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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신촌캠퍼스 소식] 김대중도서관, 7대 대선 관련 김대중 대통령의 구술 동영상 최초 공개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4-27

김대중도서관, 7대 대선 관련 김대중 대통령의 구술 동영상 최초 공개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 50주년


[사진. 공개된 사료 캡처 화면(6분 20초)]


김대중도서관(관장 한석희)은 1971년 4월 27일에 실시된 7대 대통령 선거 50주년을 맞이해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서 박정희 대통령에 맞서 선전한 김대중 대통령의 구술 동영상 기록을 4월 27일 최초로 공개했다.


7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는 대중경제론, 3단계 통일론, 4대국 안전보장론 등을 제시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근대화 전략에 대한 대안적 노선을 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정책선거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뛰어난 대중연설 능력으로 선거전을 리드했다. 그래서 국내외의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박정희 후보를 상대로 선전해 야당의 지지세를 크게 넓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이유 중의 하나로서 1971년 7대 대선에서의 김대중 후보의 선전이 거론될 정도로 당시 김대중 후보의 활약은 대단했다. 따라서 7대 대선은 정치적, 학문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공개한 7대 대선 관련 김대중 대통령의 구술 동영상 자료는 7가지 주제 총 6분 20초 분량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기획한 구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총 41회의 동영상 기록을 남겼다. 이 중에서 7대 대선에 관한 내용은 2006년 12월 19일에 실시된 13차 구술에 담겨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7대 대선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대부분 텍스트 자료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증언한 동영상 자료는 매우 드물다. 특히 7대 대선 관련 내용에 초점을 맞춰 증언한 동영상 자료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진행한 것이 유일하다. 그뿐만 아니라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 그 당시(1970년과 1971년)에 생산된 음성 및 영상 자료 자체가 매우 적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번에 공개한 동영상 자료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공개 사료의 내용

공개한 동영상 자료는 다음 순서대로 편집되어 하나의 파일로 제공했다. 공개 자료의 녹취문과 소주제는 다음과 같다.


(1) 1970년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한 공작

다만 나를 후보 안 시킬라고 중앙정보부가 온갖 공작을 하고 한 것은 다 사실이여. 그래서 우리 당에 대해도 공작을 하고 언론에 대해서도 공작하고 모든 공작을 다했어요. 그건 뭐 보통으로 한 것이 아니여. 그리고 또 그렇게 발표하고 나니까 국민 여론이 일제히 일거히 폭발하니까 위협을 느낀 거죠.


(2) 1970년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나는 처음부터 위를 바라보면 나는 실패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뭐 한 1년 전이나 그 이전부터 지방을 막 갈고 다녔어요. 그래서 지방에 가서 국민들 여론을 끌어들이는데 주력을 해서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을 해가지고 국민들이 아주 그때는 경상도에서도 굉장히 모두 나를 지지했어요. 그렇게 했고. 그리고 또 우리 집의 사람이, 말하자면 대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어. 산꼭대기. 대게 야당하는 못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산꼭대기 산동네에 사는데 그런 데까지 찾아다니니까 그 가족들이 당신 뭐 야당 한다고 따라 다녀봤자 누구 하나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래도 이 사람은 부인이 우리 찾아오니 그것만도 어디냐.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김대중 지지해야 한다 하고 부인들이 모두 움직이고 그랬어요. 그래서 집의 사람 도움도 있었고. 대게 후보 부인이 가면 후보 온 것과 똑같이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아주 효과가 있었어.


(3) 1970년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장에서 보여준 새로운 선거운동 방법 관련

그 아이디어 질문의 내용은 “당시 전당대회 장에서 애드벌룬을 띄우고 피켓을 들고 한 것도 새로운 선거운동의 방법이었다. 이런 얘기나 나오는데요. 그 아이디어는 어떤 분이 만드신 거였습니까”이다.

는 내가 미국 전당대회 한 것 보고 배웠어. 그때 뭐 정일형 박사나 그건 분까지 피켓 들고 참 은혜를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하니까 시민회관 탁 아침에 대의원들이 몰려오는데 일대가 내 포스터 그리고 피켓 들고 섰고 김영삼 측은 아무도 없는 거여. 그러니까 완전히 분위기가 우리가 제압을 한 거지. 그런데 그건 민주당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대통령 지명대회에서 한 것 배웠어. 아 아주 그리고 참신한 그런 뭐를 주었고. 


(4) 열악한 대선자금 관련 내용

외부에서는 별로 돈 못 걷었고요. 그때는 누구든지 나 돈 줬다고 들으면 그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요. 돈 전혀 안 준 사람도 예를 들면 동업자끼리 서로 이권 가지고 다툴 때 그 상대방을 죽일라면 정보부에다가 저 사람이 김대중이 돈 줬다고 이렇게 해갖고 정보부하고 짜면 그 사람 잡아다가 데려다가 막 고문하는 거요. 그러면 김대중이 집 어디가 있는 줄도 모른다, 김대중이 만난 일도 없다, 그래 봤자 소용 없어요. 마지막에는 말하자면 다시는 김대중이 집 안 가겠다 각서 쓰고 나와야 돼요. 그러면서 그 이권에 대해서는 손 떼기로 해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요. 그러니 어떻게 해서 돈 주겠어요? 줄 수가 없어요.


(5) 어려운 여건에서 직접 발로 뛰어야했던 선거유세 과정

그때는 지금하고 달라서 길이 전부 비포장이여. 그러니까 덜커덩 덜커덩 하고 지프차 타고 다녀야 돼요. 그러니까 굉장히 고통스럽죠. 그래도 잘 해냈어요. 그래서 하루에도 뭐 10번 11번 유세하면서도 다 해내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 모두 놀랬어요. 건강에. 그런데 그때는 잘 견딘 것은 잘 먹고 잘 잔 거여. 그래서 유세 나가면 쫙 나가면 저쪽 어디를 가면 거기 입구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벌써 나와 있어요. 그러면 말하자면 손 흔들고 그리고 들어가서 연단에 올라가서 유세하고 그리고 유세 끝나면 내려와서 차 타고, 차 타면 거기다가 곰탕이라든가 빵이라든가 이런 것 넣으면 그것 차 중에서 먹는 거요. 먹고 그리고 자요 차 중에서. 자고 다음 장소가 가까워지면 옆에서 또 깨주면 일어나서 사람들이 와 있으면 또 손 흔들고 또 단상에 올라가서 연설하고 그리고 내려와서 또 먹고 또 자고 하루에 몇 번 먹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것이 잘 됐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때 철인이라고 그렇게 말했거든.


(6) 장충단공원 유세 관련

그때 당사가 지금 안국동. 거기였는데 네거리. 거기서부터 출발해가지고 종로로 해서 차로 쭉 장충단까지 갔는데. 그냥 길바닥이 전부 사람들로 메워가지고 몇십만의 사람들이 따라 같이 가는 거요. 그래 갖고 장충단에 가니까 간신히 들어갔어요. 그렇게 해갖고 그날 거기서 아주 대집회를 해서 큰 성공을 했죠. 


(7) 김대중 후보가 승리할 경우 친위쿠데타 관련 음모

만일 선거에 지면 내가 향토예비군 폐지 그것이 그때 굉장히 큰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어.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안보를 구실로 삼아서 군대가 일어난다, 그런 얘기는 있었어. 그때는 그러니까 목숨 걸고 하는 거요. 그래서 나는 선거 할 때도 정상적인 투표 갖고는 못 이기고 국민들이 이 부정선거를 볼 바에는 차라리 일어서겠다 하는 정도까지 가야 하는데 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국민들이 거기까지는 안 갔어. 그렇기 때문에 부정선거 했지만은 그걸로써 결국은 일단 끝난 거지. 그러나 그것이 다 밑거름이 돼가지고 그다음에 민주화가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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