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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이야기는 사람을 향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6-25

이야기는 사람을 향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마음을 치유하는 웹툰 <닥터 프로스트> 작가 이종범 동문(심리학 01)



‘왜?’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의 힘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모든 창작의 출발점이다. 웹툰 작가 이종범 동문의 대표 웹툰인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 교수인 주인공이 일상 속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마음의 병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여러 캐릭터들의 사례, 전문적인 심리학 정보를 통해 단단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며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의 행동과 마음은 결국 어떤 근원적인 이유에서 출발하는지 작품 속의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이야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대한 공감이 ‘왜’ 하는가로 확장돼 그 질문의 답을 찾게 된다. 이 지점은 이종범 동문의 작품을 관통하는 입장이자, 스토리텔러로서 그가 가지는 가장 큰 힘이다. 



만화가의 꿈을 향해 떠난 여정 

이종범 동문의 만화가의 꿈은 8살 때 움텄다. 만화 <드래곤볼>의 한 장면을 모작한 것으로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즐거움을 느껴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만화가가 되는 이정표를 찾고자 했다. 같은 동네 만화가를 찾아 만화가가 되기 위한 길을 묻기도 했다. “만화가는 그림만 그리지 말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조언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고등학교 시절 줄곧 높은 석차를 유지하면서도 만화 동아리를 하기 위해 학교에 나갔을 정도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만화 동아리 활동을 한 것도 8살 때부터 이어온 오랜 꿈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만화가의 꿈에 대한 확신이 단단했던 것은 아니다. 


“확신이란 게 없었어요.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때엔 확신이 있기도 했지만, 진지하게 알아가다 보니 오히려 불안했어요. 인문학부를 선택한 것도 만화가가 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플랜 B였어요. 작가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었고 작가가 안 되더라도 또 다른 길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우리 대학교는 심리학과가 사회과학대학이 아니라 인문대학에 있었기 때문에 선택에 도움이 됐죠.”


만화를 자유롭게 하고 싶어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열심이었던 그. 대학에 입학해 이제 마음껏 만화에 몰두할 수 있게 됐지만, 오히려 그는 대학 생활 내내 만화와 거리를 뒀다.


“제가 좋아하는 만화 중 <힙합>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국내 최고의 춤꾼이 그린 댄스 만화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담아냈으니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어요. 저도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를 재밌게 그리고 싶어 악기를 배웠죠. 그런데 음악 쪽에 재능이 있다는 말도 듣고, 또 저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어요. 학교 재즈 음악 동아리 ‘소왓(So What)’에 가입하고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감독 역할까지 했죠. 만화를 그릴 때는 외국어를 배우듯 고민을 많이 해야 했지만 악기 연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됐어요. 만화와 음악 모두 표현을 위한 수단인데 만화는 답답하고 음악은 시원하고 즐거웠어요.” 


음악적인 재능이 주는 성취와 흥미진진함을 경험하며 음악에 깊게 빠져든 그는 이후 졸업까지 7년 동안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만화를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꿈을 잠시 유예했던 것. 그가 졸업한 것은 2008년. 졸업 전 마지막 학년부터 웹툰 작가를 준비하며 다시 돌아와 긴 여정을 준비했다. 



가장 비효율적인 시간에서 답을 찾다  

이종범 동문은 2009년, <투자의 여왕>이라는 재테크 소재 작품으로 데뷔했다. 돌아온 만큼 늦은 나이였다. 준비부터 데뷔까지 약 2년여가 걸렸다. 이 시간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도 스스로 책임져야 했고 이젠 학생이라는 신분에 기댈 수도 없었다. 밴드 세션의 드러머, 학원 영어 강사 등을 거치며 만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웹툰이 막 성장하던 시기라 자문을 구할 멘토를 찾기도 어려웠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 하지만 그는 뭔가를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시절 어려움들을 극복한 기억은 없어요. 그냥 고생한 거죠. 공모전에는 줄줄이 떨어지고 잘못된 계약도 했죠. 계속 실패했어요. 하지만 저는 빠른 실패가 맞다고 봐요. 시행착오 외에는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효율성을 추구하는 이들은 가장 빠른 길, 실패를 덜하는 길을 찾아요. 계속 득실을 따지게 되니 기능적으로 발달할 수 있지만, 제 경험상 무언가 소재를 찾고 발상하고 기획해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은 실패를 피할수록 어려워진다고 믿어요. 효율성만 좆아 일직선으로 가다 보면 곁가지에 있는 수많은 콘텐츠 거리를 놓치게 돼요. 유튜브든, 클럽하우스든 많은 플랫폼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그런 무수한 비효율적인 경험들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거죠. 그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할 때, 어떻게 효율적으로 접근했냐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어요.” 


그렇게 졸업부터 데뷔까지 겪은 그의 ‘가장 비효율적’인 시간들은 더뎠지만 밀도가 있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질문과 탐색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데뷔작인 <투자의 여왕>은 재테크를 소재로 돈과 투자의 개념에 대한 정보를 극화한 웹툰이다. 전공자들에 비해 테크닉이 부족했던 그는 웹툰 초창기에는 없었던, 취재를 바탕으로 한 전문 소재 웹툰에서 답을 찾았다. 자신을 이해하려 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쓰는 게 가장 빨랐다. 


“제가 잘하는 분야는 텍스트를 보고 정보를 습득하고 스토리를 쓰는 일이었기에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었죠. 서점에 가서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을 살펴보며, 웹툰에 없는 소재 그리고 사람들이 관심 있는 분야의 교집합을 보니 ‘돈’이더라고요. 실제 필드의 투자자들을 취재했고 그리고 그냥 그렸어요. 각종 웹툰 플랫폼과 신문 등 여러 매체에 매회 작품을 보내면서 반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죠. 십 화 넘게 쌓였을 즈음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게 첫 데뷔를 했어요.” 



궁금하면 보인다, 자꾸 보면 이해하게 된다

이종범 동문이 인기 작가로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하고 있는 대표작 <닥터 프로스트> 연재부터다. 심리학을 소재로 한 최초의 웹툰이다. 이 작품에서 심리학자인 프로스트 교수는 마음의 질병을 가진 내담자들의 문제를 심리학적 메커니즘과 방법론으로 해결한다. 전문적인 심리학 정보와 그것을 기반으로 마음의 질병을 해결하는 탄탄한 스토리가 어우러져 10년간 인기를 끌고 있다. 그가 심리학을 전공했던 것이 어쩌면 자연스럽게 소재로 연결된 셈이다. 특히 웹툰에 등장하는 각종 심리학 이론과 방법론, 전문성의 깊이는 대학 시절의 배움과 은사님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심리학을 배웠던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죠. 특히 대학 시절 ‘심리학 개론’ 수업의 기본서인 <인간행동 이해>의 첫 페이지 텍스트, 목차를 보면 심리학에서 다루는 제반 범위가 다 나열돼 있어요. 전공이라는 것은 교양인을 기르는 과정인데, 교양인이란 깊게는 몰라도 전공 분야에 한 장짜리 지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개론서가 제게 지도라고 할 수 있어요. 만화를 그릴 때 누구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어떤 책, 논문을 찾아봐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죠. 또 대학 시절 수업도 재미있었지만 시즌 1, 2까지 자문을 해주셨던 서은국 교수님(성격심리학), 김민식 교수님(심리학실험법), 송현주 교수님(발달심리학)께서 큰 힘이 돼 주셨어요. 교수님들 덕분에 심층적이고 현실적으로 전문 정보를 녹여낼 수 있었습니다.” 


<닥터 프로스트>에서 천재 심리학자 프로스트는 각기 저마다 마음의 병을 가진 내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정작 자신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러니컬한 설정이지만 이종범 동문은 이를 통해 거꾸로 “자기 이해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나는 당신에게 공감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감정이 얼어붙은 주인공이 내담자들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며, 나아가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하고 스스로를 이해하면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게 되는 성장 스토리다. 그리고 그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끊임없는 물음. 이종범 동문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대사를 빌려 “심리학은 물음에서 시작된다. 묻고 싶은 게 없다면 이해할 수도 없다.”고 메시지를 던진다. 이 메시지는 사실 이종범 동문 스스로가 창작자로서 가지는 동력이자, 스토리의 원천이기도 하다. 


“저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또 사람을 좋아하죠. 좋아하면 보게 됩니다. 자꾸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게 되죠. 이해하게 됩니다. 심리학을 전공해서일까요. 대화 상대를 만나면 유심히 관찰해 ‘저 사람은 왜 저 행동을 할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강한 모습으로 포장하며 두려움을 감추고 있는 사람을 볼 때 더욱 유심히 관찰합니다. 이 두려움이야말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포인트이기도 하고 요즘 세상 곳곳에서 보여요. 그래서 <닥터 프로스트>에는 캐릭터들, 설정된 사건들의 기저에 두려움이라는 심리가 있습니다. 저는 온갖 갈등 상황이 펼쳐지는 주변을 보면서 관심사가 변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언제든 궁금하면 찾아봅니다. 소위 덕질하는 것이 가장 즐겁죠.”


<닥터 프로스트>는 연재를 시작한 해부터 주목을 받아 2011년 독자만화대상 온라인 만화상,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 독자만화대상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만화를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종범 작가는 시즌 1, 2를 마친 후 2020년부터 청강문화산업대학에 재직하며 만화콘텐츠스쿨에서 ‘스토리텔링의 이해’를 가르치고 있다. 또 유튜브 ‘이종범의 웹툰스쿨’을 통해 웹툰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창작자로서의 삶과 교육자로서의 삶은 달라 보이지만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만화에 미숙했던 그가 이제는 잘하는 작가로 성장하면서 가르치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그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작법 등 웹툰의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동시에 만화가로서의 태도, 방향성 등 보다 근본적인 고민도 독려한다. 


“저는 예술 쪽에서 ‘많이 하면 실력이 는다’는 근성론이 너무 남용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과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에 뛰어들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근성론으로만 답을 주지 않고 중간 다리를 알려주는 편입니다. 흔히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 취업이 아닌 프리랜서의 삶, 창작 분야는 모험적이어야 한다, 재능이 뛰어나야 한다, 뛰어들기 겁이 난다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사람도 충분히 모험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종범 동문은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어떤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 묻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 


“사실 사람마다 제각각 자신에게 필요한 경험이 다르죠. 동물을 좋아하면 동물에 관한 만화를 그리면 됩니다. 정답은 없어요. 학생들의 질문에 저는 늘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묻고 학생이 답하면, ‘그럼 그것을 하라’고 답합니다. 사실 만화를 잘할 수 있는 경험은 단 하나예요. 바로 ‘만화를 그리는 경험’입니다. 만화를 그리는 연습을 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리면 됩니다.” 


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후배들에게도 역시 ‘내가 가는 방향,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강조한다. 


“무언가 고민이 있다면 조언부터 하는 사람의 말보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말을 믿으세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거죠. 자신에게 적용했던 이야기를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옳은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흘려야 할 이야기예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무엇이 제일 불안한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나아가 내 진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작가로 사는 방법보다 작가로 사는 이유를 묻다 

2019년부터 <닥터 프로스트> 시즌 3, 4 연재로 돌아온 이후 현재 이종범 동문은 다시 직업 아티스트로 매주 시간을 다투며 마감을 한다. 때로는 창의적인 성취감보다 마음에 다 차지 않아도 책임감을 가지고 반복하는 일. 고단함은 여느 직업 이상이다. 허리와 목 디스크라는 직업병도 있다. 그러나 오늘도 그는 책상 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다음 주 마감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닥터 프로스트> 시즌 4가 끝나고 10년에 걸친 대장정이 마무리되겠지만, 그는 다시 새로움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일 계획이다. 


“저는 안 해본 것을 하는 것을 즐겨요. 라디오 DJ, TV 예능프로그램 출연 등의 활동도 경제적 이득보다는 단지 재미있어서 했어요. 앞으로 <닥터 프로스트>가 완결되면 코딩을 좀 배워 스토리가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요즘 콘텐츠 분야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인 웹 소설에도 관심을 갖고 있죠. 취미인 음악도 계속하고 싶고요. 둘 다 스토리를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죠. 다음 웹툰은 그때 그려보고 싶은 주제가 있겠지만, 막연하게나마 요즘 관심 있는 분야는 보육원에서 독립하는 보호 종료 아동에 대한 이야기예요.” 


늘 이렇게 세상이 궁금하고, 그래서 질문을 던지고, 찾아보고, 답을 찾는 과정을 밟아 나가며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는 이종범 동문. 그의 궁금증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웹상에 펼쳐진다. 


오랜 꿈에서 시작해 때로는 실패, 때로는 직업 아티스트의 고단함을 끌어안고 온 시간. 이제는 웹툰이 일상 그 자체이자 소통의 언어다. 이 과정에서 그가 끊임없이 자문하는 것은 ‘작가로 사는 방법’보다 ‘작가로 살아가는 이유’다. 이에 대한 단단한 답을 가지고 있는 그이기에 오늘도 흔들림 없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또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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