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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소식

[Academia] “살기 위해 자해하는 거예요”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2020-05-21

“살기 위해 자해하는 거예요”

한국 청소년의 ‘비(非)자살적 자해 현상’ 연구 보고서


기고 : 이동귀 교수(심리학과)



흔히 ‘자해’를 했다고 하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대개의 청소년 자해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절박한 시도인 경우가 많다. 이를 ‘비(非)자살적 자해’라고 칭하는데 이는 죽고자 하는 의도 없이 극심한 우울이나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의 자해 시도를 말한다. 이와 같은 비자살적 자해는 습관화되고 점차 그 빈도와 강도가 심해지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 


필자가 상담심리학자로서 한국 청소년의 자해 행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래 두 가지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먼저 자해를 시작하는 연령이 주로 12-14세라는 점, 나아가 아시아 국가 청소년의 자해 경험 비율(예: 중국 청소년의 17.1%, 대만 청소년의 19.2%)이 서구 국가의 경우(예: 미국 청소년의 14%)보다 높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여중생의 약 21%가 한 번 이상 자해 시도 


우리 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 내 ‘상담심리연구실’(이하 본 연구실)의 연구에 따르면, 부산 지역 여중생 491명 중 무려 103명(약 21%)이 한 번 이상 자해한 경험이 있고, 이중 2/3가 비자살적 자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주로 충동적인 상태에서 자해를 시도했고, 자해를 통해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과 스트레스를 조절하고자 했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절실히 바라지만 가족이나 친구 혹은 상담전문가에게 실제로 도움을 청한 비율은 5.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1). 따라서 이들의 정신건강을 제고하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방안이 필요한 실정이다. 



[표 1. 한국 여중생의 자해 행동 직후 심리상태에 대한 다중 응답 분석]



한국 자해 청소년을 위한 단기 개입 프로그램 


본 연구실에서는 자칫 습관화될 위험성이 큰 자해 행동을 치료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개입의 초점은 이들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느끼는 강렬한 부정 정서를 자해가 아닌 다른 건강한 방법으로 조절하도록 돕는 것이다. 교육 및 상담 현장 전문가의 자문 및 실제 자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과의 심층 면담을 토대로 45분씩 8회기 프로그램을 설계한 후 이를 자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 다섯 명(남학생 2명, 여학생 3명)을 대상으로 적용하여 프로그램의 효과를 확인했다. 


프로그램을 운용한 결과, 참가자들의 자살 생각과 공격성 수준이 프로그램 시작 전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감소했고, 정서인식 및 표현 그리고 정서조절 능력이 유의하게 신장된 것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효과가 프로그램이 끝난 2주 뒤에도 잘 유지되었다(그림 1). 프로그램의 효과성은 참가자들의 소감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 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몸을 사랑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여기 참여하면서 자해를 많이 안 하게 된 것 같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 털어놓으니 예전보다 좀 더 가까워진 것 같고, 똑같은 이유로 만나다 보니까 공감이 많이 가서 활동하는 내내 재미있었다.

● 내 감정, 나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고,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짜증날 때 자해 말고도 다른 방법으로 기분을 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 1. 프로그램 사전-사후-추후 변인별 평균점수 변화]



한국 청소년의 자해에 대한 최근 온라인 담론 탐색 


최근 청소년들이 자해를 암시하거나 자해를 인증하는 게시물을 온라인에 공유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일례로 2017년 ‘#우울’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사용한 게시물의 상당수가 자해와 관련되었으며, 2018년 약 1억 1천 개의 우울 관련 인스타그램 게시 사진 중 약 27%가 실제 자해를 암시하는 해시태그(예: #cutting)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실에서는 온라인이 청소년 자해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찰하고 자해 청소년을 상담할 때 유용한 시사점을 얻기 위해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빅데이터 연구방법인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을 사용하여 네이버와 다음 뉴스(2015년부터 2019년 8월까지)에서 청소년 자해 관련 댓글 1,242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자해 청소년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극명하게 양분되었다. 첫 번째 집단은 자해 청소년들의 고충에 공감하며 온정적인 지지나 위로의 마음을 표현한 경우였다(실제 댓글 예: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악순환일 거다. 선생님에게 말해도 그 아이들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호전되지 않았다.... 내 아이 친구들이 행복해야 내 아이도 행복한 것을..”). 반면, 두 번째 집단은 청소년의 자해를 ‘반항적인 행동’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미성숙한 성격과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거나 자해에 이르게 된 청소년의 사정을 평가 절하하는 경우였다(실제 댓글 예: “급식새ㅡ끼들 관종병이 하루 이틀이냐? 나이 먹고 지들 쪽팔린 거 알 때쯤 되면 다 낫는다.”). 그림 2는 댓글에 높은 빈도로 동시 출현한 단어들을 시각적 네트워크 모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 2. 자해 청소년 네이버 및 다음 뉴스댓글 단어 동시출현 네트워크]



오늘날 청소년의 약 20%가 자해 경험이 있고, 주변에서 자해를 하는 또래집단의 영향으로 청소년들이 자해 행동을 할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의 정서를 적절하게 인식·표현하고 특히 부정 정서를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몰려오는 정서적 고통을 줄여보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신체에 상처를 내는 이들의 마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해 청소년들의 미숙함을 꾸짖기에 앞서 그들의 고통에 먼저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그들은 자해가 아닌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참고문헌

김서영, 손하림, 이동귀 (2019). 자해 청소년에 대한 대중의 최근 인식 및 태도: 네이버와 다음 뉴스 댓글을 중심으로. 심사 중. 

이동귀, 함경애, 배병훈 (2016). 청소년 자해행동: 여중생의 자살적 자해와 비자살적 자해.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28(4), 1171-1192

이동귀, 함경애, 정신영, 함용미 (2017). 자해행동 청소년을 위한 단기개입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 재활심리연구, 24(3), 409-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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