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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열정에 승부수를 던지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5-24

열정에 승부수를 던지다 

국내 당구 스포츠의 발전을 일군 개척자, 이장희 전 당구국가대표팀 감독(수학 87)



당구를 향한 몰입의 길 

당구는 몰입의 스포츠다. 사각 당구대 위에는 게임을 좌우하는 여러 길이 있다. 선수들은 당구공이 어떤 각도를 따라 어떤 길로 갈지 예측해 보고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이 과정은 고스란히 머릿속에서 이미지화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몰입이 필요하다. 선택과 몰입. 당구의 매력에 푹 빠진 대학생이 실력 있는 당구 선수로, 그리고 국내 당구 발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저변을 확대하며 후배를 키우는 당구계 행정가이자 지도자로 활약하며 오직 당구에만 매진해온 이장희 동문의 인생과 닮아 있다. 그렇게 이장희 동문은 스스로 개척한 열정의 길을 내고 그 길에 자신의 승부수를 던져왔다. 



인생을 바꾼 당구

복수전공 제도가 없던 80년대 후반 입학했지만 이장희 동문은 두 개의 우리 대학교 학사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 이과대학 수학과와 교육과학대학 체육교육학과 졸업장이다. 대학입시를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당구장에 갔다가 당구의 매력에 빠졌다는 이장희 동문. 대학 입학 후 본격적으로 그에게 당구의 세계가 펼쳐졌다. 학창 시절 내내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어렵사리 수학과를 졸업은 했지만, 결국 그는 진정 하고 싶었던 스포츠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해 다시 입학시험을 치르고 체육교육학과에 편입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무척 좋아했어요. 야구, 농구를 많이 했죠. 고등학생 때부터 체육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엄격한 부모님의 뜻과 달라 실행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수학과에 입학했지만 입학 첫 주에 바로 야구 동아리 연세이글스에 가입했을 만큼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대학시절 본격적으로 당구에 몰입하면서 사실 학과 공부는 제대로 챙기지 못했지요. 학부를 거의 11학기 만에 졸업했습니다. 대학생 당구대회가 있던 학기에는 대회 포스터를 보자마자 우승을 하고 싶어 당구 실력을 쌓는 데만 전념하려고 휴학을 하기도 했어요. 수학과 재학 시절 무작정 체육교육학과에 찾아가 전과하고 싶다고 피력하기도 했지만 그런 선례가 전무해 불가능했죠. 체육인의 길을 걷기로 이미 결심한 후였기 때문에 졸업 후 주저 없이 체육교육학과 편입학을 선택했습니다. 순수하게 제 의지로 선택한 길이었죠.”


수학과 시절인 1993년 전국 대학생 당구대회 참가 무렵은 그의 당구에 대한 열정이 가장 깊어졌던 시간이었다. 휴학까지 하며 갈고닦은 실력으로 당시 전국 130여 명의 학생들이 토너먼트로 붙은 대회에서 결국 그는 우승을 차지했다. 실력 있는 사람들과 대결하고 싶어 고수를 먼저 찾아다녔고, 그들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실력이 또 늘었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신촌에 당구장을 차릴 만큼 진로에 대한 확신도 가졌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의 선택에는 넘어야 할 산도 있었다. 


“집안의 반대가 컸어요. 아버지께서는 자수성가한 엘리트셨어요. 게다가 제가 첫째 아들이라 기대도 크셨을 거예요. 기껏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했는데 갑자기 당구 선수를 한다니 인정받기 힘들었죠. 거의 5년 정도 고시원에서도 지내고, 자취도 하면서 집에서 나와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그 시간과 열정이 가장 당구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장희 동문은 갈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1999년 서울당구연맹에 선수 등록을 했다. 2003년 전국당구대회에서 공동 3위에 오르고 국내 랭킹 7위까지 오르는 등 이름을 날리며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잠시 돌아온 길이었지만 마치 공이 당구대의 쿠션을 세 번 맞고 정확한 방향으로 마지막 공을 딱 맞춰 득점하는 것처럼 결국 자신의 열정이 향하는 방향에서 정답을 찾았던 것이다. 



큰 그림을 보는 너른 시야로 당구 스포츠의 한계 극복

선수 생활은 즐거웠지만 동시에 이장희 동문은 줄곧 당구 스포츠 현장의 아쉬움과 한계를 느꼈다. 당시만 해도 대중 스포츠로서 당구에 대한 이미지나 인지도가 약했고 당구로는 먹고살 수가 없을 정도로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을 실감하며 그는 선수보다는 당구 스포츠 발전을 위해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하기로 결심했다.


“선수 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이런 문제에 대해 모두 인식하고 있지만 누구도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죠. 당구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인식을 높이고 대중화를 통해 파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구 발전을 위해 행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박사과정 후 서울당구연맹 홍보이사와 전무이사, 대한당구연맹 전무이사를 역임, 각 연맹 행정을 총괄하며 당구 스포츠 운영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정시키는 일을 했다. 공신력 있는 단체로서 연맹을 성장시키고 당구 종목을 스포츠 행사에 정식종목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일조했다. 사명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대학교에서 석, 박사 과정을 밟아 ‘당구인 박사 1호’ 타이틀을 가진 그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교양 스포츠 강의를 맡아 당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렸다. 이미 2003년부터 탁구와 소프트볼 강의를 하고 있었지만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당구 과목을 개설했던 것. 순식간에 수강 인원이 마감됐을 만큼 학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2012년부터는 숭실대학교 스포츠학부에서도 당구를 가르치며 당구 특기자 전형이 시작되는 데 토대를 구축했다. 


“그때는 사실 당구계에서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당구인 중 체육 전공자나 학위 소지자도 없었죠.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더 박사학위를 따고 싶었어요. 또 대학에 당구과를 설치하고 당구 과목을 만드는 일이나 당구 특기자 전형을 만드는 일에도 노력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발전으로 현재는 일찌감치 유소년 시절부터 당구를 배우는 꿈나무들도 늘어나고 있고, 서울권에서는 한국체육대학교와 숭실대학교에 당구 종목의 대입 특기자 전형이 생기기까지 했지요. 또 당구 명문고도 있고요. 당구 스포츠가 많은 발전을 이룬 것 같아 보람 있습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 지도자로서의 삶 

이장희 동문은 그간 힘썼던 당구의 전국체전 정식 종목 선정이 이뤄지자 연맹에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새로운 역할에 도전했다. 지도자의 길이다. 당구인 최초로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주관하는 경기지도자 1급 자격을 취득해 놓았던 그는 2013년 인천실내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총감독의 기회를 얻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다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는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2018년 독일 비어센에서 열린 ‘세계 팀 3쿠션 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 팀이 2연패를 달성했던 순간이 제 당구 인생 최고의 순간입니다. 선수들이 예선부터 결승까지 전승하며 우승했고 그해 우리나라 세계 랭킹이 1위에 올랐죠. 당시 지도자로서 최고 권위의 국제대회에서 팀을 이끌며 저도 많은 경험을 쌓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대한체육회에서 우수지도자상을 받기도 해서 더없이 행복한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당구 대표팀 감독의 역할은 다른 스포츠와는 조금 다르다. 한 해에 약 10여 개의 세계 투어를 하는 대표선수들은 바쁜 일정으로 인해 선수권대회 전에 장기간 함께 훈련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 팀 경기라도 실제로 대회 전 합을 맞춰 집중 훈련하는 기간은 2~3일 정도다. 이미 기술적인 부분은 각자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장희 동문은 선수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안전을 확보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 선수들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짜고 심리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비결이라고 한다. 


그의 지도력은 2019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개최된 ‘세계 주니어 3쿠션 선수권대회’에서 1, 2, 3위를 석권하는 데서 다시 한번 증명됐다. 특히 대부분의 성인 대표선수들이 주니어대회 입상자들인 만큼 “미래의 국가대표를 발굴하고 지도하는 기회였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고 이장희 동문은 말한다. 유소년이나 주니어 선수들을 좀 더 체계적인 교육 하에서 키워내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기에 이에 대한 고민도 계속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도전과 열정 

국가대표뿐 아니라 그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를 다수 지도해 왔던 그는 현재 JS당구클럽과 자신의 이름을 건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당구를 지도하고 있다. 당구를 취미로 즐기는 일반인과 당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 여성 프로 선수들, 아마추어 선수 등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이장희 동문을 찾아온다. 그가 운영하는 당구클럽은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당구 스포츠의 거점이자 아지트 같은 곳이 됐다.


“제게 당구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알음알음 소문을 듣거나 검색하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요즘은 정보도 많고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아져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국가대표와 같은 엘리트를 지도하는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계속하겠지만, 스포츠로 당구에 관심을 갖는 층이 많아지면서 그분들을 위한 교육자로서도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지도자로서 분주한 삶을 살고 있지만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하는 당구의 즐거움도 틈틈이 만끽하고 있다. 연세동문 당구 모임인 YBC에 참여하면서 선후배들과의 교류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정기적으로 YBC 모임을 갖고 여러 행사도 진행했습니다. 연고전도 하고 있어요. 벌써 3회 개최했는데, 각 학교 50명씩 선수만 100명이 모여 졸업생 팀과 재학생 팀으로 나눠 경기를 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가 2승 1패로 앞서고 있는데 팬데믹 이후에 계속될 다음 경기도 무척 기다려집니다.” 


3년 전 프로당구(PBA)가 출범하면서 해설가로도 활약하고 있는 이장희 동문. 당구 스포츠가 맞이하는 성장의 시점마다 그의 자리가 있다. 또 그는 여전히 넓은 시야로 다음 단계를 내다보고 있다. 


“당구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졌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당구는 몸에 큰 무리가 없이 뇌 활동을 촉진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실버 스포츠로도 각광받고 있지요. 당구를 즐기는 저변이 확대된 만큼 경기 외적으로도 다양한 것을 접목시키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특히 운동 역학 측면에서 기술과 접목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몸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효율적인 움직임을 데이터화하고 스크린 골프와 같이 대중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수의 스포츠 종목에 이미 도입해 활용하고 있는 만큼 한발 늦긴 했지만 당구 스포츠의 확산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해 기회를 찾길 

당구에 대한 열정으로 국내 당구 스포츠의 대중화를 개척하고 발전시켜온 이장희 동문. 그의 과감한 선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 매진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며 조금 돌아온 길이지만 그만큼 오늘이 만족스럽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일에 자신 있게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요즘 세대들은 똑똑하고 정보를 찾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루트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요. 그만큼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맘만 먹으면 한번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겁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일반적으로 성공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믿어보세요.”


다시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간다면 처음부터 부모님 눈치 안 보고 가장 좋아하는 ‘체육’을 전공으로 선택하겠다는 이장희 동문. 그의 당구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불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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