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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더 늦기 전에’를 실천으로 옮긴 의대 출신 애니메이터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1-02-23

‘더 늦기 전에’를 실천으로 옮긴 의대 출신 애니메이터

디즈니·픽사의 인생작을 함께하고 있는 김재형 애니메이터(의학 92)



최근 영화 ‘소울(Soul)’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인공 ‘조’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영혼 ‘22’와 함께하는 여정을 응원하게 된다. 이렇게 애니메이션에서도 실제 배우 연기 못지않게 각각의 캐릭터가 특색을 갖고 연기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들에게 영혼을 불어넣는 사람이 바로 애니메이터다. 애니메이터는 애니메이션 내 캐릭터들의 표정과 동작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소울’의 주인공이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그루브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그를 위해 노력을 쏟아부은 애니메이터 덕이다.


이 흥미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애니메이터 중 우리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레지던트 과정을 밟다가 디즈니·픽사에서 일하게 된, 애니메이션만큼 흥미로운 인생 스토리를 가진 이가 있어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개봉한 ‘소울’을 비롯해 ‘토이 스토리’, ‘인사이드 아웃’, ‘코코’, ‘몬스터 대학교’, ‘업(UP)’, ‘라따뚜이’ 등 디즈니·픽사의 수많은 작품에서 캐릭터 개발에 참여해 온 김재형 애니메이터(의학 92)다.



동작과 표정을 만들어 이야기를 표현하는 직업

“영화 ‘소울’의 경우 재즈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고 재즈 음악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이 재즈와 여러 악기 연주에 대해 많이 공부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재즈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한 ‘존 바티스트(Jon Batiste)’라는 재즈 뮤지션에게 직접 생각과 경험도 들어보고, 그의 즉흥연주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영화에 나오는 연주 장면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영화 ‘소울’은 꿈을 이루기 직전에 예기치 못한 사고로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영혼이 돼 가게 된 ‘조’와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영혼 ‘22’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디즈니·픽사 작품의 정점을 찍었다는 호평과 함께 위로와 용기를 준다는 내용의 수많은 후기가 남겨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주인공 등의 캐릭터를 함께 만들었다.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표정 등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표현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애니메이터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2006년 픽사 스튜디오(이하 픽사) 인턴 과정을 시작으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2008년 픽사에 정식 입사해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즐겁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까지는 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인생에서 진짜 발현하고자 하는 일을 찾기까지

“중·고등학생 시절을 되돌아보면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특정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이 없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미술반에 들어간 친구를 보면서 내가 더 잘 그린다는 생각만 했지, 미대 가겠다는 생각은 못했죠. 그러다 보니 성적에 맞춰서, 또 주위의 권유와 기대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우리 대학교 의대 본과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학생 때부터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 생활 동안 힘든 상황이 생기거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전공 공부나 일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이 일을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하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해온 것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할 경우 다른 사람, 특히 환자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제가 원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영화, 음악, 비디오게임 등을 취미로 즐기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던 그는 학부 시절 미술반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성숙하고 즐거운 작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영화 ‘업’이 개봉됐을 때 극장 앞줄에서 관람하시던 노부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소울’ 개봉 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애니메이터로 일하는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과물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아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애니메이터가 되겠다고 결정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그는 픽사라는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고 했다.


“픽사 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런 사람들이 더 열심히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일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뛰어난 사람의 경우 어느 정도 여유 있게 일해도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 같지만 사실 그 반대의 모습을 많이 봐 왔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하더라도 공동의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신뢰와 존중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중요하게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수많은 미팅을 하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는데요. 비록 채택되지 않는 의견일지라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함께 언급해줘서 의견을 낸 사람이 위축되지 않고 더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이런 과정이 바쁜 스케줄 중에 당장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계속 쌓이게 되면 구성원의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픽사 팝콘(Pixar Popcorn)’이라는 미니 단편 컬렉션 중 한 편을 감독하기도 했던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기회가 된다면 자신도 여러 세대에게 깊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려줬다. 애니메이터로서 여러 겹의 성격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번 ‘소울’의 연출자인 피트 닥터(Pete Docter)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스토리에 깔려있는 메시지가 여러 세대를 관통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고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생각들이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비록 회사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한 편을 우연한 기회에 감독하기도 했지만 저는 아직 애니메이터로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에 있는 동안 저 자신만의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만들고 있는 몇 가지 단편의 경우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부터 가족애에 관한 것까지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만약 큰 규모의 장편 영화를 만들 기회가 생긴다면 픽사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것과 같은 성숙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vol.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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