 소설이 아니라, 너무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썼죠. 기업의 메시지를 담는 글, 잡지 편집장으로 기획을 해서 쓰는 글 등 예전엔 ‘이러다 잡문만 쓰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 잡문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여러 콘텐츠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 각각의 원고 패턴에 맞는 글을 쓸 수 있게 됐죠.” 



공감을 이끌어 내는 따듯한 비평의 힘 

정덕현 동문의 하루는 6시에 시작돼, 오전에 하루에 써야 할 글을 다 끝내고 오후에는 각종 미팅 일정 등을 소화한 후 밤 9시부터 매일 TV프로그램 등을 시청한 후 새벽 2시 정도에 잠자리에 든다. 이 루틴대로 주말 없이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힘든 일이다. 매일 글을 써 온 정덕현 동문도 마찬가지다. 글을 써야 하는데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순간은 매번 곤혹스럽고 또 그가 계속 가지고 가야 할 숙제다. 여기에 매일 한두 편씩의 원고를 위해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몇 시간이고 봐야 하는 일은 아무리 재미있는 콘텐츠라도 피곤할 듯도 싶다.

 

“아무 생각이 안 나서 글이 안 써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그냥 책상 앞에 앉아 쥐어짜면 어떻게든 글이 나와요. 그래서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매일 씁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식사 후 무조건 하루에 쓸 원고를 모두 씁니다. 보통 생각이 나서 책상에 앉는다고 하지만 거꾸로 앉아야 쓰게 돼요. 뭔가를 극복하고 성취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또, 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콘텐츠도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하겠지만 저는 늘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해요. 너무 많이 보면 어떤 콘텐츠에도 무뎌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저는 가족과 함께 시청하면서 감정 이입을 하면서 보고 가족들의 반응도 살펴봐요. 일반 시청자들의 얘기들도 참고하죠. 그걸 기반으로 두 번째 다시 보게 되면 이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돼요. 그때 비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비평은 날을 세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건드린다.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해 대중에게 콘텐츠가 주는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드라마 속의 대사를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그의 책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결이다. 여기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숨은 의도와 깊이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는 그의 평론에 작가들은 창작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제 평론에 반응이 올 때 가장 뿌듯합니다. 무엇보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만났을 때는 더욱 그렇죠. 저 역시 소통의 욕구가 있거든요. 한 번은 워낙 노출되는 걸 싫어하는 한 드라마 작가께 제 책에 대한 추천사를 부탁하려고 연락을 하게 됐죠. 전화번호를 알기도 어려운 분이었어요. 어찌어찌 전화를 드렸는데 역시나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그러다 5분쯤 후에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전화를 건 사람이 저인 것을 확인한 후 직접 전화를 주셨던 거죠. 예상외로 흔쾌히 추천사를 써 주셨어요. 이유를 묻자 너무 글이 안 써져 힘들었던 시간에 제가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쓴 비평을 보고 큰 힘을 얻으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순간이 비평가로서 잊지 못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인 것 같습니다.”  



흔들림 없이, 더 의미 있는 글을 쓰기 위해 

평론가로서 드라마나 예능 등 수많은 작품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덕현 동문에게도 조금 특별한 작품이 있다. 


“요즘 제 화두는 ‘마음의 평화’예요. 나이가 들면서 흔들림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죠. 그래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유독 저에게 울림을 줘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두세 번 보고 나니 편안함에 이르는 길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상징적으로 그 드라마의 ‘아저씨’는 흔들리는 건물을 검사하고 진단하는 일을 하고, 여주인공의 이름은 편안함에 이른다는 뜻을 가진 ‘지안’이죠. 오십 정도의 나이가 아직 흔들리는 시기는 아니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기존의 나의 길과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고민이 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그간 생존하기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무엇인가를 이뤄야 하거나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이 주는 흔들림에서 벗어나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무엇보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예전엔 주목을 받고 싶기도 했고 날이 서 있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무뎌진 이들에게는 다시 감각을 찾을 수 있는 힘이 됐으면 한다. 이것은 그가 처음 글을 쓰면서 다짐했던 것이기도 하다. 


“처음 글을 썼을 때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글이 생계가 되고 생활이 되니 그냥 그렇게 흘러왔던 것 같아요.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서 소설가의 꿈도 버리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 중심의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 바람입니다. 언젠가 시대정신과 나의 삶이 만나는 그 교차점을 찾아 거기서 나올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놓게 될 것 같아요. 어렵겠지만, 꼭 이루려고 합니다.” 



져도 돼, 좋아하는 것을 하면 돼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지금, 지친 이들을 위해 정덕현 동문은 드라마 대사의 한 구절인, “져도 돼.”라는 말로 위로를 건넨다. 지는 것의 미학, 패배와 포기의 미학을 알았으면 한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매몰돼 실패해야 할, 져도 될 권리를 잊고 사는 이들이 많다. 


“팬데믹 시대에는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못하는 것에만 강박 관념을 가지고 ‘너무 하고 싶어, 왜 못해?’라는 질문만 던진다면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겁니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그것이 코로나 시대에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슬기로운 대처 방법이 아닌가 싶어요. 이 시대의 코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 안에서 어떻게 더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자신뿐 아니라 누군가를 뾰족하게 찌르는 ‘애쓰는 삶’은 매일을 지치게 할 뿐이에요.”


같은 맥락에서 정덕현 동문은 후배들을 위해 ‘나 자신을 그대로 보라’는 조언을 한다. 흔들리지 않고, 설혹 흔들린다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꿈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이의 갈등이 생길 때 가장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할까. 정덕현 동문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흔히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잘하는 일을 선택하곤 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요. 좋아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못해도 좋아하는 걸 오래 하다 보면 잘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적성 검사에서는 늘 이과 성향이 나왔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문학을 선택했어요. 한참을 돌아왔지만 좋아서 계속하다 보니까 잘할 수 있게 됐고, 그 이과 성향은 논리적인 글을 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란 그냥 단지 좋은 게 아니라 자신이 이런 것을 하면 멋있을 것 같은,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에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쪽으로 가게 되고 결국 잘하는 것과 연결되게 된다는 정덕현 평론가. 쉬운 이야기 같지만 그 자신의 삶에서 엿볼 수 있듯이 꽤 지난한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글 쓰는 일을 놓지 않았다. 매일매일 다이어리를 꽉 채우는 어제의 대단하지 않은 날들이 모여 흔들림 속에서도 현재 조금 더 성장하고 또 꿈꾸는 미래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 그리고 단언하건대 그 대단하지 않은 나날들이 만든 힘은 너무나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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