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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여기 연세인] 작은 사람들의 마음 전달자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0-12-28

작은 사람들의 마음 전달자

국민육아멘토,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동문(의학 85)



가족상담에 대한 인식을 바꾼 국민 주치의

‘내 가족의 문제’를 속속들이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소아청소년상담 분야에서 10년 넘게 ‘국민육아멘토’로 불려온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동문(의학 85)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민’ 타이틀을 획득한 소수의 전문가들 가운데 이토록 오랜 기간 이견 없이 굳건한 합의를 얻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태도와 명쾌한 화법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종 매체와 강연을 아우르며 활동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 온 그이지만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변함이 없다. 단호하면서도 긍정적이며, 유연하면서도 일관적이다. 의사로서 지닌 전문적 지식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일상의 언어로 번역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로 설명하는 그의 접근은 상담이나 진단에 대한 부모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줘 정신상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턱을 한층 낮춰 놓았다. 


2020년 한 해는 오은영 박사에게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해였다. 본업인 진료와 상담 외에 일간지 정신상담 코너, 방송 활동, 개인 온라인 채널 운영, 무료 강연을 통해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지방에서 올라와 늦은 시간까지 자신을 기다린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 없어 심야 시간까지 진료를 보는 날도 많았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저를 붙잡고 아이 문제를 토로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 눈빛이 너무 절절해서 말씀을 안 들어드릴 수가 없더라고요.” 


이런 숨찬 일정과 벅찬 기대치에도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 신념에 따라 주도적으로 할 수 있으니 일이 늘 즐겁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좋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오 박사는 중학교 1학년 당시 아버지의 암 수술을 계기로 의사가 되기로 하나님께 서원했다. 어려서부터 노래, 붓글씨, 그림 등 다방면에 재능과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겼던 성격이라 가끔은 그 약속을 후회하기도 했다. 


“저는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너무 놀고 싶을 때면 사랑하는 가족이 아팠을 때 그 가족이 겪는 걱정과 두려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하나님께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며 절실하게 기도했던 열네 살 어린 소녀는 중고등학교 내내 그 밤의 약속을 마음에 되새겼다.


“저는 스스로에 대한 동기부여가 있을 때 굉장히 꾸준히, 그리고 오랫동안 최선을 다합니다. 공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도 이 일이 너무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그만해야 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다 지금까지 건강하신 아버지를 뵈면 ‘아, 내가 그래도 약속한 게 있지’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게 돼요. 이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오은영 박사는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전인적 교육을 지향하는 학교의 철학 아래 온전히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는 사춘기 시절을 경험하며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평생의 가치관을 정립했다. 단순히 의사가 되는 것에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좋은’ 의사로 그 꿈이 확장됐다. 


“선한 에너지는 반드시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직 인격이 완벽히 형성되지 않았던 성장기였지만 우리를 대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그래, 나도 반드시 좋은 사람이 돼야 해’라는 열망을 품게 됐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열망이 저를 붙잡고 견디는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대학, 연세를 선택하다

오 박사는 어려서부터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의사는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상대적으로 남녀의 구분이 적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군 중 하나였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훌륭한 의사로 트레이닝 받기 최적인 곳은 어디일까’ 고민한 끝에 그는 연세대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왜 연세대여야 하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제가 세 가지 이유를 들었어요. 첫째, 연세대학교의 교육 철학이 나와 맞는다. 둘째, 좋은 의사로 트레이닝 받고 싶은데 세브란스병원이 적합한 것 같다. 셋째, 연세대학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열려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웃으시면서 흔쾌히 저의 결정을 지지해 주셨고요. 사실 학교에서 저라는 사람을 키워 줄지 않을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여성을 키워 주는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의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천하의 오은영’이 제 별명이었어요. 모든 활동에 굉장히 주도적이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지요.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요.(웃음)”


1987년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중앙도서관 입구에 게시된 대자보를 읽으며 시위 동참에 대한 부담감과 연속적인 수련이 중요한 학과 공부 사이에서 갈등도 컸다. 숙고 끝에 의사로서 제대로 훈련받아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민주화와 사회 정의에 이바지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더욱 학업에 정진했다. 사회 참여에 대한 고민과 자신에 대한 성찰을 지속하면서 오 박사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졌다. 정신과를 선택한 계기 역시 고통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닮은 숭고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 안에는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성품이 내재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고귀함을 느낍니다. 인간이기에 고통스러워하고 인간이기에 아파하고, 인간이기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저는 매일 마주 대하잖아요.”


부모들이 자녀 이야기를 하며 얼굴이 벌게지고 눈물을 글썽이는 그 순간, 인간이 지닌 선한 에너지는 더욱 힘을 발한다.


“진료실 안에서 진심을 다해 삶을 나누고 나면 저는 오히려 힘을 얻어요. 의사 되기 참 잘한 것 같아요.” 


<오은영의 버킷리스트>로 도전과 성찰의 선한 에너지를 나누다

오 박사는 지난 여름 <오은영의 버킷리스트>라는 유튜브 채널을 새롭게 열었다. 2008년 암 수술 이후 하고 싶었던 소소한 일을 하나씩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올해 용기를 내어 시작했다.


“제가 굉장히 활동적인 사람인데도 직업상 몸을 써서 해 본 게 없더군요.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써 봤더니 다 몸 쓰는 일들이었어요.” 


개를 데리고 뛰다 엉뚱하게 넘어지기도 하고 7시간 동안 발레를 배워 겨우 1분짜리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게 웃으며 모든 과정을 즐겼다. 


“사람은 부분의 합이라고 생각해요. 성숙한 것도 있지만 미성숙한 것도 많지요. 저 역시 나이가 들수록 제 안에 그런 미성숙함과 서툰 부분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거나 공감하는 반응을 보면 기쁘고 감사하다. 


“50대인 제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분들도, 아,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생각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요.”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그의 <버킷리스트>를 통해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장기간 이어진 코로나 블루로 고통과 좌절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몸과 마음의 회복탄력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다. 오 박사는 우리 모두가 생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존재이며 그 정당성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돼 있음을 강조한다.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나쁠 수 있고, 진심을 쏟아도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좌절과 고통이 우리의 존재를 훼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굳건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구멍이 숭숭 뚫린 천조각 같아도 서로 어깨를 맞대고 구멍을 꿰매며 나아가야겠지요.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냐고요? 모든 삶은 다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버티고, 기다리고, 그렇게 다음 날을 맞이하다 보면 한 뼘씩 성장해 있을 거라는 오은영 동문. 그는 우리의 “좋은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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